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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때로는 '말없음표'가 좋다    
글쓴이 : 소지연    14-11-04 00:02    조회 : 6,215

                                           때로는 말없음표가 좋다

                                                                                            소지연 


 사랑합니다, 주민여러분!” 선거가 끝난 유월 아침, 아파트 입구에서 만난 글귀였다. 낙선자의 플래카드에 쓰인 그 말은 언뜻 너그러운 인품을 보여주는 듯도 했다. 개운치 못한 것은 스스럼없는 사랑합니다.”였다. 그런 고백은 행복한 기분일 때 하는 것이 아닐까. 패배의 쓴 잔을 마신 의원이 대중에게 답례한 그 말이 어쩐지 공허했다.

 사랑이란 단어를 떠올려 본다. 그 것 만큼 기분 좋은 말도 없을 것이다. 어감이 낭랑하고 부드러워서 만이 아니라, 누구든 듣고 나면 아니, 들을 생각만 해도 세상을 다 얻은 듯 뿌듯하기 때문이리라. 그런 사랑을 두고 동서가 격론하던 때가 있었다. 해가 바뀔 때 마다 모이곤 하던 어느 해외 기관의 뒤뜰엔, 사리를 두른 인도 여인들과 짧은 칵테일 드레스의 서양여인들이 있었다. 간단한 뷔페를 마친 후 디저트 시간이 오면, 허심탄회한 주제들로 갑론을박이 테이블을 넘나들었다. 그 날의 화두가 사랑의 표현에 관한 것이었던가. 화제의 시발점은 덴마크인과 결혼 한 어느 동남아시아 아내의 탄식이었다. 아침을 사랑한다.”로 시작하고 출근한 남편을 디너 석상에서 재회했는데, 하루에 몇 번씩 재창하던 그 말을 그날 저녁엔 아니 한다는 것이었다. 그녀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안절부절 못하던 그녀는 종종 걸음으로 남편에게 다가가 자기편에서 재빨리 사랑한다고 말했다. 맞은편에 있던 인도여인의 눈 꼬리가 올라갔다. 급기야는 그녀 특유의 두런두런한 악센트로 경고를 울리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꼭 말로 해야 되나요? 그런 건 그냥 아는 것 아니던가요?” 무뚝뚝한 그녀의 일갈에 옆에 있던 드레스 녀 들은 말도 안 돼.’ 하는 얼굴로 일제히 고개를 흔들기 시작했다. “사랑은 아무리 말해도 과하지 않아요. 표현 할수록 더욱 발전하는 것이니까요.” 순식간에 테이블 전체가 열 띈 토론으로 접어들었다. 동양인인 나도 그날만은 양쪽 주장이 모두 그럴싸하여 귀가 나팔만 해졌다.

  과연 표현 할수록 사랑의 깊이는 정비례 하는 것일까. 사랑은 프론 티어(frontier)정신으로 발굴해 내야만 하는 신대륙일까. 이런 극성은 인도사람들이 그러했듯, 말없이 감을 잡아왔던 얼마 전 세대에게는 낯 뜨거운 것일 수도 있다. 비단 동양만 고집할 일도 아니다. 러시아혁명이 일어나기 전인 1905년경이다. 러시아 우크라이나의 작은 마을에서 우유 가공업을 하며 살아가던 한 유태인 가족을 보자. 뮤지컬 영화 <<지붕위의 바이올린( Fiddler on the Roof)>>은 전통과 새로움의 전환기를 맞은 한 가장의 애환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주인공 테브예는 밀려오는 신지식의 틈바구니에서 점점 사라져가는 유태민족의 전통의식을 혼신을 다해 지키려 하지만 속수무책이다. 그들 스스로 정한 결혼 상대자를 받아들이지 않는 고지식한 아버지에게, 딸들은 사랑이란 무기로 맞선다. 자신의 딸들을 돌아서게 한, 딱딱하지 않은 그 어휘에 점차 동화되어 가던 테브예, 어느 날 집안일에 몰두해 있는 아내, '골데를 넌지시 찔러본다. 굵고도 부드러운 남편의 음성이 난데없이 두 유 러브 미( Do you love me)?”라는 노래로 흘러들자, 어이가 없어진 골데두 아이 러브 유( Do I love you)?"로 맞장 뜬다. 다시 한 번 벗 두유 러브 미( But do you love me)?" 로 채근하자, “ 글쎄요, 나는 평생 동안 당신을 위해 밥하고 빨래하며 가족을 지켜왔어요. 그런 것이 사랑이라면 아마 그런 가 봐요.” 라고 비껴간다. 여기에서 골데또한 사랑하다마다요. “ 라는 답만으로는 그릴 수 없는 그녀 자신만의 사랑 철학을 노래했던 것 같다. 튕기듯 주고받는 느낌이 아니라, 수년 동안 오로지 성실함 하나로 그 말에 책임을 다 해온, 너무나도 당연한 사랑합니다. ‘ 가 아니었을까.

  결혼 초년생 시절, 아버지와 나의 모습이 그랬다. 서울에 신혼집을 차리고 시댁이 있는 대전 근교 대학에 잠시 시간강사를 나가던 때였다. 늦은 오후 강의실 밖을 나오자 앞을 분간하지 못할 정도로 장대비가 내리고 있었다. 뿌연 안개 속에 우산도 받지 않은 한 사람이 흙탕물을 쓴 채로 서있었다. 가까이 가서 보니 대전에서 한시적으로 근무하던 아버지였다. 자신이 젖은 것은 아랑 곳 없이 피곤해 보이는 딸의 행색만 안쓰러웠을까. “비 오는 데 이 무슨 짓고.”고개를 돌리며 아버지는 수줍게 팔을 잡는 시늉을 했다. 터미널로 가는 차 안에서 할 듯 말듯 아버지는 아무 말도 없으셨다. 승강장 먼발치에서, 아버지는 시어머님께 작별 인사하는 나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계셨지만, 나는 눈길도 못 보낸 채 버스에 올랐다. 못 박힌 듯 움직이지 않던 아버지가 더 이상 보이지 않았을 때에야 나는 눈물을 닦아냈다. 짧았으나 그때 본 아버지의 눈시울, 그것은 지금까지도 가슴 한편에 소리 없이 흐르는 강물 같은 사랑이다. 돌이켜보니 그 때도 이후에도 사랑합니다.” 라는 말을 해 드린 적이 없다.

  말없는 사랑은 언제까지 유효할까? 지금은 표현하는 사람이 보다 더 성공하는 시대가 아닌가. 우리 네 아들딸들의 일상만 보아도 사랑의 제스처는 온 하루를 지배하는 것 같다. 매일매일은 청량제와 같은 사랑의 표현과 함께 눈을 뜨고 잠이 든다. 요즈음 내가 건네는 이메일의 마지막 한 줄에는 ‘love, ' 또는 아들의 재미스런 표현을 빌린 ’Luv,'라는 단어가 자주 오른다. 오늘을 사는 나도 조금 더 표현하고자 노력하며 그들 세대에게 다가가는 것 같다. 이제 사랑합니다.”는 서양여인들이 말하듯, 과장이 아니라 필요 불가결한 하나의 양식(樣式)이 되고 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난다. 그런 좋은 말은 입 밖으로 나오는 즉시 의미가 달아나 버려, 나는 그만 심심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사랑합니다.”라는 말이 쉬워질 때마다, 한 인도 여인의 자족하던 눈빛과 골데의 사랑 이야기, 그리고 아버지와의 그 날이 고개를 들기 때문일까. 아마도 이런 내겐 그들의 말없음표가 좀 더 친숙한 사랑 방식인지 모른다.

 그날 신호등을 건너며 멈칫했던 플래카드를 지금 다시 떠올린다. 한 정치인의 용기 있는 사랑합니다. “ 도 그 만의 여운을 이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 사랑 없인 어떤 것도 기지개를 켜지 못하지만, 정성스럽게 이루어진 것들은 모두 말없는 사랑에서 나온 것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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