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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 작은 해바라기    
글쓴이 : 조헌    12-05-20 09:07    조회 : 4,270
 
키 작은 해바라기

조     헌

 벌써 30년 전. 그러니까 1976년 여름이다. 당시 대학생들 사이에는 소위 무전여행(無錢旅行)이라는 것이 유행했었다. 엄밀히 말해 완전히 무전은 아니지만 경비를 아끼기 위해 손수 밥을 지어먹고 텐트에서 자면서 고생을 자초하던 여행이었다.
 짧게는 며칠이지만 길게는 보름씩도 다녔는데 그해 7월, 나는 남도의 사찰 몇 군데를 돌아볼 요량으로 혼자 길을 나섰다. 그 여행의 일정 속에는 3년 전(1973년)에 준공되어 화제를 모으던 남해대교(南海大橋)도 끼어 있었다.

 여행이 거의 끝나갈 무렵, 대교를 가기 위해 하동에 도착한 것은 오후 세시가 넘어서였다. 다행히 버스는 바로 있었고 이차선 포장도로를 달려 얼마쯤이나 갔을까? 저 멀리 대교가 보이는 한 마을을 지나고 있을 때였다. 차창너머로 시골학교 운동장이, 은빛 햇살 속에 비늘처럼 반짝이는 바다를 배경으로 동화 속 같은 세계를 연출하고 있었다. 순간 나는 차에서 내려 그림 속 같은 풍경을 바라보며 노을이 질 때까지 길턱에 앉아 있었다. 전체라야 불과 이십호 남짓 되는 마을은 찻길 보다 아래 있었다. 층층이 내려가며 집들이 벌려있고, 커다란 수협공판장 밑으로 갯벌과 바다가 이어져 삼태기 안 같이 깊고 아늑한 곳이었다.
 내가 그 할머니를 만난 것은 바로 이곳에서였다. 해방이 되던 해. 열아홉 살로 이곳으로 시집을 왔다고 하니 그때 막 쉰 살이셨지만, 무엇보다도 쪽을 찐 머리 모양과 바닷가 거친 볕에 가무잡잡 그은 얼굴이 도회지에서만 살았던 나의 눈에는 영락없는 할머니로 내비쳤다.

 “혹시 민박 할 수 있는 집이 있나요?” 거의 사람의 그림자를 찾아 볼 수 없는 마을을 가로질러 공판장까지 내려온 나는 평상 위에 앉아 있던 사람들에게 공손히 물었다. 민박이라는 말조차 잘 쓰지 않던 시절인지라 제가끔 떠들며 그물작업을 하던 그들은 서로를 멀뚱히 바라볼 뿐 말이 없었다. “서울서 여행 온 학생인데 혹시 하룻밤 묵을 수 있는 집이 있나요?” 재차 묻자 그 중 나이든 이가 학교 옆 파란 대문 집을 가리키며 거긴 아마 빈방이 있을 거라고 했다. 그 집은 마을 맨 위쪽에 있었다. 우물이 있는 마당은 싸리비로 깨끗이 쓸려 있고, 툇마루에 달린 두개의 방은 열쇠로 잠긴 채 아무도 없었다. 바다를 향해 쌓은 얕은 담장엔 줄지어 심어놓은 해바라기가 간간히 부는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집은 큰 편이었으나 현재는 앞채만 사용하고 있을 뿐, 뒤채는 사람의 흔적이 전혀 없었다. 뒤채의 크기로 보아 꽤 여러 식구들이 함께 살았음직했다.
 이때였다. 광주리를 옆에 낀 작은 할머니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마당으로 들어섰다. “갯일하다 말 듣고 왔소만, 서울서 온 학생이라고? 방이야 있지만 쓸 만한지 모르겠네.” 허리에 찼던 열쇠 꾸러미로 자물쇠를 따고 방을 보여주었다. 아무것도 없이 말끔히 치워진 방은 하얀 벽지가 깨끗했다.
 “참말로 서울서 왔나? 이리 더운 날씨에 좋은 집 놔두고 이 먼데까지 뭐할라 왔을꼬.” 이해할 수가 없다는 듯 혀를 차는 할머니에게 왜 이 큰집에 혼자 사냐고 물으니 “많을 때는 열 식구도 살았지. 그러다 셋은 죽고 나머지는 떠나고 덜렁 나만 남게 된 거야.” 부엌과 우물가를 연신 오가며 할머니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얼마 후, 백열등을 켠 툇마루위에 밥상을 사이에 두고 할머니와 마주 앉았다. 소라를 넣고 끓인 된장찌개와 부추김치, 그리고 미역무침이 놓인 조촐한 밥상이었다. 찬은 없어도 배불리 먹으라는 말이 진정 살가웠다.

 식사를 마치자, 나는 걸어서 대교에 다녀올 생각으로 채비를 차렸다. 왕복 한 시간은 족히 걸릴 거라며 어둔 길을 염려해 할머니는 랜턴을 쥐어주었다. 집에 돌아온 시간은 열시쯤이었다. 툇마루에 바싹 꼬부리고 팔베개를 한 채, 누워 계시는 할머니의 모습은 똘똘 뭉쳐놓은 보따리 모양 너무 작아 안쓰러웠다. 왜 안 주무셨냐는 말에 “사람이 나가 오지 않았는데 자긴?”하며 방으로 들어가선 문을 연 채 앉아, 땀을 닦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 방에는 텔레비전도 그렇지만 당시로는 드문 녹음기와 커다란 전축까지 집에 어울리지 않은 가전제품들로 가득했다. “시동생이 하나는 서울 있고, 둘은 부산 사는데, 나한테 얼마나 잘 하는지 몰라! 나 심심하다고 자꾸 사다 보내잖아. 동네 사람들은 부러워들 한다만 다 소용없는 일이지.”하며, 이어 “달포 후면 징병 갈 놈. 혼인시킨 시애비도 호로 새끼고, 알고도 시집보낸 친정애비도 호로 새끼지” 내뱉듯 한 푸념엔 바늘 끝 같은 아픔이 배어 있었다. 할머니는 정말 맵고도 쓴 인생을 앙버티며 살아왔다. 할머니의 곡절은 길게 이어졌고 나는 이야기를 듣는 내내 코가 아렸다.

 1945년 정월, 경남 부곡(釜谷)서 자란 할머니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여기로 시집을 왔다. 신랑은 21살이었고, 시할머니와 시부모, 그리고 시동생과 시누가 각각 셋인 이 집에 맏며느리가 된 것이다. 하지만 남편과 살아 본 것은 정말 딱 40일. “남들은 애도 쉽게 잘 서든데, 나 같은 것이 무슨 복에....... 자식이라도 하나 있다면 지금 이리 섧겠나.” 남편이 끌려가던 날은 그저 아뜩해 기억나는 것이 도무지 없다 했다. “나 같지 않아 키도 훤칠하고 인물도 좋았지.” 스물한 살에 멈춘 남편의 기억은 차라리 고통이리라.
 이렇듯 허망하게 가버린 남편은 해방이 되어도 오지 않았다. 곧이어 날아 든 행불(行不) 통지서는 명치끝이 다 타버린 할머니를 보름 넘게 냉수만 마시게 했다. “밤낮 그걸 들고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 하긴 시간이 지나니 눈물도 마르더라고. 그 담부턴 끈 떨어진 갓처럼 여기도 도통 남의 집 같았지만 어찌 해 볼 도리가 있어야지. 정말 소처럼 일만하고 살았어.” 눈물이 맺히는지 두 손으로 얼굴을 부비며 눈가를 훔쳤다. “참말 모진 게 목숨이라고 아들 따라 죽겠다던 시어머니도 눈가는 짓물러도 저린 마음은 엷어지는지 언제부턴가는 대문까지 걸어 잠그고 잠을 자는데 그게 그렇게 섭섭할 수가 없었지. 난 아직도 그 사람이 불쑥 들어 설 것만 같아 빗장을 못 거는데.......” 아슴아슴 가슴을 훑고 지나가는 슬픔에 나도 눈가가 붉어졌다.
 “소원은 무슨 소원! 지금이라도 온다면야 좋겠지만 다 쓸데없는 소리지. 그저 어디에라도 살아 있어 장대 같은 아들 두엇 앞세우고 찾아오면 좋긴 하겠네, 물론 살던 여편네는 떼 팽개치고 와야 제. 크크!” 소원이 뭐냐는 나의 말에 뜬금없이 웃으며 맥없이 대답했다.

 그날 밤은 바람이 일었다. 누워도 쉬 잠이 오지 않았다. 긴 탄식과도 같은 바람소리에 자는 둥 마는 둥 아침이 되었다. 할머니는 버스 정류장까지 따라 나와 나를 배웅했다. “또 오면 좋겠지만 길이 원체 멀어서....... 몸 성히 잘 가!” 버스가 출발하고도 한참동안을 할머니는 그 자리에 서 계셨다.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생각하며 점점 멀어지는 할머니를 향해 마냥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흘러간 세월! 간간히 그 일을 생각하며 시린 가슴을 추스른 적은 있었지만, 요즘처럼 유독 할머니의 외로운 모습이 자주 떠오르는 것은 무슨 까닭인지. 언제부터인가 그 기다림이 얼마나 큰 아픔인지를 아는 나이가 된 탓인가.   

 올(2007년) 여름, 나는 뜻하지 않게 경남 통영에 볼일이 생겼다. 마침 시간의 여유가 있어 할머니를 한번 찾아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조금 늦은 감은 있으나 어림잡아 지금 여든이 조금 넘었을 테니 만나 볼 수도 있으리라 기대했다.
 대교에 도착하니 주변은 몰라보게 변해 있었다. 그러나 대교까지 걸었던 기억을 더듬으며 큰 어려움 없이 그 집을 찾았다. 길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집안의 모습은 기억 속 그대로였다. 하지만 대문은 자물쇠로 굳게 잠겨있었고 우물 옆으로 잡초가 무성한 것이 사람이 살지 않아 보였다. “아하! 그 할머니요. 돌아가신지 오래 됐어요. 환갑도 못사셨는걸요. 일 년에 몇 번 대처 사는 시동생들이 다녀는 가지만 거의 빈집이에요. 헐고 다시 짓는다는데 형편이 안 되는지 아직 소식이 없네요.” 고추를 널던 옆집 아낙은 덤덤하게 말했다. 나는 그만 다리에 힘이 쭉 빠졌다. 하얀 햇볕이 내려 쪼이는 길 위에서 망연히 그 집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텅 빈 마당 한구석엔 키 작은 해바라기 하나가 낮은 돌담과 키재기를 하며 오도카니 서 있었다.
 끝 간곳을 모르는 칠흑 같은 기다림! 아마 그것이 뼈 속 깊이 병이 되어 외롭게 가셨을 할머니를 생각하니 가슴이 너무 쓰렸다.

 시간은 모든 것을 허물고 망가뜨린다. 그러나 그 누구도 세월을 폭력이라 생각하며 살지는 않는다. 그것은 지나온 삶을 다시 되돌릴 수는 없지만, 언제나 새롭게 다가올 미래를 꿈꾸며 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 숱한 시간을 할머니가 꿈꾸며 기대했던 미래는 과연 어떤 빛깔이었을까?
 “외로움은 무슨? 인제 혼자 사는 게 훨씬 더 편해. 이러다 아프지나 말고 가얄 텐데. 그게 젤 큰 걱정이지 뭐.” 쓸쓸히 웃던 할머니의 얼굴이 빛바랜 흑백사진처럼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프로이드는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 의도가 애당초 신의 계획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고 냉소적으로 말 한 바가 있다. 설마 그럴 리가 있을까마는 덩그런 이 집 앞에서 나는 그 말이 어쩌면 옳은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우리 모두는 채워지지 않는 그리움과 애끓는 기다림을 스스로 견디며 살아야만 하는 외로운 존재들은 아닐까?

 기다리던 사람이 불쑥 들어 설 것만 같다던 대문은 굳게 잠겨있는데, 마당에 푸른 이끼가 잔뜩 낀 그 집은 할머니의 고단했던 삶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아직도 누구를 기다리는 듯 묵묵히 바다를 향해 낡아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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