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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리 길 친구    
글쓴이 : 박승해    26-04-27 20:05    조회 : 23

 

10리 길 친구

 

박승해

 

삶의 상처를 함께 이야기하고 위로를 나눌 수 있는 친구로 집 근처 공원을 추천한다. 그는 따뜻한 사랑을 가슴에 품고 있다. 수백가지 이야기를 알고 있다. 눈이 마주치면 누구에게나 말을 건다. 벤치에 앉으면 속삭이는 소리가 가슴을 열게한다. 단 조건이 있다. 이야기는 마음으로 해야한다.

거침없이 쏟아지던 비는 아침이 되니 잠잠해졌다. 한 여름의 장대비다. 밤새 잠을 설치게 하던 하늘의 울음은 아침이 되자 잦아들었다. 나지막한 빗소리는 차라리 자장가에 가깝다. 이번 주는 연일 비 소식이다.

먹구름 저 깊은 곳 어딘가에서 아침 해는 이미 중천까지 올라와 있을거다. 사납던 장대비는 보슬비로 바뀌고 짐짓 사납던 표정을 바꾸고 있다. 안개로 덮인 뿌연 세상에 춤추는 포플라나무도 아름답다.

이유도 없이 나가고 싶은 날이다. 혹시라도 물 웅덩이에 빠지는 불상사를 예방하기 위해 그래도 방수가 잘 될 것 같아 보이는 두툼한 운동화를 꺼내 신었다.

지난밤 세차게 창문을 두드려 대던 장대비가 온 세상을 집 안으로 밀어 버렸나 보다. 한산한 도시는 비둘기에게도 평화로운 산책의 시간이다. 호수는 잽싸게 크로키로 거인들의 군상을 그려준다. 멋내지 않은 가벼운 물방울이 톡톡 튕기는 소리, 코 끝을 스치는 알싸한 호수 냄새가 따뜻하다.

도심 속 공원은 거대한 아파트 밀집지에 붙어있다. 그당시 동양 최대 크기로 만들었다고 한다. 한동안은 다른 나라에서도 견학오는 유명세를 타던 공원이었다. 요즘이야 대부분의 도시에 호수공원이 있으니 그런가 보다하고 넘기지만 당시에는 신문지상에 연일 오르내리며 크기를 자랑했었다.

당시에 나는 초등학생을 둔 30대 학부모였다. 작았던 나무들은 아이들과 함께 세월의 나이를 먹고 몸집을 키웠다. 아이들도 이제 청년이 되었다. 공원의 성숙은 아이들의 성장과 같이했다. 나무는 하늘로 치솟아 어떤곳은 숲처럼 보인다. 아름드리 나무들은 오늘같이 비 오는날은 비를 막아주고, 때론 시원한 그늘이 되어 우리를 쉬게 해 준다 수년 전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의 헤글리 파크에서 우리가족은 길을 잃은 적이 있다. 물론 크기 면에서는 한참을 못 미치지만 호수공원에서도 가끔 외지인이 길을 잃었다는 말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우리는 자연과 함께 삶을 나누고 함께 늙어간다. 변화무쌍하게 바뀌는 세상의 희노애락을 공유하고 함께 걸어간다. 자연을 안고있는 공원 문화는 도시를 더 성숙하게 변화 시킨다. 아름다운 자연의 역사는 현재의 공존을 뒷세대와 공유하며 대를 이어 그 가치를 증명할거라 생각한다. 어느 아파트 단지에서도 어디든 공원을 따라가면 지하철역으로, 학교로, 학원가로 통해져 있다. 호수공원으로 가는 길도 세심하게 배려하여 공원으로 연결되어 있으니 이 도시를 계획하고 설계한 사람이 누군지 존경스럽다.

 

흩뿌리는 보슬비에 작은 우산은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온몸은 비로 축축하다. 자전거 길에 자전거는 안보이고 삼삼오오 조깅하는 사람들이 휙휙 지나가고 있다. 우산을 접자 세상이 더 넓어졌다. 주변을 보니 나와 같은 생각의 사람들이 많은가 보다. 우산을 접은 그들의 마음이 나와 같을까.

습한 바람은 나뭇잎을 지나며 간간히 서늘함을 뿌린다. 조깅하는 사람들이 튕겨내는 소스라친 물사위가 신선한 건강미를 뿜뿜 내뿜고 있다. 나도 그들과 함께 앞서거니 뒷서거니 산책을 한다. 안개에 덮인 호수와 밤사이의 장대비의 위세에 눌려 축 늘어져 있는 버드나무 가지의 어울림은 자연에 고개숙여 순응하는 숭고한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등나무 터널을 지나니 이제 막 피기 시작한 수줍은 연꽃이 가득한 늪지가 보인다. 길게 호수아래로 떨어진 나뭇가지 어디에선가 숫 매미의 요란한 여름 소리가 곧 비가 그치고 무더위가 올거예요하며 더위를 예고하고 있다. 빗방울이 가볍게 호수를 두드려 수많은 색을 반사하며 물결 주름을 불어주고 있다.

모네의 수련에서 보았던 풍경이다. 백내장으로 실명의 위기에서도 수련그리기를 포기하지 않았던 모네는 마침내 250여점의 수련 연작을 완성한다. 1900년대 모네가 본 수련은 아니지만 안개 낀 호수 속 고즈넉한 연분홍색 수련의 날씬한 미소가 아침 산책길의 내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아름다움은 오랜 고독을 이겨낸 자만이 받을 수 있는 인내의 대가가 아닐까. 인내는 진실한 사랑의 다른 이름이다. 한 시간 여의 산책은 사랑 받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공원의 성숙된 조화로움은 오랜 시간을 깊은 뿌리 내림으로 인내한 나무의 사랑이리라. 나무는 단단하게 호수를 지키고 호수는 나무를 단단히 감싸 안고 있다. 많은 조경사들이 공원을 이리로 저리로 모양을 바꾸어도 땅 속 깊이 뿌리를 박은 저 우직한 나무들은 어찌할 수 없었으리라.

어디선가 아버지의 휘파람 소리가 들린다. 열이 펄펄나는 7살의 아이를 업고 아버지는 읍에 있는 의원에 가기 위해 10리가 넘는 산길을 달렸다고 한다. 자식을 위해서 삶의 많은 것을 희생한 아버지처럼 공원은 우직하고 듬직한 인생 친구이다.

공원 산책로의 길이는 4Km이다. 천천히 걷는다. 그리움을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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