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주위를 베돌기만 할 뿐
이형표
눈치가 보여 주눅이 들었다. 눈찌검이라도 당할 기미가 보이면 영락없이 쥐구멍에라도 들어갈 판이다. 내가 좋아 스스로 나선 길이지만 아무래도 이건 내 길이 아닌 성싶다. 다들 내로라하는 이들만 모여 있는 견고한 성 같다. 나는 그렇게 문(文)의 길에 들어섰다. 호구(糊口)가 무서워 돌고 돌아 여기까지 오고 보니 이제는 더 물러서고 싶지 않아서 택한 길이다. 평생 조바심내며 기웃거린 세월이 안타까워 운명이라 여기고 냉큼 들어섰다.
으레 짐작하듯 혈액형도 그렇지만, 원래 태생이 어려서부터 내성적이어서 말이 적은 편이었다. 시골 방아다리 촌놈이라 사람 볼 일도 별로 없었다. 어릴 때는 사람 보는 것이 무서워 일부러 피해 다녔다. 사람 앞에만 서면 왜 그리 작아지는지, 그것은 아마도 천성일 거라 생각했다. 아버지를 닮은 것 같기도 했다. 아버지도 원체 말씀이 없었고, 사람들 만나면 늘 쑥스러워했다. 그래서 그런지 주위에는 그런 아버지를 이용하려 드는 축들도 종종 있었다. 빚보증을 서달라든가, 아니면 술판이나 노름판에 끌어들이려 아버지에게 연밥 먹이는 것을 서슴지 않았다. 그러저러한 환경 탓에 나는 혼자 지내며 시간 보내는 일이 많아졌다. 그런 나에게 집 근처 물도랑은 어릴 적 꽃동산이었다.
어린 시절 따뜻한 봄날, 우멍한 물도랑 근처는 온통 흐드러지게 핀 찔레꽃이나 조팝나무꽃 등 온갖 꽃나무들이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찔레순 꺾어 먹고 달짝지근하게 배동 오른 삐삐기(삘기)를 뽑아 질겅거리던 시절이었다. 그 옴팍하고 명징한 물웅덩이에서, 휘엉휘엉 떼를 지어 노니는 버들치를 보고 선녀로 착각하여 나도 모르게 나무꾼이 된 묘한 기분에 빠지기도 했다. 그런 환경에서 자라며 감수성을 키워 온 십 대 때, 나는 그렇게 문학을 환상으로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봄이 무르익어 가는 계곡 골짜기에 우뚝 서서 뻐꾸기가 울면 덩달아 산비둘기가 울고, 그러면 소쩍새도 따라 우는 하늘을 바라보면서 마음이 울적해지곤 했다. 잎새에 이는 바람처럼 사물의 작은 흔들림에도 마음이 허허로웠다. 그렇게 마음만 달떠서 막연한 느낌으로 대했던 문학에 대한 작은 소망은 곧 소득 없이 끝이 났고, 생활 전선에 뛰어든 삶은 고달프기만 했다.
이제 나이가 들어 오랫동안 대처를 떠돌다 수십여 년 만에 다시 고향에 돌아온 기분이다. 그러나 상념만 많았지, 독서량이 너무 없었기에 허겁지겁 읽는 책들이 오히려 혼란스럽기만 했다. 교수님들이 추천하는 책, 그 책을 보다가 알게 되어 또 구입하게 된 여러 책을 방 구석구석 쌓아 놓고 마음이 가는 대로 무작위로 탐독하고 있으니, 머릿속은 온통 제멋대로 굴러다니는 마룻바닥에 한꺼번에 쏟아진 구슬 같다. 휘황찬란한 우리말의 어휘에 눈이 번들거려 정신을 차릴 수 없다. 글을 읽을 때마다 발견되는 새로운 단어는 나에게 기쁨을 주는 황금 조각들이다. 그 보석처럼 빛나는 황금 조각들을 가동그려 마음의 창고에 주워 담고 있다. 그러곤 곳간에 놓아둔 곶감을 솔래솔래 빼먹듯 틈나는 대로 이용한다. 그 말큰말큰한 조각들은 달큰한 것이 내 입맛에 감기듯 들어온다.
새로운 문학의 길에 들어선다는 것은 참으로 매력적이다. 밑도 끝도 없이 무언가 근원을 알아보려 감히 우주의 엄청난 공간을 두드려 보는 자신에 놀라고, 위험한(?) 아름다움을 찾으려 겁도 없이 고독한 소행성에 도전하는 치기에 와뜰 놀라기도 한다. 마치 불현듯 찾아온 봄기운에 놀라 먼 산 바라보는 고라니 같다. 어느 순간 결실 없이 이 길이 끝난다고 하더라도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처음 이 길에 들어섰을 때, 느꺼운 감정이 명치 끝으로 두둑이 밀려오는 것을 주체할 수 없었다. 순전히 만약에 나의 문학에 날개를 달아 준다면, 훨훨 날아 부조리하고 소외된 삶을 외면하지 않고 새로운 미래에 도전할 것이다. 비록 상처만 남는 여정이라 해도 한 땀 한 땀 다가서고 싶다. 그렇게 하다가 정녕 문학의 바다에 익사하고 싶다. 그러나 기억력이 예전 같지 않으니 당황스럽다. 무엇보다도 상상력이 따라주지 않는 것은 정말 슬픈 일이다. 무슨 그럴만한 이유도 없이 그저 무연히 맘이 떠지는 것은 어찌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 인생을 연극으로 치면, 주연으로 살아 본 적이 별로 없다. 늘 조연이었다. 그것은 내 사주팔자와도 관련이 있다. 어디 가서 물어보아도 내 사주에는 ‘정’이 많다고 한다. ‘정(情)’이 아니고 ‘정(丁)’이라 한다. 명리학의 ‘십간’ 중 ‘병’은 큰불, 즉 태양이요, ‘정’은 작은 불인 달빛에 속하니, 내 성격과도 일맥이 통하는 것 같다. 어쩌면 문학은 오히려 더 달빛과도 통하는 분야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부쩍 든다. 내 삶의 공간도 밤마다 상상의 달빛이 폭폭 쏟아지는 두 평짜리 골방이면 안성맞춤일 듯싶다.
내 나름대로 정의를 내리고 있다. 문학은 그 여인과 유사하다고. 젊은 시절, 너무 조심스럽게 다가가면 늘 낭패를 당하기 일쑤였다. 어물쩍하다가는 너무 잰다고 스스로에게 핀잔을 듣기 일쑤였고, 그런 날은 늘 그길로 끝이 나곤 했다. 용감한 척 해봐야 하이힐로 정강이가 짓이겨지듯 구구한 삶에 치여 잔인하게 난도질을 당했다. 나이가 인생 이모작을 시작하는 시기도 넘어섰다. 이젠 내 인생의 주역이 되어야지, 하고 선택한 문학창작의 길이다. 그러나 어쩌다 졸문이라도 제출할라치면 마음의 깊은 구석에서는 늘 서마서마하다. 무능함은 어디서든 들통나게 마련이니, 나는 여전히 문(文) 주위를 베돌기만 할 뿐이다.
그래도 희망을 안고 산다. 오랜 직장생활 지친것이라 그런가, 사고가 늘 딱딱한 편이다. 머리는 녹슬어 버렸지만, 아직도 가슴 속 어딘가에 남아있을 그 작은 불씨를 살리기 위해 황무지를 일구는 심정으로 보습을 들어 낯선 땅을 파헤쳐 본다. 하나 둘! 하나 둘! 정설은 아니지만, 인간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자기 능력의 십 퍼센트도 발휘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래! 이참에 남은 능력 구십 퍼센트를 끄집어내어 보자. 그러곤 내 능력이 몽땅 소진되는 날, 너털웃음 지으면서 스러져 가는 것이다. 오늘도 과거에 잃어버려 생각지도 않았던 낯설기만 한 기억들을 마음의 수면 위에 떠올려 낚시하듯 낚아채 보려 억지 애를 쓰고 있다. 언젠가는 잡은 것들을 도로 놓아주는 한이 있더라도 자처한 사냥꾼의 길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우선 나의 신상의 창문부터 열어젖혀야겠다. 비록 누추하고 초라한 모습이 드러날지라도 이제 가까운 그 문부터 활짝 열려 한다. 더 먼 곳을 바라보기 위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