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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세의 곁에 서다.    
글쓴이 : 이성덕    16-01-11 16:16    조회 : 5,203
순간 가슴이 먹먹해지고 목이 메어오는 가슴벅참의 통증을 느낀다.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광경이 현실세계의 것이라기 보다는 수세기전의 성경속의 예언으로 나에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고막을 찢는 듯한 날카로운 싸이렌 소리와 함께 응급차 한대가 다가온다. 출근시간의 조급함으로 꽉 막힌 도로위로 홍해 앞으로 다가가는 모세처럼 그 모습을 나타낸다. 자동차들이 혼잡 속에서 가다 서다를 반복하고 있어 차로에서는 조금의 여유도 찾기 힘들다. 그 옆의 인도를 걷고 있던 나에게 그 응급차의 크나 큰 싸이렌 소리는 누군가의 생명의 부활을 원하는 간곡한 절규로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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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의 군대를 피해 다다른 홍해 앞에서 바다가 갈라지는 기적을 기도했던 모세의 안타까운 마음이 이러했을까? 애타게 울부짖으며 달려오는 응급차 안의 누군가의 삶이 여기서 끝나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엄습해온다. 나는 그 순간 이미 기적을 기도하는 모세의 일행이 되어 버린다. 곧이어 주변의 모든 사물이 깊이를 알 수 없는 진한 파랑과 자동차 후미등의 붉은 빛을 머금은 물이 되어 홍해의 파도로 일렁이기 시작했다.
 
그 곳에서 난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을 보았다.
 
응급차가 저만치 나타나자마자 갑갑하게 멈춰있던 자동차들은 제 각각 인도 위로 혹은 화단 위로 출렁이며 갈라지기 시작한다. 죽음과 삶의 경계에서 촌각을 다투는 누군가의 삶이 바로 여기서부터 다시 부활하고 있는 느낌을 받는다. 그 기적 앞에서 갈라져 출렁이던 홍해의 물이 내 눈을 통해 흘러 넘친다. 한참동안을 그 자리에 서서 다시 차선 안으로 느릿느릿 줄서기를 하는 바보 같은 그들을 경외하며 바라본다.
 
이 이야기는 유학시절 초기에 독일의 작은 브레멘주에서 경험한 일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각종 매체를 통해 가끔 모세의 기적이라는 제목의 양보와 배려에 대한 미담을 접하곤 한다. 하지만 독일에서는 TV나 신문의 지면이 아닌 눈앞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경험하게 되는 일상이었다. 그 당시 이런 기적의 일상화가 도대체 어떻게 가능한가?‘ 에 관한 질문들이 머릿속에 만들어 내는 병목현상에 괴로워하였던 나를 기억한다. 강력한 처벌을 가진 법으로 그들에게 기적을 강제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경제대국답게 그 기적에 참여한 자에게 달콤한 어떤 보상이 주어지는 것일까? 라는......
 
그 답은 몇 년의 유학생활을 통해 경험한 독일인의 생활태도에 있었다. 그들의 태도는 이치에 맞게 행동하는 사람들이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사회, 합리적 개인주의의 사회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이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서로 공감하고 소통할 수 있는 중심적인 가치가 필요하다. 모두가 그 중심 가치에 연결되어 있지만 다른 거리에서 서로를 인정할 수 있어야 깨지지 않는 사회공동체가 만들어 질 수 있다. 우리는 그 중심 가치를 도덕, 도리, 이치, 조리, 사회규범 또는 사회상규 등등으로 불러왔다.
그러나 오늘 날은 비대해진 경제력만큼이나 개인의 권리의식도 커져 개개인의 가치관과 신념에 대한 확신이 커져가고 있다. 이로써 공동체가 공유할 수 있는 가치는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그리하여 소통이나 공감의 약화로 인하여 자칫 우리 사회가 이기적 개인주의로 그 색을 진하게 물들일까 걱정이 된다.
 
물론 개개인의 고유한 생각이 무시될 수 없는 가치를 가지고 있는 가치상대주의가 지금의 다양하고 발전된 사회를 만들어가고 있는 부양토가 됨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인간이라는 단어가 뜻하는 것처럼 사람들 사이에서 우리는 개인으로서 가치를 가지게 된다. 또한 인간은 존재하기보다는 실존한다고 철학자들은 말하고 있다. 단지 3차원의 현실세계에 크기와 무게로써 공간만을 차지하고 있는 물건과 달리 인간은 주변에 있는 모든 물건과 타인에 대해 긍정의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시대에 맞는 중심적 가치를 가지고 주변을 의미있게 바라볼 때에 비로소 실존할 수 있다.
 
그 중심적 가치로써는 인간존중이 시대를 막론하고 으뜸의 것일 것이다. 인간의 생명·신체의 완전함을 지켜주기 위한 모든 것은 실정법의 조항 이전에 실존하는 인간의 기초로써 우리 서로가 존중해야 하는 가치인 것이다. 인간존중이라는 이치를 중심에 둔 사회에서 구성원들이 그 가치에 합치하도록 생활한다면 우리나라에서도 충분히 기적들에 둘러싸인 일상이 펼쳐질 것이다.
 
우리는 도로에서 도로교통 관계법 혹은 신호등이 정해주는 질서에 익숙해지고 그 규범으로부터 부여받은 자기의 권리를 최우선시하지는 않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어떤 이들이 이 권리를 지키기 위해 자기와 타인의 생명까지 위협하는 폭력을 행사하는 비극적 광경도 흔하게 목격하는 오늘이다. 우리와 다르게 독일사회는 인간이 존재하는 틀인 생명·신체를 보호하기 위해 조금 먼저 가야하는 이익 혹은 먼저 차지한 도로위의 기득권을 포기하거나 제한당하는 것을 불편함이나 손해로 여기기보다는 당연한 행위로 받아들이는 중심적 가치를 공유하고 있다.
 
역지사지와 같은 고사성어나 비교형량 이라는 계산적 법리를 이용하지 않더라도 우리의 마음에는 인간을 존중하기 위한 가치를 가지고 태어난다. 단지 우리는 그 마음을 표현하거나 사용할 줄 모를 뿐이다. 누군가에게 당연한 것이 다른 이에게 기적이 되는 야누스의 두 얼굴의 혼란에서 벗어날 시기가 왔다. 우리 스스로에게 여유와 배려라는 큰 선물을 주어 주변의 모든 것들에 대해 긍정의 의미와 에너지를 줄 수 있을 때에, 우리사회에 또 다른 수많은 모세의 기적이 펼쳐지질 않을까?

김혜정   16-01-11 23:36
    
이성덕님 반갑습니다.
복잡한 도로에서 발생한 응급상황을 서로의 배려로 대처하는 상황과 느낌을
 모세의 기적에 대비시켜 잘 표현해주셨네요.
이성덕   16-01-13 07:55
    
격려의 말씀 감사합니다.
그 동안 부러움으로 동경만 했던 문학의 향기를 좀더 가까이서 들이마시고파
용기를 내어봅니다.
관심과 가르침 부탁드립니다.
김혜정   16-01-13 13:56
    
사실 이 난을 통해서 선생님들의 작품을 합평하는데는 어려움이 많습니다.
예를 들자면
윗 글 중 맨 앞의 두 문장 '순간 가슴이 먹먹해지고~~예언으로 나에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까지의 문장도
'그 곳에서 난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을 보았다' 다음 문장으로 쓰시는 것이
훨씬 좋습니다.
'난 홍해가  갈라지는...' 이 아니라 '나는 홍해가 갈라지는...'으로 쓰시면 좋겠구요.
합평을 이런 식으로 하면 자칫 합평이 아닌 작품에 대한  지적으로 생각하실 수도 있기때문에
함께 공부하고, 의견을 나누고, 더 나은 표현과 방법을 찾아가며 작품의 완성도를 놀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됩니다.
이성덕   16-01-13 14:19
    
지적도 관심이라는 말로 감사드립니다.
더 많은 지적 속에서 진한 향기를 찾을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머리에 맴도는 수많은 생각들을 입이 아닌 펜으로 표현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우면서도
가슴을 설레게 합니다.
더 많은 지적 기대해 봅니다.
김혜정   16-01-13 19:33
    
최근계시물이난 강의실에 들어가시면
서울시내 곳곳에서 글쓰기,수업을 하고 있는 공부방의 수업내용이 올려져잇습니다.
꼼꼼이 읽어 보시고 참고로 삼으시면 글쓰기에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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