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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어숍의 북 콘서트    
글쓴이 : 유영석    24-11-27 21:30    조회 : 2,450

헤어숍의 북 콘서트

유영석

누구에게나 기억에 남을 사진 한 컷이 있다. 2023613일은 내 기억에서 쉬이 지워지지 않을 날이다. 내 인생에 처음인 바다를 꿈꾸는 개구리북 콘서트를 가졌으니 말이다. 설렘과 두려움으로 무대에 선 개구리가 당신의 잠자는 꿈을 깨워라!’라는 주제로 참석자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닿지 못한 바다의 꿈을 안고 사는 개구리는 우물 안에서 넓고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드넓은 바다를 동경했다. 개구리는 긍정의 마음을 품고 꿈을 향한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우리는 어릴 적부터 꿈을 꾼다.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가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하루하루는 꿈으로 향하는 하나의 디딤돌이다. 꿈은 소중한 에너지이며, 인간은 소통과 공감을 통해 꿈을 이루어간다. 소나무는 모진 비바람 속에서도 자라지만 사람의 꿈은 나이를 들수록 쪼그라든다. 나는 북 콘서트가 누군가의 시들어가는 꿈을 다시 싱그럽게 하는 작은 응원가가 되기를 바랐다.

북 콘서트의 진한 여운과 감동의 파도는 아직도 가슴속에서 출렁댄다. 막상 콘서트 전에는 온갖 생각들이 나를 감쌌다. 크게 내세울 것도 없는 사람이 책을 출간했다고 야단법석을 떠는 건 아닌지, 콘서트를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허명을 좇아 들뜬 발걸음을 내딛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고민이 깊어졌다. 아내로부터 좀 겸손하세요라는 말을 들을 때는 생각이 더 무거워졌다. 꼭 해야만 하는지 스스로에게 되묻기를 거듭했다. 레미제라블의 저자 빅토르 위고는 인생의 싸움에서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 제일 버겁다고 했다. 북 콘서트를 앞두고 스스로와의 싸움에 며칠을 보냈다.

2년 전부터 긍정의 씨앗을 뿌리기 위해 블로그에 생각의 낙서를 시작했다. 그동안 삶의 성찰과 깨달음을 모아 첫 책을 내게 되었고, 이를 북 콘서트로 매듭을 짓는 것이 순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거기에 내 과시욕이 살짝 섞인 점은 부인하지 못한다. 하지만 소통과 공감으로 삶의 흔적을 남기고 그 경험을 지인들과 나누고 싶었다. 결국 긍정의 힘으로 콘서트를 열게 되었다.

북 콘서트 몇 시간 전에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예의를 갖추고자 오전에 집 근처의 헤어숍에 들렀다. 여느 때처럼 머리를 다듬어주는 담당 헤어 디자이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늘 무슨 좋은 일이 있으세요?” 디자이너의 눈치가 백 단이다. 첫 북 콘서트로 들뜬 내 마음을 금세 읽었나 보다. 나의 답변도 같이 들떴다. “오늘 북 콘서트가 있어요.” 디자이너의 목청이 한 톤 높아졌다. “책 제목이 무엇인가요?” 이런 느낌이 글 쓰는 산고(産苦)의 보상일까. “바다를 꿈꾸는 개구리예요

둘이 나누는 대화를 듣고 있던 다른 헤어 디자이너가 놀란 표정으로 다가와 대뜸 물었다. “선생님, 혹시 유영석 저자 아니신가요?” 내가 더 깜짝 놀라서 되물었다. “아니, 제 이름을 어떻게 아시나요?” 그 디자이너는 신기하다는 듯 답했다. “제 여자 친구가 얼마 전에 저에게 바다를 꿈꾸는 개구리를 선물로 사주었습니다. 그때 책을 감명 깊게 읽어서 저자님도 잘 알고 있습니다.” 나는 놀라움에 휩싸였다.

잠들어가는 호기심이 발동했다. 여자 친구가 책을 어떻게 사게 되었는지 궁금했다. “알라딘에서 긍정의 힘을 검색하다가 작가님 책을 보고 주문했대요. 책 제목이 마음에 들었고 표지에 있는 도전하는 삶의 또 다른 시작을 위하여라는 문구가 눈길을 확 끌었대요나는 순간 몸에서 전율이 흘렀다. ‘세상에 어찌 이런 인연이!’

북 콘서트를 마친 뒤 며칠은 들뜬 마음에 정신이 좀 혼미했다. 마음을 가다듬고 나니 헤어숍에서의 기억이 문득 떠올라 그 디자이너에게 전화를 걸었다. “디자이너님, 왜 친구분이 하필 긍정의 힘을 검색했을까요?” 사연인즉 이랬다. 그 디자이너는 직업군인으로 4년 전에 중사로 제대했다. 당시에는 만사 부정적이어서 주위에 사람이 모이지 않았다. 사람이 사람을 바꾼다고 했던가. 매사 긍정적이며 책 읽기를 좋아하는 여자 친구를 만나면서 꿈과 희망이 커졌다고 한다. 이제는 긍정적인 사람으로 바뀌어 대인관계도 좋아지고 새로운 삶을 사는 기분이라고 했다.

통화 직후 디자이너로부터 문자가 왔다. “작가님, 영광입니다. 우연히 여자 친구한테서 선물 받은 책의 작가님을 일터에서 만나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오늘 일은 우연일까 필연일까, 아니면 하나님의 섭리일까. 낯선 독자와의 만남은 작가에게 주어지는 특별한 보너스. 책은 작가와 독자를 이어주는 연결고리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독자의 음성을 생생하게 들은 건 귀하면서도 특별한 경험이었다. ‘글쓰기는 서비스업이다라는 어느 작가의 말이 새삼 가슴에 와닿았다.

바다를 꿈꾸는 개구리를 세상에 내어놓으면서 글쓰기의 어려움과 내적 고통, 그리고 피땀 어린 노력이 얼마나 필요한지를 알게 되었다. 하지만 내가 쓴 책이 누군가에게 특별한 선물이 되어 읽는 이의 삶에 영감을 주고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깨달음은 나에게 말할 수 없는 기쁨과 황홀함을 안겨주었다. 고통을 겪은 뒤의 열매가 더 달다고 하지 않았나. 작가는 자신을 알아주는 독자 한 명으로 인해 글쓰기의 고통을 잊는다고 한다. 그녀가 나의 열정과 노력을 인정해 준 듯해 내 가슴에 봄꽃이 화사하게 피어올랐다. 책을 읽고 긍정의 바다를 잠수한 청춘의 눈망울에는 어떤 세계가 비추어졌을까?

헤어숍 남자 친구에게 심어준 그녀의 긍정 씨앗은 특별한 선물이자 꿈의 향기였으리라. 이름 모를 그녀에게 감사의 꽃다발을 한 아름 안겨주고 싶다. 멈칫하려는 문학을 향한 내 발길에 용기를 불어넣고 아주 특별한 감동까지 선사했으니. 내가 뿌린 긍정의 씨앗이 푸르게 싹을 틔워 디자이너를 통해 내게로 다시 돌아왔으니, 세상에 이리 귀한 선물이 어디 또 있을까.



 - 『한국산문』 2024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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