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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날 저녁 우린 만났다.    
글쓴이 : 문희옥    17-03-13 11:30    조회 : 8,801
   그날 저녁 우린 만났다(제출용).hwp (29.5K) [1] DATE : 2017-03-13 11:30:39

그날 저녁 우린 만났다

문 희 옥

 

여느 때처럼 집 앞 등산로를 따라 아침산책을 다녀오는 길이었다. 땀범벅에 머리 모양도 어수선한 나에게 앞에서 올라오던 여인이 말을 걸어왔다.

옷을 아주 시원하게 입으셨네요,”

워낙 더위를 잘 타는 체질이라서 산을 오를 때에도 등산복보다 린넨 질감의 가벼운 옷을 입곤 하는데 상대는 신선하게 보았나보다.

그는 중상정도의 키에 몸은 가냘프고 차분해 뵈는 인상이었다. 최근에 이웃아파트에 이사 왔다고 했다. 나처럼 그녀도 두 딸을 두었고, 딸들이 각각 유럽에 살고 있는 것도 공통분모였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어느새 내면의 깊은 얘기까지 스스럼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점입가경이라고 나중엔 심리적, 육체적 고통까지 나누게 되었다. 거짓의 옷 따위는 벗은 게 아니라 아예 입질 않았다.

그는 공황장애환자라고 했다. 처녀 때 은행비서실에 근무하는 중에 발병하였으며 결국은 증세가 악화되어 직장을 그만뒀다고 했다. 내가 상담을 하는 사람이라고 하자 대화는 급물살을 탔다. 고소공포증도 덧붙여 호소하더니 고층 아파트는 엄두도 못 내어 3층 이하에서만 살아 왔다고 했다. 다행히 세월 따라 병도 늙는지 지금은 정기적인 약물치료는 받지 않으나 미세불안증상은 늘 안고 산단다.

나도 10년 전에 박리성동맥류라는 진단을 받아 수술을 했던 사연으로 화답을 했다. 심장아래쪽의 동맥이 정상인의 3배 이상 꽈리처럼 부풀어 곧 터질 수 있다는 의사의 브리핑은 다시 떠올려도 몸이 움츠러들고 떨리는 기억이다.

살아온 세월만큼이나 무수한 만남이 있었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첫 만남에 이렇게까지 깊숙한 얘기를 나누는 것은.

헤어지기에 앞서 통성명을 하는데 내 이름 희옥이 예쁘다 했다. 당신은 남자 이름이라며 그것도 진짜 남자인 진남이라 해서 한바탕 웃었다. 앞으로 가끔씩 만나자는 제안은 진남이 했다. 나는 내가 상담사로 있는 사무실의 위치를 자세하게 알려주며 언제든지 환영한다고 덧붙였다.

좋은 이웃이 되는 행복예감이라니! 집을 향해 내려오는 동안 미소가 한가득했고, 오전 내내 신의 선물인양 내려놓질 못했다.

꼭 집어 한 약속도 아닌데 일주일 내내 상담실 문 쪽으로 시선이 갔다. 또 한 주가 지나는 무렵엔 슬슬 결핍이 느껴졌다. ‘만나지면 만나는 거고, 혹 연결이 안 되면 그 뿐이고.’ 는 내 방식이 아니다.

결핍이 행동을 부른다고 했나? 방문을 기다리느니 내가 나서기로 했다. 그가 산다는 116동을 기억했고 고소공포증으로 3층높이를 강조하던 것도 염두에 두었다. 이 정도면 작업준비는 충분했다. 진도를 나가기로 마음먹으니 방법이 있고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데이비드 호킨스의 <<의식혁명>>용기에너지는 변화의 분기점이라는 내용이 있질 않은가! 내친 김에 기회가 우리를 도우려 할 때 우리도 기회를 도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야 한다<<연금술사>>의 주인공 산티아고도 불러 앉혔다.

 

용기를 내니 쉬운 일이었다. 실행에 들어가기로 하고 A4용지를 준비했다. 아파트양쪽 출입구 3개 층에 비치하려면 12장이 필요하다는 계산을 했다.

일주일 전에 앞산에서 만난 문희옥 입니다. 김진남님의 연락을 기다립니다.”

프린트한 글을 공문인양 일일이 접어 우편함에 꽂았다. 아파트 출입이 외부인은 통제되어 마침 그 동에 살고 있는 지인의 도움을 받았다.

진남이 아닌 다른 사람이 이 글을 보면 바쁜 세상에 어지간히 한가한 여자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건 내 몫이 아니다.

좀 전 우편함..... 반갑고, 찾아주셔서 땡큐입니다. 지금 상담 중?”

하루를 넘기지 않고 진남은 메시지를 보냈다.

 

그 날 저녁, 우린 공원에서 만났다.

- -

 

 

 

 

 

 

 

 

 

 

 

 

 

 

 


김정미   17-03-14 22:32
    
이름도 맘도 예쁘고
아름다우신 희옥선생님!
합평방 입성을 축하드립니다.
용기내셔서 변화의 분깃점에 섰으며
기회란 놈에게 기회를 주자고요
편하게 놀이터처럼 쭉~ 함께해요
기쁨과 행복을 주는
희옥선생님!
화이팅입니다.
문영일   17-03-18 20:28
    
글 좋네요.
제목도 호기심을 느끼게 하고
남에 대한  호감. 그리고 관심
굳이 찾아가서 편지를 놓고 오는 그 마음.
이쁜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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