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사
나희덕 (시인, 서울과학기술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언제까지나 피가 뜨거운 청년일 것 같던 이재무 시인도 어느덧 이순耳順을 지나 귀가 순해지고 눈이 너그러워진 것일까. 시인은 “소소한 기쁨의 알겯는 소리”(「알겯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현관에 “어지럽게 널브러진 신발들”의 “환한 숨소리”(「신발들」)를 들으며 식구의 뒤집어진 신발 한 짝을 바로잡아 준다. 또한, 가만히 눈을 감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다 간”(「산책 속으로」) 시인들을 추억하거나, 고향집과 부모님을 떠올리며 “고향도 나와 더불어 늙어”(「고향」) 간다고 말한다. “산천도 인걸도 의구하지 않다”(「강화 일기 4」)고 말하는 시인에게 그리운 것들은 늘 멀리 있다.
오랜 “생활의 협착”(「협착증」)에서 벗어나 강화의 고즈넉한 자연 속에서 지내는 시인에게 ‘고독’은 새로운 능력이 되어 가고 있다. 허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내면을 응시하기도 하고, 사물이나 타자의 시선을 겸허히 받아들인다. 그러는 동안 생의 근원과 과거를 돌아보던 시인의 시선은 이제 “저 먼 곳, 아득한,/ 시작도 끝도 없는 우주의 침묵”(「멀리 보다」)을 향해 있다. 구원은 멀리 있는 게 아니다. “아침 산책로에서 걸어다니는 별들”(「사람과 별」)을 만나거나 “마음이 을씨년스러운 날 뜨락에 앉아 볕을” 쬐는 “달콤한 충만”(「구원」)에 이미 깃들어 있다. “길 잃은 바람이나/ 들렀다 가는/ 적막 한 채”(「적막 한 채」). 고독한 산책자의 지복至福은 이렇게 가난하고도 풍요롭다.
목차
시인의 말
제1부
그냥, 이라는 말 17
협착증 18
시인 19
알겯는 소리 20
신발들 21
고향 22
쓸쓸한 밤 24
산책 속으로 25
그네 26
무궁화 27
노래는 힘이 세다 28
3월 29
어데 갔을까 30
그 사람 31
별 꽃 32
고장난 선풍기 2 33
어미 34
강화 일기 1 35
강화 일기 2 36
강화 일기 3 38
강화 일기 4 39
인절미 40
궁둥이로 쬐다 41
구름의 민박집 42
농부의 취향 43
겨울비 44
고독의 능력 46
단추와 지퍼에 대하여 47
노인과 길 48
빈손 49
동행 50
나를 먹는다 51
불안 52
문상 53
미루나무 54
방문객 55
주름들 56
건풍 57
청명 58
고향 2 59
세상 속으로 60
옛날 생각 62
그리운 것들은 멀리 있다 63
공터 64
그리운 것들은 멀리 있다 2 65
주름진 얼굴 66
집과 길 67
제2부
박꽃, 호박꽃 71
산란기 72
한로 73
바느질 74
청명 2 75
천문天文 76
적막 한 채 77
갯벌 78
하루 79
수평과 고요 80
설국 81
삼동 82
살아간다 83
시월 84
산책 85
정오의 산책 86
강화 산책 87
폐사지 88
저수지 89
의자 90
제3부
살(肉) 93
산을 오르다가 94
사과 95
빛 96
룸 톤 97
찰나에서 영원을 98
달 99
메를로-퐁티를 읽으며 100
메멘토 모리 101
독백 102
불멸 103
달의 궁둥이 104
나무의 감정 105
무경계 106
착시 107
시드니 연가 108
멀리 보다 115
사람과 별 116
구원 117
제4부
보리밥 121
봄밤 122
부부 123
부소산 124
친구 125
귀가 자라네 126
뻐꾸기 엄마 127
살다 보면 128
슬하, 라는 말 129
엄니의 산밭 130
콩국수 131
하일서정夏日抒情 132
정인情人 134
사라진 것들 135
애마들 136
장항선 137
키보드 두드리면 138
좋겠다 140
코스모스 141
골짜기 142
고향 3 143
고향 4 146
호남선 147
혼잣말 148
섣달그믐 149
제5부
호흡 153
혀 154
사자를 위하여 155
풀의 진실 156
통음 157
신오감도 158
혜월가 159
축제 160
붉은 강 161
분서갱유 162
북채 163
죽음의 행진 164
고백 165
부활 166
소면과 라면의 차이 168
해설
임지연 얽히는 세계, 방법적 확장 1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