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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응답하라, 1981 -꽃을 준 남자-    
글쓴이 : 곽지원    25-05-16 14:25    조회 : 1,268

응답하라, 1981

-꽃을 준 남자-

 

 곽지원

 

 맞은편에 앉은 친구 남편의 시선이 내 등 뒤로 향했다. 음식은 다 나온 거 같은데, 뭐지? 고개를 돌리려는 순간, 우리 테이블 옆으로 불쑥 다가온 한 남자.

~~~, 여기서 이렇게 만나네.”

그의 시선이 내 얼굴이 와서 꽂힌다. 유난히 옅은 갈색 눈동자. 날카로운 턱 선은 사라졌지만, 그 눈동자만큼은 변함이 없다. 그 순간 팔에 소름이 돋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나 모르겠어? 난 바로 알아봤는데.”

어리둥절해 하는 친구 S 부부와 그 집 아이들, 그리고 나의 큰딸까지, 모두의 눈길이 우리 둘 사이를 바쁘게 오갔다. 시간이 멈춘 것 같지만, 어색한 침묵은 불과 몇 초 밖에 안 흘렀을 터.

설마… CH…?”

 

중학교를 졸업한 지 수십 년 만에 태평양 건너 레돈도 비치(Redondo Beach)에 있는 유명한 한국 횟집에서, 그와 그렇게 조우했다. 한국으로 돌아가기 하루 전날이라 진수성찬을 대접받고 귀가했지만, 바로 잠자리에 들 수가 없었다. 무슨 사연인지 빨리 털어놓으라는 S의 성화에 마주 앉았는데, 미국 집의 어두운 거실 조명이 그리 고마울 줄이야….

 

내가 다닌 중학교는 남녀공학이었다. 80년대 초만 해도, 무늬와 이름만 공학이지 뼛속까지 남녀칠세부동석이었다. 남학생과 여학생은 건물도 달랐고, 교무실이 그 중간에 있었다. 남녀가 서로 얼굴을 보거나 말을 섞을 수 있는 기회는 일주일에 딱 한 번, 서클 활동을 할 때였다.  

그 서클마저 나와 달랐던 CH는 어디서 나를 보았는지, 어느 날 갑자기 쫓아다니며 사귀자고 조르기 시작했다. 그 집착이 어느 정도였냐 하면, 자기 담임에게 고민 상담을 해서 그 얘기가 우리 담임 선생님에게 전달되었고, 결국은 엄마까지 학교로 불려왔다.  

29년 만에 재회한 담임 선생님이 초보 교사로서 겪은 일이다. 당시 선생님 앞에서도 이 모든 상황이 너무나 부끄럽고 수치스러워, 고개를 못 들었던 나. 

내가 좋다고 하면 우리는 공식 커플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짝사랑하는 오빠가 있었고, CH의 이국적인 갈색 눈동자도 싫었다. 그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조차 소름이 끼쳤다. 하지만 그는 포기라는 단어를 모르는 아이였다. 장미꽃을 주고 가지를 않나, 일요일에는 성당까지 따라와서 중등부 주일학교는 물론이고 미사까지 참석했다.

그가 주고 간 장미꽃 한 송이 덕분에, 고등학교에 가서도 꽃을 받은 여자애라는 꼬리표가 붙어 다녔다. 사귄 사이도 아닌데 그런 소문이 따라다니는 것에 몸서리쳤다. CH나를 짝사랑한 남자애라기보다는, ‘참 조숙했던 스토커정도로 기억에 남아 있었다.

 

25년이 지나 캘리포니아 식당에서 다른 테이블에 앉아 있는 내 얼굴을 단박에 알아볼 정도이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하랴. , 고백하자면 25년은 아니다. 고등학교에 올라간 후, 해외로 유학 가는 형에게 책을 선물하고 싶다며, 함께 서점에 가자는 전화가 왔다. 그의 스토킹에서 벗어난 다음이라 경계심이 사라졌던 걸까? 아무튼 우리는 주말에 광화문에서 만나서 책도 고르고 밀크셰이크도 먹었다. 그게 데이트였을까?

 

담임 선생님과의 재회로 다시 추억하는, 나에게 처음으로 꽃을 준 남자. 사춘기 소녀에게는 불쾌한 소문을 퍼뜨린 진상이었지만, 내일모레 육십인 갱년기 여자에게는 소중한 기억이다.

응답하라, 1981.

 

 *[소풍 끝에 남은 기억](포레스트 웨일 출판사 공동작가 기획)에 나오는 수필 중 하나입니다.

'응답하라, 1981 -크로키북을 든 그녀-'를 먼저 읽으면 연결이 되는 연작 형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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