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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미쳤어!    
글쓴이 : 박병률    23-01-10 11:34    조회 : 2,502

                                   내가 미쳤어!

 

 한강공원 편의점에서 컵라면 2 개를 샀다. 라면에 끓는 물을 부어서 양손에 들고 전봇대 하나 거리를 걸어가는 중이었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컵 안의 뜨거운 물이 출렁거렸다. 손바닥이 뜨거웠다. 라면 뚜껑을 감싸고 있던 손가락이 펴지면서 라면 하나가 길바닥에 떨어졌다. 라면이 쏟아지면서 땅바닥에 물이 흥건했다.

 친구와 수돗가 옆에 자전거를 세워놓고 자리를 잡았는데 친구가 벤치에 앉아서 나를 바라봤다. 컵라면 하나를 친구 옆에 내려놓고 땅바닥에 쏟아진 라면을 발로 쓸어 모아서 통에 담으려던 참이었다. 순간, 비둘기들이 몰려와 라면을 쪼아 먹었다. 멀찌감치 떨어져서 구경하는데 비둘기들이 라면을 물고 잡아당기는 바람에 빨랫줄처럼 이리저리 엉켰다. 비둘기들의 만찬! 나는 요리사를 자청했다. 쪼그리고 앉아서 손에 들고 있던 라면수프(나중에 넣어 드세요)를 면발에 뿌려 주었다.

 비둘기들이 먹는 걸 보고 컵라면을 또 사러 갔다. 라면에 뜨거운 물을 부어 양손으로 라면을 감싸고 새색시걸음으로 걸었다. 라면을 들고 친구 옆에 앉았다. 기독교 신자인 친구가 비둘기를 손으로 가리키며 성경 말씀을 읊었다.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내가 아멘하고 한마디 거들었다.

 “교통사고가 나더니 미쳤어? 아름다울 미()말일 세!”

 얼마 전에 친구가 교통사고를 당했다. 친구 말에 따르면 남편이 운전대를 잡고 올림픽 도로를 달리는데 앞차가 갑자기 섰단다. 그 바람에 앞차 뒤꽁무니를 받았는데 눈 깜박할 사이에 뒤차에 또 받치고. 그 일로 남편은 병원에 입원했고 친구는 통원 치료를 받았다.

 친구는 큰 사고가 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했다. 어디 그뿐인가. 아이엠에프 때 남편이 하는 사업이 부도가 났을 때도 불평불만을 앞세우기보다 몸이 건강해서 다행이라며 하나님 덕분이라고 했다. 친구는 긍정의 힘이 어디서 나오는 걸까?

 친구에 비해서 나는 무늬만 그리스도인인가. 나는 무슨 일이 잘 안되면 하나님을 원망했다. 그럴 때마다 친구는 미국 케네디 대통령의 말을 인용했다. ‘국가가 당신에게 뭘 해줄지 묻지 말고, 여러분이 국가를 위해 뭘 할 수 있는지 물으라.’ 그러니까 하나님한테 떼쓰고 달라고만 하지 말고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일이 무엇인가를 먼저 생각하라는 뜻이었다.

 이처럼 친구는 나를 만나면 으레 성경 말씀을 전했다. 이야기를 서로 주고받는데 며칠 전에 있었던 일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스쳐 지나갔다.

 한강공원 벤치에 앉아서 쉬고 있는데 40쯤 보이는 여자 두 분이 건너편에 앉아 있는 할머니한테 다가갔다. 여자들이 할머니한테 깍듯이 인사를 하고 한 분은 할머니랑 대화하면서 태블릿 피시에 뭔가 적고 다른 분은 서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들리는 이야기가 할머니는 교회 안 다닌다 하고, 여자는 성경 공부 하자 하고, 할머니가 딸이 어디에 산다는 둥 전화번호를 알려주었다. 그때 여자들한테 다가가서 말을 걸었다.

 “어디서 여론조사 나왔어요?”

 라고 묻자 000 교회라며 여자가 내게 전도지를 내밀었다.

, 그 교회 이단이라고 소문이 났던데요.”

 내가 전도지를 안 받는다고 손을 내 저었다. 그러자 여자들이 양심에 찔렸는지 자리를 뜨면서 나를 힐끗힐끗 돌아봤다. 여자들이 떠난 뒤 할머니한테 말했다.

 “이단의 특징은 성경보다 어떤 개인의 사상이나 이념을 전파하는 경우가 많고, 허황된 말로 사람들을 현혹하거나 협박하기도 한답니다. 할머니, 아무한테나 전화번호 알려 주는 거 아녀요. 요즈음 가짜 종교인이 많데요.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은 성경공부 하자는 사람의 꼬임에 넘어가서 대학도 중퇴하고 돈도 빼앗기고 그랬어요.”

 내가 교회에서 들은 이야기와 실제로 있었던 일을 버무려가며 간략하게 말했다. 할머니는 내 말을 듣는 둥 마는둥 꿀 먹은 벙어리처럼 말없이 앉아 있었다. 잠시 후 입을 열었다.

 “내가 미쳤어. 딸 전화번호까지 말했는지 몰라. 늙으면 죽어야혀!”

 라고, 할머니가 땅이 꺼지게 한숨을 쉬면서 자책하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팠다.

 강 건너를 바라보았다. 할머니 주름진 얼굴에 드리워졌던 어두운 그림자가 다시 살아나고, 그림자 위에 친구의 밝은 에너지가 겹쳤다. 친구가 어떤 어려움에도 웃음을 잃지 않듯 할머니도 아무 일 없을 거야.”라고 스스로 위로했으므로.

 이런저런 일을 떠올려가며 친구랑 커피를 마시는데 참새 여러 마리가 수돗가로 날아왔다. 참새들이 나무에 오르락내리락하면서 바닥에 고인 물로 목을 축였다. 내가 참새를 손으로 가리키며 친구가 비둘기를 바라보고 한 것처럼 따라 했다.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두지 않아도 잘 살지 않느냐.”

 라고 하자 친구가 너털웃음을 지었다.

 수돗가에서 참새가 노는 모습을 바라보며 한동안 머물다가 친구와 헤어졌다. 얼마나 달렸을까. 카톡이 왔다. 자전거를 갓길에 세우고 휴대폰을 꺼냈다. 자전거를 함께 탔던 친구가 보낸 메시지였다.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들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 다니엘 123

 

                                                                  좋은수필 20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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