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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장 무 집착    
글쓴이 : 최경묵    26-02-11 00:38    조회 : 128
   제출(수필)김장 무 집착02.hwp (29.5K) [0] DATE : 2026-02-11 00:38:44
김장 무 집착

최경묵

  해마다 8월이 다 지날 즈음이면 김장 무를 심는다. 김장할 때면 배추김치를 담그고 나서 마무리처럼 동치미를 담그는데, 이때는 직접 재배한 무를 사용한다. 담근 지 한 달쯤 지나면 배추김치를 식탁에 올린다. 그러고도 며칠 뒤 동치미를 올리면 가족들은 아작 베어 물면서 눈이 동그래지고 달덩이같이 환한 표정이 되곤 한다. 그 반응에 중독된 듯, 나는 해마다 동치미 담그기를 빠트리지 않는다. 그것도 작은 텃밭에 직접 심어서 담근다. 가을무는 나 같은 초보자도 재배하기 쉬운 편이다. 이파리가 두세 쌍쯤 올라오면 초록색 애벌레가 갉아 먹기 시작하는데 며칠간 집요하게 잡아주면 물러난다. 손으로 직접 잡거나 나무젓가락 같은 것으로 잡는다. 그 시기만 잘 넘기면 해충 피해로부터도 비교적 자유롭다.  
  올해도 한 해의 루틴대로 무 씨뿌리기를 했다. 목표 수확량은 삼사십 개 정도다. 보름 전에 밭에 거름을 뿌리고 비닐멀칭을 해두었다. 김밥처럼 생긴 밭두둑 위에 구멍을 뚫을 때는 조심스럽다. 되도록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려고 한다. 무가 다 자랐을 때의 크기를 짐작해서 그것들끼리 서로 방해받지 않을 것을 고려해야 한다. 그 구멍에 씨앗을 세 개씩 넣고 두껍지 않게 흙을 덮어주었다. 싹이 잘 올라오기를 바라면서, 비닐멀칭 주위 흙을 긁어 올린 다음 토닥토닥 눌러 주었다. 보통 오륙십일 정도 자라면 수확한다.
다음 날이 되자, 비가 내렸다. 정말 근사한 가을비였으며, 무씨에는 더 없는 단비였다. 이럴 때는 하늘의 뜻과 내 마음이 통하는 것 같았다. 파종 후 물을 한 번 뿌려주기도 했지만, 그다음 날 내린 비는 씨앗을 감싼 흙을 골고루 적셔 주어 움이 트는 데 더욱 힘을 실어 줄 것이었다. 파종 두 번째 날, 또 비가 내렸다. 보통 파종 후 사흘이 되면 싹이 나오기 시작한다. 다른 때보다 더 서둘러 싹이 나올 것 같았다. 세 번째 날에도 비가 내렸다. 비보다는 햇빛을 내려 주면 참 좋을 것 같은데 하늘은 비를 뿌려주었다. 역시 싹이 나오기 시작했다. 씨앗 봉지에 적힌 설명과 다르게 무씨의 발아율은 백 퍼센트였다. 막 돋기 시작한 싹은 너무 여리다. 바람이 살짝만 일어도, 비가 스쳐도 무 싹은 꺾여 버리기 쉽다. 이들에게 꺾임은 곧 죽음이다. 사흘간 연일 내리던 가을비가 멈추긴 했다. 그다음에 빛을 먹으며 자랄 무 싹을 상상했다. 그런대로 마음을 놓고 있었는데 며칠 뒤 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예전 같으면 가을무를 심어놓고는 가끔 자란 모양을 확인할 뿐이었다. 가을 날씨는 비는 조금만 내려 주고 대부분 햇살 좋은 나날들이었다. 볼 때마다 자라 있는 모습이 참으로 대견했다. 
  그랬던 가을 날씨가 이토록 나를 신경 쓰이게 했던 적이 또 있었나 싶었다. 여느 때처럼 무밭에 다가갔다가는 속만 상했다. 전에는 무밭을 지나다 한 번이라도 더 고랑 옆에 있는 흙을 긁어서 북돋아 주곤 했었다. 올해는 그럴 마음이 일지 않았다. 비의 양에 비해서 햇빛의 양이 훨씬 많아야 무는 통통해지던데, 무에도 사는 게 녹록지 않아 보였다. 그렇다 해도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니, 무는 웬만한 바람에는 버틸 만하게 자랐다. 집 앞 화단에서는 구절초가 빼곡하게 무리 지어 바람에 선들거리고, 그 옆 텃밭에서 가을무 이파리가 진한 초록을 띠었을 때, 나는 비로소 마음이 평온해진다. 더 이상 무는 이파리 하나가 꺾이는 것쯤으로 쉽사리 죽지 않는다. 그때부터는 비가 내리던, 햇살이 내리던 별로 신경 쓰이지 않았다. 전에는 그랬다.
  비는 어느 정도 안정권에 든 무를 위협하듯 계속 내렸다. 그만큼 일조량은 턱없이 부족해진다는 의미였다. 그쯤이면 포기하는 심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하늘의 뜻을 거역할 수 있는 농사꾼은 없을 테니까. 이파리가 제법 무성한 정도로 만족하기로 했다. 밑동은 예전처럼 굵어지지 않아도 무청은 건질 수 있으니까. 올가을만큼 비가 약 올리듯 야속하게 내렸던 적이 있던가 싶다. 김장 재료를 사러 장에 나갔다가 가장 먼저 확인한 것이 무의 크기였다. 정확히 재어보지는 않았지만, 어쩐지 왜소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올해 가을무를 재배했던 사람들이 모두 나처럼 마음을 졸였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십 일간의 우여곡절을 겪고 나서 무를 뽑아보니 짐작대로였다. 크기가 들쑥날쑥한 건 그렇다 쳐도 일조량이 적은 탓인지 무 크기가 전보다 작았다. 동치미 담그는 무는 너무 크지 않은 것을 고르게 되는데 그렇다고 하기에도 작았다. 드디어 동치미 담그기에 들어갔다. 씻어서 뽀얘진 무를 물기가 마르기 전에 쟁반에 미리 깔아 놓은 굵은소금 위에서 조심스레 굴렸다. 김치통에 차곡차곡 담고 뚜껑을 닫아 놓았다. 그러고는 다듬어 놓은 무청을 삶았다. 삶을 때 나는 향이 참 좋다. 어쩌면 이 냄새 때문에 나는 가을무 심기를 고집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이런 소소한 바람이 허락되지 않는다는 건 상상하기가 싫다. 내년에도, 이 악순환이 여전할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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