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수필이 좋습니다.
편한 마음으로 읽을 수 있기 때문이고, 작가가 살아온 삶을 그와 마주 앉아 듣는 듯한 그 느낌이 좋기 때문입니다.
저는 머그잔보다 고급스러운 잔에다 커피 마시는 것을 좋아하고, 옷도 예쁜 것을 입고 싶어하는 편인데, 수필에 관해서는 까탈스런 조건을 적용하지 않습니다. 글에서 맡게 되는 작가의 체취가 무엇이냐를 중요하다고 생각하나 봅니다.
소설은 문학성을 갖추기 위해 작가의 인생관, 세계관을 인물과 사건과 배경을 통해 절묘하게 드러낼 줄 아는 고도의 솜씨가 필요합니다. 한때는 저도 소설을 써보고 싶었지만 제게 부치는 일이라 포기하였습니다.
수필도 잘 쓴 꽁트를 읽었을 때처럼, ‘아하’ 하는 탄성이 나오게 쓴다면 좋겠지요. 그러나 그렇지 않더라도 누가 어떻게 살았더라, 누가 그런 아픔을 견디었더라. 그러그러한 귀중한 추억을 가지신 분이더라는 것들만 와 닿아도 저는 가슴 뭉클하곤 합니다. 그때의 뭉클함을 좋아합니다.
이번에 안명자 선생님 책을 읽으며 다시금 저의 수필론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과연 글을 쓴다는 것은 작가자신에게도 치유의 힘을 줄 뿐 아니라, 읽는 이에게도 치유의 시너지가 전달되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선생님은 좋은 글쟁이시되, 솜씨를 뽐내는 글쟁이는 아니신 것 같습니다. 매끄럽고 세련되고 멋진 글을 쓰는 분이기보다는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지를 보여주는 작가이신 것 같습니다.
<남은 자로 남게 하소서>를 잡고, 다음 책장을 넘기면서 저 자신에 대해 깊이 있게 돌아보게 됨은 왜였을까요? 읽을수록 편안해지고 숙연해지는 것은 왜였을까요? 신앙심이 와 닿아서일까요? 선생님의 인성이 얼마나 곡진한가가 와 닿아서였을까요?
<침>은 가히 충격적이었습니다. 존스타인백의 <분노의 포도>에서는, 젊은 아기 어머니가 아사자(餓死者)에게 젖을 물리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그 책은 읽은 지 하도 오래 되어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으나 그 장면만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안명자 선생님의 <침>을 읽으며 오래 전에 읽은 그 소설이 생각났습니다.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기에 감동이 컸습니다. 이기적인 제 자신이 부끄럽기도 했구요.
<남은 자>로 살고 계시고 또 남아계실 선생님, 이 책 안에 <남은 자> 와 같은 글만 있다면 조금 읽다가 덮어버렸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 책 안에 부부싸움, 아픈 이에 대한 연민, 외로운 사람 껴안기, 싱겁고 열적은 수다스러움 등 사람냄새가 풍성해 지루함 없이 책을 읽었답니다.
자신을 성찰하고 싶은 이 가을에 이런 귀한 책 선물 주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