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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일장    
글쓴이 : 박병률    25-04-22 15:28    조회 : 2,498

                                                오일장

 

  전철 안에는 노인들이 많았다. ‘용문 전통시장오일장에 다녀오는지 손에는 한 보따리씩 물건이 들려 있었다. 전철이 출발하자 중절모를 쓴 80쯤 보이는 노인이 의자에 앉아 껌을 씹으면서 노래 반주기를 크게 틀었다. 주변 사람들의 눈이 노인한테 쏠렸다.

  내 앞에 앉은 중년 남자가 멀리 떨어진 노인을 바라보며 불평을 토했다.

 “저러믄 안 되는디유.”

 내 옆자리에 앉은 할머니도 혀를 끌끌 차며 한마디 거들었다.

 “할배가 치매 걸렸나 봬, 여기가 무신 콜라텍인교?”

 작은 소리로 말을 이었다.

콜라텍은 사교댄스와 스포츠댄스를 즐기는데 2,000원만 내면 온종일 이용 가능하니더. 80대 어른이 지팡이 짚고 들어왔다가 음악이 나오면 지팡이를 내팽개치고 허리가 꼿꼿해지니더. 춤을 추다 만난 파트너와 마음이 맞으면 식당으로 가서 함께 식사하며 이야기꽃을 피우기도 하니더. 노인들 놀이터 아닌교.’

 사람들은 여기저기서 웅성거리고 노래 반주기에서는 구슬픈 노래가 흘렀다.

 ‘어머님의 손을 놓고 떠나올 때엔 부엉새도 울었다오 나도 울었오 가랑잎이 휘날리는 산마루턱을 넘어오던 그날 밤이 그리웁고나~. 달도 하나 해도 하나 사랑도 하나 이 나라의 바친 마음 그도 하나이련만 하물며 조국이야 둘이 있을까 보냐 모두야 우리들은 단군의 자손~.’

 노래가 연거푸 크게 울려 퍼졌다.

 노래를 듣는 사람들의 표정이 각양각색이었다.

 외국인은 노인을 힐끗힐끗 바라보고, 어떤 사람은 양손으로 귀를 막고, 또 다른 사람은 인상을 쓰면서 자는 척했다.

 전철이 몇 정거장을 통과하자 어떤 중년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등산을 다녀오는지 등에 배낭을 메고 있었다. 술 한잔 걸쳤는지 얼굴이 홍당무가 되었는데 몸도 이기지 못하면서 큰소리했다.

 “풍악이 울려서 좋네, 코레일 좋네.”

하며 몸을 흔들었다.

 그때 어디선가 또 큰소리가 났다.

 “그만하세요! 그만하세요!”

 소리에 놀랐는지 춤을 추던 사람이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노래 반주기에서는 노래가 계속 흘렀다.

 ‘문패도 번지수도 없는 주막에 궂은 비 내리는 이 밤이 애절쿠려 능수버들 휘늘어진 창살에 기대여 어느 날짜 오시겠오 울던 사람아~.’

 노인은 의자에 앉아서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오른발 위에 왼발을 올려놓고 발만 까닥거렸다.

 용문에서 구리까지 오는 동안 노랫소리가 이어졌다. 노인이구리에서 내렸다. 전철 안이 조용해지자 앓던 이가 빠진 것 같았다.

 나는, 서울에서 한 시간 남짓 전철을 타고 용문시장에 들러 실컷 구경하고 호미 하나 사서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천막으로 꾸민 상설시장은 사람들로 붐볐다. 시장 모퉁이로 돌아서자 주민들이 팔려고 가지고 나온 채소, 버섯, 두부, 산나물이 얼굴을 내밀고. 농기구, 과일, , 신발 등을 파는 가게가 즐비했다.

 어릴 적 시골에서 자라서 그런지 흙냄새가 좋고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장날 풍경이 그리울 때가 있다. 그래서 나는 가끔 전철을 탄다. 인천 소래포구에 가서 개펄을 보고 시장을 한 바퀴 돈 뒤 회도 먹고, 춘천 닭갈비 먹고 소양강 처녀 동상 앞에서 사진도 찍고, 성남 모란시장 옛날식 다방에 앉아 쌍화차도 마신 뒤 천막 속에서 하는 서커스도 봤다. 도시에서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살다가 서울 도심을 벗어나면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도심을 빠져나갈 때는 해방된 느낌이 들고, 바람 쐬고 집으로 들어올 때는 도심에서 찌들었던 때를 벗어버린 느낌이 들었으므로.

 하지만 기분이 상할 때도 있다. 용문시장에 바람 쐬러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 어떤 노인이노래방 반주기를 크게 틀고, 한 사람은 술에 취한 몸을 흔들어 대는 바람에 전철 안 풍경을 만나는 경우이다길을 걷다 보면 소도 보고 중도 본다는 속담이 있다. 하루를 지내다 보면 온갖 일을 다 보고 겪는다는 뜻인데 좋은 꼴만 보겠는가!

               성동신문 2025/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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