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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아 천년 죽어 천년 가는 나무    
글쓴이 : 장석률    21-07-20 18:01    조회 : 4,350
   살아 천년 죽어 천년 가는 나무.hwp (20.0K) [1] DATE : 2021-07-20 18:01:50


살아 천년 죽어 천년 가는 나무

                                                              장석률 (張錫律)

 

목공방 마당에 들어서니 기계톱과 자동대패 돌아가는 소리가 요란하다.

문을 열면 편백나무 향이 두 팔 벌려 나를 반긴다. 자연이 주는 향기는 언제나 향기롭다.

회원 세 명이 말없이 모두 자신의 작품에 집중하고 있다.

오크(참나무) 원목으로 사방탁자를 만드는 K회원, 한국산 은행나무 판재에 서각을 하는 Y회원, 조카의 책상을 튼튼하게 만든다고 30mm 월넛(호두나무) 두꺼운 판재를 샌딩하는 C회원이 내가 들어서자 간단한 인사말과 눈인사를 건네고는 곧바로 자신의 작품에 눈길을 돌린다. 목공방 회원은 언제나 별 말이 없이 자신의 작품에만 열중한다. 호들갑스런 분위기를 꺼리는 내게는 오히려 고맙고 편안하다.

 

목공에 재미를 붙인지 6년차인 나는 요즘 참죽나무 원목으로 화분대를 만들고 있다.

목공에 취미를 붙이게 된 건 대전으로 직장을 옮기면서 부터다. 퇴근 후 적당한 소일거리로 찾던 중 어느 직원이 자신만의 가구를 만들어 아이들의 방을 꾸며준 사진을 보고 다음날 당장 목공방 회원으로 등록하였다.

목공은 나의 성격에 딱 들어맞는 취미다. 동적인 활동 보다는 정적인 활동을 좋아하는 내 성격에 맞고 다른 취미활동에 비하여 비용도 많이 필요치 않으니 경제적 부담이 덜되며 목공을 하다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니 소일거리를 따로 찾을 필요도 없다.

취미활동에 비용이 과다하게 소요되면 그 취미는 오래 즐길 수 없다. 취미를 정할 때 자신의 경제적 능력과 여유 시간, 체력, 소질, 성취감 등을 고려해야 한다.

 

나의 취미활동 소재가 자연으로부터 온 나무라는 것도 매력적인 일이다. 고택을 방문했을 때 편안함을 느끼는 이유 중의 하나가 나무로 지은 집이기 때문이다. 기둥과 대들보와 석가래를 생김새와 용도에 따라 다듬을 건 다듬고 굽은 건 굽은 대로 살려 서로 어울리게 틀을 잡고 수백 년을 버티면서 휴식과 평화를 준다. 집을 세운 그 나무는 수백 년을 살았고 죽어서도 수백 년 동안 비바람을 막아준다. 그래서 나무를 일컬어 生千死千(생천사천)이라 하니 평소 공구를 다루거나 만들기에 관심이 있다면 나무를 다루는 목공을 취미로 가지는 것을 추천한다.

 

 

목공을 제대로 배우려면 손대패, , 끌 등 수공구를 다루는 것부터 배워야 하지만 요즘에는 수공구 다루는 법을 다 배우기에는 너무 지루하므로 테이블쏘(원형 기계톱)와 자동대패 등 각종 목공기계를 이용하여 테이블, 책장, 작은 옷장, 벤치의자 등을 만드는 것부터 시작한다.

옛날에는 목재를 짜 맞추기 위하여 사방연귀(톱과 끌로 목재에 암장부와 숫장부를 만들어 끼워 넣는 방식)를 배우는 게 필수였지만 현재는 목공기계의 발달로 나사못, 나무핀(도미노핀), 라우터를 이용한 홈파기 등 목재 조립 방식이 다양해져 전통 가구 목수가 될게 아니라면 굳이 전통방식을 따를 필요도 없어졌다.

 

며칠 전 공방 마당에 뒹구는 통나무를 발견했다. 길이 150cm, 직경 20cm 정도로 누가 봐도 장작으로 쓰는 것 외에는 쓸모가 없어 보이는 통나무다. 어느 집 밭둑에서 자라다가 바람에 넘어져 베어버린 걸 주워왔다고 한다. 끌을 이용하여 껍질을 벗겨보니 참죽나무다. 참죽나무는 색깔이 붉고 무늬가 선명하여 고급 가구에 쓰이는 목재의 귀족에 속한다.

공방 주인을 적당히 구슬러 통나무를 공짜로 얻어 <한국산 통나무 원목 화분대>를 만들기로 했다.

 

잡동사니와 폐목재 더미 속에 통나무를 끄집어내어 놓고 통나무의 형태를 여러 방향에서 가늠해 보며 어느 쪽을 윗부분으로 하고 앞쪽은 어느 부분으로 할지 정했다.

다음으로 엔진 톱으로 한쪽 면을 대충 평평하게 켜낸 다음 수압대패를 이용하여 완전히 평평하게 만들었다. 이제 한쪽 면을 수평을 잡았으니 어려운 고비는 넘겼다. 이제 자동대패를 이용하여 반대편도 평평하게 한번에 1mm씩 깎아 낸다. 원하는 두께가 될 때까지 반복적인 작업을 해서 두께 15cm의 판재가 만들어졌다. 판재의 양쪽 둥근 부분은 원래대로 모습을 그대로 살려 자연미를 더하도록 껍질만 말끔하게 벗겨내고 그라인더와 와이어브러쉬로 다듬는다.

마지막 공정으로 다리를 붙이기 위하여 다리의 높이를 결정한다. 다리의 높이가 높으면 불안해 보이고 반대로 낮으면 볼륨감이 적어져 답답해 보이기 때문에 균형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다리를 판재에 조립하는 방법도 나사못, 8자 철물, 홈파기로 끼워 넣기 등 다양한데 용도와 미관을 고려해서 테이블쏘(원형 톱)와 끌을 이용하여 홈을 파고 다리를 만들어 끼워보니 자로 잰 듯 기가 막히게 딱 들어간다. 이 재미에 목공을 하는 거 아닌가 하며 스스로 만족하며 조용한 미소를 짓는다.

이제 작품의 모습이 드러났으니 앞에서 보고, 뒤에서 보고, 뒤집어 보며 흠이 있는지 살피고 다시 다듬는 작업을 반복한다.

그러나 완성하려면 아직 멀었다. 대패와 톱으로 깎아낸 면을 매끄럽게 마감하기 위하여 사포질을 한다. 사포질할 때에도 순서가 있다. 120, 200, 400번 사포를 차례로 이용하여 끝없이 비벼대고 손바닥으로 마감 정도를 가늠한다. 사포질은 인내심이 필요한 작업이고 작품의 완성도를 결정하는 작업이다.

마지막으로 습기로부터 작품을 보호하고 무늬와 색깔을 더 선명하게 하기 위하여 천연 오일을 세 번 칠한다.

드디어 작품이 완성되었다. 하나의 작품이 완성될 때마다 솜씨가 조금씩 세련됨을 느낀다. 작품의 세련미가 더해지듯 내 인생의 균형과 평정이 익어가는 듯하다.

 

어느 집 밭둑에서 그늘을 주었던 나무가 어느 날 갑자기 장작용 통나무 신세로 몇 년을 조금씩 삭아지다가 우연히 눈에 띄어 땀과 정성으로 다시 살아났으니 앞으로 적어도 몇 십 년은 어느 집 베란다나 조용한 카페 창가에서 작은 화분의 받침대가 되어 메마른 영혼에 평화를 줄 것이다.

 

꽃이 피면 화려해서 좋고 꽃이 지면 열매를 맺어 좋듯이, 나무는 살아서 푸르르고 죽어서 고택을 버텨주듯 사람도 청춘은 청춘대로 황혼은 황혼대로 역할이 있으니 나무가 사람이고 사람이 나무와 같은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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