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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코, 마마 코코    
글쓴이 : 이나경    26-04-12 02:31    조회 : 20

코코, 마마 코코

 

이나경

 

 

 과거의 난 특수학교에서 순회 교사였다. 학생이 가진 장애가 너무 중해서 등교가 어려운 경우, 순회 교사가 해당 학생의 가정에 방문하여 일대일 수업을 진행하는 것이 나의 업무였다. 당시 내가 맡았던 아이들은 절반 정도가 산소호흡기를 끼고 있었고, 발작 예방을 위한 진정제의 영향으로 학생이 수업 내내 잠들어있는 경우가 잦았다. 만약 학생이 눈을 뜨고 있어도 이 학생의 오늘 기분은 어떤지, 교사에게 어떤 요구하고 싶은지 알아채기 위해 그들의 표정, 체온, 숨결, 산소포화도 측정기 속 선분의 가파름,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기계음을 통해 끊임없이 살펴야 했다. 이 학생들과 사계를 지낸 후, 어느덧 작별의 순간이 왔다. 종업식을 하고 나면 이 아이들은 다시 만나기 어렵다. 순회 교사 업무를 마무리하고 다시 학교 안으로 돌아가면 그들 집에 방문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이별이라는 상황이 주는 이 먹먹한 감정을 그들에게 어떻게 전할 수 있을까. 결국, 종업식을 하기 한 달 전부터 아이들 앞에서 기억해 줘라는 노래를 우쿨렐레로 연주하며 부르기 시작했다.

 기억해 줘는 애니메이션 코코의 주제곡이다. 이 영화는 비록 사람이 죽어도, 산 자가 그를 기억한다면 죽은 자는 망자의 세상에서 영원히 살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기억해 줘는 이미 망자가 된 주인공이 생전에 본인의 딸을 위해 만든 노래다. ‘우리가 다시 만나지 못한다 해도 나를 꼭 기억해달라는 주제로 가사를 써서인지 멜로디는 흥겹지만 다 듣고 나면 코끝이 시큰해진다. 이 학생들이 훗날 나란 존재를 기억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어디선가 이 노래를 듣거든 잠시라도 내 얼굴을 떠올려줬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 참 열심히도 불렀었다.

 

 2025학년도 종업식 전날, 우리 반 아이들과 함께 영화 코코를 봤다. 지금의 난 순회 교사가 아니다. 우리 반에도 올해 졸업할 아이가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아이는 새 학년이 되어도 다시 만날 수 있다. 하지만 난 또 이별을 준비하고 있다. 2026년에 동반 휴직을 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영국에서 일하고 있는 남편과의 기러기 생활에 지쳐 올해는 내가 영국으로 떠나기로 했다. 2027년에 한국으로 돌아오면 내가 지난 2년간 맡았던 아이들은 모두 상급학교로 진학한다. 졸업한 이후에 날 보겠다고 놀러 올 학생도 있겠지만 어쩌면 앞으로 다시 만나지 못할 학생도 있을 것이다. 미래를 생각하면 슬프지만, 일단 코코를 보며 우리의 2025년을 아름답게 마무리하고 싶었다.

 사랑이. 넌 우리가 20263월에 다시 만나지 못할 것을 알고 있을까. 전임자는 사랑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인수인계했다. 그는 자신의 의사를 한 단어 수준으로만 표현한다. 본인 이름을 스스로 쓰지 못하고(기역, 니은은 당연히 모름) 수는 1부터 10까지만 알며, 이유 없이 울부짖으며 자기 머리를 때리는 자해를 종종 보인다. 나는 산소호흡기를 찬 채 누워서 힘겹게 수업에 참여하던 아이들과 함께 해본 경험이 있어서였을까, 그런 사랑이라 할지라도 힘든 아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사랑이와 만난 첫 해엔 1년 내내 본인 이름 쓰기 특훈을 했다. 학년을 마무리하기 전, 그는 본인 이름을 스스로 썼다. 함께 두 번째 해를 지내고 나니 사랑이는 스스로 덧셈, 뺄셈을 하게 되었고 받침 없는 글자를 읽고 쓸 수 있게 되었다. 손톱처럼 아무도 모르게 천천히 자라는 줄만 알았는데 어느새 나비가 되어 훨훨 날아간, 참 대견한 사랑이다. 하지만 이별이라는 상황을 어쩌면 그가 모를 수도 있겠단 생각이 가끔 들었다. 이런 아쉬움을 감추며 아이들과 함께 영화 코코를 봤다. 사랑이도 본인 자리에 앉아 있다가 갑자기 방방 뛰길 반복하며 함께 영화를 봤다.

 영화는 어느새 클라이맥스에 도달했다. 이젠 치매에 걸려 스스로 걷지도 못하는 할머니가 되어버린, 하지만 그 흐린 기억 속에서도 여전히 망자가 된 아버지를 기억하고 있던 딸, 코코. 그녀 덕분에 아버지는 죽은 자의 세상에서 비로소 영생할 수 있었다. 그 장면이 주는 감동에 흠뻑 빠져있는데, 누군가 내 뒤로 오더니 나를 와락 껴안는다. 사랑이었다. 그는 내 귀에 대고 나지막하게 말했다.

 “코코, 마마 코코.”

 사랑이가 읊조린 말은 어떤 의미일까. 단순하게 보면 영화 속 아버지의 딸 이름 혹은 꼬마 주인공의 할머니 이름이다. 하지만 사랑이가 내 귀에 그 이름을 말한 순간, 그 이름을 이루는 자음과 모음이 폭죽처럼 터지며 셀 수없이 많은 감정이 나에게 낙화했다. 어쩌면 그는 이 영화를 보고 느낀 감동을 힘껏 표현했던 것이 아닐까. 이런 아이를 보고 이별이 뭔지 알긴 할까라고 생각했던 내가 참 부끄러웠다.

 

 어쩌면 사랑이는 길을 걷다가 들려온 기억해 줘를 듣고 내 얼굴을 떠올릴 수도 있겠다. 겨울이는 내 카카오톡 프로필사진을 보며 나에게 보고 싶다고, 언제 한국 오냐고 메시지를 보낼 수도 있겠다. 새벽이는 산소호흡기 너머로 들려오는 기계음 속에서 나의 노랫소리를 문득 떠올릴 수도 있겠다. 어떤 형태로든 나는 내 제자들 세계에 흔적을 남겼다. 그거 하나면 충분하다. 나에게 이런 추억을 남겨준 천사들과 우연이라도 다시 마주쳐 서로 반가워할 수 있는 그 순간을 기대하며, 머나먼 영국 땅에서 2025년 종업식을 이렇게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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