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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이카 해외봉사에 관심있으세요?    
글쓴이 : 천영순    19-04-20 14:02    조회 : 5,014

코이카 해외봉사에 관심 있으세요?

 

천영순

KOIKA 해외봉사단 115기 우간다 한국어교사

 

2017 7 17!

그동안 막연히 꿈꾸어왔던 나는 코이카 해외봉사단원이 되어 우간다로 파견되었다. 환승을 포함한 21시간의 비행을 마치고 우간다 엔테베공항에 도착한 것이다. 우리에게 아직 익숙하지 않은 피부색의 코이카 현지직원은 우리를 아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길 양쪽에 늘어진 야자수 나무가 무척 신기했다. 내가 정말 아프리카 땅을 밟은 거야? 이게 꿈은 아니겠지?

 

공무원의 퇴직을 1년 앞두고 희미하게 꿈꾸어 왔던 나는 어느 날 우연히 코이카(KOICA) 홈페이지에 들어갔다. 그때 해외봉사단 모집공고가 떠 있었다. 나는 갑자기 이미 퇴직을 한 남편이 지원한다면 삶의 활력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간다라는 나라는 잘 모르지만 디자인분야와 한국어교사 두 분야를 뽑는 곳은 우간다 밖에 없었다. 그래, 봉사를 가려면 아프리카로 멀리 가야 봉사의 참 의미가 있는 거야. 나는 남편원서와 내 원서를 다 입력하고 남편에게 말했다. 남편에게 말하니 시도할 만 하다고 한다. 일주일 간격으로 서류전형, 인성검사, 건강검진, 면접 등 아주 빠르게 진행 되었다. 남편은 면접관에게서 긍정적인 느낌을 받았다고 하는데 내 면접관은 한국어교사 경쟁률을 알고나 있냐면서 내게 부정적이었다. 합격자 발표일이 다가오자 우리 부부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둘 다 합격해도 둘 중 어느 한 사람만의 합격도 모두 걱정이기 때문이었다.

발표일 합격자 명단에는 면접의 분위기와는 달리 내 이름만 있었다. 그리고 합격 통지와 함께 당장 그 다음주부터 8주간 코이카 영월 교육원으로 합숙교육을 들어가야 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교육을 위해 더 이상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다음에 지원한다 해도 이 많은 절차를 다시 밟을 자신이 없거니와 나이 60이 넘어서 이리도 따다로운 건강검진에 통과된다는 보장도 없다. 직장에서 쓰지 않은 장기재직 휴가와 그 해에 남은 휴가를 따져보니 정확히 영월교육원에서 합숙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교육을 받으며 퇴직을 한 번 더 고려해보려고 휴가를 이용한 것이다. 직장을 다니며 사이버대학 한국어학과에 편입하여 어렵게 얻은 한국어교사 자격증으로 퇴직 후 교사로 변신하게 된 것이다.

영월의 교육은 개발도상국에서 봉사를 하며 살아남기 위한 생존교육이라고 정도로 다양하고, 심화된 교육이었다. 교육을 받으며 퇴직을 결심하여 공교롭게도 수료 후 발단식을 하는 날과 평생을 몸 담아온 공직 퇴임식이 같은 날이 되었다.

11550명의 동기 단원 중 20대의 간호사와 미술교사 그리고 60이 가까운 나를 포함하여 3명이 우간다로 왔다. 도착한 날 합숙훈련을 할 숙소에 짐을 풀고 코이카 소장님은 오찬을 베풀고 우리를 환영해주셨다. 식사 후 은행계좌와 휴대폰 개설을 시작으로 8주간의 현지적응훈련이 시작된 것이다.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영어였다. 영월교육원에서 8주간 영어를 배웠지만 이제는 생존 수단이 된 것이다. 우간다는 영국의 식민지였던 영향으로 영어가 공용어이다. 콩고를 비롯한 동아프리카 주변국 젊은이들은 가까운 우간다로 어학연수를 온다. 적응훈련 기간 중 우리는 그들과 함께 영어공부를 했다. 이 나이에 20대 학생들과 공부하는 것도 좋았지만 아프리카 학생들을 떡 주무르듯 강의하는 미란다 선생을 벤치마킹 할 수 있는 것이 내겐 아주 큰 의미가 있었다. 영어 외의 훈련과목은 우간다 지리와 정세 익히기, 각종 문화체험, 안전교육, OJT(On The Job Traning), 집 구하기 등이다. 우리 신규단원에게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주는 선배단원들은 정말 대단해보였다. 코이카 봉사단이 파견되는 개발도상 국가들은 안전상황 등 여러 가지 여건이 매우 열악하기 때문이다.

 

훈련을 마치고 우간다 제1국립대학인 마케레레대학교 어학센터로 파견되었다. 한국어 수업이 주 업무이고, 학생모집과 기관간의 협력 업무와 유학이나 취업에 관심이 있는 학생을 위해 꾸준히 상담을 해야 한다..

한국어분야는 봉사기관인 마케레레 대학에서 특별한 관여가 없다. 단지 수강생의 등록과 수료증 발급을 지원하기 때문에 교사가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여 가르칠 수 있다.

중앙도서관 2층에 자리 잡은 교실에서 수업을 시작했다. 학생들은 나날이 늘어나서 새로 온 학생이 20여명이 되었다. 이들은 언어능력이 아주 뛰어났다. 우간다는 40여종의 부족언어가 있어 어릴 때부터 인근 부족의 언어를 쉽게 배우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글 모음부터 시작하여 글자를 읽고, 짧은 생활 한국어를 익혀 말하는 것을 보면 정말 신기하였다. 배운 것을 즉시 사용하여 중급반 학생들에게 적극적으로 말을 걸었다. 주방시설이 제대로 안된 임시 숙소에서 땀을 흘리며 학생들을 위해 김밥 등 한국음식을 만들어 함께 먹으며 수업을 했다. 그리고 한국의 식기와 음식 등을 전시하고 맛보며, 관련 단어를 자리에서 암기하도록 했다. 수업을 마친 후 저녁에는 대화문을 녹음하여 단톡방에 올리니 학생들의 발음이 아주 자연스러웠다. 대학의 어학센터 담당자가 수업을 참관해보고는 이들이 정말 비기너반 학생이 맞느냐고 물었다. 예고 없이 방문한 담당자에게 학생들은 자신있게 인사말과 배운 동요를 거침없이 불렀기 때문이다.

첫 학기는 전임 선생님과 반을 분담하여 비기너반 학생들에게 전념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두 번째 학기는 그 선생님의 귀국으로 혼자 4개 반을 다 가르쳐야 했다. 학생모집을 할 때는 24시간 콜센터에 근무하는 것 같았다. 전화의 잡음이 많고 영국식 영어발음에 익숙하지 않아 아주 힘이 들었다.

세 번째 학기는 후임 선생님이 와서 나는 중·고급반 만을 맡게 되었다. 이젠 여유가 생겨 다양한 문화수업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아프리카 생활의 애로사항은 거의 다 비슷하다. 우간다 사람들은 음뽈라음뽈라(천천히) 문화로 아주 낙천적인 마음으로 산다. 반면 한국인들은 분명하고 빨리빨리 해 치워야 한다. 초고속 사회에서 살다가 뒤로 후퇴하기란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한국도 오래전에는 코리언타임이 있었다. 그래서 이곳 우간다도 교통이 안 좋고 인터넷 기반이 좋지 않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다. 나 또한 인터넷으로 제출한 보고서가 코이카 전산망에 제대로 올라가지 않아 곤란을 겪은 일이 있었다. 또한 수시로 두절되는 와이파이 때문에 소통의 문제로 서로의 신뢰가 깨지는 수도 있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짜증스러운 스팸문자이지만 이곳에서는 네트워크 상태가 좋다는 신호이기 때문에 스팸처리를 하지 않는다.

우기에는 자주 정전이 된다. 힘들게 PPT를 만들어 학교에 갔는데 정전이 되어 처음에는 무척 당황한 적도 있었고, 전기밥솥에 밥을 하다가 정전 된 것을 잊고 열어보니 쌀이 그대로 있는 때도 있다. 냉동실의 음식도 정전으로 얼었다 녹았다 하여 믿을 수가 없다.

아시아에는 봉사단원이 많이 지원하여 간다. 그러나 아프리카는 단원이 적은 편이다. 그러다 보니 나이가 많은 세대의 단원은 또래가 거의 없어 정보교환 등에 어려움이 있다. 가족과 떨어져 있어서 심한 고독이 몰려 올 때는 다음날 아침에 선명하지는 않은 영상통화일지라도 가족에게 일일 보고를 하며 해결한다. 외국생활에서 가장 아쉬운 것은 치과 이용과 미용실이다. 우리와 머릿결이 전혀 다르기 때문에 현지 미용실을 이용하기가 쉽지 않다.

 

해외봉사가 내게 준 가장 귀한 선물은 아프리카 가족여행이다. 활동 1년이 지나면 가족과 자기비용으로 3주간 주재국 외 국가로 여행을 하거나 한국을 다녀올 수 있다. 우리가족은 작년에 사파리여행으로 유명한 탄자니아를 다녀왔다. 주부 없이 꿋꿋이 잘 살아주는 가족에게 최고의 추억이 되었다.

드디어 한국정부장학프로그램으로 석사과정에 지원한  우리 반 학생이 최종합격 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이 학생에게 온 에너지를 쏟고 맘을 졸이며 소식을 기다리다 보니 눈물이 쏟아졌다. 이곳 마케레레 대학의 한국어반 학생으로는 처음으로 합격한 것이다. 우간다에 와서 가장 의미있는 결실이다. 이 학생이 한국에 유학을 다녀온 후 우간다의 중요한 인물이 되기를 바랄 뿐 이다.

우간다에서 활동한 지 2년이 다 되어가니 길을 지나다니면 티쳐 씨!” 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K-POP, 한국드라마, 휴대폰과 에어컨 등으로 한국의 이미지가 좋다보니 한국어를 가르쳐달라는 사람을 많이 볼 수 있다. A4용지 양면에 유용한 한국어 인사말을 써서 만나는 사람마다 나누어주었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성인을 부를 때 “~ 를 붙인다고 했더니 내게 티처 씨라고 부른다. 종종 지나가는 나에게 티처 씨 오늘 아주 예뻐요!”라는 인사를 듣게 된다. 나는 감사합니다.” 하고 웃으며 손을 흔들어준다.

 


박영화   19-07-15 00:36
    
천영순 선생님, 글 잘 읽고 있습니다.
수필을 쓰는 입장에서 이런 글 정말 필요하단 생각이들어요.
저도 사실은 봉사에 관심이 많지만, 마음뿐입니다.  봉사를 실천하는 것이 쉽지 않아요.
앞으로도 봉사이야기 많이 들려주세요.
제 생각에는 범위를 좁혀서 에피소드를 나누어 하나씩 쓰시면 더 좋을것 같아요.
수필이지만 정보를 모으는 역할도 할 수 있고요. 전에 교수님이 수업시간에 그런 말씀 잠깐 하셨어요.
몇 개의 수필로 쓰기에는 아까운 경험이라고...
메모 많이 해 놓으셨다가 하나씩 쓰시면 좋을것 같습니다.
보람있는 이야기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글도 기다릴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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