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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조가 오는 날    
글쓴이 : 김진숙    25-04-09 19:45    조회 : 2,117

백조가 오는 날

 

 소음이다. 단지 소음일 뿐이다. TV에선 쉴 새 없이 뉴스가 쏟아진다. 새로운 소식을 피해 조심히 채널을 다루지만 건너가는 채널 틈새로 새로운 소식은 눈과 귀를 공략한다. 애써 외면하다가 드디어 원하는 평화로운 채널에 안착한다. 눈과 귀를 닫을 것이다. 매스미디어로부터 내 이목(耳目) 통해 들어오는 대부분은 소음에 불과한 빛과 소리이다. 저들로부터 내 마음을 보호할 것이다. 영화나 드라마를 택한다. 가능하면 먼 나라의, 또는 지금으로부터 먼 시대의 것으로.

비도덕적 사회에서 권력을 장악한 집단은 개인의 생각을 통제하기 위해 우민화 정책을 펼치기도 한다. 파리한 여공들이 작업하는 공장에서는 유행가 가락이 현실을 잊게 만들고 거리마다 넘치는 술집에서는 술을 권하며 냉정한 판단을 마비시킨다. 때로는 건전과 공정을 내세운 스포츠에 열광하게 하거나 심지어 문화 예술 또한 그러한 수단이 되기도 한다.

오래 전부터 나는 스스로에게 그런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외부의 자극들로 인하여 마음이 날카로워질 때 나에게 주문한다. 지금은 눈과 귀를 닫아야 할 시간이다. 사촌이 땅을 샀다는 소리는 흘려 보내라. 정치와 사회의 소식을 외면하라. 먼 나라의 전쟁, 내 나라에서 벌어지는 암투, 작게는 부동산의 시세, 주가의 등락. 이 모든 사회 현상을 가능한 차단하라.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지를 판단하려 하지 말아라. 어떤 미래가 올지 예측하지 말아라. 그리고 음악과 드라마와 영화와 픽션의 세계에 머물러라.

마음은 청춘이라는 말이 있다. 몸은 늙어도 마음만은 항상 젊어 있다는 뜻으로 사용되는 듯하다. 바라보는 청춘은 아름답다. 그러나 청춘 그 자체는 불안하고 연약하다. 죽음에 대한 시간적 압박만 비교적 멀리 있을 뿐 미지의 삶에 대한 모든 두려움과 불안은 그 앞에 있다. 따라서 아무리 늙어도 마음은 청춘이라는 말은 아무리 세월이 가도 마음은 늘 연약하고 불안한 상태라는 말로 번역할 수도 있지 않을까? 적어도 나에게는 그러하다.

이십 대 초 내 마음은 그 또래에 비해 더 연약하고 불안했다. 대학생이 되어 서울로 와 보니 지방의 작은 도시에서 같은 단발머리에 같은 가방, 같은 교복을 입고 비슷한 도시락을 먹던 때와는 모든 것이 달랐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진 자들의 화려한 모습. 그들이 주고받는 다른 세계의 낯선 언어들. 그것들은 대체로 그들에 대한 질투, 결국엔 나의 패배감으로 이어져 마음은 쉽사리 평정을 잃고 몸은 기진맥진하였다.

그 이후에도 일상을 가장 괴롭히는 것은 불의의 사건이나 불행이 아니라 흔들리고 불안한 내 마음이었다. 사건이나 불행과 달리 흔들리고 불안한 마음은 늘 내 속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불안의 촉매제는 대체로 눈과 귀로 들어오는 외부의 자극들이었다. 그러나 그것을 피할 도리는 없고 나를 지키기 위해 필요한 것은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는 평정심이었는데 쉬운 일이 아니었다. 호수에 파문이 일면 시간이 가야 잠잠해지듯 흔들린 마음을 부여잡고 시간이 가기를 기다릴 뿐이었다.

공자님에 의지해서 마흔 살이 되기를 기다렸다. 마흔은 불혹(不惑)이라 하였으니 나이를 먹으면 어느 것에도 흔들리지 않은 마음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마흔은커녕 더 나이를 들어서도 그 경지는 오지 않았다. 그래서 깨달았다. 공자는 예언자가 아니라 인류의 스승이지 않는가? 그는 우리에게 깨우침을 주려 한 것이다. 마흔 살은 불혹이 저절로 찾아오는 나이가 아니라 노력을 통해서 불혹, 마음의 평정을 이루어내야 하는 나이라고, 시간이 가기만 기다렸을 뿐 수양의 노력을 하지 못했던 내겐 불혹도 지천명(知天命)도 이순(耳順)도 끝내 찾아오지 않았다.

마음에 대하여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내 방 안에서 쉽게 만날 수 있었다. 마음의 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은 스마트폰 속에 가득하였다. 그들처럼 요가를 하고 명상을 해보았다. 의도적인 운동을 통해서 마음으로 가는 에너지를 몸 쪽으로 돌리려고 노력하였다. 쇼펜하우어와 니체, 장자의 철학 강론을 몇 번씩 돌려 들었다. 외부의 자극을 원천봉쇄하는 방법도 여전히 시도해 본다. 직장 생활을 끝낸 지금은 이런저런 직접적 자극에서 많이 벗어나 있기도 하다.

그러나 내 집안으로 무단 침입해 오는 빛과 소리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매스미디어는 내 방으로 들어와 현란한 빛과 소리로 물건을 판다. 가진 자들의 터무니 없이 화려한 삶을 보여 주어 내 주변을 둘러보게 한다. 필경은 나비 효과를 일으킬 먼 나라의 위험한 소식을 알려 준다. 온갖 부정적인 경제지표들을 실시간으로 보여주어 마음 한구석을 옥죄게 한다. 럴 때 나는 그 소리와 빛으로부터 나를 보호하기 위해 물러 나와 다른 세계로 들어간다. 세이렌이 노래를 멈추지 않는다면 내 귀를 막을 수밖에 없다. 쇼스타코비치의 왈츠 선율로 귀를 막고 먼 다른 나라의 영화와 드라마로 바깥의 소식을 차단한다. 모든 매체를 동원하여 오직 뉴스만 보는 남편의 눈에 나는 어쩌면 한심한 쾌락주의자일 것이다.

연암 박지원이 말하기를 소리와 빛은 모두 외물(外物)이다. 외물이 사람으로 하여금 똑바로 듣고 보는 것은 잃게 한다. 인생을 살아가는 데 눈과 귀를 통하여 들어오는 위험이 얼마나 많은가? 이에 현혹되어 마음의 평정을 잃으면 그것이 큰 병이 된다라고 했다. 이 말은 눈과 귀로 들어오는 외부의 자극에 지나치게 의존하면 마음의 평정을 잃게 된다는 말이다. 더욱이 연암이 살던 세상과는 비교할 수 없이 눈과 귀로 들어오는 것들이 폭주하는 오늘날이 아닌가.

나는 그 정보들의 진위를 따질 수 있을 만큼 현명하지 못하다. 그러나 외부의 자극을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둔하거나 그것을 무시할 수 있을 단단하지도 못하다. 이런 내가 살아 남기 위해서는 나름의 방어책이 필요한 것 아닌가? 이미 들어 온 자극에 대해서는 운동과 명상을 통해 뇌의 편도체를 가라앉힌다. 눈과 귀를 스스로 막는다. 때로는 자신에게 우민화 전략을 써서 음악과 영화와 드라마와 문학의 셰계에 빠져들게 한다. 예로부터 예술은 인간이 불안을 잠재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었다. 그것들에 몰두하여 혹여나 가동될 수 있는 분석과 종합과 비판의 기회를 최소화한다.

그렇게 살아도 되지 않을까? 스무살 신입생 때, 도서관에 처박혀 소설만 읽는 것은 현실에 대한 도피라고 나를 향해 던진 운동권 선배의 질타는 꽤 오래 마음을 찔렀다. 하지만 이제 이렇게 살아도 되지 않을까?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의 평화고 그것은 너무나 깨어지기 쉬운 것이라 그를 지키는 데 총력을 다하리라 말한다면 이기적인 것일까?

내 마음은 고요한 물결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고

구름이 지나가도 그림자 지는 곳

돌을 던지는 사람

고기를 낚는 사람

노래를 부르는 사람

(중략)

행여 백조가 오는 날

이 물가 어지러울까

나는 밤마다 꿈을 덮노라. (김광섭 마음에서)

시인은 끝없이 깨어지는 마음의 상태를 괴로워했다. 외부의 자극에 마음의 평정을 잃을까 우려했던 연암이나 지나가는 구름 한 조각에도 마음이 흐려졌던 시인. 이들에게서 세상을 살아 내야 하는 나약한 인간 존재의 동질감을 느끼고 위로를 얻는다.

살아 있는 동안, 행여 백조가 찾아 줄 수 있는 마음을 얻을 수 있을까? 그날을 기대하면서 나 또한 밤마다의 어지러운 꿈을 고요히 덮어 본다.

 

김진숙 (한국산문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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