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아줌마들이랑 스트레스 해소용 뒷담화를 하다보니 헐! 밥 시간이 되었다. 아직 난 뚫리지 않은 가슴을 안고 식순이가 되러 집으로 간다. 밥을 앉히고, 된장찌개를 끓이고, 생선을 굽고... 앗싸!! 주부24년차, 제트기처럼 빠른 손놀림으로 한상 차리고 한숨 돌리는 순간, 드디어 우리집 삼식이(정확히 말하자면 이식이다. 새벽 6시30분에 어김없이 아침을 쳐드셔야 되는)가 등장하시며,
“오 냄새 좋은데! 반찬은 뭐야?”
‘으윽, 저 삼식이!’
하지만 무엇이든 맛나게 먹어주니 봐준다.
서로의 하루일상을 이야기하며 우리는 저녁을 먹는데 요즘 주제는 새로 입원하신 멋쟁이 할아버지와 수수한 할머니의 이야기다.
나는 내심 오늘은 할아버지가 어떻게 하셨나? 하는 기대감에 남편에게 묻는다.
“할아버지, 오늘은 뭘 입고 오셨어?” 하고 이야기의 서두를 꺼내 봤다.
“돌아가셨어....”
난 요즈음 애들 표현처럼,
“헐..... 왜? 갑자기? 사고 났어?”
속사포처럼 왜 돌아가셨는지 물어댔다.
왜냐하면 할머니가 편찮으셔서 입원하셨고, 할아버지는 너무나 건강하였기 때문이다. 처음 병원에 두 분이 오셨을 때, 할머니는 그냥 수수한 차림이였고, 할아버지는 한눈에 보기에도 멋스러웠다고 했다. 아이보리색 바지, 하늘색 폴라, 그리고 멋진 잉크색 블루 벨벳 자켓... 한눈에 그려지는 멋 좀 아는 할아버지의 모습. 제법 교양도 갖추고...
할아버지는 매일 할머니 면회를 왔다고했다. 멋지게 빼입고, 할머니가 좋아하는 과일을 바꿔가며 사 오고, 할머니의 손을 꼬옥 잡고.
“에구, 빨리 나아야 당신 좋아하는 여행도 가고 맛난 거도 먹으러가지... 여봉! 아이 러브 유!” 라고 하며 할머니한테 나름 재롱도 떨고 좋아 보였다고 했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정성을 다해도 할머니는 시큰둥 별 반응도 없으시고 “그놈의 영감탱이” 하며 꼴도 보기 싫다고 한다고 했다. 남편이 듣기로는 할아버지가 젊으셨을 때 꽤나 할머니속을 썩이신듯하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사고는 아니고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단다. 나는 그 분을 직접 뵙지는 못했지만 왠지 마음 한쪽에서, 명절 때 길거리가 텅 비었을때 느껴지던 묘한 허전한 감정이 진하게 느껴졌다.
그후 남편이 회진을 갈 때마다 할머니는 방 입구 쪽을 멍하니 쳐다보고 계신다고 했다. “그곳이 춥지는 않소? 내가 없으면 허당인데...”하시며.
나는 삼십대 중반부터 우리 남편을 영감탱이라고 부른다. 그럼 주변에서
“남편이 기분 나빠하지 않아?”
라고 묻기도 하고(사실 왜 그렇게 부르기 시작했는지는 나도 기억이 안 난다), 자주 남편 뒷담화를 하는 옆집엄마는 재밌다고 하며 함께 자기 남편을 영감탱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럴 땐 묘한 동질감에 더 친근감이 생겨 저녁에 반찬을 넉넉히 해서 나눠주기도 한다. 내 동지라고 하며.
아침, 눈이 내려 길이 얼었으니 안전운전 하라는 아침 뉴스 앵커의 목소리를 들으며,
“탱이! 조심해서 천천히 운전하고. 잘 갔다 와!”
내 밥줄이자 인생의 든든한 버팀목한테 손을 들고 손가락을 움직이며 아침인사를 한다.
아니나 다를까, 현관문을 열고 뒤돌아보며 영감탱이 하는 말,
“싫어! 막 달릴거야!”
하고 개구쟁이 웃음을 하고는 재빨리 나간다.
“그래! 막 달려라 막 달려!!”
남편의 뒷통수에다 대고 소리치고는 창가로 가 밖의 도로를 내려다 봤다.
저녁, 나는 또 24년차 주부의 신공으로 스파게티를 만들고 와인잔을 내려놓는다.
그리고, 문 쪽을 바라보며,
“탱이, 영감탱이! 잘 갔다왔어?”
오늘따라 눈가가 촉촉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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