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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과 소리의 경계    
글쓴이 : 이창우    15-10-04 14:17    조회 : 4,031
말과 소리의 경계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 자신의 의사를 울음으로써 표현한다. 본능적이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의사표현이요 언어로 간주되어야 할 것이다. 보통 “으앙~!”하는 아기울음을 별 개념이 없는 아기 우는 ‘소리’로 치부해버리고 말지만 과학적 연구에서도 그것은 의사표현의 수단인 것으로 입증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어디까지가 소리이고 어디서부터 말일까?
 
기도로부터 공기를 배출하여 성대를 통과할 때에 공기량에 따라 또는 성대의 면적에 따라 크거나 작거나 높거나 낮은 진폭의 떨림이 발생하고 그 떨림의 현상이 음파로 변환되기까지를 소리라고 하자! 여기에 턱을 상하좌우로 움직여 구강의 크기를 조절하고 혀를 특정형태로 움직이고 치아의 아래 위 간격이나 입술의 형태를 조절하는 복잡한 과정을 거치면 특정한 형태의 소리가 되고 여기까지를 음절이라고 한다면, 음절이나 소리가 서로 연결되어 하나의 낱말이 만들어지고, 낱말과 낱말 또는 음절을 연결하여 비로소 말을 만들어 내는데, 경우에 따라서는 분명 말이라고 뱉었지만 말이 아니고 소리인 경우가 있다. 그러한 경우 우리는 그것을 사자성어로 ‘어불성설’이라고 한다.
 
‘말을 한다!’라고 할 때, 일반에게는 그 과정이 대수롭지 않겠지만 언어장애가 있는 사람에게는 소리를 말로 만들어 내는 과정이 그렇게 복잡하고 어려울 수가 없고, 말을 함부로 하지 않는 사람이 뱉어내는 소리는 한마디 한마디가 곧 말이요, 말 한마디가 천근과도 같이 무겁다. 생각 없이 아무렇게나 입으로만 내뱉는 말은 그야말로 혀 구르는 대로 내뱉으면 말처럼 들리지만 정작 말이라 함은 두뇌(생각)를 통하여 여과하고 정제되지 않고서는 말이라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말이 아닌 소리의 경우 그 소리를 파장으로 보지 않고 물체로 해석하는 경우가 있다. 어릴 적 분명 말이라고 뱉었는데 말이 아닌 경우 어머니로부터 자주 듣는 꾸지람 중에 단골메뉴가 있었다. “그걸 말이라꼬 하나? 아아 주웃가래이라꼬 하나?” 표준말로 해석하면, “그걸 말이라고 하느냐? 어린아이 바짓가랑이라고 하느냐?“인데, 어머니는 말이 아닌 경우 그것을 바짓가랑이 즉, 물체로 보는 것이었다.
 
옛날 어린아이들은 마당에서 땅따먹기도 하고, 논두렁에서 고동도 잡고, 도랑에서 가재도 잡고, 숨바꼭질을 하면서 시궁창에 빠지기도 하고, 옷에 뭐가 묻든지 아랑곳하지 않고 자연 속에서 온갖 저지레를 다하면서 놀았다. 따라서 바짓가랑이는 항상 흙이 덕지덕지 붙어있고 오물에 축축이 젖어있었다. 이러한 경우 가장 적절한 표현이 “몰골이(바짓가랑이가) 말이 아니다!”이니 말이 아니면 소리일 수밖에 더 있겠는가. 그러니 소리가 곧 바짓가랑이인 것이다.
 
또 말이 아닌 소리의 경우 그 음원을 일컬어 ‘구녕’이나 ‘시궁창’이라고 한다. “구녕이 뚫렸다고 다 입인 줄 아나?”, “그 놈의 입이 시궁창이네!” 즉 위에서 입은 밥을 먹는 입이 아니고 소리가 발생되는 음원을 가리키는 것인데, 전자의 경우 “소리의 출처는 입이 아니고 구멍이다!”라는 부등식의 관계에 대한 실례이고, 후자의 경우 “입=시궁창”이라는 등식의 관계에 대하여 실례를 든 것이다. 따라서 말인지 소리인지, 입인지 시궁창인지를 구별하여 내뱉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나랏말에는 표준말과 사투리가 있는데, 표준말은 한 나라의 표준이 되게 정한 말로써 우리나라에서는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로 정함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말도 경제성에 입각하여 시간이나 노력을 최소화하고 중복되지 않게 기술적으로 구사할 필요가 있고, 쓰거나 말할 때에 가능한 시간을 단축하고, 글씨를 쓸 때에는 글씨의 획수를 최소화함으로서 손의 동작에 따른 노력을 줄여야함은 물론이고, 말을 함에 있어서 입술이나 혀를 움직이거나, 턱이나 목구멍의 크기를 조절하고 성대에 바람을 들락날락하게 하는 수고를 줄이는데 그 경제적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고 한다면, 굳이 표준말의 기준을 서울말에 한정하기보다는 좀 더 경제적 가치에 비중을 두고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따라서 형태학적으로는 가능한 두루뭉술함을 지향하고, 양적으로 비교적 긴축되고 절제된 언어로서 의사소통에 따른 시간을 가능한 단축할 수 있는 경상도말이 그 어느 말보다 진화한 언어라고 생각되기에 현재의 표준말과 비교하여 경제성을 평가해본다.
 
[표] 음절수를 중심으로 본 표준말대비 경상도말의 경제성
표준말
경상도말
경제성(%)
비고
적요
음절
적요
음절
합니다
3
하니더
3
100
경북
하세요(꼭 그렇게 하세요)
3
하세이
3
100
아닙니다
4
아이시더
4
100
갔습니까
4
갔니껴
3
133
(안동)
외치면 오십니까
7
외마 오니껴
5
140
아저씨 오셨습니까
8
아제이껴
4
200
갑니다
3
감더
2
150
경남
가세요
3
가소
2
150
잡수십시오
5
자시소
3
167
 
위 [표]에서 같은 3음절일지라도 경상도말은 표준말에 비해 경제성이 높다. 왜냐하면 표준말 ‘합니다’의 경우 처음에는 입술을 완전히 붙였다가 나중에는 반쯤 붙였다가 마지막으로 완전히 벌리는 과정을 거치면서 입술의 모양과 각 부분에 들어가는 힘의 강도를 조절하는 복잡한 과정을 거쳐 3음절이 완성되지만, 경상도말 ‘하니더’의 경우 입을 약간 벌린 채 표정을 변화시킬 필요 없이 혀만 까딱까딱하여 3음절을 완성할 수가 있다. 이 얼마나 쉽고 경제적인가!
 
007영화에서는 망원경으로 적의 입놀림을 보고 원거리에서 대화내용을 감지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경상도 말은 외부로는 표정을 고정한 채 주로 입속에서 혀의 동작만으로 말을 구사할 수가 있으니 이러한 경우 적에게 노출될 이유도 없다. 이 얼마나 진화된 언어인가!
 
한편, 표준말은 음절수가 많고 서울강남의 부동산값이 들락날락할 때마다 교양 있는 부류가 자주 바뀌다보니 기준도 자주 바뀌고, 교양 있는 사람들의 영어숭배사상으로 ‘나랏말씀이 미국과 닮아! 문자와 신체구조가 서로 사맛디 아니할 쌔’ 발음도 점점 어려워져 여타의 사투리에 비해 배우기가 영 어려운 편이다.
 
음절을 기준으로, 1, 2, 3음절을 다 익히고 나서 1음절을 생략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러나 1, 2음절까지 익히고 나서 다시 3음절을 더 배워야하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어렵게 말을 배운 서울사람은 경상도말을 배우기가 쉬운데, 쉽게 말을 배운 경상도사람은 평생을 배워도 서울말이 되지 않는 것은 바로 위와 같은 사실 때문이다.
 
필자역시 울산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경상도사투리로 말을 배우고보니 오랫동안 객지생활을 했었음에도 불구하고 한번 굳어버린 혀는 좀처럼 고칠 수가 없었다. 사투리로 혀가 굳어져버린 경우 표준말을 구사하기위해서는 상당기간 의도적으로 발음을 교정하고 말씨를 정화하고자하는 노력이 필요한데, 가능한 연식이 짧은 상태일수록 교정효과가 크다고 생각된다.
 
최근 시가지의 풍경이나 각종간판, 인터넷사이트에서 기관의 명칭, 슬로건의 문구, TV광고 등을 보면 국가기관이나 방송매체가 앞장서서 국어추방운동을 벌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TV아침드라마에서는 입에 담지도 못할 욕설장면에다 발악과도 같은 고함소리에 온종일 기분까지 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는데, 저녁의 오락프로그램에서는 비속어나 신조어를 아무거리낌 없이 예사로 사용하고 있다.
 
그러한 종편채널의 한 시사오락프로그램에서 어느 ‘교양 있는 사람’은 이명박 전 대통령은 ‘~습니다’를 ‘~읍니다’로 잘못 쓰고 있다고 폭로했다. 한나라의 대통령을 역임한 사람이 그 나라의 기본적인 모국어의 철자도 모른다는 것이 문제이긴 하지만 그 시절 국어교과서에는 분명 ‘~습니다’가 아니고 ‘~읍니다’였음을 왜 모르는가. 문득 어머니의 그 "아아 주웃가래이"가 생각나는 대목이다.
 
우리나라 백성들은 나랏말에 관한한 어찌된 영문인지 나이가 들수록 무식(無識)은 쌓여만 가고 교양(교양 있는 사람)과의 거리도 멀어져 간다. 맨탈붕괴, 훈남훈녀, 파덜어텍, 시월드, 아햏햏, 듣보잡, 돌직구, 행쇼, 먹방, 스샷, 냉무, 안습, 먹튀, 므흣.... 지금의 흐름대로라면 머지않아 표준말로 대체될 후보군. 딴 나라에 온 듯 착각이 들게 하는 국적이 모호한 언어들이 무지몽매한 ‘어린 백성’들을 이방인으로 내몰고 있다. 세월은 바람처럼 흘러만 가고, 무식하기 짝이 없는 우리는 마하의 속도로 내달리고 있는 나랏말씀을 방향감각도 잊은 채 걸어서 뒤뚱뒤뚱 따라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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