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자의 웃음
신 미 순
20여 년 동안 하던 사회생활을 접고 나니 그동안 하지 못했던 것들에 대한 호기심과 더불어 직접 경험해 보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았다. 우선 젊은 시절 못 다한 공부도 하고, 팝송과 벨리댄스도 배우고 싶었다. 공부가 먼저라 생각하여 서울디지털대학교 중국학과에 입학하고, 같은 시기에 절에서 가족법회를 마치고 나오던 날, 엘리베이터 옆에 합창 단원을 모집한다는 아름다운 연꽃 사진의 포스터가 눈에 확 들어왔다. 그래 이거야! 망설임 없이 나는 바로 대광사 합창단실로 찾아갔다.
절과 인연을 맺은 지가 벌써 30년이 되었고, 내가 사는 분당 대광사에 다닌지도 14년이 되었지만 바쁘게 사느라 합창단은 언감생심이었던 것이다. 노래가 좋아서 합창을 해보겠다며, 합창단원의 정년을 물어 보니 65살이라고 한다. 앞으로 10년 정도는 노래를 할 수 있겠구나 생각하면서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러던 어느 날 연락이 와서 설레는 마음으로 합창단실을 노크 했다.
예상 외로 많은 단원들은 직장인과 전업주부가 섞여 있었다. 함현상 지휘자는 육군 군악대장 전역, 가야금 앙상블 아라 음악 감독, 현재 국악방송 ‘꿈꾸는 아리랑’을 진행하고 있는 유능한 지휘자였다. 동네 절의 합창단이라고 하기엔 규모도 좀 큰 60여 명의 단원들로 수준 있는 사람들로 보였다.
그런 분위기에 마음이 흡족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걱정도 되었다. 이 실력 있는 그룹에 합류해서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연습 첫날은 악보장이 옆자리에서 음을 잡아주는 덕분에 순조롭게 끝났다. 두 번째 연습날은 조카 또래 단원과 연습을 했다. 그녀는 내가 음을 틀리게 냈다고 짜증이 날 정도로 잔소리를 했다. 언니가 내야할 음은 파 음인데 미 음을 냈다면서 지적을 해대며 조금도 틈을 주지 않았다. 감기약을 먹고 간 날이라서 그러려니 했지만, 합창을 그만두고 싶을 정도로 연습시간 내내 잔소리를 했다. 숨 막히는 한 시간이 흐르고 20여 분 되는 간식시간도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게 빨리 흘러갔다. 그날따라 시간이 더디 가서 등에 식은땀까지 흘러내릴 정도였다.
단원은 법회가 있는 날 1시간 전에 도착해서 그날 부를 찬불가를 총 연습한다. 어떤 날은 당일 날 곡이 수정되는 경우도 간혹 생기기 때문에 지각하면 정말 낭패다. 늦으면 차라리 합창을 하지 말고 신도 법회를 보라고 할 만큼 연습 시간을 엄격하게 지키는 편이다.
평상시 법회에서 부르는 찬불가는 약 6~7곡 정도다. 법회를 시작할 때 부르는<삼귀의>, 부처님을 찬탄하는 <보현행원>, 주지스님의 법문을 듣기 전에 부르는 <청법가>, 법회를 마무리 하는 <사홍서원>과, <산회가> 등이 있다. 그 외에 한 달에 두 번 열리는 <정기법회 곡>과 <가족법회 곡>이 있는데 전부 외워서 부르는 걸 원칙으로 하고 있지만 때에 따라서는 지휘자 악보 뒤편에 다가 커닝페이퍼 형식으로 가사를 붙여놓고 부르기도 한다. 지휘자와 거리가 먼 단원들은 앞사람 등에다가 자신이 볼 수 있게 가사를 따로 붙여놓기도 한다. 다만 음성공양을 위한 49재에만 악보를 들고 노래를 부른다.
찬불가는 마음에 와 닿는 가사가 많아서 때로는 울컥할 때도 많았다. 입단하고 첫 해에 창단 15주년 기념 대광사합창단 음악회가 열렸다. 음악회에는 성남시립 국악관현악단과, 국악 어린이 합창단 도리화, 국악 합창단 두레소리와, 함께 우리 대광사합창단도 일원이 되어 성대하게 열렸다. 음악회는 성공적으로 끝났는데, 단원 모두가 세달 동안 한마음으로 정말 연습에 연습을 거듭한 결과였다. 음악회 무대에 서는 내 이름 세 자가 나와 있는 자리 배정표를 받던 날,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희열을 느꼈다. 음악회를 마치고 지휘자, 반주자의 최선을 다한 열정적인 모습에 감사했다. 나 자신도 무언가 해냈다는 성취감과 뿌듯함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합창단 생활을 하며 일어나는 에피소드가 많다. 신입 시절이었던 어느 날 파트장에게 인사를 하고 나오는데 법회곡 가사를 못 외우면 법회무대에 설수 없으니 오지 말라고 한다. 나는 의아해 하며 다른 단원에게 질문을 했더니 맞다고 한다. 전체 인원은 많은데 지휘자가 노래 소리가 작다는 지적을 했다고 한다. 법회곡은 악보에 있는 가사를 연습시간에 녹음해서 약2주 동안 거의 100번 가까이 반복해서 따라 불러야 온전히 자신 있게 부를 수 가 있다.
평상시 합창단석의 파트 내에서 자리 배정을 놓고도 신경이 쓰일 때가 종종 있다. 이런 일들은 신입 단원인 나에게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입단 후 한두 번 사정이 생겨서 지각하여 연습 없이 바로 법회에 참석했다가 파트장과 임원들에게 눈물이 쏙 빠질 정도로 훈계를 들었다. 학과공부와 병행을 하다 보니 어느 날은 기말고사 시험과 일정이 겹쳐서 새벽 1~2시 까지 공부를 하고 연습을 가는 날에는 목이 잠겨서 목소리가 안 나올 때도 있었다.
합창 연습을 할 때는 메조파트여서 가운데 자리에 위치한다. 그 중에서 내 자리는 맨 앞이라서 지휘자와의 거리는 약 1m 남짓 된다. 부담도 되지만 음감이 뛰어난 지휘자의 코칭을 받을 수 있어서 좋다. 덕분에 나의 노래 실력은 날이 갈수록 향상되어 갔다. 처음 2년 동안은 부담스러운 자리였지만 지금은 신입 단원에게 자리를 양보하여 그리운 자리가 되었다.
어느 날 법당에서 당일에 부를 찬불가를 미리 한번 불러보는 시간이 되었는데, 지휘자가 계속 고개를 숙이고 지휘를 하다가 웃음보를 터트리는 것이었다. 무슨 일인가 의아해 하며 지휘자를 바라보았는데, 그게 나 때문이라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 신입 단원인 내가 가사를 제대로 외워서 부르는지, 음역대와 성량은 어떤지, 무대 떨림이 있는지, 다양한 각도로 선배들이 나를 시험하는 자리에서 전체 인원이 아닌 내 주변에 위치한 몇몇 단원들만 노래를 부른 것이었다.
선배들의 주문을 외면할 수 없어서 노총각 지휘자가 할 수 없이 테스트한 것이라고 한다. 약간 기분이 나쁘기도 하였지만 나도 덩달아 웃고 말았다. 그래도 갈때마다 다정하게 반겨주는 대광사 합창 단원들이 고마웠고 나에게는 일상이 되었다. 이젠 떨어질 수 없는 천군만마 ( 千 軍 萬 馬 )와도 같다. 나의 멘토가 되어준 우리 합창단 지휘자의 호탕한 웃음이 참 좋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