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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인도 평원에서의 새해    
글쓴이 : 류미숙    12-05-20 08:42    조회 : 3,814
남인도 평원에서의 새해
류 미 숙
   남인도 타밀나두 주 티르푸르의 아침이 밝았다 이제 이곳도 선선해졌다. 이국땅에서 맞는 새해는 매서운 겨울의 기억은 아득하고 연휴도 없으니 실감나지 않을 때가 많다. 십수년간 해외에서 의류업에 종사하다보니 그래도 연말이면 조금씩 해가 바뀌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매년 10월부터 새해 초까지 많은 바이어들이 이곳을 방문하면서 내년시즌을 준비하고 점검하느라 분주해지기 때문이다.
   이 한적한 시골 티르푸르는 실크로드는 아니었지만 섬유공장들이 2000여개나 된다. 원단 공장뿐 아니라 염색, 봉제공장들이 많은 까닭으로 작은 국내선 공항과 몇 개 되지 않는 호텔에는 저녁이면 외국인들로 붐빈다. 대부분 바이어나 디자이너 또는 기계를 파는 상인들이다. 그들이 하루를 끝내고 호텔야외식당에서 거래처사람들과 맥주를 곁들인 식사를 하며 긴장을 풀고 즐겁게 담소를 나누는 모습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이러한 풍경들은 한적한 시골에 생동감을 준다.
   요즘은 세계적으로 경제가 어렵다고들 아우성이다 이웃 파키스탄은 경제가 휘청거리며 IMF에 구제 금융신청을 했고 중국도 일하기 어려워졌다고들 한다. 지난 11월 26일 인도의 금융, 경제의 중심도시 뭄바이에서 일어난 ‘인도판 9/11테러’는 180명의 사망자를 내며 큰 이변들이 곳곳에서 일어났다. 인도사람들은 며칠째 놀란 마음으로 뉴스를 지켜보며 언제까지 절망 속에 있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지금 이곳은 나름대로 분주하다 이 먼 시골에 봉제, 섬유업체의 큰 공단이 있는 것이다. 공단으로 가기위해 시내에서 차를 타고 한 시간 이상이나 좁고 위험한 왕복2차선 도로를 곡예 하듯 아찔하게 달리다보면 어느새 한적한 시골길이 평화롭게 펼쳐진다. 논밭을 지나며 마치 깊은 산속을 들어가듯 큰 나무들을 지나면 양떼를 몰고 가는 여인들과 만나고 바나나 숲과 야자수 숲을 지나면 또 빈 들판, 그 끝 모를 길에서도 세상을 잊은 듯 작은 노인이 그림처럼 지나간다. 수줍은 처녀와 아이들도 지나간다. 모두가 순박한 얼굴들이다. 이 깊은 숲속 같은 마을에 사람들이 살고 있을 줄이야, 삶은 언제나 경이롭고 불가사이하다.
   넓은 공단에 들어서자 다행히 공기가 맑다. 많은 노동자들이 자리에 앉아서 또는 서서 일하는 모습을 본다. 이곳의 젊은이들은 대부분 여기서 일을 한다. 우리가 입는 옷들이 이렇게 먼 곳에서 한 손 한 손을 거쳐 많은 사연을 수놓으며, 배에 실려 또는 비행기를 타고 미국으로 유럽으로 한국으로 건너가 우리에게 닿게 된다. 그리고 우리가 지불한 돈으로 이곳 사람들이 임금을 받는 것이다. 지구가 둥글어서가 아니라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고 있는 것을 본다. 가끔 한국인들이 이 먼 구석까지 찾아오는 것이 내게는 신기해 보인다. 인도사람들도 유럽이나 미국인들만 보다가 이제 한국인들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우리들 삶의 모습이다.
   지금 세계경제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묵묵히 내일을 준비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을 본다. 결코 침체된 모습을 보이지 않고 조용히 인내하는 모습으로 긍정적 사고 ‘노 프라블럼(No problem)’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새해는 좀더 먼 시각으로 드넓게 세상을 내다보며 절망보다는 희망을, 위기는 기회라는 말을 상기하며 한국인의 근면성, 은근과 끈기가 다시 발휘될 때라고 믿는 것이다. 모두기 힘찬 용기로 행복한 2009년을 만들어 갈 수 있도록 남인도 먼 평원에서 기원해본다.
 
 
월간 <<불광>> 2009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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