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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딱 한 발 차이    
글쓴이 : 고은영    26-03-25 16:28    조회 : 282

                     딱 한 발 차이 

                                                            고은영

 

 드르르 문이 열렸다. 몇 번이나 자동 세차를 해 본 경험이 있었기에 별 생각 없이 운전해 세차기 안으로 들어갔다. 차가 완전히 들어서자 뒤에서 셔터 문이 닫혔다. 나는 화살표를 보며 앞으로 직진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스크린에 정지를 알리는 빨간 엑스표가 나오지 않는다. 계속 직진 신호다. 직진하면 셔터 문을 들이 받을 텐데 어쩌라는 것인지, 세차와 헹굼 화면이 깜빡거리고 있지만 물은 나오지 않는다. 혹시 지나친 건가 싶어 후진한다. 닫힌 문을 들이받을까 영 불안하다. 후진해도 소용없다. 좀 덜 간 건가? 이번엔 살살 전진한다. 몇 번을 반복해도 물은 나오지 않는다. 

 내가 사는 알래스카의 세차장은 완전 전자동 시스템이라 상주하는 직원이 없다. 한국처럼 세차 후 유리창의 물기를 닦아주는 서비스도 없다. 기계에서 카드로 결제 하고 자동세차를 받는 방식이다. 혹시 내부에 스피커폰이 있는지 둘러보지만 눈에 띄지 않는다. 캄캄하다. 한국에서 세차했을 때에는 차가 올바른 위치에 들어섰을 때 바닥에서 자동으로 고정 장치가 올라왔었다. 선진국이라면서 어떤 것들은 영 답답하다. 뒷목이 뻐근해 진다.  내려서 철문이라도 두드려 봐야 하나 ? 안에서 셔터를 들어 올린다면 저게 열릴까? 그러다 갑자기 물이 나온다면 혹한의 겨울 날씨에 홈빡 얼어 버릴 텐데, 출근도 해야 하는데, 아니 그보다 그래도 문이 안 열리면 그 땐 어쩌지? 

 나는 완전히 터널 안에 갇혀 버렸다.

 

  어릴 때부터 나는 운동을 못 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70년대에는 시민 의식도 지금과는 다르겠지만 거리 자체도 지저분해서 개똥같은 것들이 도로에 뒹굴 기도 했다. 길을 걷다 엄마가 “은영아, 은영아, 똥 밟는다!” 하면 나는 그 소리를 듣고 피하는 것이 아니라 말이 끝나기 무섭게 고 자리를 정확히 밟고야 말았다는 일화는 친척들 사이에서 꽤 유명하다. 

 100m 달리기를 하면 반에서 가장 느리게 들어왔고 피구 경기를 하면 제일 먼저 공을 맞고 튕겨 나갔다 

 그런 내가 운전을 하려니 얼마니 긴장했을지, 처음엔 조수석에 앉아 운전하는 나를 상상했다. 상상만 했는데도 땀이 삐질 삐질 났다. 평생 운전은 안 하리라 결심했다. 그런데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운전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생겼다. 전업주부였던 내가 생활에 보탬이 될까 싶어 ‘동화 스터디’ 라는 일종의 학습지 영어 교사를 자원한 것이다. 재택근무 이긴 했으나 일주일에 한 번은 대면 수업이 있어 학생들을 픽업해 와야 했다. 한 달에 한 권 영어 동화책과 테이프가 지급 되고 아침마다 전화로 학습 진도를 체크 한 후 일주일 에 한 번씩 모여 수업하는 방식이었는데 전봇대에 전단지를 붙이니 하나 둘 문의 전화가 들어왔다. 부랴부랴 운전면허를 따고 연수를 받고 조마조마하게 운전대를 잡았다. 막상 해 보니 큰 길은 몰라도 골목길은 어찌 어찌 해 나갈 수 있었다.

 

 사실 이런 종류의 두려움은 처음이 아니다. 남편이 미국령 괌에 발령받으며 먼저 떠나고, 아이들 학기를 마친 후 나 혼자 아이들을 데리고 비행기를 타야 했다. 생전 처음 타 보는 비행기, 놀이 기구도 회전목마 정도만 타는 나는 아이들 앞이라 티를 낼 수는 없었지만 상당히 긴장해 있었다. 공중에 발이 떠 있다니 상상만 해도 어찔했다. 항공회사에 다니는 남편이 들으면 기가 찬다고 하겠지만 할 수만 있다면 비행기를 피하고 싶었다. ‘남들도 다 하는 거야.’ 마음속으로 주문을 외우며 떠밀려 비행기에 올랐다. 막상 비행기가 이륙하자 다행히 떨림은 가라앉았다. 다리가 허공에 떠 있는 게 아니라 최소한 비행기 바닥에는 붙어 있으니 생각만큼 무섭지는 않았다 오히려 난생처음 가 보는 이국땅에 대한 호기심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멕시코 칸쿤의 천연 워터 파크에 갔을 때 해먹 집라인 프로그램이 있었다. 해먹은 몰라도 집라인이라니 내가 탈 수 있을까? 엄청나게 높은 곳도 아니었고 구명조끼를 입은 채 물에 빠지며 끝나는 코스인데도 나는 몇 번을 줄을 섰다 되돌아 나왔다. 혼자였으면 결국 포기했을 테지만 아들과 함께라 포기하는 모습부터 보여주고 싶진 않았다. 망설이다 울며 겨자 먹기로 눈 딱 감고 내려갔다. 그런데 웬걸, 너무 재미있었다. 생각보다 속도는 빠르지 않았고 물속에 풍덩 빠지는 순간이 짜릿했다. 뒤돌아 긴 줄을 마다않고 세 번이나 더 탔다.

 

 그밖에도 어두운 밤길에 귀신을 만나 기절초풍했는데 아침에 보니 그냥 돌덩이였다든가, 깊은 물인 줄 알고 허우적거렸는데 알고 보니 발이 닿는 깊이였다든가, 이런 식의 소소한 예는 얼마든지 있다. 대부분은 실체에 비해 지나친 두려움을 가진 경우라 이겨낸 후에는 이까짓 걸로 그랬나 싶어지는 것들이었다. 딱 한 발 차이로 달라진다. 그만 포기하고 싶은 지점애서 딱 한 번만 더 해 보면 어이없을 만큼 쉽게 일이 풀리기도 한다. 일단 해 보았을 때 대부분의 결과는 안 했던 것 보다는 훨씬 좋았다. 

 돌이켜 보면 어릴 때 자주 개똥을 밟았던 것도 순간적으로 피하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커서 오히려 바닥을 살피지 못한 탓일 수도 있다. 100미터 달리기를 할 때에도 지레 꼴찌를 할 거라는 생각에 호각 소리에 느리게 반응했을 수도 있고 피구 경기에서도 공을 맞을 거라는 두려움이 오히려 공을 보지 못 하게 만들었을 지도 모른다.

 운전만 해도 몇 년 동안 같은 곳을 반복해서 가다 보니 가끔은 고속도로도 나갈 수 있게 되었고 잘 하진 못 해도 필요한 만큼은 할 수 있게 되었다. 어찌 보면 억지로라도 운전을 배웠기 때문에 차가 없으면 생활할 수 없는 미국땅에서 그럭저럭 불편 없이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닐까?

 

 한참을 그렇게 멈춰있었다. ‘딱 한번만 더’ 하는 심정으로 다시 엑셀에 발을 올렸다. 이번에는 빨간 엑스표에 불이 들어왔다. 성공이다. 천장에서 물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땡볕애서 폭포를 만난 듯 속이 시원하다. 세차가 끝나고 셔터가 올라간다. 그렇게 당황했던 일이 거짓말 같다. 열린 문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눈부시다. 햇살을 온 몸으로 받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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