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운 박기숙 선생님께
강수화
문화센터 수업이 끝난 후 식당으로 가기위해 가방을 정리하는데 반장이 책 한권을 주었습니다.
제목을 보니 <<꿈은 늙지 않는다>> 였습니다.
얼마 전 한국산문 자유게시판에 박기숙 수필집이 나왔다고 소개하더니 그 책이구나.
“얼마 드리면 돼요?”
“아니, 그냥 드리는 겁니다.”
“네, 그냥요?”
쏟아지는 출판물의 홍수 속에 책 선물은 자칫 결례가 되기도 하는 시대다 보니 여간 친한 사이가 아니고는 주고받기가 좀 꺼려지는 품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 또한 남이 주는 책은 거의 보지 않는 지독한 편식주의자이기도 해서 그리 썩 달갑지는 않았습니다. 게다가 숨쉬기도 힘들만큼 빽빽하게 들어찬 책장을 생각하니 더 꽂을 자리도 없을 것 같아 전철역에서 읽다가 슬그머니 놓고 가리란 생각을 하였습니다.
전철을 타자마자 책을 폈습니다.
‘강수화님 혜존
2014년 봄 혜운 박기숙’
잘못 봤는가싶어 눈을 껌벅이며 다시 봤습니다. 틀림없는 제 이름 석 자였습니다. 12cmx8cm 조각 한지에 정성스레 쓰여 있는 제 이름을 보자 가슴이 뭉클하였습니다. 서예지도 하신 약력을 읽어 내려가며 일면식도 없는 제 이름을 손수 쓰셨을 거란 생각을 하자 숙연해지기까지 하였습니다. 너무나 고운 자태로 웃고 계시는 선생님께 저도 모르게 목례가 나왔습니다. 집에 가서 꼭 다 읽겠습니다.
부모님의 사랑을 받으며 자라던 어린 시절에서부터 성장기까지 하나도 빼 놓을 수 없는 감동이었던 것이 제가 감히 꿈속에서나 그리던 생활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1930년대 광화문 동아일보사 뒤의 선생님댁에 수도 시설이 없고 마당 한가운데 펌프가 있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가 않았답니다. 1990년대 후반, 성인이 되어서야 서울 구경을 해 본 저로서는 그시절 서울이 먼 역사속 얘기처럼 들렸습니다. 청계천 냇가로 빨래하러 가는 식모를 따라 다녔다는 아름다운 풍경을 상상하자 박수근의 빨래터가 연상되었습니다. 너의 집에 살고 싶다는 시모님을 모시고 살면서 얼굴한번 찡그린 얘기가 없는 선생님의 지극한 효심과 인자한 덕행은 오늘을 살아가는 저희들에게 크나큰 교훈처럼 다가왔고 친정 어머님의 이야기를 풀어 내시는 대목에선 양반가문의 지존이 느껴졌습니다.
억지로라도 다 읽어 드리겠다니! 이 얼마나 건방진 오만이었던지요.
전쟁의 참혹함과 양반가문의 생활상, 그 시대 활동했던 독립 운동가며 유명인들의 이야기까지 고루 소개되어 있는 이 책은 살아 있는 역사서였습니다. 마지막 페이지까지 꿀맛같이 다 읽고 나니 그 시대를 살아나온 듯 感懷에 젖어들었습니다.
문화센터에서 알량한 수필공부 한다고 합평하려는 버릇으로 비문을 발견하기도 했지만 아무려면 어떻습니까?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 박완서 박경리 등의 책이 꽂혀 있는 책장 로얄 칸에 두고 오래도록 보존할 생각입니다.
어디서 무엇을 하고 사는 사람인지도 모르는 저에게까지 명필로 서명을 해 주신 그 선물의 가치를 비길 데가 없습니다.
건강하셔서 좋을 글 계속 소개 해 주시기를 기대 해 마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