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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징검다리 꽃    
글쓴이 : 성민선    12-08-08 16:31    조회 : 4,116
 
징검다리 꽃

공원의 나무계단을 내려오면서 발밑을 조심하지 않고 앞에서 모이를 쪼아 먹던 비둘기 떼를 바라보다가 한 순간 넘어진 것이 지난 3월이었다. 그때 접질렸던 왼 발의 반(半) 깁스를 한 달 여 만에 풀고 발을 씻으면서 아이처럼 신이 나서 "나, 발 씻었다!"고 외쳤다. 남편이 듣고 뭘 잘못했었냐고 조크를 한다. 그렇다. 우리가 발을 씻었다느니, 발을 뺐다느니 하면 어떤 어려운 어떤 상황에서 속 시원하게 벗어났다는 얘기가 된다.
이번에 내가 발을 씻으면서 느꼈던 감회는 속 시원함 그 이상이었다. 새로 알게 된 발의 소중함과 고마움이 나의 온 몸과 마음에 퍼져나가는 환희심을 느꼈다. 지난겨울 도반들과 같이 공부를 할 때 진언(眞言)에 대해 배우면서 발이 연꽃을, 연꽃이 징검다리 꽃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고 나서 처음 있는 일이다.
진언은 만트라(Mantra), 다라니(Dharani) 혹은 주문(呪文)이라고도 하는데, 말 그대로 진리를 담고 있는 언어란 뜻이다. 전에는 무조건 외우라 했으나 이 진언이 근원을 두고 있는 산스크리트어나 팔리어를 공부한 사람들이 많아진 요즘에는 그 의미를 알고 생각하며 외워야 진언을 하는 진정한 목적지에 갈 수 있다고 가르친다.
사찰에서 예불할 때 독경하는 <천수경>(千手經)에 「관세음보살 본심미묘 육자대명왕진언」이란 여섯 자로 된 진언이 있다. '옴 마니 반메 훔'이 그것이다. 이 진언을 외우면 모든 악업이 소멸되고 복덕이 생겨날 뿐 아니라, 일체의 지혜와 선행의 근본이 된다고 하여 우리나라에서도 널리 염송되고 있다. 나라를 잃은 대신 불교를 세계에 퍼트린 티베트 사람들은 평생 이 진언 하나만을 외운다고 한다. 그들이 노래처럼 이 진언을 합송하는 것을 실제로나 테이프로 들으면 절로 깊은 신앙심이 느껴지고 경외심이 든다.
'옴 마니 반메 훔'은 산스크리트어로 옴(Om) 마니(Mani) 반메(Padma) 훔(Hum)으로 쓴다. 마니(Mani)는 보주(寶珠), 여의주(如意珠)란 뜻으로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 다 비치는 투명한 보석을 뜻하고, 반메(Padma)는 무염청정(無染淸淨)의 상징인 연꽃을 나타낸다. 여기에 감탄사 옴과 훔을 붙이면 전체의 뜻은 문자 그대로는 "아, 보주가 연꽃 위에 있구나!"이다. 보주는 바로 이슬을 비유한 것이다. 이슬 역시 속이 텅 비어서 사물을 있는 그대로 비쳐준다. 그래서 이 진언의 참뜻은 "아, 연꽃 위에 있는 이슬 같은 인생이여!"가 되는 것이다. 옛 사람들은 인생은 초로(草露)와 같다 하였는데, 그렇다면 풀잎의 이슬과 연꽃 위의 이슬에 무슨 차이가 있는 것일까.
평지와 연못이 많은 인도에서 사람들은 밤 새 연꽃 위에 맺혔던 이슬이 아침이 되면 또르르 연못으로 굴러 떨어져 사라지는 모습에서 이슬이 본래 어머니 품, 즉 본성으로 돌아갔다고 사유했다. 작은 이슬은 투명한 보석처럼 아름답다. 그 아름다운 것이 사라졌다. 어머니 품속에서 이슬로 태어나서 햇살이 나면 보석처럼 빛나는 짧은 일생을 살고 다시 어머니 품으로 돌아가는 모습이 확연하게 그려진다. 하지만 아름답다는 것도, 아름다운 것이 사라져서 허무하다는 것도, 모두 인간의 가치분별일 뿐, 이슬은 본성 자리를 떠난 바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의 수명이 다 했을 때 어디로 가는지가 이 '옴 마니 반메 훔' 여섯 자 속에 다 들어있다고 한다. 인간의 일생이나 이슬의 일생이나 일체의 생명은 태어남도 없고 죽음도 없는 불생불멸(不生不滅)이며, 오고 간 자리가 없다는 것이 연꽃을 빌려 불교에서 가르치는 생사의 원리이다.
모든 존재는 저를 위해서가 아니라 남들을 도와주기 위해 존재한다고 한다. 연꽃 또한 청아한 모습으로 이 세상을 아름답게 장엄하는 외에도 저 만의 존재 방식으로 다른 존재들을 돕기 위해 지금의 모습이 되었을 것이다. 이슬이나 빗방울이 저를 찾아 왔을 때 서로 물들거나 물들이지 않으면서 이슬이나 빗방울이 처음에 왔던 그 모습대로 제 갈 데로 잘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연꽃의 역할이 아닐까 싶다.
연꽃의 이런 역할은 어디에서 생겨난 것일까. 연꽃의 어원을 더 살펴보면 답이 거기에 있다. 연꽃 즉 반메(Padma)는 발, 발자국, 징검다리라는 뜻을 가진 pada와 꽃을 뜻하는 ma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니 연꽃은 혹은 누군가의 발로, 혹은 누군가 지나가는 발걸음과 발자국으로, 혹은 누군가에게 차안(此岸)과 피안(彼岸)을 잇는 징검다리로 존재한다고 보이는 것이다. 자신이 누군가의 발이 되고, 걸어간 자취가 되고, 오갈 수 있는 징검다리가 되어주는 발의 꽃, 발자국의 꽃, 징검다리 꽃이 되어 누구에게나 자신을 내어주는 꽃! 이슬이 연꽃을 밟고 생사의 길을 초월했듯이, 징검다리 꽃 연꽃은 그 물들지 않는 청정함으로 모든 존재들이 생사의 고해를 잘 건너 본래의 청정한 자리에 이르도록 인도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만 같다.
인류를 위해 연꽃 같은 청정한 발자취를 보여주신 성인과 선현들이 새삼 고맙다. 그 중의 한 분, 부처님이 왜 자신을 여래(如來)라 부르게 했는지를 이제는 조금은 알 것 같다. 부처님은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생사 고통의 원인과 해탈의 길을 깨달으시고 번뇌의 불이 꺼진 피안(彼岸)의 해탈열반 세계로 여여 하게 가셨던 분(如去)으로 깨달음을 혼자서 즐기지 않고 중생제도를 위하여 보리심과 자비심이라는 마음의 옷을 갈아입고 징검다리를 건너 다시 차안(此岸) 이곳 중생세계로 여여 하게 오셨던 분(如來)이다. 어떤 번뇌도 뚫고 나올 수 없도록 겹겹의 갑옷을 입고 맨 발로 한 걸음 한 걸음 걸어서 중생들에게 다가오신 것을 부처의 덕성, 성품이라 한다는데, 그 위대한 족적이 바로 불교가 되었다. 지혜와 자비 두 가지를 구족하신 분이라 해서 우리가 양족존(兩足尊)이라 부르는 부처님의 두 발 밑에 항상 연꽃이 받혀져 있는 뜻도 이젠 좀 알 것 같다. 부처님의 발과 연꽃이 둘이 아니니, 극락이 먼 데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여기 사바세계에 있음이다.
함부로 내딛고 휘젓고 다니던 발걸음에서 연꽃, 징검다리 꽃을 보았고 부처님의 덕성도 보았으니 발을 다쳤던 것이 좋은 일이 되었다. 본성 자리 어머니의 품으로 돌아가는 날까지 성인들이 남기고 가신 발자취를 멀리서라도 따라가려면 이제부터라도 발걸음을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겠다. 옴 마니 반메 훔 !  
                           
<한국산문> 2012.8월호(등단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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