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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필 여러편 공모합니다    
글쓴이 : 이용필    15-08-05 15:34    조회 : 8,597

제야(除夜)와 새해 벽두(劈頭)에 - 이공일오년 일월 일일,


시간은 계절을 돌고 돌며 제자리에 존재할 지라도 사람이나 사물은 생노병사(生老病死)를 거친다. 하긴 세상의 모든 것이 다 큰 테두리에선 동일한 수량이 생사를 반복하며, 변화 없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오늘밤을 기준으로 갑오년(甲午年)이 묻히고 을미년(乙未年)이 시작된다. 한 해의 마지막 날 밤에 집안에서 고요한 가운데, 새해의 시간을 기다려본다. 가만히 있자니 자연히 살아온 나날이 떠올려지고, 새해와 앞날에 대한 것에 생각이 간다.

지나온 나날은 아동기, 초등학교, 중학교, 대학교(군복무) 등을 거친 후, 직장생활의 시작과 결혼을 거쳐 애들을 낳아 가족을 꾸려가고 있다. 어느덧 지나온 세월이 오십하고도 셋을 맞는다. 이제는 태어나서 살아오며 못해보고 겪어보지 않은 것이 거의 없을 정도다.

여기까지 오면서 대부분은 거의 다 해봐져왔다는 생각이다. 그럼에도 더러 마음의 조절이 잘 되지 않을 때가 있는 걸 모면, 참 어리석고 한숨이 다 나온다. 새해엔 이전과 다르게 뭔가 좀 달라지고, 다소라도 색다른 것을 대하는 자세로 걸어보고 싶다.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이 거의 존재하지 않고 사라지는 것에 비추어, 즐거움을 찾는 게 바보스럽게 여겨질 수도 있다. 하지만, 긴 세월을 살아가려면 의미를 두고 가슴가득 기쁨을 기대하며 살아가는 게, 그렇지 않은 것보다 훨씬 나은 것이리라.

또한, 이전엔 잘 모를 뿐더러 그러질 못했는데, 세월이 쌓여감인지 모든 것을 좀 더 좋게 대해가고 싶어진다. 음식도 적당량으로 조절을 하는 가운데, 몸에 별루 좋지 않은 음주도 거의 하지 않았으면 한다. 백해무익(百害無益)한 흡연은 당연히 그만둘까 한다.

그나저나 굳이 성현(聖賢)의 말씀을 빌리지 않더라도, 삶에서 사는 지도 모르게 살아내는 것이 제일 중요한 것이 아닌가 한다. 아마도, 이런 경지는 어렵게 생각할 것 없이, 기본을 잘 지켜가다 보면 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이런저런 생각과 독서도 하다 보니, 제야(除夜)에 이른다. 잠간의 명상(瞑想)으로 마음을 맑게 한 후, 잠자리에 든다.

새해 첫날 해맞이는 일기예보에서 날씨가 흐리다 하여 나가지 않기로 한다. 아침에 좀 느긋하게 일어나서 산에라도 거닐면서 을미년(乙未年)을 맞아볼 까하고 밖을 나가본다. 눈은 거의 오지 않았고 하늘은 조금 흐린 정도다.

아침을 먹은 후 새해를 기약해볼 겸 희리산을 돌아보기로 한다. 희리산에 도착해서 산을 오르는데, 벌써 다 돌고 내려오는 사람들이 있어 반갑게 새해 인사를 나눈다. 더러 거니는 산인데도 오늘따라 몸이 조금 무거움을 느낀다.

그래서 산행하는 것도 어렵듯이 살아가는 것도 마찬가지일거란 생각이 교차된다. 모두다 한발 한발 걸어 나가는 길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여기며 발걸음을 옮겨나간다. 산행코스의 중간지점에서 바위에 걸터앉아 올 해는 또 어찌 보내야하나 잠시 생각에 잠겨본다.

하지만 특별히 떠오르는 것이 없다. 그래서 너무 생각할 것 없이 기본에 충실하며 마음을 너그러이 갖고, 모두를 위하는 정신으로 살아가기로 한다. 매사 대하는 것에 따라 사리(事理)에 맞도록, 좀 더 사려(思慮) 깊게 행동해갔으면 한다.

정상 가까이에서는 몸이 풀렸는지 심신에 여유가 생긴다. 그래서 산숲의 맑은 공기를 마음껏 호흡하며 뛰다 걷다 해진다. 산속을 홀로 걸으니, 역시나 호젓한 기분에서 가슴이 다 호연(浩然)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된다.

정상에 도달해서 주변을 둘러보다 문득, 친구들을 비롯하여 다른 사람들은 새해 첫날에 어떤 생각을 하며 하루를 보낼까 궁금해진다. 아마도, 모두가 비슷한 생각을 하며 보낼 것이라 여긴다. 가족의 평안과 한 해 또 무탈하기를 바랄 것이리라.

산을 내려오는데 이런 소망이 가져진다. 모두가 열린 마음에서 다함께 잘사는 사회를 만드는데, 생각이 모아졌으면 한다. 그러려면 자기들만의 편협한 주장은 금물(禁物)일 것이다. 그러면서 올 해도 모두가 건강관리에서 착함과 성실로 행복했으면 좋겠다.


산야(山野)에 누워 - 이공일오년 일월 사일,

겨울철이라 별루 할 일이 없고, 그렇다고 어디 딱히 놀러갈 일정도 없다. 여유로운 마음으로 엄마집에나 한 바퀴 돌다 오기로 한다. 엄마집에서 지난번에 자르다 조금 남겨둔 울타리의 사철나무를 자르는 것을 마저 끝낸다.

산 공기도 마시고 나무도 두어 개 베며 운동도 될 겸, 톱을 들고 둿 산에 어슬렁어슬렁 걸어올라 간다. 장대로 쓸 참나무를 두 개 벤다. 굵직하게 잘 자란 소나무아래서 산의 기운을 취해볼 겸, 두껍게 쌓인 낙엽위에 앉는다.

마침 나뭇가지 사이로 비쳐 들어오는 햇빛이 있어 다소 온화하다. 뒷산에 앉아 조용함에서 세월감과, 새해를 맞은 것에 잠시 젖어 본다. 또 그렇게 갑오년(甲午年) 한 해가 묻히고, 을미년(乙未年)이란 한 세월을 맞았다는 것이다.

별 생각이 들지 않고 산 숲도 묵묵할 뿐이다. 그래서 소나무를 만져보고 등도 대어보나, 역시 고요할 뿐이다. 벤 나무의 밑 둥을 끈으로 묶어, 낑낑대며 집 대문앞 도로가에 끌어다 놓는다. 점심을 먹고 소화를 식힐 겸, 벼논가의 도로를 따라 산책을 나간다.

휭하게 트인 농로를 따라 아무생각 없이 느그작 느그작 발걸음을 놓는다. 쾌적한 공기를 느끼며 걷다가 어릴 적 친구 등이 생각난다. 다들 이 겨울에 어찌 지내는지 그리워진다. 혹 저승에서나 대할 수 있을까 하며, 생을 먼저 한 친구들과 후배들의 얼굴도 떠올린다.

영재, 미자, 열순이, 영보, 손종이, 봉섭이, 훈섭이 등이 있었다. 다 가난하게 자라서 덜 배우고 어렵 게 살다갔다 여기니, 그저 안타까움만이 밀려올 뿐이다. 다 어질고 순하고 착하며 담백(淡白)한 사람들이다. 그 당시 눈만 뜨면 서로 약을 올리며 늘 재미있게 지냈다.

당시 함께 놀면서 그리 먼저 생을 마감하리라 생각이나 했겠는가 하며 떠올리니, 눈앞에서 지금도 장난치며 삐지다 다시 즐거워하며 떠들던 아우성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물을 품어서 고기도 잡고 언덕을 불태우고, 더러 나무도 했으며 칡뿌리도 캐러 다녔다.

논에서 삽을 들고 미꾸라지를 잡기위해, 장화를 싣고 하루종일 온 들판을 걸어서 헤매 다녔다. 누런 콧물줄기를 달고 다녔던 애도 있었다. 산과 물가를 헤매며 놀았던 그때의 모습이 뚜렷하게 다가온다. 문으로 돼있다면, 문 열고 다시 또 그 시절에 들어가 보고 싶다.

하지만, 다시는 들어갈 수도 만날 수도 없을 것이다. 혹여, 저승에서는 만남이 가능할 는 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먼저 떠난 사람들을 봐도 좋은 사람들은 일찍 데려가는 게 사실로 다가온다. 삶에 오래 머물러 있는 것은 온갖 풍상(風霜)을 겪어야 하는 죄 값일 것이다.

사는 집에 돌아와 독서를 조금 하며 있는데, 어디를 가지 않으니까 좀 지루한 감이 든다. 혼자 일정에 없이 어디를 갑자기 나간다는 것도 그렇고 해서, 아무생각 없이 동안거(冬安居)의 여유에서 낮잠이나 누려보자니, 별의별 생각이 다 든다.

뒤늦게 배우는 것으로 독서는 미결인 의문을 풀어내주며 지혜를 준다.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해주고, 특히나 사상의 시야범위에 대혁신을 일으켜준다. 독서는 어느 현자(賢者)가 말했듯이, 평생 함께할 것이어야 한다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음을 최근 또 경험했다.

독서를 하다 여담(餘談)일지 모르지만 영토나 사람의 크기, 위치등 사물의 크기와 여건에 따라, 성격이나 행동이 많이 좌우됨을 알게 된다. 말이 자꾸 이상한 쪽으로 엇나갔는데, 별의별 생각 중에 한 가지가 인간에 관한 것이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靈長)이라고 한다.

웬지, 선택받아 태어난 것 같고, 두뇌의 우수함에서는 인정이 간다. 하지만, 좋은 두뇌를 이성적으로 사리(事理)에 맞게 사용하는 것에서는 제일 하위의 존재인 것 같다. 왜냐하면, 나의 의지와는 하나도 상관이 없이, 그것도 맨몸으로 이 세상에 나왔다.

떠나갈 때 역시, 맨몸에서 흙으로 돌아간다. 그것도 잠간의 세월을 살다간다는 것이다. 뭔가를 이루는 일도 노력은 필요하겠지만, 일의 성패는 기후라든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뭔가의 보이지 않는 도움이 있을 때 가능해진다.

뭔가를 이룬 것 역시도 금세 기억 속에 잊어지고, 세월 따라 흔적 없이 사라진다. 아무리 애를 쓰고 싸운다든 가해서 이루고 소유해도, 잠시뿐이고 영원히 내 것이 될 수는 없다. 어찌 보면 사는 것이 다 스치는 바람같이 헛짓이라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지나온 사람들의 행적이나 역사를 통해 경험해왔고, 이성을 가진 사람으로 철학을 통해 이해돼 왔다. 그런데도 전쟁을 비롯하여 어떤 일에서 생명을 버리면서까지 싸워대는 경우가 허다하다. 또한, 잠시 왔다가는 하찮은 존재들에 불과하다 할 수 있다.

이럼에도 무식(無識)의 극치(極致)를 달리듯이, 자기가 잘났다고 나불대며 주장하는 행동들을 한다. 몸도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만들어져 잠시 왔다가 사라지는 것임을 비춰볼 때, 어떤 사고나 일에 있어서 너무 무겁게 대하는 아픔을 겪을 필요가 없다는 생각도 든다.

더욱이 어떤 다른 생을 대신 구해주는 일 등으로 희생하는 특별한 경우 외엔, 생을 버리는 또 다른 아픔은 절대 만들지 말고, 지나다 소낙비를 맞은 것처럼 가벼이 대하는 사고가 필요할 것이다. 사람들은 지능 등이 높은 것 외엔, 동식물에 못 미치는 삶을 사는 것 같다.

전생에 지은 많은 죄의 업보로 하찮은 어중이떠중이의 사람으로 태어나서 서로간에 불화하는 가운데, 힘겨운 고통을 겪으며 한 평생을 살아가게 돼 있는 것 같은 생각에 까지 이른다. 한 마디로 사는 것이 헛 거라는 것만을 알아도, 뭔가에 애타는 삶은 살지 않을 것이다.

암튼 이내가 괜스레 많은 생각으로 너스레를 길게 떨었다 싶다. 모든 게 이유 없는 것이 없을 터인즉, 너무 오지랖 넓게 괜스레를 떨은 것 같다. 스스로가 착함에서 성실로, 기본에 의지해서 자기 할 일을 다해 가면 그 뿐일 텐데 말이다.

산야를 지나가며 흐르는 차가운 바람결에서 세상사에 관여하면 노예인 거라는 말이 귓가를 스치는 것 같다. 하지만, 말은 도피처로 편하게 할 수 있을지 몰라도, 그렇게는 살 수가 없을 것이다. 어느 것에 너무 애달지 말고, 오가는 대로 가벼이 재미로 대해야 하리라.


정적(靜寂)이 흐르는 신 새벽에 - 이공일오년 일월 십일일,

밤에 목이 말라 일어나니, 삼경(三更)이 좀 넘은 시각이다. 거실에서 희미한 불빛아래 정좌세로 앉아 눈을 지그시 감고, 명상에 조금 잠겨본다. 감지되는 것이 거의 없이 고요함뿐이다. 비가 그친 전후인지, 낙수 닿는 하나의 소리가 더러 들려온다.

우주자연의 섭리(攝理)를 감지해보려 하나, 일개 범부(凡夫)로서 들어오지 않음은 당연한 일이다. 다시, 조용함의 평화가 흐르는 듯한 상태에 심신을 맡겨본다. 빗물 닿는 소리의 분위기에선지, 봄날에 흙이 뽀글대며 풀어짐이 일어나는 느낌이다.

갑자기 산야의 흙냄새가 맡고 싶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밝은 낮의 가까운 어느 날엔가는 그리하기로 한다. 조금 있으니 물 닿는 소리도 그치고, 사방이 쥐 죽은 듯이 조용한 정적 속에 놓여 있다. 잠시, 머리에서 감지되지 않는 우주자연의 공간을 상상하며 펼쳐본다.

더러 그러하듯, 일어난 김에 주변사람들에게 마음이 향한다. 엄마와 형제자매가족, 친구, 동료 등을 감싸 주기위해 태양계의 기운을 모아 잠간이나마 염력(念力)으로 보내주려 기도(祈禱)한다. 이어 심신을 맑고 가지런히 한 후, 다시 잠자리에 든다.

주말을 맞아 좀 여유 있게 일어난 후, 시장에 들러 순대, 곱창, 간 등을 사는데 많이도 주신다. 농기구에 기름칠을 해두기 위해 오일과 기름용기인 찍찍이 통도 하나 산다. 사는 김에 낭중에 관리기에 쓸지 몰라, 엔진오일도 산다.

엄마가 선지국을 먹고 싶다고 하여 선지를 사러 정육점에도 들른다. 돼지 선지는 없고 소선지를 주는데, 돈을 주려하니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그냥 가져가라고 한다. 고마움이 인다. 엄마집에 가서 순대 등을 먹는데, 모처럼 먹으니 엄마도 나도 맛이 그만이다.

싼 가격으로 너무 흡족(洽足)하게 맛이 좋은 나머지, 평소에 더러 회식에서 비싼 음식을 먹을 필요가 없다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좀 있으려니, 해가 따스하게 비춤에 농로를 돌며 운동을 하기로 한다. 쾌적한 공기를 마음껏 호흡하며 살살 뛰다 걷다 한다.

하천에 다다라서 하늘도 한번 올려다보다가, 더러 마음이 내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고 화를 냈던 것에 생각이 간다. 평상시엔 평정한 마음의 상태를 유지하다가도 그럴 때는 뭐가 그리 시키는 건지, 상대를 화나게끔 나쁘게만 말해지는 경우가 어쩌다 있으니 말이다.

그런 일이 있은 후엔 참 속상함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되도록 상대의 기를 세워주고 도움이 되는 방향에서, 권해주는 어투로 말하면 좋은 데 말이다. 그리고 반대로 상대가 기분이 좀 상하게 말한다 해도, 내가 좀 나은 사람이라 여기며 넘기는 지혜가 있었으면 좋겠다.

남의 기분을 상하게 말하는 것은 스스로가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하면 될 것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마음을 상하게 하는 말을 할 때가, 또한 참기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럴 땐 누군가의 말처럼 스스로를 가장 낮은 존재로 여기는 자세로 대처하면 될 것이다.

조금 이는 겨울바람을 대하며 농로를 두 바퀴 달리고 걸은 후, 점심을 먹고 마루에서 엄마와 이야기를 나눈다. 엄마는 며칠 있으면 이내의 생일이 있음을 알고, 옷을 사 입으라고 돈을 주신다. 하지만 옷도 많고, 재작년에 팔다 남은 메주콩 한포대가 남아있다.

그래서 메주콩을 팔아 쓸 것이라 말하며 엄마가 주시는 돈을 사양(辭讓)한다. 현재 애들의 학비문제로 돈이 많이 들어가고 버겁다. 하지만 엄마를 가끔 돌보는 가운데 옷이 날개라며 사 입으라고 주는 돈을 사양하니, 마음이 웬지 뿌듯해진다.

엄마는 몸이 젊어 꼿꼿할 때, 잘 입어야 옷발도 서고 옷이 날개라고 한다. 그러면서 텔레비전에서 보면 남색 와이셔츠 등을 입고 나오는 사람들을 보았는데, 다 매끄럽게 생겨 뵌다며 아들에게 좋은 옷을 사서 입으라고 권하시는 것임에 고마움이 된다.

이제는 말다툼 등으로 속상해하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정말이지 대부분의 동식물에 비해 나이 오십을 넘어서는 덤으로 주어진 생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비생산적으로 앙앙(怏怏)되며 다투고들 한다. 참 어리석은 짓일 것이다.

감사하는 맘으로 매사 다 내려놓고 비우는 자세로 살아도, 살날이 금방 지나치는 시기라서 순간순간이 달갑게 보내져야 할 것이다. 그래서 항상 말과 행동을 조심하고, 남의 불편한 행동에도 동요하지 않으리라 또 다짐해본다.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 세상에 와서, 그것도 잠시 생활하다 간다. 그래서 매사 대하는 것에 있는 듯 없는 듯, 관조(觀照)하는 자세로 남은 삶을 대해가고 싶다. 더 이상 소모적인 다툼은 버리고, 마음을 정정(正定)하게 유지하여 평화롭게 살아가고 싶다.


대한(大寒)을 앞두고 - 이공일오년 일월 십팔일,

달력을 보니 24절기의 마지막 절후(節侯)인 대한(大寒)을 바로 앞둔 시기다. 날도 화창하고 상당 풀린 날씨라, 추위도 다해가는 것 같다. 좀 이를진 몰라도 겨울의 추위가 다한 것 같다.

벌써 봄의 그림자가 아느작거리는 듯하다. 세월은 또 그렇게 한 해를 넘고, 새봄은 땅의 호흡과 식물의 움틈에서 시작될 것이다. 날이 폴리면서 시냇물이 흐르는 것에서 생명수로 다가올 것이다.

이전엔 잘 몰랐지만, 이제부터는 더더욱 도로변, 밭둑변 등에, 약재류, 과실류 등의 유익한 수종을 많이 심어 즐거움을 두루 찾아나갈 것이다. 나이 듬에 욕심일지 몰라도, 웬 지 더 부단히 움직여가고 싶다.

그러면서 모든 게 아무것도 모른 체 왔다가는 것임을 또 짐작해본다. 그런데도 이전에 태어났던 사람들은 전쟁과 배고픔 등으로, 피눈물 나게 고생들을 당하며 살다가는 어려움을 받았는지 모르겠다.

어느 선지자(先知者)의 말마따나 지구가 봄과 여름을 지나는 시대를 거치느라고, 아비규환(阿鼻叫喚)인 듯한 시련을 겪어내느라 그랬다는 것 외에는 달리 알 방법이 없다.

그러든 어떠하든 참 슬프고 아쉬운 게 삶인 것 같다. 좋은 듯 하면서도 비애가 많은 것으로 다 빈껍데기일 것이리라. 삶이 헛짓일 지나 쓰라린 아픔을 받아야만 하는 사람들은 어찌된 것인지 통 알 수가 없다.

태어나 사는 모든 것이 모순으로 우습게 다가온다. 그래도 더러 재미가 있다. 쓰라린 아픔을 당한 사람들에겐 안쓰런 마음이지만 말이다. 그래서 두 눈을 지그시 감고 잔잔한 웃음가지며 구슬퍼지기도 한다.

어짜피 인생은 어찌 오는지 모르게 어디서 왔다가 어디론가 간다. 바람이 스쳐가는 거와 같다. 욕심이 잠재해서 그런지 스러져가는 날을 그리다보니, 마음이 소원(疏遠)해지며 이런 노래가 귓가를 두드린다.

넓고 넓은 바닷가에 오막살이 집 한 채
고기 잡는 아버지와 철모르는 딸 있네
내 사랑아 내 사랑아 나의 사랑 클레멘타인
늙은 아비 혼자 두고 영영 어디 갔느냐

바람 부는 마른날에 아버지를 찾아서바닷가에 나가더니 해가 져도 안오네내 사랑아 내 사랑아 나의 사랑 클레멘타인늙은 아비 혼자두고 영영 어디 갔느냐

금빛아기 해뜰아기 그 이름은 클레멘타인고기 잡는 아버지는 내 생각이 났느냐내 사랑아 내 사랑아 나의 사랑 클레멘타인늙은 아비 혼자두고 영영 어디 갔느냐

나중에는 바닷가에 집 한채 지어놓고 홀로 고적(孤寂)한 삶을 살아내며, 막바지의 스러져가는 모습을 준비해 보는 시간을 갖고 싶다. 그래도 해가 나오는 아침엔 안개가 벗겨지는 바닷가를 거닐 것이다.

석양이 질 때는 창문 앞에서 바다가의 주변이 저녁을 맞아들이는 모습을 그려볼 것이다. 아침 바닷가를 거닐 땐, 하루를 여는 신비로움과 신선한 생각이 머리에 느껴질 것이다.

저녁때는 바닷가에 하루의 피로를 내려놓고, 평안으로 인도하는 어둠의 그림자가 내려앉을 것이다. 저녁에 들고나는 물소리는 아침과는 또 다른 것이리라. 파도소리 들으며 꿈나라에 드는 즐거움도 누릴 것이다.

그때 가서는 삶의 의문도 좀 더 풀려 있을지 모를 일이다. 또한 어찌 살아왔구나 하면서 가벼운 마음일지, 아니면 그때도 여전히 허전한 미소만 짓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고수(高手)의 삶 - 이공일오년 일월 이십일,

퇴근 후, 남아 있는 누른 밥을 한 술 뜬다. 애엄마가 모임이 있기 때문이다. 저녁을 먹고 나니 별 한 일도 없는데, 피곤하고 입국정도 하고 싶어진다. 조금 남아있는 티밥과자를 먹으며 텔레비전을 조금 본다.

겨우 몸을 일으켜 세면을 한다. 이불속으로 들어가니, 이내 평안해진다. 오늘도 하루가 별 동작 없이 이렇게 지난다는 것이다. 오늘같이 지나고 지나다, 삶이 다해버릴 거라는 것에서 힘이 빠진다.

하지만, 과거 쓰라리게 힘겨운 시대에 있었던 사람들은, 먹고살기가 목숨을 맡겨야 하듯이 위태로운 생활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일상의 무료함에서 나타나는 지겨움은 당시로서는 가히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걱정이 있으면 있어서 걱정이고, 없으면 평안해하면서 무료함에 따른 무의미한 생활로 여겨진다. 그러면서 공허해지며 우울해지는 상태가 또 생긴다는 것이다.

어쨌든, 암울(暗鬱)했던 시대에 존재했다면 하루를 견뎌내는데도 힘들어했을 것이라고 견주어본다. 그러자니, 자연히 큰 일 없는 일상(日常)이 말할 수 없는 행복으로 밀려오는 것 같다.

좀 전까지만 해도 힘이 빠지는 상태였다가 생각을 조금 바꿔도 이리 반전(反轉)이 된다. 따라서 마음의 상태변화를 알다가도 모를 정도라고까지 생각하게 된다. 그래도 큰 일이 없는 게, 당연히 행복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큰 일이 있으면 있는 대로 풀어나가는 재미에서 인생의 참 맛을 배워나갈 수 있으면 더 좋을 것이다. 그나저나 자연이 그러하듯, 피곤하게 의미를 찾을 것도 없을 것이리라.

그저, 사는 건지, 안사는 건지도 모르게 살아가고 싶어지는 것이다. 아마도 이런 생활상태가 고수(高手)의 경지가 아닌가 한다. 그러자니, 소리 없이 미소가 일며 그래도 힘이 되는 듯, 다소 가벼워지는 기분이다.


무아(無我)의 삶 - 이공일오년 일월 이십일일,

저녁을 먹고 방에 조금 누운 채로 있다가, 겨우 몸을 돌려 엎어진 자세에서 독서를 한다. 애엄마는 몸이 무거운지, 조용한 가운데 휴식을 취하고자 다른 방에서 일찍 누웠다. 겨울밤 사방이 고요함뿐이다.

책을 조금 읽다가 다른 책을 읽기위해 덮은 후, 잠시 깊어가는 겨울밤에 몸을 맡겨본다. 자식 애들과 친구들을 위시하여 주위의 사람들은 현재, 무슨 생각을 하며 어떤 상태로 있는지 궁금해진다.

교대근무로 야근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운전 등 이른 아침부터 움직이는 직업을 가진 사람은 피곤함에 지쳐, 일찍 잠에 빠져 있을 것이다. 시험 준비에 책과 씨름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국토방위를 위해 형형(熒熒)한 눈빛으로 철책(鐵柵)을 지키는 군인도 있을 것이다. 애엄마가 쪄놓은 고구마 반쪽을 먹는다. 작년에 친구가 조금 보내준 고구마 순을 심 어 거둔 것으로 맛이 있는 호박고구마다.

생고구마로 깎아 먹어도 맛이 좋은 것임에, 매우 우수한 품종이라 여겨진다. 두 권의 책을 조금 더 읽다가 잠자리에 든다. 이른 아침에 자명종소리에 일어난다. 사방이 역시 고요함으로 차있다.

매일 같은 날일지나 오늘은 좀 더 나은 날로 보내기로 한다. 기본에 충실해서 더 친절하고 미소로 대하며 하루를 보내리라. 있는지 없는 지, 하는지 안하는 지도 의식되지 않는 무아(無我)의 상태로 나아가고 싶다.


물오르는 봄날에 - 이공일오년 일월 이십사일,

겨울이라도 집에 있자니 몸이 찌뿌드한 것 같다. 그래서 소일거리를 찾아본다. 바다에 나갈까, 산에라도 다녀올까 하다가 그만둔다. 아마도, 세월 탓에 마음만 있을 뿐, 몸이 게으름피우는 시기에 접어들었나 보다.

겨울도 겨울이고 별 할 일도 없으므로 엄마집에나 가서 낮잠 등, 여유나 즐기다 오기로 한다. 엄마집에서 따뜻한 방에 누워 잠을 조금 취하다 일어난다. 밖에 나와 보니, 날이 별로 춥지가 않다.

박태기나무의 씨앗을 채취(採取)할 겸, 마대를 들고 나무 밭에 가서 씨앗주머니를 딴다. 너무 늦어 남아있는 씨앗주머니가 별루 없다. 있는 것만 조금 따다가, 길가에 떨어져 있던 것을 대충 긁어 담고 끝마친다.

점심 후엔 소일할 겸 고추대 등 밭작물의 버팀대로 쓰기 위에, 이전에 바닷가에서 갖다놓은 김 말지랑대를 적당한 길이에서 한쪽 끝을 뾰족하게 자른다. 몇 개 되지 않는 것이라 얼마 걸리지 않아 일이 끝이 난다.

밭의 흙을 밟아보니 해빙(解氷)되었는지, 흙이 다 풀려있다. 좀 이른 생각일지 모르나 올해는 겨울이 빨리 왔고, 일찍 물러가졌는가 보다. 단풍나무의 윗부분이 붉은 색으로 감도는 것에서 봄이 왔음이 느껴진다.

김 말지랑을 자르며 소화도 되었겠다, 모처럼 운동을 위해 달리기를 하기로 한다. 낙수골을 지나는데 봄이 와서 그런지, 추운 겨울과 다르게 물이 떨어지고 흐르는 것에서 생명수의 분위기가 묻어난다.

농로를 따라서 달린다. 도마천 다리에 이르러서도 흐르는 물을 바라보니, 웬 지 물이 겨울에서 풀려난 듯 한 흐름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물고기라도 노닐고 있는지, 고개를 빼어 디다보나 보이지 않는다.

뛰다 걷다 하며 달릴 때는 몸통의 살집이 움직임을 느낀다. 등에 땀도 밴다. 몸을 흔들어줌으로서 신경조직과 균형 잡힌 근육유지를 위해 필요할 것이라 여겨, 자주 달리기를 해야겠다고 여긴다.

별루 차갑지 않은 바람을 대하며 모처럼 갖는 운동에다, 시간도 있고 해서 다섯바퀴를 돌게 된다. 마지막 바퀴를 돌때는 거의 걷다시피 한다. 제법 많이 해서 그런지, 힘도 거의 다 떨어진 상태다.

하늘을 보니 구름이 좀 끼어 어둔 날씨에 많은 청동오리들이 날고 있다. 들 논에 앉아 있는 것도 있으며 봉선저수지에 가는 것도 있고, 서해쪽으로 날아가는 것도 있는가 보다.

하늘쪽으로만 히연함이 조금 남아 있을 뿐, 지면엔 어둠이 상당 내렸을 무렵이다. 그런대도 잠자리를 찾는 것인지, 논에서는 청동오리 소리가 들려온다. 아직도 갈 곳 몰라, 더러 하늘을 날고 있는 것들도 있다.

사람을 비롯하여 동식물이 다 먹고사는 일이 제일 큰 일 임을 보여주는 경우라 여긴다. 오리들은 밤새 추위와 주변의 맹수(猛獸)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또 고심하며 잠을 이루지 못할 것인가 말이다.

저녁밥을 먹고 독서를 좀 하다 밖에 나와 보니, 사방이 어둠으로 꽉 차 있다. 그런데도 멀리 하천변의 논에선 오리들 소리가 간간히 들려온다. 엄마와 함께 텔레비전의 드라마도 좀 보며 이야기도 나눈다.

엄마는 주변에서 건강하던 사람이 죽은 일과, 자주 병치레로 금방 죽을 것 같다고 말하면서도 여지껏 살아있는 사람을 두고, 인명은 재천이라는 등 사람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것이 많다는 것을 이야기 하신다.

동안거(冬安居)의 깊은 밤 시간을 대한다. 세상사 만물이 자기도 모르게 나와서 먹고사느라 고생이 많다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것이 이유 있을 터인즉, 담담(淡淡)하게 받아내기로 하며 심야의 잠을 취할 뿐이다.


입춘(立春)을 앞두고 - 이공일오년 이월 일일,

요즘 날씨가 많이 풀려선지, 흙이나 흐르는 물에서 봄의 기운이 바싹 다가와 있음을 알 수가 있다. 아닌 게 아니라 글피가 24절기의 첫 번째인 입춘(立春)이다. 해서 아침에 일어나 모처럼 운동을 할 겸, 줄넘기를 하러나간다.

군민회관에 나가니 관광버스가 두 대 있는 데, 등산을 가는 옷차림의 사람들이 하나둘 버스를 타고 있다. 줄넘기는 거의 예전같이 잘도 넘어간다. 삽시간에 천개를 해대니, 몸에 땀이 밴다. 집에 와서 샤워를 하며 하루를 평안히 보내기로 한다.

아침 후, 가족이 함께 바람을 쏘이러 밖을 나간다. 밖은 따스한 햇살아래 맑은 날씨다. 차를 몰고 여기저기 좀 돌아다니다, 영화를 보러 극장에도 간다. 아침에 줄넘기를 해서 그런지, 눈꺼풀이 무거워진다. 마음의 고요와 여유를 찾아 졸아보는 자세를 취한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대부분의 장면에서 폭력적인 것이 많이 나온다. 그래서 그런지 졸리지 않고 그럭저럭 긴 시간동안 영화를 보다가, 이런 말을 떠올려 보게 된다. 만물이 음과 양으로 이루어져 있듯이, 사람의 마음도 선한 것과 악한 감정이 맞서고 있다는 것이다.

확인이라도 하듯, 더러 폭력적인 장면에서 활력이 조금 느껴짐이 감지된다. 실로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성이 있으므로 걱정은 아니 된다. 또한, 모든 것이 다 부질없는 것임을 안다. 그래서 판단 없이 감정에 동조하여 행동하지 않아야 한다고 여긴다.

쇼핑 겸 도시의 시내를 거니는데, 평상복의 옷차림을 한 두 아이들의 아빠가 애들을 데리고 약을 사서 약국에서 나오는 장면을 보게 된다. 애들은 즐거운 표정인데, 애들의 아빠는 기운이 없어 보인다. 사는 것이 짐이라고, 살아가는 것이 녹록(碌碌)치 않기 때문이리라.

집에 와서 독서를 하다가 이런 생각이 가져진다. 자기도 모르게 세상에 왔지만, 살아가는 길에서는 결코 가볍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마음을 어찌 갖고 쓰느냐에 따라서, 자신은 말할 것도 없이 남에게 까지도 즐거움을 줄 수 있다.

하지만, 이와는 반대로 자기만을 생각한다든가 나쁜 마음을 가진다면, 모두에게 불쾌함을 끼친다는 것이다. 알지도 못하고 소풍을 가듯 이 세상에 나와서, 잠간 살다가 인생의 종착역에선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게 모두의 삶일 것이다.

어찌 보면 삶이라는 것이 다 하잘 것 없는 한 밤의 꿈에 불과할 것이다. 좀 더 넓은 마음으로 모든 걸 대해가고 싶어진다. 사람들이 무어라 건 생명의 봄은 또 우리를 반겨주려 스스로 그리 우리를 노크한다. 두 팔 벌려 모두를 담아내는 자세이고 싶어진다.


입춘일(立春日)에 - 이공일오년 이월 사일,

오늘은 입춘일(立春日)이라 그런지 날씨가 많이 풀어져, 겨울의 찬기가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사계절이 한 바퀴 돌고 다시 처음에서 봄이 시작하는 날이라고 한다. 무엇이나 유시유종(有始有終),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는 말이 떠오른다.

그래서 하루라도 마음을 정화(淨化)하고 싶어진다. 일년 한 해를 어찌 걸어갈지 생각하니, 계절에 따른 여러 달의 풍경이 주마등(走馬燈)처럼 떠오르다 사라진다. 시간의 추이(推移)도 빨라짐의 시기에 들어섰으니, 친구들도 자주 더 만나보고 싶어진다.

흔적 없이 사라질 지나 대하는 모든 것을 달갑게 맞아 가야 할 것이다. 매사 열심과 열정(熱情)의 자세로 나아가면 될 것이다. 허나, 정글만리(중국시장-조정래님작)란 책에서 인생에 대한 느슨함의 미학(美學)과, 사고(思考)의 시야(視野)를 넓혀주는 게 있어  적어본다.

중국에서는 아버지도 가짜랬어요, 중국이 짝퉁천국, 중국여자들은 정조관념이 없이 마구 바람을 피워댄다. 문제 삼지 않으면 아무 문제가 없는데, 문제 삼으니까 문제가 된다. 중국인들의 3대 상술, 외상은 주지 말고, 외상을 했으면 떼먹어라.

마누라는 빌려줘도, 돈을 빌려주지 마라. 하루에 100원을 벌기로 했는데, 90원밖에 못 벌었으면 한 끼를 굶어라. 나그네는 쉬어간 그늘을 기억하지 않는다. 중국 사람들의 생활신조가 매사에 나서지 말고, 돈 안 되는 일에 참견하지 마라.

부자 되는 비결은 딱 하나다. 돈을 안 쓰는 것이다. 이익이 확실하면 만금을 쓰기를 주저하지 말아야 하고, 이익이 없으면 한 푼도 써서는 안 된다. 대통령은 임기가 있지만, 부자에게는 임기기 없다. 돈 먹고 안 봐주는 자는 하나도 없다.

황제도 대통령도 부자를 부러워하고 시샘한다. 사람을 얻는 것이 천하를 얻는 길이다. 사람을 능력으로만 고르지 말아라. 능력 반, 사람 됨됨이 반이어야 한다. 술을 마셔 보고, 노름을 해보고, 등산을 해보고, 여행을 해봐라.

이기적인 자, 언행이 안 맞는 자, 마음이 가벼운 자, 인내심이 약한 자, 불평이 많은 자, 협동이 안 되는 자, 뒷말을 하는 자, 약속을 잘 안 지키는 자, 다 골라내라. 뒤늦게 한 두 줄 책을 읽다가 느끼는 것이지만, 독서란 평생 함께 해얄 거라는 말이 맞는 것 같다.

해는 마냥 돌고돌아 봄을 다시 또 대해갈지라도, 그 마음만은 기대와 새로움으로 맞이해 가고 싶다. 그러자니 친구들의 다정한 얼굴이 보름달 되어 떠오른다. 스스로 그러하듯 주변을 서성이며 세월의 오고감 속에 거취(去就)가 피어나는 몸가짐이 된다.


어수선함에서 - 이공일오년 이월 팔일,

정말로 깊게 많이 아는 사람은 말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요즘 들어 마음이 어수선해서 인지, 이런저런 것에 생각이 가진다. 마음속이란 것도 평생 좋은 것과 나쁜 것이 싸워가는 과정인 것 같다. 태어날 때도 내 맘대로 나온 것이 아니다.

밤과 낮이 반반으로 마음속 또한 선악이 반반으로, 그래서 마음을 잘 가누지 못하는 일은 당연한 것이 아닌가도 싶다. 참, 세상사가 자연의 섭리(攝理)일지나 요지경(瑤池鏡)속에서 만들어져 돌아가다 사라지는 것 같다. 남자와 여자에 대한 것에도 생각이 간다.


생김에서 본다면 남자는 중심을 잘 잡아가야 할 것이다. 여자는 자애(慈愛)로움이 나와야 할 것이다. 내 몸도 내가 만든 것이 아니므로, 내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일 수 있다. 그렇다면 자존심을 세운다든가, 잘난체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행위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나저나 어느 종교에서 여러 가지 생각해서 염려를 가질 것이 없이, 한 가지만을 실천하라고 했다. 그 한 가지가 사랑인지, 본분이나 각자가 잘하면 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머리가 어수선하게 생각할 것 없이, 단순하게 살아가기로 하며 생각을 그만둔다.

날은 폴려서 봄기운이 우리 곁에 와있다. 그래서 휴일을 맞아 아침에 일어나 줄넘기를 하러간다. 밖에 나오니 별로 춥지 않고, 공기에 봄이 묻어나는 듯하다. 광장에서 줄넘기를 쉬엄쉬엄 천여 개를 하고, 시내를 산책한다.

그러다 시내의 뒷산을 돌아오기로 한다. 솔숲이 주는 아침공기를 마시며 산길을 걸으니, 여유로움이 배어든다. 걷다가 소나무를 안아본다. 두 팔이 끊어져라 세게 감싸 안는다. 여자를 안아본다 생각하니, 재미와 헛웃음이 다 인다.

귀도 대어보나 조용할 뿐, 감지되는 것이 없다. 나뭇가지에 앉아있는 까치와 새들이 지저귄다. 운동하러 나온 사람이 있어 즐거운 마음으로 인사말을 건넨다. 산에서 내려오다 보니, 보통의 난이 많이 나있는 곳을 발견한다. 호기심으로 대하며 관심을 갖고 보지 않아서 그렇지, 주위에 많은 식생물이 있을 거라 여긴다.

아침을 먹은 후, 봄을 맞아 나무를 옮겨 심을 겸 엄마집에 가게 된다. 봄의 포근한 흙도 밟아보고, 몇 그루의 과수나무 등이 어찌 자라는지 밭 주변을 거닐어본다. 전에 심은 나무들이 뿌리를 잡고, 제법 옹망졸망 컷다. 옮겨 심은 매실나무에서도 움을 틔워내고 있다.

자두 맛이 괜찮은 이웃집의 나무에서 한 가지를 찢어다가, 하천변에 뉘어서 휘묻이로 묻어둔다. 살아나면 좋으련만 자두나무는 꺾꼿이가 불가한 것으로 알기에, 휘묻이 식으로 뉘어서 묻어보는 것이다. 물고기도 날이 폴렸음을 아는지, 하천의 둠벙에선 물사래를 친다.

하던 김에 얼마전에 잘라낸 담장변의 오가피의 가지도 하천변에 꼿아 둔다. 하지만, 나무껍질속이 아직까지 푸르기는 해도, 가지를 잘라둔 것이 제법 오래되었기에 살아날지는 의문이다. 또한, 가지가 많아진 골담초의 가지도, 몇 개 떼 내어 하천변에 묻어둔다.

나뭇가지를 땅에 휘묻이 하는 일 등을 끝내려 하는데, 갑자기 애엄마가 백화점에 옷을 사러가자고 한다. 실은 오늘이 이내의 생일이기 때문이다. 어제는 요즘 들어 왠지 생일에는 무엇엔가 감사를 전하는 것이 도리일 것 같아, 동료들에게 떡을 조금 돌렸다.

옷을 사러간다고 하니, 엄마는 좋은 것을 사 입으라며 돈을 조금 주신다. 시간이 없어 먼 곳으로는 못가고, 가까운 지역으로 가게 된다. 구정이 가까워서 그런지 사람이 무척 많다. 사는 것이 여의치 않아 백화점은 가뭄에 콩 나듯, 어쩌다 한번 이용한다.

하지만, 백화점에 올 때면 느끼는 것이지만, 질이나 가격 모든 면에서 백화점의 제품이 제일 낫다는 것을 인식(認識)하곤 한다. 옷은 좀 마른 젊은 남자점원이 있는 곳에서 산다. 옷 파는 일은 단순해서 무료할 것이다. 웬지, 젊은 사람이 하기에는 안쓰럽다는 생각이다.

이튼 날도 봄의 기운을 느끼며 운동도 좀 할 겸, 엄마집에 간다. 도착해서 엄마집에 좀 누웠다가, 운동하러 밖에 나온다. 환절기라 그런지 하루종일 바람이 불 모양이다. 농로에 나아가니, 사방이 트여 바람이 더 세고 차다. 바람이 너무 차가워 얼굴을 베어가는 것 같다.

너무 차가운 나머지 다음에 하기로 하고, 한 바퀴만 돌기로 한다. 하지만, 한 바퀴를 돌고나니 몸이 좀 풀린 듯해서, 그럭저럭 한 바퀴를 더 돌기로 한다. 그래도 바람은 너무나 차갑다. 바람을 마주대하는 방향에서는 추위를 좀 피하기 위해, 뒤와 옆으로도 달려본다.

달리고 걷다보니, 하늘에서는 청동오리떼가 내려앉을 곳을 찾느라 배회하고 있다. 사는 것이 짐이라고 쌩쌩하게 차가운 겨울바람을 온 몸으로 받아내고 있는 것이다. 어떤 원리에 의해 이리저리 태어나서 살아가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다.
?
그럭저럭 달리고 걷다보니, 다섯바퀴를 채우고 끝낸다. 모든 것이 보이지 않는 어떤 것에 의해, 태어나서 살다가 사라져간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본분을 찾아 살아가면 될 것이다. 어짜피 먼지에서 나서 먼지로 되돌아가는 것, 춤추듯 즐거이 살아가면 되리라.


이별의 나날들 - 이공일오년 이월 십사일,

오늘도 이른 아침에 잠에서 깬다. 똑같은 나날에서 나오는 무료함에 상쾌한 몸가짐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주위에는 약한 몸에도 먹고살기 위해 애쓰는 것이 많다는 것을 떠올린다. 그래서 정자세로 앉아 잠시 부여받은 인생을 떠올려본다.

별 도리 없이 자연이 그러하듯, 오늘도 묵묵히 보내가기로 한다. 그러면서 누구나가 소풍가듯, 세상에 나온다는 것이다. 나중엔 소풍을 다하고 돌아가듯, 언젠가 생을 마감할 때가 온다. 즐거운 소풍이었다면, 돌아갈 때에는 발걸음이 가벼울 것이다.

게임도 하고 도시락도 맛나게 까먹으며 친구들과 배꼽이 빠져라 웃어대는 시간이었다면, 가슴속이 다 후련해지며 뿌듯함이 다 배어날 것이다. 삶은 하루하루가 모여 한달이, 한달이 모여 일년이, 그러다 소풍이 다하듯 한평생이 마무리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매일 맞는 오늘이 별다른 시간임을 생각하고, 소풍가는 날처럼 만들어 보기로 한다. 일단 즐거운 맘을 먹는다. 어떤 것의 제목인 ‘오늘은 어떤 일이 벌어질까’를 떠올리고, 매순간을 반가움과 호기심으로 대해가기로 한다.

일단 보이는 것을 재미있게 바라보기로 한다. 나쁜 일이 일어나면, 신이 또 따분해서 장난을 친다 여기고, 되로 신을 약올려주듯 웃음으로 대하며 풀어가기로 한다. 맘을 바꿔 먹어서 그런지 교육을 받으러 가기위해 차를 기다리는데, 즐거운 발걸음 되어 서성여진다.

오늘의 차량운전 동료가 사과즙을 하나씩 준다. 도로를 달리는 차창 밖으로 옅은 구름이 있어선지, 멀리 산위에 걸려있는 해가 너무나도 삘 건 아름다운 분위기라 사진에 담는다. 첫 교육시간은 홍보에 대한 것을 익히는 시간이다.

관찰력, 사소한 관심, 보이지 않는 약속, 있는 것을 묶는 것 등의 내용으로 홍보방법을 소개하는 교수님을 대한다. 점심 후, 첫 번째로 대하는 교육시간은 조는 사람을 예방이라도 하듯, 질문하는 기법으로 강의하는 교수님을 대한다.

순간순간을 즐겁게 보내리라 오늘 아침에 마음을 가졌음에도, 식곤증 탓인지 교수님의 열강에도 불구하고 졸음이 밀려온다. 그러면서 이 상황을 어찌 대하고 넘겨야 하나 생각해진다. 이 역시도 웃음을 갖고, 재미난 상황이라 간주하기로 한다.

한편으로는 현실을 대하고 있는지도 모르게 졸음에 묻혀가기로 한다. 교육 중에 가만히 생각해보니, 스스로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무의식의 상태로 살아가야 할 거란 생각에서 없는 듯이 가보고 싶어진다. 갑자기 조물주, 즉 신에 의해 내가 나왔다고 가정해본다.

그렇다면 우열의 차이 등에 대하여 반발이나 약을 올리는 방법을 찾아, 살아보면 어떨까 하는 야릇한 생각이 든다. 하지만, 자연도 더러 지진, 폭풍우 등 강한 요동이 있다. 물아일체(物我一體)로 사람도 정도에서 이탈할 때가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리라.

자연에서도 강한 요동이 그쳤을 때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조용해진다. 사람도 지루함 등에서 실수나 과오가 있을 수 있으므로, 여행 등을 이용하여 삶의 회의적인 시기를 극복하고 자연을 본받아 제자리를 잡아가야 하리라.

사는 것이 거의 반복되는 생활임에, 누구나가 삶의 무료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연을 대하면 답이 나오듯, 소리 없이 버텨가야 하리라. 그래도 짜증이 나는 단계에 이르면, 여행 등을 통해 분위기 전환을 하며 다시 또 성실로 이어가야 하리라.

주말임에 엄마집에 가는 중에 시장에 들른다. 파종할 봄보리를 몇 댓 박 사기 위해서다. 동료의 말을 들으니, 보리를 심으면 주위에 진딧물 등의 병충해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조금 일러서 그런지, 곡물을 팔러 나온 사람들이 하나도 없다.

그래서 다음에 기회가 되면, 조금 사서 도로가나 밭둑에 심어보기로 한다. 시장을 돌아 나와서 도로가에서 팔고 있는 아주머니한테, 두부 두모와 상수리묵 한 모를 산다. 엄마집에 와서 곧 설 명절임에 집주변의 쓰레기를 갈쿠로 긁어모아 태운다.

점심까지는 시간이 좀 있는 지라 농로를 따라 달리고 걷는 가운데, 시원한 공기를 마시기로 한다. 아침에 줄넘기를 천여 개 해서 그런지, 몸이 조금 나른함에 농로를 따라 도는 것은 한 두 바퀴만 하기로 한다. 근데 돌다보니, 다섯 바퀴를 돌게 된다.

농로를 도는 중에 보니, 저만치 들논 가운데서 작으마한 고라니 한 마리가 힘없이 걸어 나가는 것이 보인다. 하늘엔 오늘도 청동오리가 저수지를 오가며 먹이를 찾아 배회하고 있다. 고라니도 청동오리도 사느라 고생이 여간 많을 거라는 것이다.

무엇이건 사는 것이 짐일 것이다. 하지만 어찌하랴, 모든 일의 대부분이 나의 의지와는 별 상관없이 돌아가니 말이다. 점심을 먹는데 두부와 묵이 제일 값싸고, 맛이 괜찮은 것임을 알게 된다. 점심 후에는 오전의 운동 탓에 나른하여 방에 누우니, 내 세상이 된다.


봄날 꺾꽂이 - 이공일오년 이월 십오일,

일요일 아침에 조금 일찍 일어난다. 오늘은 또 뭐를 하며 보낼까 궁리하다가, 밥맛도 좋게 일단은 운동을 하고 오기로 한다. 광장에 나가 줄넘기를 한다. 어제 줄넘기와 달리기를 많이 한 탓에, 종아리가 알이 배고 몸이 무거워 줄넘기가 가볍지 않다.

천여 개의 줄넘기는 몸에 땀이 배게 한다. 집에 와서 샤워를 하고 밥을 먹으니, 역시나 맛이 괜찮다. 아침을 먹고 별 할 일이 없어, 차에 실어 놓은 서리태를 팔고 엄마집에 가기로 한다. 올해 일기가 좋아 모든 곡식이 풍년든 해라, 서리태 역시도 가격이 너무 싸다.

그나마 주인은 저울도 조금이나마 덜 잡아주고, 가격에서도 이런 저런 트집만 잡아 상당 깎은 금액으로 계산해 준다. 장날에 내왔으면 상인들의 경쟁관계로 조금은 좋은 금액에, 팔을 수 있었을지 모른 다는 아쉬움도 든다.

가격결정에서 보건데, 장사꾼의 그릇이 그래서 그런지, 이윤이 목적이라 그런지 정말로 야박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어릴 적에 부모님이 생강이나 마늘 등을 재배해서 거래하던 때를 기억하건데, 그때는 정이 있던 시절이라 그런지 저울도 가격도 좋게 쳐주었던 것 같다.

서리태를 낮은 가격에 팔은 것 같아, 서운한 마음에서 엄마집에 간다. 엄마집에서는 운동 겸 골담초를 잘라서 하천변에 심어둔다. 하던 김에 왕보리수 가지도 몇 개 잘라서 심어보는데, 꺾꽂이가 가능한 식물인지는 몰라도 그냥 여유롭게 심어둔다.

또한, 곡물판매점에서 서리태를 팔 때, 조금 사온 밀을 여기저기 파종한다. 보리를 심으면 주위에 진딧물 등의 병충해가 없다는 말을 들은지라, 시기를 놓쳐 보리는 심을 수 없으므로 밀을 심는 것이다. 병충해가 잘 타는 매실나무 주위와 밭둑 변에 흙을 긁고 심는다.

대략 일을 끝내고 하천변을 산책한다. 오늘은 날씨가 무척 풀려있다. 이웃집은 밭을 정지작업 한다. 다른 한 집은 밭에 경운기로 거름을 낸다. 하천의 물도 다 풀려 잡풀들의 티검불을 흘려 된다. 낙수물이 퍼져나는 모습에도 봄이 실려 있는 듯한 느낌이다.

집에 돌아와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데, 어제의 운동과 오늘의 일로 몸이 좀 뻐근해온다. 생각해보니, 이제는 겨울도 지나고 봄이 시작됐단 것이다. 또 한해의 일과를 해야 한다. 자연을 따르듯 내도 모르게 해나가리. 졸음에 끌려 시름 버리고 잠에 드니, 평안할 뿐이다.


살아감에 - 이공일오년 이월 이십일,

별들을 지키는 일이 외로울 것 같아서 잠시 바람을 쏘이다 오라고 했다. 마치 소풍가듯 지구상에 보내졌다. 한데, 이것은 자기들이 주인인양 다투며 힘겹게 살아간다. 조물주이하 여러 신들이 하늘에서 이것의 생활을 내려다보고 많이 웃어할 것이다.

아니면, 세상사가 경쟁관계에서 그리 얽혀서 돌아가야만, 유지되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참 재미있는 상상이다. 또한, 이것이 자기 것으로 영원히 소유할 것인 양 욕심낸다. 오래도록 삶을 누릴 것 같이 착각하고, 떠날 때는 또 얼마나 아쉬워하는지 모른다.

잠간 지내다 올라가려고 내려온 줄은 모르고 잊은 채, 끝내는 돌아가지 않으려고 보챈다. 또한, 돌아가는 기로에 서면, 가슴을 아파하며 어리광부리듯 슬퍼한다는 것이다. 하기는 등잔불 밑이 어둡다고, 자기 그릇도 모르고 행동하는 일도 많을 것이다.

그러니만큼, 잠시 내려왔다는 것을 알기는 더더욱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갑작스레 별 생각을 다 한다. 머리는 버리고 몸으로 살아가는 것이, 여러모로 좋을 텐데 말이다. 자연이 스스로 그리되게 돌아감을 보건데, 의식한다는 것도 괜한 짓인지 모르겠다.

모든 걸 초월해서 존재하는지도, 뭘 하고 있는지도 잘 감지되지 않는 상태로 살아가면 너무나 좋을 것이다. 살아가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고, 업무에서 머리가 복잡해지는 일이 더러 있다. 그럼에도 다 헛것이라 여기고, 이런 저런 생각의 여유도 가져본다.

새해 들어 또 그렇게 하루하루 지내다보니, 을미년(乙未年)의 설 명절을 맞게 된다. 이번에 맞는 설은 연휴가 길은 데다, 콩 탈곡을 해야 하기에 좀 기다려졌다. 또한, 절기가 일러서 인지 대동강물이 풀린다는 우수(雨水)의 날과 한날이다.

그래서 약재나무의 꺾꽂이 등을 하고, 밭도 둘러보며 봄날의 향취(香臭)를 맡아보기 위해 더 기다려진 것이다. 연휴 첫날 이른 아침에 광장에 나가 줄넘기를 한다. 평소에 운동을 할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아서, 연휴기간에 좀 더 하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아침을 먹은 후 애엄마가 산 설음식 재료를 갖고 엄마집에 도착하니, 큰형이 제일 먼저 와서 누수 되는 수도파이프를 살펴보고 있다. 그러다 파이프의 이음매를 죄어주는 너트를 풀고 조일 연장이 없어서, 수선에 난색(難色)을 표한다.

그래서 너트를 풀어봐서 파이프를 교체해야 하는 등의 부품을 요하는 일이 있을 수 있으므로, 아예 전문가를 불러 손대기로 상의해서 그리 하게 된다. 그리고 밭에 나가 서리태를 덮어둔 비닐을 벗기고 탈곡할 준비를 하는데, 둘째 형네가 도착한다.

서리태를 탈곡하다보니 덜 마른 것을 모아둔 것과, 빗물이 좀 들어간 것은 콩이 상당 썩어 있다. 점심을 먹고도 탈곡이 계속되는데, 매형과 누나가 잠시 들른다. 그래서 탈곡작업을 멈추고, 술 한 잔을 하면서 담소(談笑)를 나눈다.

이야기 중 낙수골에서 쟁이 그물로 물고기를 잡아다 지져먹기로 한다. 낙수골에 쟁이 그물을 던져보나, 고기가 한 마리도 잡히지 않는다. 아마도 겨울이 오기 전에 깊은 곳을 찾아 하류로 다 내려갔나 보다. 그래서 둘째형과 매형은 저수지 근처로 붕어를 사러간다.

그사이 이내와 큰형은 서리태의 탈곡을 계속 한다. 물고기를 사다가 다듬기를 끝마치고 누나와 매형이 돌아갈 때쯤에, 한쪽 밭의 서리태 탈곡이 끝이 난다. 조카들과 함께 다음날에 탈곡할 밭으로 탈곡기를 옮겨놓는다.

저녁을 먹고 앉아 있는데, 하루의 피로가 몰려와 몸이 노근 노근하다. 그래서 대략 씻고 건너 방에 가서 눕는다. 하루의 농작업에서 우러나는 휴식의 달콤함이 빠져든다. 다들 피곤했는지, 텔레비전도 보다말고 유례없이 초저녁에 잠에 든다.

자리에 누워서 한해가 지나고, 또 한해가 시작됨에 생각이 간다. 직장생활을 하며 올해는 운동 삼아 밭농사도 좀 하며, 더러 힘든 때도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계절은 돌고 돌아, 또 농사일을 시작하는 시기가 되돌아왔다고 여긴다.

또한, 어디서 읽은 것인데, 삶이라는 것에 있어 원래 뜻하지 않게 나고 감이 이루어져있다고 한다. 그래서 삶은 살아가는 한 토막만이 있을 뿐이라고 한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가운데 한해의 운수를 기약해 볼 겸, 좋은 꿈을 기약하는 풍경을 떠올리며 잠에 든다.

너무 일찍 잠에 들어서인지, 상당 이른 새벽에 잠에서 깨어난다. 잠자는 사이 피로가 풀렸는지 몸은 가벼워진 상태다. 밤사이 꿈을 꾼 것이 있나 기억을 더듬어보나, 생각나는 게 아무것도 없는 걸로 봐서 꿈을 꾸지 않은 것 같다.

낮에 또 탈곡을 해야 하기에 좀 일찍 일어나 차례를 준비할까 하다가 그만둔다. 왜냐하면, 엄마만 빼고 가족들이 다 잠자고 있고, 또 좀 이른 것 같아 오줌을 눕고 와서 다시 잠을 취하기로 한다. 마당에서 하늘을 보니, 수많은 별들이 초롱초롱하게 빛나고 있다.

하루가 맑은 날이 될 것임을 알려주기라도 하듯, 별들이 영롱(玲瓏)한 빛을 밝히고 있다. 하늘을 올려다보다 북두칠성을 발견하고, 두 눈을 모은 채 뭔가 기원해보는 마음을 가져본다. 이른 아침까지는 길지 않은 시간이라 잠이 들까 심었는데, 꿈을 꾸고 잠에서 깬다.

꿈은 풍성함을 암시하는 풍경사이를 걸어가는 등의 꿈이라서, 올해는 재복이 있을라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간다. 산 숲에는 낙엽들이 많이 쌓여 걷는 발길에 포근함을 준다. 지난 추석 때 오지 못해선지, 나무들이 시야를 가릴 정도로 자라있다.

성묘를 갔다 와서 서리태의 탈곡이 또 시작된다. 큰형도 지쳤음인지, 명절에 쉬지도 못하게 탈곡을 한다고 말한다. 더군다나 풍년이 들어 가격이 많이 싸서, 전기료도 나오지 않을 거라 한다. 좀 거들다가 큰 형은 조그만 하우스 안의 너저분한 바닥을 정리한다.

바쁘게 탈곡을 하던 끝에 저녁때가 되어서야 콩 탈곡이 끝이 난다. 포장과 탈곡기를 안치(安置)시켜놓고 집주변의 쓰레기를 태운다. 그리고 처갓집에 가기위해 바쁘게 엄마집에서 나와 집으로 향한다. 탈곡하는 일이 늦어 친구들을 만나는 것도 못하고 가는 것이다.

처갓집에 들러 반가움에 처제와 동서들을 대한다. 모두의 얼굴에서 세월이 좀 더 묻어나는 모습이다. 먹고사느라 힘도 들겠지만, 한 해 한 해 나이 듬이 나타나는 것이라 여기니 다소 서글퍼지는 기분이다. 사는 것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잠에 든다.

다음날 처갓집의 뒷산에 있는 밭으로 돼지감자를 캐러간다. 돼지감자는 당뇨에 좋다고 하여 막내처재가 먹으려고 캐게 된 것이다. 산밭에 이르니, 돼지감자의 줄기가 겨울을 나며 넘어져있는 것이 무척 많다. 남들이 캐어간 흔적으로 흙이 파헤쳐진 곳이 군데군데 있다.

함께 상당 캐어 와서 물에 씻는데, 금색으로 알도 긁고 때깔이 참 좋다. 물에 끓여 먹거나 가루로 만들어 먹기 위해, 얇포듬하게 썰어 건조기에 두 시간 넘게 말린다. 설을 맞아 오랜만에 동서들과의 만남도 잠시, 다음을 기약하며 아쉬움을 뒤로하고 나온다.

설 명절을 다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차안에서 생각하니, 정월초하룻날을 쉬지도 않고 일만 하다 보냈다는 것이다. 어른들 말에 따르면 정월초하룻날을 어찌 보내느냐에 따라, 한해가 어찌 보내질지가 점쳐진다고 하는 말이 있다.

좀 쉬면서 하루를 여유자적하게 보냈어야 했는데, 미뤄오다 서리태를 탈곡하는 일로 바쁘게 보냈다. 그래서 올해는 바쁜 일이 많을 것 같아, 다소 걱정도 가져진다. 하지만, 평생 일하다 가는 게 삶인 것 같아, 몸이 허락하는 한 무슨 일에나 열심히 해나가리라.

매양 세월을 보내며 느끼는 것이지만, 어떠한 것이나 그 일이 마칠 때에는 아쉬움이 남는 다는 것이다. 아마도 보이지 않게 잠재해있는 욕심 때문이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런 감정이 남아있지 않기 위해서는 그때그때의 일에 하는지도 모르게 대해나가야 하리라.

어짜피 세월은 우리를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흐름에 있으리라. 나고 감이 뜻하지 않게 이뤄진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살아가고 있는 것이 자연의 조화속에 이루어지는 것으로, 하찮고 헛것인 놀음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또한, 잘살든 못살든 아쉬움은 늘 상 존재할 수 있다. 하지만, 자연을 대함에서 지혜를 배우듯, 그저 고요히 제 할 몫을 다해나가면 될 것이다. 그러므로 매사 열심히 대하는 자세로 아쉬움을 넘어 시원스러움이 남는 생활이면 그만이리라.















사노라면 - 이공일오년 삼월 일일,


주말을 맞아 엄마집에 간다. 또 한해를 맞아 두달이 지나면서 삼월에 들어선다. 며칠전 우수(雨水)가 지나고 곧 경칩(驚蟄)에 다다르는 시기다. 봄날의 계절이라 밭 주변을 거닐어본다. 아직은 날씨가 상당 춥다. 하지만 매실나무에선 연초록의 움을 틔워내고 있다.

밭에는 서리태를 탈곡한 콩깍지가 그대로 쌓여있다. 그래서 운동 삼아 콩깍지를 밭의 여기저기에 거름으로 조금 뿌려두다가, 따뜻한 날에 하기로 하고 그만둔다. 그리고 따뜻한 방에 누워 아무 생각 없이 동안거(冬安居)의 잠자리에 몸을 맡긴다.

얼마가 지나지 않아 잠에서 깨어 엄마와 얘기를 나눈다. 엄마는 나이가 들어 기운이 빠졌음에도 삶에 애착이 강함을 느낄 수 있다. 나이가 더 든 아주머니들이 타고난 건강 등으로 거동이 원활한 것을 들며 부러워한다.

그래서 좀 더 사는 거나 들 사는 것이 매한가지로, 사는 것조차도 헛것인 거리 말해드린다. 그러자 엄마는 너도 나이 들면 더 살고 싶어 할 거라 말한다. 그러면서 잘 어울렸던 비슷한 또래의 동네사람들이 지금은 다 떠나고 없다며 엄마는 웃음을 지으신다.

그래서 이내는 친구들과 비슷하게 살아져야지, 혼자만 오래 살아 있으면 뭐할 거냐고 말해서 또 웃게 된다. 그리다가 엄마는 당사주(唐四柱)가 잘 맞는다며 태어나는 달이 좋아야 삶이 순탄하다고 한다. 대체로 겨울이나 여름 생은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고 한다.

봄이나 가을에 태어나야 살아가는 것이 순탄하게 잘 풀려간다는 것이다. 그리고 착한 마음씨로 살아가야 모두가 이롭다고 말씀하신다. 그나저나 엄마의 건강이 한해가 틀리게 기운이 거의 없어져서 이것저것 걱정이 된다.

집을 나와 저수지 가의 도로를 지나는데, 오늘도 청동오리들은 물가에서 먹이를 찾는지, 물위에 떠있는 모습으로 있다. 집에 와보니 애들이 겨울방학을 마치고 학교로 돌아감에서, 한해를 보내가야 함이 또 새롭게 다가오게 된다.

살아감에 매듭이 생길 때는 삶이 푸석해질 것이다. 어느 책에서 읽은 것으로 아무 것도 모르게 세상에 났다 간다는 것이다. 살아가는 것이 단지 파도가 한번 일었다 사라지는 것과 같은 것이라 한다. 그래서 어려울 땐 다 집어 치 듯, 가벼이 대하는 지혜도 필요하리라.

그나저나 삼월이 되었으니, 봄은 더 한층 살아날 것이다. 온통 새싹이 돋아나며 꽃이 어우러질 것이다. 가는 길이 그렇고 그럴지라도 자연이 때 되면 스스로 그리하듯, 초동학교에 입학하는 기분으로 새로 또 한해 시작해 나가보리라.


봄볕에서 - 이공일오년 삼월 팔일,

이런저런 일과 부딪치며 쉽지 않게 그날그날 하루하루가 지나다, 또 주말을 맞는다. 엇 그제가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날 정도로 날씨가 풀린다는 경칩(驚蟄)이었다. 특히나 봄날에 지면에서 피어나는 실안개가 있다고 하니, 봄을 맞아 이를 취해보고 싶다.

그래서 어딘가로 산야를 찾아 헤매볼까 궁리하다 옹색하게 사는 것에 따른 것인지, 겨우 지역에 있는 희리산으로 동료와 함께 가기를 얼마 전 기약했었다. 근데 그거나마 집주변을 정리해야하는 일이 생겨, 갈 수가 없게 된다.

좀 살아서 그런지 인근에 있는 산에 가는 정도도 뻐그러진다고, 이제는 그리 서운함이 들지는 않는다. 만사 욕심낼 것도 없이 흐느적흐느적 넉넉한 맘으로 살아가고 싶은 것이다. 요즘엔 그저 어디서건 봄날의 햇살이나 쐬면 그만이란 생각인 것이다.

이제는 온갖 생물이 겨울잠에서 깨어난 시절에 닿았으므로 스스로도 몸을 움직여 보고 싶어진다. 그래서 밭에 심어놓은 나무를 조금 팔게 되어 나무를 캐는 것을 돌보며 봄날의 햇살을 즐길 겸, 엄마집으로 향한다. 차창 밖의 봄 햇살이 생동감으로 다가온다.

인부들이 박테기나무를 캐는데 뿌리가 많이 뻗어 있어 무척 애를 먹는다. 집앞 도로가의 나무를 다 캐었을 때는 주변의 흙을 정리한 후, 울타리겸 사철나무를 잘라다 꽂아둔다. 나무를 캐는 일은 뿌리부분의 흙을 감싸서 캐야 하므로 삼사일 걸릴 것 같다고 한다.

나무를 캐어가는 일은 어짜피 업체에서 해야 하는 일이므로 신경 쓰지 않기로 하고, 다 캐어갔을 때나 밭을 정리하기로 한다. 그리고 묘를 이장(移葬)하는 일이 있는 처갓집에나 가기로 하며 집을 나온다. 처갓집에서는 장모의 묘를 파고 뼈를 정리해서 화장장에 간다.

이장은 화장(火葬)을 해서 준비해둔 납골당에 유골함을 안치한 후 제(祭)를 지내는 것으로 끝이 난다. 봄의 따스한 햇살아래 처남과 동서네 가족이 모두 모인 가운데, 일이 원만하게 끝나서 다행이라 여긴다. 이장의 일을 치르는데 삶과 죽음에 대한 것에 생각이 간다.

장모님은 신장이 나빠서 평생 고생만 하다 가셨다. 왜 그런 아픔을 줬는지 의문이 든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원인 없는 것이 없다고 속상함에서 뭔가 배우라고 그리했을 것 같기도 한데 모를 일이다. 알게 하는 것도 없이 어려움을 준다는 게 이상스러울 뿐이다.

한동네서 함께 자란 친구중에 세명이 벌써 젊은 날에 세상을 떠나갔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어찌 생각해보면 삶고 죽음이라는 것이 별시럽지 않은

웹지기   15-08-05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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