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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지 않은 길    
글쓴이 : 류미숙    12-05-20 08:50    조회 : 4,873
가지 않은 길
류 미숙
   느긋한 아침이다. 천천히 신문을 읽은 뒤, 커피 한 잔을 들고 컴퓨터 앞에 앉는다. 지난 밤 썼던 글을 읽어본다. 커피에서 가끔 담배 냄새가 난다.
시간은 컴퓨터 앞에서 살처럼 지나가는 지금은 초겨울 오전, 따뜻한 햇볕이 창을 넘어온다. 소파에 기대앉아 책을 읽고 있으니 고양이처럼 나긋한 평온이 온몸에 퍼진다. 나는 이 한가한 호사가 바쁘게 사는 사람들에게 미안할 때가 많다. 아무런 생산적인 일도 없이 아깝게 흐르는 시간을 생각하면 책이라도 읽는 것이 조금은 위안이 된다. 어쩐 일인지 시간만큼은 늘 내 편이었다.
   어릴 적부터 가족 누군가가 집을 떠나 있을 때가 많았고 지금도 그런 삶은 변하지 않고 있다. 혼자의 시간은 너무나 익숙해져버려 바쁜 일로 집밖을 나갈 일이 많아지면 허공에 떠 있는 것처럼 혼란스럽다. 그러면 며칠 동안은 집에서 재충전해야 한다.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들으면서 빈둥거리듯 무심히 시간을 흘려버리면 무언가 다시 차오르는 느낌이 든다. 집은 내게 가장 편한 쉼터고 작은 우주다. 그런 내가 평생 딱 한 번 가출하고 싶은 적이 있었다. 사춘기 때가 아니라 30대 초반쯤이었을 것이다. 당시 내겐 가정적인 남편과 다람쥐 같은 아들, 딸, 집안 곳곳을 잘 챙겨주는 친정엄마와 함께 살고 있어 아쉬울 것이 없던 시절이었다.
   어느 날 남편의 퇴근을 무심히 기다리던 초저녁이었다. 별이 총총 떠오르기 시작하자 갑자기 아파트 현관문을 박차고 뛰쳐나가고 싶은 강렬한 충동이 일어났다. 입은 옷 그대로 목적지도 없이 발길 닿는 대로 어디론가 미지의 길이면 더 좋겠다 싶은, 그런 길을 마냥 걸어가고 싶었다.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밤이 깊으면 그냥 길에서 잠들고 싶었다. 어둠이 내리는 시골길에서 별이 뜨는 것과 사라지는 것을 보고 싶었다. 바람이 들풀에게 속삭이는 소리가 듣고 싶었다. 내 집이 너무 좁고 답답했다. 무작정 뛰쳐나가고 싶은 열망이 한순간 끓어올라 스스로 당황하고 있을 때, 부엌에서 요리하는 엄마의 따뜻한 뒷모습과 옆에서 레고를 가지고 놀고 있는 아이들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이 찰나의 갈등을 나는 너무나 뚜렷하게 평생 기억하게 될 것이며, 먼 후일 가지 않은 길에 대해 생각하게 될 것을 짐작했다.
   엄마는 항상 내가 어린애로만 보이는지 힘든 일을 도맡아 하면서 손수 뜨개질한 옷을 아이들에게 입히기도 하고 딸아이 머리도 매일 빗겨주면서 예쁜 머리핀을 눈에 띄는 대로 사왔다. “너는 이런 예쁜 핀을 보면 사고 싶지 않니? 애 엄마가?” 하며 즐겨한다. 그뿐 아니라 아이들과 그림도 그리고 공작도 함께 하며 한문까지 가르쳐주었다. 내가 잘 하지 못하는 것들을 당신 탓인 양 대신 다 해주었다.
   나는 점점 할 일이 없어져갔다. 빛바랜 달력처럼, 화병에 꽂힌 꽃처럼 서서히 시들어갔다. 그렇다고 움직임이 많은 아이들을 엄마에게만 맡길 수 없어 자주 외출 할 수도 없었다. 반면 책 읽는 시간만은 넉넉했고 그것은 어느 정도 만족감을 주었다. 엄마가 읽던 어느 스님이 엮은 <<선문집 (禪文集)>>이 기억에 남는다. 가끔은 카세트 테이프를 틀어 놓고 가수가 되어 관객 앞의 나를 상상하며 몇 시간씩 서서 노래를 불렀다. 노래 속의 주인공이 되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따라가다 한참 만에 돌아오곤 하였다. 엄마는 시끄러워도 상관 하지 않았다. 청소와 설거지는 내 담당인데 아침 설거지를 끝내고 엄마와 커피 마실 때가 제일 좋았다. 함께 차를 마시며 인생 이야기를 나누면 엄마는 주로 불교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남편과 속상한 일을 하소연하면 마음이 잘 정리 되었다. “사람을 미워하지 마라, 그것은 살인과 다름없다.” 엄마는 늘 사위 편이었고 내가 너무 까다롭다고 했다.
   몇 년 후 정말 먼 길을 떠나는 기회가 찾아왔다. 혼자가 아니라 남편 직장을 따라 가족과 함께 멀리 외국으로 날아갔다. 처음으로 우리 네 가족만이 살게 된 곳은 방글라데시 다카였다. 엄마는 외국까지 따라 오고 싶어 하지는 않았다. 오지에서 병이라도 들면 돌아오지 못할까 엄마답지 않은 약한 마음을 보였다. 엄마는 자신의 운명을 알고 있었을까. 내가 떠난 지 채 2년도 지나지 않아 유방암으로 돌아가셨다. 마치 자신의 일이 끝난 것처럼, 내가 오랫동안 돌아오지 못할 것을 알기라도 한 것처럼 그렇게 총총 떠나셨다. 64세 때였다. 다카에서는 엄마 없이도 용감하게 잘 살아보리라 다짐했다. 그러나 환경이 너무 열악해 남편은 미리 요리와 청소하는 사람을 구해 놓았다. 요리보다 청소가 전문인 나는 그들의 청소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아도 어쩔 수 없었다. 까다로운 내 성격도 여기선 절대 통하지 않았다. 이제 아이들은 스쿨 버스가 와서 데려가고 데려왔다. 아이들을 위해 엄마처럼 맛있고 예쁜 도시락을 싸보고 싶었지만 학교에서 다 해결해주었다. 지나칠 정도로 몸이 편한 것은 편한 것이 아니었다. 몸은 점점 무거워지고 더 깊고 긴 시간이 노크했다. ‘나와 놀지 않을래?’ 시간의 고독이 다시 손을 내밀었다.
   어느새 나는 미지의 험한 길에 꿈처럼 서 있었다. 혹염에 지쳐 죽은 듯 길에 누워 있는 사람을 보았다. 우기의 쏟아지는 빗줄기 속에서 나뭇잎처럼 약한 생명이 사라져가는 것도 보았다. 뜨거운 땡볕아래 벌거벗고 미친 채 돌아다니는 젊은 남자도 보았다. 거리에서 배가 산만큼이나 솟아오른 임신한 거지 여자도 보았다. 팔이 하나뿐인 사람, 앉은뱅이가 구걸하는 것도 너무 많이 보았다. 홍수에 쓸려 수많은 집과 사람들이 한꺼번에 사라져 가는 것도 보았다. 너무 덥고, 비가 너무 많이 오는 어두운 길이었다. 낯설고 외떨어진 이 길은 인도 히말라야에서 시작한 갠지즈강이 끝나는 곳이었다. 삶과 죽음의 땅이었다.
   나는 자주 아팠다. 죽음 같은 깊은 고독이 늘 내 곁에 머물고 떠나지 않았다. 우주는 인간을 위해 언제나 긍정적 메시지를 보낸다고 믿어야 숨을 쉴 수 있었다. 방글라데시 드넓은 땅은 아무 것도 들려주지 않았다. 어떠한 소리도 모이지 않고 흩어져 멀리 날아갔다. 그러나 가만히 집중하면 엄마처럼 삶의 밀어를 들려주었다.
   ‘고독은 받아들일 때 가장 찬란하게 빛나는 법, 고요히 귀를 기울여 비밀의 화원에 꽃 피는 소리를 들어보아라. 상처받지 않는 영혼만이 어둠을 이겨낼 수 있다.’고 멀리서 온 바람이 속삭여주었다.
   저 깊은 곳에서 기쁨이 울려왔다. 기쁨의 에너지가 넘치거나 약해질 때면 글을 썼다. 글 쓰는 일은 어둠에서 나오는 길이었다. 오래 전 가지 않았던 그 길은 어느 시점, 비슷한 거리에서 다시 만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 길 끝에는 엄마가 서 있었다. 가끔 거울 속에서도 엄마의 모습이 보인다.
 
 
<<한국산문>> 2012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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