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두금
이형표
요즘 그 소리에 푹 빠져있다. 간드러지게 끊길 듯하면서도 어슷하게 이어지는 그 소리는 심금을 울리듯 애잔하다. 일찍이 그렇게 애간장을 녹이는 소리를 들어 본 적이 없다. 광활한 초원에 잔잔히 울려 퍼지는 그 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몽골의 대표적인 악기, ‘마두금’이다. 그 옛날 13세기 초, 정복자 칭기즈칸은 광활한 유럽 대륙을 말을 타고 점령하였다. 그러나 머나먼 이국땅에서 향수병에 시달리는 기마병의 허전한 심신을 그 누가 달래주랴! 그 모습에 가슴 아파한 칭기즈칸은 마침내 몽골 정서에 딱 맞는 마두금으로 병사들의 애달픈 심정을 달래려 했을 것이다. 실제로 그 소리에 젖어 있으면 일순 온몸이 느른해지면서 전류가 통하는 것 같이 전신이 자릿자릿 묘한 쾌감을 일으키는 악기이다.
마두금(馬頭琴)! 두 개의 현을 가진 찰현악기로, 머리 부분에 말머리 장식이 있다 하여 마두금으로 불리는 길이 약 일 미터의 몽골 현악기이다. 몽골의 전설에 따르면, 한 소년의 꿈에 죽은 말이 나타나 자신의 몸으로 악기를 만드는 법을 가르쳐 주었고, 그 소년이 말의 뼈로 목을 만들고, 말총으로는 현을, 가죽으로는 울림통을 만들어 말머리 조각을 장식해 넣었다고 전한다. 마두금을 통해 초원지대에서 몽골인들이 얼마나 말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왔는지를 알 수 있다.
작년 늦은 봄, 4박 5일로 몽골 여행을 다녀왔다. 몇 해 전부터 나이에 따라 차례로 공직에서 퇴직한 여덟 명의 은퇴자가 부부 동반으로 함께 패키지여행을 간 것이다. 한때 같은 직장에 적을 두었고, 1986년 1월에 함께 승진한 동기 모임인 ‘팔육일회’ 모임의 멤버였다. 그 당시 승진하면서 만든 모임이니 벌써 삼십여 년이 훌쩍 넘었다. 모두 국민의 공복으로 오랫동안 근무하였으나, 공직을 천직으로 여기고 무사히 직장을 그만둔 사람들이다. 퇴직 후에는 커피 바리스타, 아파트 관리소장, 특허사무소 근무, 옷가게 주인, 건물 관리원, 탁구장 운영 등 각자 인생 제2막으로 하는 일도 다양했다. 그중 맏형 격인 육십 대 후반의 최형이 나이가 제일 많아 지병인 관절염으로 다리가 불편하여 안쓰러웠지만, 그래도 줄기차게 여행길에서 낙오하지 않고 함께해서 고마웠다.
한밤중, 몽골의 수도에 인접한 칭기즈칸 공항에 도착하였다. 그곳에서 처음 만난 몽골 가이드는 한국의 진주에 있는 어느 대학교에서 4년간 유학을 한 경험이 있는 삼십 대 후반의 노총각이었다. 유창하지 않아도 제법 능숙한 한국말을 구사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매의 눈을 닮은 듯 눈꼬리가 좌우로 치솟은 날카로운 눈매였다. 그런 눈초리가 범상치 않아 보였다. 늦은 밤 관광버스를 타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궁금증을 견디다 못해 가이드에게 묻고 말았다. 혹시 칭기즈칸의 후예가 아니냐고. 그는 잠시 생각에 잠기는가 싶더니 몇 마디의 설명을 곁들여 칭기즈칸 동생의 후손이라고 했다. 아! 하필 칭기즈칸 동생의 후손이 뭐람? 순간 그냥 칭기즈칸의 자손이라고 해도 될 텐데,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하긴 조선 시대 임금의 몇 번째 첩의 자식이라도 ‘○○군파(君派), △△군파’하면서, 그 임금의 하룻밤 총애받은 DNA를 무슨 보물단지라도 되는 양 훌륭한 조상으로 받들어 모시는 내력 있는(?) 집안들이 아직도 도처에 널려 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아무리 외국 관광객이라 할지라도 거짓 없이 답을 해준 그의 솔직함이 마음에 들었다.
몽골은 나름대로 흥미를 끌 수 있는 훌륭한 관광지이다. 처음 타보는 승마 체험은 고개를 앞으로 처박고 걷는 말 때문에 자못 긴장했다. 광활한 갈맷빛 초원을 말은 갈기를 잔뜩 세우고 그냥 또각또각 걷고만 있는데도 혹시 말 잔등에서 강정배기라도 칠까 봐, 말고삐와 앞 가리개를 잔뜩 움켜쥔 손에서는 꼽꼽하게 땀이 배어 나왔다. 말똥 냄새라도 날 것 같았던 몽골의 전통 가옥인 ‘게르’ 체험도 예상보다 깨끗하고 아늑한 내부 시설에 푹 매료되었다. 그래도 좋은 추억은 허기에서 나온다고 했던가! 푸짐하게 잘 조리된 몽골식 양 갈비 요리인 ‘허르헉’은 이국의 관광으로 허기진 우리 일행의 군침을 삽시간에 분수처럼 발산하게 만들었다. 몽골의 수도인 울란바토르 교외에 있는 무대가 마련된 널찍한 몽골 식당에서 마두금 연주 소리를 들으며, 양 갈비를 쏙쏙 뜯는 맛이란 그야말로 일품이었다. 그날 밤은 그렇게 반은 몽골인이 된 것 같은 착각 속에서, 은하수가 쏟아지듯 맑고 깨끗한 몽골 밤하늘을 바라보며 지냈다. 수정같이 선명한 별빛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서 촘촘하게 빛나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마지막 날 몽골 민속공연인 ‘투밍에흐’라는 공연을 관람하였다. 몽골의 전통 악기인 ‘마두금’과 목구멍 성대의 특유한 떨림으로 연주하듯 소리를 내는 ‘허미’ 공연이었다. 몽골의 남성과 여성들로 이루어진 공연단은 교대로 새로운 연주를 들려주었다. 몽골인 특유의 검붉은 얼굴에 굵은 팔뚝 하며 허리가 생긴 대로였으나, 외려 더 이채로웠다. 연주도 힘이 있어 보였다. 특히 성대 떨림으로 기교를 부리는 ‘허미’ 공연자들은 그 소리를 내기 위해 인상을 가지껏 짓기도 하였다. 외국인이 대부분인 관객들은 연주를 음미하며 조용히 사진 담기에 바빴다. 그날 공연은 듣는 소리만으로도 일행을 원초적 감정에 몰입하게 했다. 특히 마두금의 다양한 연주는 들을 때마다 새로운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묘한 악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소리는 몽골의 넓은 초원을 가로지르는 바람 소리 같다. 애달픈 간절함이 초원을 휘저어 말과 양들을 잠재우고, 강을 건너 멀리 사막 너머로 운무처럼 길게 휘어져 잠겨 들어간다. 여행 온 나그네의 심장 깊숙이 짜릿한 전율로 다가온다.
나는 그 소리를 잊지 못해 공연이 끝난 후, 건물 내 매점에서 몽골 화폐로 이만 육천 투그릭을 주고 마두금 CD를 샀다. 우리나라 돈으로 만 삼천 원 정도의 가격이다. 한국에 돌아와 마음이 울울할 때마다 틈틈이 듣곤 한다. 심금을 울리는 그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마음 한 켠에 봄날의 따스한 햇살이 살금살금 내려와 닿는 듯 포근함을 느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