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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족의 자리    
글쓴이 : 박나영    26-10-28 18:07    조회 : 15

2014년 봄, 엄마 아빠가 이혼할 때 나는 증인으로 법정에 섰다.

“아버지가 집에 자주 들어오지 않았습니까?”

“어머니에게 폭력을 행사한 적이 있습니까?”

“외도한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몇 달 만에 만난 아빠는 피고석 의자에 앉아 있었다. 삼십 년 넘게 한 집에 살던 사람이 그 깊은 의자 속에 푹 묻혀 나를 바라보았다. 지나치게 높은 등받이의 의자는 아빠와 나 사이에 세워진 벽 같았다. 아빠는 내가 알던 모습보다 왜소했다. 법정의 조명 때문이었을까. 얼굴은 어두웠고, 어깨는 눈에 띄게 마르고 작아져 있었다.

내 입은 미세하게 떨렸다. 높은 천장에서 내려오는 에어컨 바람이 피부를 서늘하게 파고들었고 가끔 의자 끄는 소리가 들렸다. 증인석에 선 내 입으로 부모의 결혼을, 내가 속한 가족을 해체하고 있다는 생각에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집 안에 가둬두었던 비밀이 형광등 아래 낱낱이 드러났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손끝이 차가워지고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나는 책상 밑으로 손을 꽉 마주 잡았다.

 

 아빠와 가까웠던 기억을 찾아내려면 아득한 유년 시절로 한참을 올라 가야한다. 앨범 속 몇 장 남아 있지 않은 빛바랜 가족 사진. 배꼽이 홀랑 드러난 수영복을 입은 대여섯 살의 나를 커다란 손으로 감싸 안고 바라보던 아빠. 내가 기억하는 아빠의 눈빛이다.

건축업으로 자수성가한 아빠는 바깥일에 열심이었다. 각종 모임에 빠지지 않았고, 집보다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일주일에도 몇 번씩 저녁 모임이 이어졌다..남들 앞에서는 사이좋은 부부처럼 웃어 보이던 아빠였다. 하지만 모임이 끝나고 아파트 단지 입구에 들어서면 차 안은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아빠의 차는 현관 앞에 엄마를 툭 내려놓고는, 시동 소리만 요란하게 울리며 어둠 속으로 휑하니 떠나버리곤 했다.

불안했던 부부 관계가 언제 완전히 금이 간 건지 어린 나로서는 알 수 없었지만, 내 사춘기가 시작될 무렵부터 아빠는 집을 자주 비웠다. 어쩌다 한두 달에 한 번, 현관문 도어 록 소리가 나며 들어오는 아빠에게 나는 언제부터인가 인사하지 않았다. 인사는 어색하고 무용했다. 반면 내 본체만체하는 태도 뒤로, 오빠가 고개를 숙이며 꼬박꼬박 인사를 건네는 모습은 눈에 가시처럼 걸렸다.

 

 오빠의 방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컴퓨터 의자에 파묻힌 정수리와 무심한 등이었다. 방문을 열어도 오빠의 시선은 모니터에 고정되어 있었다.

가끔 내가 컴퓨터를 하다 고장이 나면 오빠는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네가 건드리면 다 망가진다니까!”

“내 거 건드리지 말라했지.”

의자에 앉아 있는 나를 밀어 젖혔다. 그때는 오빠의 눈이 나를 향했다. 핏발 선 눈동자는 날카로운 말보다 더 두려웠다.

나와는 데면데면했던 오빠였지만, 엄마와는 유별날 정도로 각별했다. 오빠는 다른 가족들에게는 함부로 하지 않았으면서, 유독 나에게만 벽을 쳤다.

 

 그 집 거실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던 낡은 4인용 가죽 소파는, 엄마의 또 다른 몸이었다.

서른 즈음 어느 날, 나는 방 안에서 한참 동안 문고리를 잡은 채 손톱 밑을 뜯고 있었다. 손톱 끝에서 핏방울이 비칠 때까지 머뭇거리다가, 어렵게 문을 열고 나왔다. 소파 깊숙이 묻혀 TV를 보던 엄마를 향해 말했다.

“엄마…. 50만 원만.”

나는 엄마가 돌아보기를 기다렸다.

TV 소리만 낮게 깔린 거실. 소파 가죽이 부스럭거리는 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엄마는 나를 보지도 않고 소파 속으로 더 파묻히며 차갑게 내뱉었다.

“없어. 아빠가 생활비 안 줘서 나도 없어.”

서운함이나 화조차 들어찰 틈이 없었다. 그저, 아, 역시. 그랬다.

푹 꺼진 소파 가죽의 주름 사이로 엄마의 어깨가 완전히 잠겨 있었다. 나는 그 앞에 한참 서 있었다.

 

 법정의 딱딱한 피고석에 앉아 있던 아빠, 컴퓨터 의자에 앉아 한 번도 나를 향해 돌아보지 않던 오빠, 소파 깊숙이 묻혀 등을 돌리고 있던 엄마. 나는 아무에게도 구해지지 않았다. 내버려져 있었다.

 

 시간이 흘러 우리는 결국 흩어졌고, 나는 새로운 가족을 만들었다. 한동안은 내가 가져보지 못했던 따스함 속에서 행복했다. 누군가가 나를 기다리고, 내 편이 되어주고, 별일 없는 하루를 함께 보내는 것이 이렇게 좋은 일인지 처음 알았다.

그런데 안전해질수록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어릴 적 차가운 소파와 무심한 의자 앞에서 숨죽이고 있던 아이가 뒤늦게 떼를 쓰듯, 한 번도 부려보지 못한 투정이 튀어나왔다. 왜 나를 진작 구해내지 않았냐고, 살면서 한 번도 질러본 적 없는 고함이 솟구쳤다.

“나를 봐.”

“나 좀 봐달라고.”

“나 좀 구해줘.”

남편은 그런 나를 붙잡으려 애썼다. 이해하려다가도 지쳤고, 나는 그럴수록 더 깊은 곳으로 가라앉았다.

 

 점심인지 저녁인지도 모를 시간, 방 안은 커튼이 쳐져 어두웠고 바닥에는 전날 마신 와인 병 하나가 나뒹굴었다. 술기운이 가시지 않은 채 하루 종일 침대에 처박혀 있었다. 거실에서 배가 고프다며 칭얼거리는 아이의 소리에도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쓴 채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어두운 방 안으로 작고 서툰 발소리가 다가왔다..

“엄마, 나 배고파……”

“…….”

“엄마?”

방문을 열고 들어온 아이에게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나 좀 내버려 둬!”

 

 어둑해진 밤, 딸이 꼼지락거리며 다가와 내 팔을 툭툭 쳤다.

“엄마.”

귀찮아서 대답조차 안 하자, 이불 틈새로 꼬깃꼬깃 구겨진 종이쪼가리 하나가 불쑥 들어왔다. 마지못해 손을 뻗어 펼쳐본 종이 위에는 삐뚤삐뚤한 글씨가 박혀 있다.

‘엄마 힘들죠? 내가 엄마를 지켜줄게요. 엄마, 영원히 사랑해요.’

 

 부끄러운 눈물이 쏟아졌다. 구겨진 종이 위로 눈물이 툭툭 떨어진다. 몸을 일으켜 아이를 안고 할 말을 다듬어본다.

“배고팠지? 미안해.”

아이는 웃으며 품에 더 깊이 안겨온다. 내 품에서 꼼지락거리다 이내 가만해졌다. 아이의 작은 등을 천천히 쓸어내렸다. 아이의 온기가 품 안에 가만히 머물러 있었다. 아이의 숨소리가 골라지고 방 안이 완전히 정적에 휩싸인 밤 10시.

도어 록 누르는 소리도 없이 현관문이 조용히 열리고 남편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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