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우러짐의 그 맛
김옥희
그녀의 목소리는 나와 닮았었다. 경상도 사투리와 서울말이 섞인 애매한 억양의 말씨와 약간의 비음이 섞인 음색까지.
“양념 재료를 섞을 때는 저거끼리 친해질 시간을 줘야 합니다.” 요리 수업 첫날 한 조 4인인 ‘저거끼리’ 몹시 서먹한 조원들 사이에서 들려오는 요리 강사 선생님의 목소리는 그래서 무척이나 반가웠다.
요리하기를 즐기지 않았고 비슷한 메뉴로 몇십 년을 돌려막기로 하느라 지쳐있던 나는 몇 년 전에 가까운 주민센터의 봄 학기 요리 수업에 등록했다.
요리 교실에는 선생님 조리대를 빼고 5개의 실습조리대가 있었다. 어디든 일찍 도착하는 나는 제일 앞줄 조리대에 자리를 잡았다. 시간이 지나며 처음 보는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고 중년 남자, 새댁 같아 보이는 여자, 50대로 보이는 중년 여자 그렇게 우리 조가 만들어졌고 1조라고 명명되었다. 모두 낯을 가리는 편인지 우리는 묵례만 하고 90분을 씻고 다듬고 썰어대는 일에 몰두했다.
처음 만든 음식이 나물 종류였는데 나물에 들어갈 양념을 만들 때 각각을 볼에 같이 넣어 잠시 내버려 두고 그것들이 어우러지는 시간을 선생님은 ‘저거끼리 친해질 시간’이라 칭했다. 첫날이라 서먹함을 풀어주기 위한 우스갯소리인 줄 알았는데 수업시간마다 강조하는 게 ‘저거끼리 친해질 시간을 줘라.’라는 것이었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 그것으로 나물을 무치니 내가 평소 만든 것과 묘하게 다른 맛이 났다. ‘감칠맛’이라 할까? 그 맛은 육수 내기 시간에 또렷이 느낄 수 있었다. 90분 내내 멸치 육수 내기에 매달렸던 두 번째 시간에 우리는 진하게 어우러진 그 맛에 고개를 끄덕였다. 선생님은 그것을 ‘어울려 사우나까지 같이 한’ 맛이라 하였다.
처음 몇 주는 조원들끼리 음식 만들기에만 집중했다. 불편하지만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어울려 맡은 일을 나눠서 했고 같이 만든 음식을 선생님에게 한 팀으로 품평을 받아야 했으며 심지어 시식도 같이해야 했다. 그러다 수업시간에 일찍 온 중년 남자가 그날 만들 레시피 프린트물을 각각 조원들 테이블 앞에 올려놓자 한둘씩 자리를 잡은 조원들 입가에 감사의 웃음이 나오며 말문이 트이기 시작했다. 그날 아침 날씨에 대해 처음 이야기를 나눈 우리는 서서히 한 팀이 되기 시작했다. 몇 주 지나자 더 친밀해진 조원들은 각자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손은 따로 움직이는 여유를 보였다. 중년 남자는 퇴직 후 부인이 아프기 시작하자 요리를 배워 그동안의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는 이야기로 우리를 감동하게 하였고 꽃집을 운영한다는 새댁은 “낭만적이에요.” 하며 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그 뒤로 우리는 시식을 조금씩 하고 미리 덜어낸 음식을 그의 부인이 맛볼 수 있게 통에 담아 주었다.
주로 나물 위주로 하던 봄 학기가 지나자 약간의 난도가 있는 레시피가 주어졌다.
그중 기억이 나는 메뉴가 해파리냉채다. 각각의 재료를 얇게 썰어 내는 칼질과 연 겨자의 톡 쏘는 맛과 어우러지는 부드러운 맛을 내는 소스 만들기가 관건이었다. 나를 포함한 3명은 채소를 다듬고 채썰기를 시작했고 새댁은 해파리를 다듬고 소스 만들기에 집중했다. 마치기 전 새댁이 접시에 재료들을 담아보고 싶다 하여 우리는 허리를 펴고 바라봤다. 둥근 접시를 따라 꽃이 피듯이 그것들이 모양을 내기 시작하고 탱글탱글한 해파리가 가운데 자리를 잡자 멋진 작품으로 변신하여 우리는 환호했다. 그날 우리 팀은 선생님에게 ‘냉채’가 아니라 ‘화채’라는 칭찬을 들었다.
양념 재료 중 도저히 서로 친해지지 않는 것들도 있다. 참기름이 그것 중 하나인데 향이 강해 다른 재료들의 향과 맛을 다 죽여버리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다른 양념 재료들과 분리하여 뒀다가 마지막에 살짝 뿌려줘야 한다. 마치 개성이 강한 친구를 섬세하게 대하듯이.
안동찜닭을 하는 날 우리는 평소보다 많이 서둘렀다. 오랜 시간 은근히 재료들을 끓여야 제맛을 내는 음식이기 때문이다. 조원들은 넓적 당면을 미리 불리고 닭을 다듬고 감자 당근은 굵직하게 썰어 둥근 모양으로 만들고 그 외 채소들을 씻어 썰어 둬야 했다. 난 눈물을 찔끔거리며 양파를 썰고 향을 부드럽게 하려고 그것들을 물에 넣어 두고 잠시 조원들을 둘러봤다. 다들 자신이 맡은 재료에 매달려 분주했다. 곧 군대에 갈 외아들에게 제대로 된 음식을 해주고 싶다는 50대 여자 조원이 양념 배합을 하느라 계량기 앞을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그러다 참기름병을 만지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저런, 선생님이 요리 완성 후에 살짝 넣어주라고 했는데….” 나는 혼자 중얼거렸고 참기름은 순식간에 다른 양념과 섞여 버렸다. 그날 우리 조는 ‘안동 참기름 찜닭’을 만들어 5팀 중 5위의 성적을 기록했다.
겨울학기에 들어서자 꽃집 새댁이 나가고 새로운 조원이 들어왔다. 다시 ‘저거끼리’ 친해질 시간이 필요했지만 때맞춰 김장 만들기 레시피가 주어졌다. 각자 필요한 분량만큼 주문하고 본인 김장이 끝나면 마치고 가도 된다고 그 전 주 선생님이 공지하였다. 양념의 배합과 숙성이 무엇보다 중요한 김장하기는 평소 수업보다 30분을 추가해서 장시간 한 팀이 움직여야 했다. 우리는 1년 농사를 망치지 않기 위해 어느 때 보다 분주했고 같이 몸을 밀착하여 수시로 간을 보며 의논을 했다. 빠듯하게 시간을 채운 우리는 적은 양을 주문한 조원도 같이 남아 마무리를 짓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흰 밥과 갓 담은 김치 하나로 늦은 점심을 먹었다. 잘 버무려진 양념과 숨이 죽은 배추가 처음 만나 나의 입안에서 겉돌고 있지만 긴 시간의 합숙을 하고 나면 그들도 나도 생각지도 못한 친근하고 소담스러운 맛이 입안에서 폭죽처럼 터질 것이리라 의심치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