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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크랑 티스푼은 어디로.4    
글쓴이 : 김혜숙    25-11-11 18:22    조회 : 1,344

                           포크랑 티스푼은 어디로?

 

                                                                                 김혜숙(미아반)

 

 ‘형님! 백화점 리빙 코너에서 이것저것 만져보다가 포크 세트가 예뻐 형님 생각이 나서 샀어요. 형님 댁에는 손님이 많이 들잖아요. 필요할 것 같아서요.’ 하며 집 근처에 사는 동생 댁이 참새방앗간 드나들듯이 불쑥 들어온다.

말은 여전히 멈추지 않고 지껄이며 보따리를 풀어 주섬주섬 사온 물건들을 하나 둘 꺼내기 시작한다. 그 가방 속에서는 알록달록 손잡이 장식이 화려한 포크 세트가 딸려 나온다. 보기에는 그럴싸하나 살짝 무거우면서 은근히 촌스럽기까지하다. 과일 정도 찍어 먹기에 알맞은 크기의 작은 포크와 티스푼 열 개 한 세트였다. 그러나 내 취향은 아니라서 그런지 속으로는 탐탁지 않았지만 고맙다는 너스레를 떨면서 받아 챙겨 주방 그릇장에 얌전히 넣어두었다. 까맣게 잊고 있다 한참 지나서 손님 치를 일이 생겼다. 꺼내쓰려고 보니 눈에 띄지 않는다. 주방을 발칵 뒤지고 찾았으나 그 어디에도 없었다. 갑자기 포크 세트에 꽂혀 며칠 두고 생각날 때마다 뒤져봤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 문득 엄마가 치웠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작은 올케가 사 온 거. 그거 봤어? 있잖아. 작고 예쁜 포크랑 티스푼 어딨어? 엄마 빨리 찾아봐.’

나는 이미 아들네 가져다주었을 거라고 단정 지었지만 엄마를 다그쳤다.

엄마 또 오빠네 가져다 줬지

엄마는 발끈 화를 내며 몰라 어디 두고 나한테 그래하며 격하게 손사래를 친다.

엄마는 이미 많이 아플 때여서 사실 그런 사소한 일들은 기억해내기는 어려울 때였다. 그까짓게 뭐라고 나는 은근히 화가 나서 푸념을 시작했다. 내가 많이 지쳐있을 때여서 그런지 온통 지나간 서운한 생각들로 머릿속이 꽉 차서 엄마가 아프다는 사실도 잊고 꽁한 행동을 했다. 엄마는 아픈 딸을 위해 힘든 내색 한번 없이 평생 희생을 감수하는데 기운 빠진 엄마를 고작 몆년을 못 참아 하찮은 핑계를 삼아 아이가 되어 버린 엄마에게 좁은 속내를 드러냈다.

 

어머니는 옷이나, 옹기, 반찬 그릇을 산든지 필요한 물건을 살 때면 언제나 한 쌍씩 사들였다. 짝이 안 맞으면 나는 싫더라! 외롭잖아, 했다.

그래서 자식들도 그러한 엄마의 뜻을 받들어 1킬로 미터 반경을 벗어나지 않고 옹기종기 모여 살았다. 나도 어느새 물건을 살라치면 엄마의 습관처럼 이미 두 개 이상을 집안에 쟁여놓고 쓰는 버릇이 있었다. 두 개씩 사다가 집안에 두었던 물건이 쓰려고 보면 개수가 모자라서 찾아보면 없는 게 많았었다. 우연히 가족 모임 때 오빠 집에 가보면 그집 주방 이곳저곳에 우리 집에서 쓰는 같은 물건들이 나딩굴며 쓰여지고 있었다.

! 우리 거랑 같은 게 있네요하면 큰올케가 네에. 어머님이 사다 놓으신거예요한다. 그때는 그냥 우스워서 속웃음으로 아무런 감정 없이 나누어 쓰기도 거지 하는 마음으로 흘려버렸던 일들이 나도 모르게 왜 갑자기 마음이 상하는 건지 생각해보니 두고두고 마음이 불편해서 가슴앓이를 했다. 그 일이 있은 후 툭하면 엄마가 말이라도 걸어 올라 치면 트집을 잡아 엄마가 환자라는 걸 까맣게 잊고 사나운 행동을 했다. 부아가 치밀어서 엄마가 내 눈치를 보고 있는 걸 알면서도 엄마의 얼굴을 외면했다. 평소 나 같으면 그 정도 문제로 불평할 일이 없었다. 어머니가 워낙 점잖은 성품이어서 치매 판정받고도 당신 뜻대로 감정 조절을 할 수 없음에도 다른 자식들 앞에서는 책잡히지 않으려고 말수를 줄이며 무진 애를 썼다. 그 모습이 너무나 안쓰러워서 자존심을 꼭 지켜드리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형제나 친척에게 내가 힘들다는 내색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 내가 감정 조절을 못 하고 일을 쳤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이모님께(이모는 어머니보다 2살 아래로 현재 95세로 살아 계신다.) 전화가 걸려 왔다.

조카 집에 무슨 일 있니? 아닌데요. 별일 없어요. 왜요? 무슨 안 좋은 꿈이라도 꾸셨어요? 나는 살짝 불안한 마음으로 짐작한 상황을 재차 물었다. 아니 엄마가 자꾸 이상한 소리를 해서.’ 무스은~~? 나는 말끝을 흐렸다. “혜숙이가 나랑 사는 게 지겹고 힘든가 봐 동생.” ‘어떡하지 얼른 죽어지지도 않고 죽음을 맘대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쟤가 자꾸 눈치를 하지 뭐야. 나 요양원은 가기 싫은데,’ 그러더란다.

이모님은 어머니보다 쾌활한 성격으로 할 말은 다 하는 분이다. 남자 조카들을 슬그머니 비난하며 내 편을 들어 말을 건네신다.

조카 힘든 김에 조금만 더 참으면 안 될까. 울 언니가 살면 얼마나 더 살겠니나는 속에 있는 말 한마디도 못 해보고 엄마랑 살기 싫은 나쁜 딸년이 되었다. 이모 죄송해요. 제가 생각이 짧았어요.’라는 말로 두 분 노인의 걱정을 수습했다.

어느 날 부엌 대청소를 하였다. 오래되어 낡아 못 쓰는 물건들과 새 물건을 구분하여 정리했다. 싱크대 구석에서 안 쓰고 깊숙이 넣어 두었던 먼지 쌓인 찬합 하나가 눈에 띄었다. 꺼내어 버리기 전에 열어 보았다. 그렇게 찾아도 없었던 포크, 티스푼 세트가 그 속에서 나왔다. ~~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엄마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옆집 강아지가 우리 집 담벼락에 오줌 싸는 걸 한번 보았다고 해서 매번 고 녀석 짓이라고 의심하는 거와 다를 바 없는 무례를 범했다.

무턱대고 엄마를 의심했던 죄책감에 나는 화가 나 눈물이 와락 쏟아졌다. 여전히 상황을 인지 못한 엄마의 해맑게 나를 바라보는 눈빛을 보면서 눈물은 더욱 멈추지 않고 흘러내렸다. 연신 눈물을 훔치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엄마가 말을 건넨다.

에미. 에비가 죽기라도 했냐? 웬 눈물 바람이냐?” ‘근데 참,’ 애기 같은 표정으로 진지하게 묻는다. ‘혜숙아. 우리 아부지 어디 갔지’ ‘살았니? 죽었니? 울 아부지 보고 싶다.’ 나는 순간 아버지를 칭하는 것 같아서 눈물을 훔치다가 멈추고 말을 건넸다.

엄마! 울 아버지고, 엄마 남편이야.’

웃기지마, 울 아부지고, 니 할아부지야

코미디같이 어이없는 대화로 모녀간 갈등은 순식간 허물어졌다.

아기 재롱 보듯 눈물로 범벅된 내 얼굴에서는 금세 웃음이 빵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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