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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라 천년의 소리 자취... 글집소개    
글쓴이 : 조성원    14-04-04 13:55    조회 : 7,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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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경주에서 개최한 수필가들의 모임을 다녀와서 글을 모았습니다. 
그 중 한 편을 소개합니다.... 팝의 감각으로 역사를 대하면 어떨까 하는 마음으로... 
 
천년의 미소, 수막새
지난 해 근무처를 쫓아 경주에 두 달 간 내려간 적이 있다. 짧다면 짧은 기간인데 허송세월, 나는 겉돌다가 경주를 떠난 셈이다. 기껏 숙소가 있는 성건동 주변을 맴돌았을 뿐이다. 늘 대하는 생맥주, 닭볶음 , 삼겹살, 삼거리 막걸리 그것 말고 달리 간 곳도 먹은 것도 생각 드는 게 없다.
경주를 떠나는 날, 그간 보고 가는 곳곳 하다못해 화장실이나 술병에도 박힌 말 천년의 미소란 말이 무척 송구하게 느껴졌다. 솔직히 나는 한때 이 말이 경주의 독특한 술 이름인 줄 알았다. 술병마다 그 말이 찍혀서 더욱 그렇게만 생각했다. 그러다 온 동네 간판 구석에 이 말이 낭자하여 그렇지 않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 이후는 아 그게 아니라 천년의 고도 전 유산을 대표하는 아름다움을 상징한 말이라 여겼다. 그런데 또 그게 아니었다. 누군가가 수막새를 아느냐고 했다. 나는 그것을 또 오해했다. 이 동네에 사는 새 종류로 파악한 거였다. 이 역시 송구한 말이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수막새와 천년의 미소가 정분을 나눈 말임을 알지 못한다. 이에는 개중 유식하다는 친구조차 이 엄연한 사실을 모르기 때문 심증을 굳히는 표현이다.
수막새는 목조건축에서 지붕의 기왓골 끝에 얹는 연와로 무늬는 앞날의 평안을 소망하는 기원을 담은 연꽃이 대부분이다. 그렇지 않다면 악귀를 물리쳐 달라는 벽사적인 행위로서 무시무시한 형상을 그려 넣는다. 그런데 수막새로서는 특이한 얼굴무늬 수막새가 신라에 있다. 신라인의 재치와 덕으로 느껴지는 신라 천년의 미소가 다름 아닌 그 수막새다.
경주 어느 곳에서나 익히 눈에 띄는 얼굴무늬 수막새에 새겨진 여인의 미소. 얼굴은 손으로 빚었기에 양쪽 눈두덩과 광대뼈가 도톰하면서 비대칭을 이루고 있는 표정이 무척 세련되고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둥근 테두리 안에 수려한 코와 입 꼬리를 살짝 위로 올린 수더분한 미소다. 실은 웃는 것 같기도 하고 찡그린 것 같기도 한 애매한 느낌도 느껴지는데 눈과 눈이 대칭이 아닌 게 삶의 여울을 말하는 것도 같고 큰 여백을 남긴다.
이 얼굴무늬 수막새는 영묘사 터에서 발견되었다. 영묘사는 신라 제27대 임금 선덕여왕 때 635년에 성신(星神)에 제사하기 위해 세워진 절이다. 누구는 그래서인지 그 수막새가 선덕여왕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그럴지 모른다. 우리나라 최초의 왕인 그녀다. 당나라는 그녀를 왕으로 한동안 인정을 안했고 백제 무왕이 대야성을 함락하고 늘 대치를 하던 때의 왕이다.
김춘추는 그 전투에서 딸과 사위를 잃었다. 안에서도 그녀에 대한 반발이 끊이지를 않았다. 속이 편할 리 없는 그녀에게 절실한 것은 나를 따르라는 믿음이고 밝은 미래가 내게 있다는 확신이었을지 모른다. 그렇게 느끼고 보면 미소는 또 그렇게 보인다. 선덕여왕의 통일의 꿈, 백성을 아끼고 사랑했던 따뜻한 마음이 겹쳐지는 후덕한 느낌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만 보고 싶지는 않다.
호국의 일념으로 보기엔 너무 수수하고 진솔한 표정인 것이 서민적 느낌이 풋풋하게 묻어나기 때문이다. 푸근하게도 느껴지니 누구는 또 미륵으로 볼지 모르지만 내게는 영락없는 여울진 한 시대를 사는 소박한 여인이다. 소박하다는 것은 웃을 때는 웃고 울 때는 소리 내 우는 주어진 대로 사는 수수한 인간상을 말한다. 이름 모를 와공의 멋진 솜씨, 그의 누이를 그리거나 엄마는 아니었을까. 수막새의 역할이 그러하듯 웃음으로 악귀를 쫓을 것이란 생각을 한 와공이라 한다면 당연 마음속에 그리는 여인이 맞다 여겨진다. 그가 그리워하는 믿음과 염원하는 뜻이 같기 때문이다.
온화하면서도 의연한 수막새 여인의 얼굴은 얼핏 하회 탈이 연상되기도 하지만 부드러운 삶의 진정성이 보다 더 강하게 느껴진다. 남자의 얼굴을 그린 수막새라 할 것이면 어떠했을까. 아마 그가 누구인지에 대한 말만이 무성 했을 것이다. 그려도 묵연한 표정 외에 달리 묘사하기도 어렵다. 히죽히죽하는 표정이라 한다면 도깨비를 연상하기 십상이다. 남자의 형상은 가치가 반감되거나 이내 소멸한다.
여인은 어느 표정이든 향기를 갖는다. 지구상 어디에서든 여인의 자취는 늘 주목의 대상이 되었다. 나는 여인은 내적 가치를 갖는 표정일 때가 가장 아름답다 여긴다. 모나리자도 그런 느낌이 드는 그림이다. 뭔가 말 할 듯 8부 능선쯤에 이른 아슬한 표정일 때가 더욱 감칠맛이 나고 아름답다. 모나리자 모습이 만약 활짝 웃는 모습이라면 아마 천박을 느끼고 상상을 다 거두어버렸을 것이다.
전사자가 넘쳐나 웃을 일이 별로 없는 세상, 와공은 불심이 곧 밝음이고 자신의 아내를 닮은 여인이 보살이라 여겼을 테다. 눈을 지그시 감고 행복했던 시간들을 떠올리자면 자연스레 위로 치켜지는 여인의 입술. 와공은 화사한 어느 봄날을 두고두고 마음에 새겨 두고 시련을 감내하였을 테다. 수막새 그 미소는 바로 와공이나 병사들 같이 고향이 그립고 고통받는 사람들의 희망을 담은 것이다. 누구나 그러하듯 소중한 존재, 구현할 세상은 다름아닌 그들 역시 사랑이고 행복이었다.
비극적인 상황, 위로 받는 마음에는 그야말로 고운 자태의 모습이나 미소가 담긴다. 상상의 기쁨인 것이다. 깨진 수막새, 바로 그 의미의 미소다. 나는 그녀를 보면 왠지 너그러운 관용의 처용이 떠오른다. 용서할 테니 돌아오라는 전단에 부쳐도 그만인 포근함이다. 요염한 여인의 표정이 아닌 게 나는 정녕 고맙다. 또한 반은 깨진 게 다행이라 여겨진다. 활짝 핀 모습에선 또 다른 혹여 되바라진 여인의 유혹으로 변모할까 두려워서다.
반쯤 나무 끝에 가려진 달빛처럼 은은한 향기가 더 은근하며 그윽하다 여겨진다. 열정의 여인이 아닌 서러워도 나는 웃을 테다 하는 감복의 느낌을 담은 모습으로 그녀를, 천년의 미소를 나는 간직하고 싶다. 그녀가 그렇게 긴 시간 웃음을 잃지 않고 사랑을 받는 데는 아마도 모든 실수와 울고 웃는 모든 평이한 존재들의 모습들이 스며 있으면서 영원한 설렘과 마음의 평온을 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천년의 미소는 우리의 희망이며 미래의 웃음이다. 나는 신라인의 담대함 그리고 평범함이 그냥 좋다. 누가 말하지 않던가, 평범함이 곧 비범함이라고.
**오랜만에 들려서 글집이라니... 송구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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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책머리 클래식한 신라가 아니라 현재 호흡하는 신라 이야기
1. 나는 무열왕을 극적으로 만났다 (혁거세 거서간) 14
2. 선도산 기슭에서1 (남해 차차웅) 21
3. 선도산 기슭에서2 (유리 이사금) 26
4. 선도산 기슭에서3 (탈해 이사금) 31
5. 애공사와 영경사 (파사 이사금) 37
6. 황남동 유리구슬이 주는 의미 (지마 이사금) 42
7. 백제 무령왕릉에서 1 (일성 이사금) 48
8. 백제 무령왕릉에서 2 (아달라 이사금) 52
9. 천년의 미소 , 수막새 (별휴 이사금) 58
10. 신라의 달밤 (내해 이사금) 62
11. 명활산성의 비담 (조분 이사금) 67
12. 역사 속에 스파이 (첨해 이사금) 72
13. 만파식적 (미추 이사금)` 77
14. 임해전의 회상 (유례 이사금) 81
15. 후래 삼배와 주령구 (기림 이사금) 85
16. 빗살무늬 토기 (홀해 이사금) 91
17. 빗살무늬가 주는 힌트, 동이족 (나물 마립간) 97
18. 부여인은 누굴까 (실성 마립간) 101
19. 가야와 부여인 (눌지 마립간) 105
20. 신라의 금관이 주는 의미1 (자비 마립간) 109
21. 신라의 금관이 주는 의미2 (소지 마립간) 113
22. 숨이 막히는 신라의 장신구 (지증왕) 117
23. 도록을 살피며 (법흥왕) 122
24. 신라 왕족에 대한 또 다른 가설 (진흥왕) 129
25. 문무왕이 흉노족의 후손이라는 (진지왕) 140
26. 해상실크로드1 (진평왕) 147
27. 해상실크로드2 (선덕여왕) 152
28. 원성왕릉에서 1 (진덕여왕) 157
29. 원성왕릉에서 2 (태종무열왕) 163
30. 원성왕릉에서 3 (문무왕) 169
31. 신라의 토우 (신문왕) 173
32. 사랑의 진실 (효소왕) 178
33. 화랑세기 이야기 (성덕왕) 182
34. 후세의 곡해라 해 둘까 (효성왕) 189
35. 왕이란 직업 (경덕왕) 194
36. 경덕왕 시절 도솔가 (혜공왕) 199
37. 금동미륵보살 반가사유상은 (선덕왕) 206
38. 잘 생긴 왕 (원성왕) 211
39. 석굴암1 (소성왕) 221
40. 석굴암2 (애장왕) 227
41. 승려들의 힘 (헌덕왕) 233
42. 신라의 불교 (흥덕왕) 240
43. 불국사에서 (희강왕) 246
44. 다보탑과 석가탑 (민애왕) 253
45. 신라 여자 아이의 수난 (신무왕) 260
46. 최치원을 우리나라 최초 수필가로 모시고 싶다(문성왕) 267
47. 허황옥 왕비를 아시는지 (헌안왕) 276
48.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경문왕) 281
49. 머리 좋기로는 단연 우리나라 (헌강왕) 285
50. 해상 왕 장보고 (정강왕) 290
51. 장보고의 비극 (진성여왕) 395
52. 실크로드 (효공왕) 301
53. 신라판 미네르바 왕거인을 아시는지 (신덕왕) 310
54. 신라와 숯 (경명왕) 316
55. 신라의 습속 (경애왕) 320
56. 경순왕의 눈물 (경순왕) 329
책 말미에 336
책머리중에서 한 대목
로마와 신라를 견주면 재미나다. 둘은 태생이 엇비슷하다. 그리스보다 못한 로마이고 신라 또한 주변국보다 늦게 잠에서 깨어났다. 그러면서 갖은 고난을 둘 다 겪는다. 하지만 그들은 결코 물러서지 않았다. 어떻게 해서든 앙갚음을 하고 다시 일어섰다. 로마가 정복의 제국이 듯 신라 역시 때를 틈타 통일을 이룬 나라다. 하지만 로마는 정복을 밥 먹듯 하며 영토를 넓히고 뻗어가지만 신라는 내실을 기하고 불토정국이라는 피안의 정치를 꾸린다.
결국, 정복을 밥 먹듯 한 로마는 침략의 부메랑을 맞고 7백년의 기간을 통틀어 끝이 나지만 신라는 찬란한 천년의 역사에 나라 이름은 비록 사라졌지만 신라인들이 계승하다시피 또 새로운 역사의 주역이 된다. 라틴족은 어디론가 흩어졌지만 우리 민족이 지금도 유유하게 단일민족으로 버티는 데는 그런 연유가 있다. 물론 로마는 황제를 라틴인이 독점하지 않고 개방을 해 나중에는 속국인 스페인에서 4명의 황제가 배출되고 아랍계 황제까지도 나오지만 신라는 왕족이어야만 한다는 제도로 인하여 폐쇄적으로 버틴 아쉬움 점이 없지는 않다.
도시국가로 천년을 꾸린 베네치아, 이들 역시 장구한 시간이지만 참 영악스럽게 살았다고 말할 수 있다. 섹스피어에 나오는 베니스의 상인에서 보듯이 돈이라면 돈, 피 한 방울도 아까운 그들은 사람 할 짓 못되는 노예장사로 돈을 번 사람들이다. 그들은 상권을 유지하기위해 교황청에 뒷돈을 대기도 하고 십자군 원정에 기부금도 엄청스레 내기도 한다. 신라는 그런 부도덕한 길을 걷지 않았다. 삼국시대는 늘 임전무퇴로 버텼으며 당시의 당나라와도 떳떳이 대적을 했고 또한 그들과 교류를 했다. 외래 문물은 모두 받아들여 사상적인 가치에서도 뒤처지지 않았으며 오히려 이를 바탕으로 독특한 문화를 만들어 전 세계인이 놀라는 많은 유물을 남겨 놓았다. 나는 슬기로운 우리의 조상이 자랑스럽고 고맙기 그지없다.
그들이 남겨 놓은 자산을 한 번 조용히 탐미하듯 훑어보아라. 엉성한 고대국가가 점차 변모하는 것이 흡사 거미가 거미 망을 얼기설기 갖추 듯 일신을 거듭하여 모든 영역에서 촘촘 빽빽하였다. 또한 어디에도 그러한 독창성은 없다. 올 여름은 무척 더웠다. 다들 덥다고 난리였는데 나는 그렇지 않았다. 그쯤 더위가 대수일 리 없다. 그들과의 대화에 젖어 밤잠을 설쳤을 뿐이다. 지금도 나는 여전히 의문을 갖고 그들에게 묻고 있다.
56대 경순왕에서 끝나는 신라 책인 만큼 56편의 글을 실었다. 조선 시대 왕들은 태정태세 문단세 예성연중… 그 시절 노래하듯 암송을 한 덕에 지금도 꿰차는데 신라왕들은 도시 헷갈려 어지럼증이 인다. 그 수고를 덜어 볼까 하고 페이지를 넘길 때 일부러 한 쪽에 왕 이름을 순서대로 적어 놓았다.
아무튼 부족한 글이다. 맥락이 끊길 것 같아 사진을 대신 찍어 주고 참고한 분들의 명함을 일일이 새기지 않은 것이 끝내 마음에 걸린다.
역사는 캐면 캘수록 금이 쏟아진다. 노다지 광산이 시간의 흔적을 쫓아 즐비하다. 그 길잡이를 해준 학자님들 정말 감사하다. 고대 역사에 대한 여러분의 상상은 무조건 자유다. 거기서부터 추적은 시작이다. 상상이고 꿈이다. 이미 우리는 그들의 DNA를 소유하고 있다. 상상과 꿈이 곧 우리의 미래다. 차도 없던 시절 정말로 인류의 족적은 넓고도 광활하였다. 마치 개미가 부지런히 뭔가를 나르듯 본능과도 같이 인류는 하얀 비단 길을 오래전부터 분주히 오갔다. 비단같이 부드럽고 촉촉한 느낌을 서로 느끼고 나누며. 나 역시 그 하얀 길을 따라 늘 꿈같은 여행을 하고 싶다. 실크로드는 마음속에서도 늘 하얗게 산다. 우리 꿈속의 실크로드는 어디든 희망으로 하얗게 존재 한다. 경주에서 이스탄불까지. 아니 지구상 끝까지. 그 상상의 세계로 여러분을 지금 초대한다.

이 책 뒷 표지와 본문에 실린 사진은 직장 동료이면서 선배이기도 한 분들이 직접 경주에 들러 찍은 사진이다. 그런데 지면 제한으로 많은 사진을 싣지 못해 아쉽게 생각한다. 훗날 좋은 기회를 만나 남은 사진들도 빛을 보았으면 싶다.
박근배 박사님, 곽김구 부장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2014년 2월 조성원

김미원   14-04-06 23:04
    
조성원 선생님,

반갑습니다.
여전희 글 열심히 쓰시고 활동 많이 하시네요.
내일 한국산문총회와 시상식에서 뵈었으면 좋겠습니다.
조성원   14-04-07 09:59
    
김미원 선생님,    반갑네요... 날로 번창하는 한국산문.... 대단한 저력이 느껴집니다. 그간 글도 쉬고 마음도 쉬었는데 다시 힘을 내야 하겠지요... 오늘 행사 참 축하합니다.  대전에서 조성원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