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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아온 아저씨 (월간지 『책과인생』2022.8월호)    
글쓴이 : 김주선    22-08-04 11:43    조회 : 3,411

돌아온 아저씨

  김주선

 “전쟁이 끝나가는 어느 봄이었어.” 엄마의 이야기는 늘 그렇게 시작되었다. 대여섯 명의 북한군이 집 안마당까지 왔더란다. 깊은 산속에 숨어 살다가 배가 고파 민가까지 내려왔던 모양이었다. 총구를 겨누거나 공포를 주지는 않았으나 며칠 굶은 애들 마냥 꼬질꼬질한 얼굴이 참 애처로워 보였다고 했다. 배고프다고 먹을 것 좀 내놓으라길래 봄에 캔 감자를 보리밥에 넣고 밥을 해줬더니 맛있게 잘도 먹었단다. 밥 짓는 동안 마당에서 아이들과 자치기 놀이를 하며 노는 북한군을 보니 영락없는 자식 또래의 애들이었다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에이, 엄마. 거짓말하지 마!” 나는 항상 거짓말이라며 엄마의 말을 중간에 잘라놓고는 또 해 달라고 졸랐다. 3년의 전쟁 기간 중 미처 퇴각하지 못한 북한군과 맞닥트린 모양이었다. 전쟁둥이였던 큰언니가 그 일을 기억하는 걸 보면 북한군이라기보다는 깊은 산속에 숨어 사는 빨치산이 아닐까 하는 의심도 들었다. 하지만 우리집 전쟁 이야기에 번번이 등장하는 레퍼토리다 보니 가끔은 기억이 굴절되는지 중공군이라고 우기는 일도 있었다. 믿거나 말거나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고 엄마는 옛날이야기처럼 우려먹곤 했다. 

 1919 기미년생인 엄마가 겪은 6·25 이야기는 참 싱겁고 재미없었다. 전쟁의 참혹함을 일깨워 주는 반공 드라마나 영화처럼 이야깃거리가 많은 경험담을 강요하면 어디선가 주워들은 이야기를 꾸며서 들려주곤 했다. 훗날, 웰컴 투 동막골이라는 영화를 보고 엄마의 전쟁사가 어쩌면 실화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얼마나 깊은 산골에 살았으면 전쟁의 참상을 모르는 순박한 사람이 다 있을까 하고.

 얘기인즉슨 우리 동네 사람들은 피난을 가지 않았던 게다. 북한군은 구경도 못 해보고 느릅재에 진을 친 미군인지 연합군인지만 보았다고 한다. 몇몇 간이 큰 사람은 군용 모포를 얻어 올 정도로 전쟁을 모포 한 장으로 기억하는 사람도 있었다. 우리 가족은 피난을 안 간 것은 아니었다. 전쟁이 나던 해 9월경, 피난길에 올랐지만 얼마 가지 않아 송학 부근 배티고개에서 길을 막아선 군인들이 집으로 돌아가라고 해 반나절 만에 다시 돌아왔다.

 전쟁이라고 해서 모든 지역을 쑥대밭으로 만든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전쟁 막바지에 앞마당에서 적군과 맞닥트리니 얼마나 기함했을까. 그 와중에 아버지는 집을 짓고 있었다. 포탄이 떨어지는 난리통에 집을 짓고 기와를 올린다는 게 이해가 안 되었다. 교과서에서 배운 대로라면 가족을 몰살시키고 안방에 폭탄이라도 던져야 적군답지 않은가. 

 6, 70년대 그 시절은 얼마나 반공교육이 투철하였는지 북한군은 원수고 빨갱이라고 배웠다. 이승복 어린이도 무참히 죽인 천하의 나쁜 괴뢰군인데 엄마의 전쟁 이야기는 늘 말이 안 되었다. 밥만 먹고 떠나는 그 어린 북한군들이 손을 흔들며 인사까지 하고 갔다니 엄마의 전쟁사는 전쟁이 아닌 휴머니즘 다큐멘터리거나 인간극장 같았다.

 학교에서는 어린이용 반공 영화인 돌아온 아저씨를 시청하게 했다. 내 인생의 첫 영화였다. 전직 특수요원으로 출연했던 배우 원빈의 아저씨(2010년 개봉)도 아니고 북에서 간첩이 되어 돌아온 아저씨 이야기였다. 전봇대마다 '수상하면 다시 보고 의심나면 신고하자'는 포스터를 붙였고, 간첩 식별요령을 도덕 시간에 가르쳤으며 불온 삐라(전단)를 주워오면 공책 한 권을 부상으로 주던 때였다.

 영화를 보고 나면 뒤통수가 뜨끔거리고 괜스레 엄마가 염려되었다. 영화처럼 투철하지 못한 반공정신을 가진 휴머니스트 엄마가 마음에 걸렸다. 고향 근처 평창이라는 동네는 아홉 살 어린이가 죽어가면서도 공산당이 싫다고 용감하게 외쳤다는데 괴뢰군에 밥까지 해줬다는 엄마의 이야기를 친구들이 알까 봐 나는 소심한 청소년기를 보냈다. 일가친척 중에 전쟁으로 죽은 사람은 없었다. 하다못해 월남전에 파병된 오빠나 친척분도 없었다. 그래서인가, 나의 영화 감상문 반공 글짓기 대회는 언제나 순위 안에 들지 못했다.


 매년 6월이면 반공, 멸공에 대한 포스터나 표어를 제출하는 것은 공식적인 행사였다. 당시 학교에서는 반공 웅변대회나 글짓기 대회를 열어 수많은 어린이의 의식을 반공으로 중무장시켰던 시절이었다. 사교육으로 웅변학원이 주가를 올릴 때였고 재능있는 애들은 스피치 훈련을 받았다. “하나는 하나요, 둘은 둘이요, 셋은 셋입니다, 여러부~~웅변학원 복도를 지날 때 고음 테스트라도 하는 양 핏대를 올리는 아이들을 볼 수 있었다. 앵무새처럼 원고를 읽는 애들도 있고 당장이라도 두더지를 때려잡을 듯이 호소력 짙은 학생도 있었다. 운동장의 교단 공포증이 있어 웅변은 시키지 않았지만, 웅변원고 쓰는 메뉴얼이 있어 가끔 글 쓰는 일을 담임이 시키곤 했다. “이 연사 강력하게 외칩니다!~”라며 두 손을 번쩍 들고 큰소리로 외치면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와 함께 웅변의 피날레를 장식했다.


 그랬던 내가 중무장 된 멸공 정신을 해제시키고 반공 글짓기를 관두는 계기가 있었다. 큰 오빠네가 이사 가고 빈방으로 남은 사랑채에 세를 놓았다. 서울에서 교직에 있다가 몹쓸 병을 얻어 이사를 왔다는 그 집은 고만고만한 아이들이 셋이나 있었다. 1년도 채 안 되어 다시 어디론가 떠났지만, 형님, 형님 따르던 그 집 안주인이 엄마에게 하는 말을 몰래 엿들었다.

 어린 내가 이해하기는 어려운 단어들이 문틈으로 새어 나왔지만, 짐작만으로도 내가 받는 반공교육이 뭔가 잘못되었다는 기분이 들었다. 엄한 사람이 간첩을 도왔다는 죄목으로 고문에 시달리다 병을 얻었고 무죄로 풀려났으나 폐인이 되어 돌아왔다는 것이다. 그 무렵 서울에서 발령받아 내려오신 선생님 한 분이 우리가 알고 있는 돌아온 아저씨는 북에서 온 사람이 아닌 정권에 저항하는 평범한 한 시민이었을 뿐이라고 말해주었다. 물론 머리통이 커지면서 학교에서 받는 반공교육을 무조건 흡수하지 않을 때이기도 했지만 말이다.

 '호국보훈의 달' 6월은 나라와 국민을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들의 희생을 기리고 그 공로를 보답한다는 의미를 지녔다. 더 넓게는 민주항쟁도 포함된다. 태백산맥 줄기를 타고 함백산 절벽 속에 자리 잡은 동막골의 전쟁 이야기처럼 순수하고 천진했던 나의 어린 날을 끄집어내어 보았다. 한쪽 다리가 없는 바짓가랑이를 펄럭거리며 은빛 알루미늄 목발을 짚은 상이용사는 아니지만, 사랑채에서 시름시름 앓던 그 절름발이 아저씨는 어떻게 되었을까.

 멸공, 반공, 승공이라는 단어가 폐물이 되어버린 지금, 억울한 누명과 고문으로 불구가 되어 돌아온 수많은 아저씨에게 작게나마 묵념의 시간을 가져본다. 사랑방 아저씨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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