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acheZone
아이디    
비밀번호 
Home >  강의실 >  창작합평
  신이 된 아침, 개미를 조지다    
글쓴이 : 강선명    26-03-27 11:37    조회 : 117

신이 된 아침, 개미를 조지다

강선명

 

나는 매일 아침, 죽음이 머무는 곳으로 달려간다. 어제보다 나은 내가 되기 위해, 그리고 내일은 조금 더 행복해 지기 위해 동네 장례식장 주차장으로 향한다. 차 한 대 없이 정적만이 감도는 그곳은 나에게 가장 완벽한 사고의 트랙이다. 발바닥이 지면에 닿는 진동을 느끼며 나는 늘 생각 보따리를 이고 달린다.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나는 부자가 되고 싶다. 동시에 마음은 늘 평온한,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은 옳은 선택만 하는 사람이고 싶다. 하지만 현실은 늘 그 반대편에서 나를 비웃듯 기다린다. 운전대를 잡을 때, 마트 계산대 앞에서 진상 손님을 마주할 때, 훅 하고 치고 들어오는 상황 속에서 나의 고상한 다짐들은 허무하게 흩어진다. 그리고 이내 찾아오는 자책. 내일은 나아 지리라는 약속은 늘 익숙한 실패와 함께 반복된다.

 

그날도 그랬다. 조깅을 마친 뒤 땀을 닦으며 장례식장 한쪽의 성모상 앞에 섰다. 종교는 없지만, 양팔을 벌린 채 침묵하는 그 상 앞에서 나는 습관처럼 질문을 던졌다.

 

나는 어제보다 나아졌나요? 이렇게 사는 게 정말 맞는 걸까요?”

 

성모상은 답이 없었다. 그저 말 없는 평온으로 존재할 뿐이었다. 땀을 닦고 정자로 향하던 길목, 풀숲 돌 징검다리에서 개미들이 긴 줄을 이루며 움직이는 게 보였다. 늘 보던 풍경인데 그날 따라 눈길이 멈췄다. 앞만 보고 걷는 저 작은 존재들. 줄을 벗어나지도, 멈추지도 않는 저 기계적인 성실함. 그 순간, 내 상상은 기묘한 대화 속으로 나를 끌고 들어갔다.

대열의 한가운데, 줄에서 살짝 비켜선 개미 한 마리가 고개를 들어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자세를 낮췄다. 그리고 그 작은 존재가 내 안의 목소리로 힘껏 소리치는 것을 들었다.

 

이렇게 사는 게 맞나요? 개미로서 행복하게 사는 법은 대체 뭐죠?”

 

나는 피식 웃었다. 그리고 대답하듯 생각했다.

 

이 조그마한 개미야. 너는 그냥, 그럴 환경이 만들어졌기에 태어난 거야. 그 안에 어떤 대단한 이유나 목적이 있었던 건 아니지. 자연적으로 곤충들의 시체가 많았거나 미생물들처럼, 너는 그냥 청소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되어서 태어난 거지. 네가 태어나고 나서 이유나 목적을 찾는 게 아니야. 너는 그냥 자연의 어떤 한 형태로 태어난 거야. 네 의지와 상관없이 말이지.”

 

개미는 충격을 받은 듯 몸을 부르르 떨며 나를 분노의 눈으로 쳐다봤다. 그런 개미를 내려보며 신이 된 기분을 느낀 나는 신나게 폭격을 이어갔다.

"행복이나 삶의 의미 같은 건 네가 평생을 걸고 나아가야 할 방향이지 목적지가 아니야. 내 안이 아닌 외부에서 대단한 정답을 찾으려 하지 마. 그렇지 않으면 너의 삶은 여왕과 무리를 위해 네 몸에 새겨진 본능에 따르는 살을 살게 될 거야. 책이나 유튜브, 누가 잘됐다는 방법을 따라가 봐도 결국 너에게 맞지 않으면 금방 지치게 되어 있어. 오히려 네 안에는 이미 너만의 리듬, 너만의 DNA, 너만의 성향 같은 고유함이 있어. 네가 좋아하는 것 ,끌리는 것, 기꺼이 고통을 감수하고 싶은 일들 말이지. 그 고유함을 찾는 게 먼저야. 매일 아침 눈 뜨자마자 느끼는 감정, 하기 싫은 일을 할 때 머뭇거리는 마음, 게임하다 지나간 밤에 남는 이상한 찝찝함 같은 거. 우리는 본능적으로 무엇이 맞는지 이미 알고 있어.

나처럼 장사하는 사람은 유동 인구가 많은 장소에서, 적당한 가격으로, 친절하고 정직하게, 밝은 인사로 손님을 맞이하고 그 손님이 다시 오게 만든다는 장사의 기본. 모르는 사람 있어? 누구나 알고는 있지만, 내가 하지 못하는 이유를 먼저 생각해 봐야 해. 그리고 그 답은 밖이 아니라 네 마음에 있어. 그게 바로 네가 가야 할 진짜 방향이야. 그런데도 매번 외면하고 있을 뿐이지.“

 

"그리고 하나 더 알려줄게. 무엇보다, 너는 이 우주에서 중심이 아니야. 작고 제한적인 두뇌를 가진 너를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세상은 늘 너를 배신하는 것처럼 느껴질 거야. 하지만 반대로, 네가 세상이라는 큰 파도의 리듬에 몸을 맡기면 무한한 가능성의 세상이 너를 돕고 있다는 걸 알게 돼.

비 오는 날 개미가 무작정 일하겠다고 나서면 그건 자기 중심적인 판단이야. ‘지금은 비가 오니까 잠깐 멈추자는 자연의 흐름에 맞추는 게 오히려 본능적이야. 고달프고 안 되는 걸 억지로 뚫고 나가려 하지 말고, 잠깐 멈춰서 때를 기다리며 큰 흐름을 느껴봐. 그러면 이상하게도 세상이 조금씩 맞춰지는 느낌이 들기 시작할 거야.“

 

신나게 개미를 조지다 내려다보니, 실망했는지 가고 없었다. 상상은 거기서 멈췄다. 흐릿했던 의식의 초점이 서서히 현실로 돌아왔다. 시간을 확인했다.

 

"아차! 오늘 공원에 행사 있어서 가게 문 일찍 열어야 하는데...“

 

나는 벌떡 일어나 집으로 내달렸다. 발밑에 보이지 않는 페로몬이라도 뿌려진 것처럼 익숙한 삶의 궤적을 향해 달렸다. 등 뒤로 성모상이 머금은 아침 온기가 뭉근하게 전해졌다. 굳이 돌아보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내일 또 똑같은 고민을 들고 이곳을 서성이더라도, 저 자비로운 정적은 말없이 나의 모든 것을 들어주리라는 것을.

 

아마도 나는, 조용한 대열에서 가끔 벗어났다가 다시 돌아오기를 반복하는, 먼지 같은 개미일지도 모르겠다.

 


 
   

강선명 님의 작품목록입니다.
전체게시물 4
번호 작  품  목  록 작가명 날짜 조회
공지 ★ 등단 전 합평에 통과한 작품 올리는 방법 웹지기 08-11 7769
공지 ★ 창작합평방 이용 안내 웹지기 02-05 96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