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acheZone
아이디    
비밀번호 
Home >  강의실 >  창작합평
  나의 어린왕자    
글쓴이 : 박승해    26-04-27 20:07    조회 : 35

나의 어린왕자

박승해

 

그 아이의 웃는 모습은 천사처럼 반짝였다

하얀 얼굴과 반짝이는 양볼의 홍조까지 마치 아기의 미소 같았다
그때 나는 6학년에 올라갔어도 다방구나 딱지치기 놀이를 좋아했다. 책하고는 거의 담을 쌓고 지냈다. 등에 맨 가방 속에는 책 몇 권과 놀기 위한 딱지와 구슬 고무줄이 있다. 그것들은 내가 뛰는 속도에 맞추어 철렁철렁 손들고 뛰어다녔다
그 아이는 한 번도 나의 놀이에 낀 적이 없다. 말이 없는 아이 샌님이게 우리가 그 아이에게 붙여준 별명이다. 나의 세계에 한번도 들어오지 않은 그 아이는 전혀 나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2부 수업을 하는 우리반 교실은 이른바 콩나물 시루였다. 앞에서 뒤까지 촘촘한 작은 의자들은 오전 오후 두 명의 다른 주인이 있다. 대청소 날이다. 아이들은 드르륵 소리를 내며 의자며 책상을 끌고 다닌다. 대청소가 끝나면 매번 그렇듯이 자리를 바꾼다.

“1번 줄은 그대로, 6번 줄과 2번 줄은 바꿔 앉으세요.”

한 달에 한번 짝 바꾸는 날이 되면 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큰 책상을 반씩 나누어 써야하기 때문이다. 짝과 영토경쟁에 밀리면 안된다. 이미 책상의 반은 분필로 선명하게 영역이 표시되어 있다. 그런데도 가끔 그 영역을 생각없이 넘는 아이가 있다. 이날 나의 관심은 오로지 나의 책상을 누구와 나누어 쓰냐는 것에 있었다.

다른 아이들도 그렇겠지만 나 역시 영역이 침범당하는게 싫다. 특히 첫 날이 중요하다. 새로운 짝을 만나는 호기심도 있다. 그러나 첫날 책상 영토 신경전에 패하면 안 된다는 긴장감이 더 크다. 다들 사뭇 심각하다. 그만큼 오늘은 중요한 날이다. 특히 남자아이가 짝이 되는 날은 신경전이 더 심하다. 그 아이가 책상 위 영토에 관심이 많은 아이라면 더 그렇다.

 

1970년대 초 서울의 변두리 학교인 우리 학교는 한 반이 팔십명이 넘었다. 오전반 오후반이 같은 교실에서 뒤섞이니 우리 교실은 적어도 160명 이상이 하루에 이동한다고 볼 수 있다. 지금 생각하면 우와하고 놀랄 이야기지만 그때는 그랬다.

그래서 그런지 담임선생님은 수업 시작 시간과 끝나는 시간에 어김없이 출석을 부르신다. 출석 체크를 안 했다면 아마도 몇 사람이 집에 일찍 가도 모르지 않았을까? 교실은 들쑥날쑥 변화무쌍한 날의 연속이었다.

 

오늘도 짝을 다 바꾼 후 담임선생님은 예외없이 출석을 불렀다.

그 남자아이의 이름은 김. . . 다른 아이의 이름이 내 머리에 정확하게 꽂힌 것은 처음이었다.

햇빛에 그을려 까만 얼굴로 오전내 뛰어다녀 머리는 수세미처럼 마구 헝클어진 나와는 완전 반대인 하얀 얼굴의 아이가 나에게 안녕하고 손을 흔들었다.

이게 무슨 창피람부끄러웠다.

나는 옷소매로 그 애가 눈치채지 못하게 조금 전 빡빡 힘주어서 백묵으로 길게 그어놓은 책상 위 경계를 지워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나와는 다르게 그 아이는 소란스러운 교실에서도 수업에 잘 집중했다. ‘다방구’ ‘고무줄놀이’ ‘줄넘기’ ‘딱지치기에 한창 빠져있는 나와는 정반대인 아이였다. 나의 하루는 바빴고 정신없었고 내 자리는 거의 운동장이었다. 그 아이는 다른 시시한 남자아이처럼 여자아이들의 고무줄을 끊고 도망가거나 아이스께끼하며 여자아이 치마를 들추거나 하는 일로 공분을 사지도 않았다.
책상은 늘 반듯하게 정리했고 게다가 내 책상까지 닦아주었다. 점점 샌님같은 그 아이에게 호기심이 생겼다 아니 관심이라고 할까

너는 공부하는 게 재밌니

터무니 없는 나의 질문에

. 공부는 그냥 하는 거야 그런데 사실 나는 그림 그리는 게 더 좋아

공부도 잘하는 데다 그림도 잘 그리는 것을 부러워하는 나에게

이거 너 가져, 그리고 너도 그려봐. 너도 할 수 있어

그 아이는 자기가 그리던 만화책과 연필을 주었다.

 

그 아이와 짝이 된 한 달은 나의 6학년 전체를 통틀어 가장 특별했던 시간이었다
그 후 종종 자기가 그린 그림을 주었다. 연필로 슬쩍 그린 그림들이 그 당시 나에게는 대단한 선물이었다. 그가 그림으로 여러 상을 받을 때면 나는 진짜 내 일처럼 신나 했다. 학교 앞에서 파는 아이스께끼를 거금을 털어 사준 유일한 친구였다.

그 후 중학교에 가면서 따로 만난 적은 없지만 그 아이의 반듯한 모습은 어쩌면 나의 삶에 작은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까?

어딘가에서 초등학교시절 내게 한 것처럼, 반짝이는 미소로 누군가를 배려하고 미소짓게 하고 있지 않을까?

나의 어린왕자, 그 짝궁이 생각난다.


 
   

박승해 님의 작품목록입니다.
전체게시물 7
번호 작  품  목  록 작가명 날짜 조회
공지 ★ 등단 전 합평에 통과한 작품 올리는 방법 웹지기 08-11 9593
공지 ★ 창작합평방 이용 안내 웹지기 02-05 981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