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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쌍계사 계곡에서 밀주를 추억한다    
글쓴이 : 정길순    14-02-13 20:28    조회 : 6,962
   쌍계사 계곡 다시수정1.hwp (28.5K) [0] DATE : 2014-02-13 20:28:59
 
쌍계사 계곡에서  밀주를 추억한다

                                                               정길순

광주친구들이 준비한  산해진미가 부럽지 않는 맛깔스런 김치와 나물로 쌍계사 계곡 입구에서 점심상을 펼쳤다, 엄마손 맛이 전수되어 세월과 함께 익어가는 내 친구들한테 추억 속에 맴돌고 있는 어머니의 향기가 베어나고 내 나이도 무게가 느껴진다. 쌍계사 계곡물은 청년의 기세로 흐르고, 맛난 식사를 한 우리는  용수철 같은 탄력을 받아  지리산 산행을 시작했다.
 
바로 앞에 있다는 산속 주막집은 시간 반은  오르고야 계곡물 소리만 요란한 곳에 묻혀  있었다.
도토리묵과 정상에 오르도록 마르지 않는 계곡물로 빚은 막걸리 맛이 일품이라며 무조건 주류를 사양하는 나에게 S씨는 지리산이 아니면 맛 볼 수 없는 30년 전통 밀주라며 한사코 들이민다 
설마 밀주일까? 밀주라는 말을 듣는 순간 반세기 전의 기억이 총알처럼 떠오른다.

우리 집 가세가 기울 대로 기울었을 때 엄마는 밀주 장사를 하셨다. 어느 날 밀주 단속반이 우리 집을 뒤지기 시작했는데 엄마는 마침 멀리 출타 중이어서 내가 그분들을 따라 다니며 누룩을 보관했던 방문을 열어주었다. 가슴 두근거리던 소리는 단속반 아저씨한테 들리는 듯 했고, 방안의 물건들은 만지기만 해도 누룩 가루가 우수수 떨어지는 터라 이실직고 할 수밖에 없는 위기였다 아저씨는 손에 든 유자 향 때문에 누룩 냄새를 놓친 것인지 아니면 더 정확한 증빙을 찾기 위함인지 방을 나와 마당에 있는 장독대로 향했다. 가장 큰 항아리 뚜껑을 막 열려는데 밖에서 일행 중 누군가 “어이! 가세! 내일 와야 할 것 같네 ” 하자 열던 뚜껑을 다시 닫고 들고 다니던 유자 향을 맡아가며  콧노래까지 부르면서 우리 집을 나갔다. 그분이 가신 뒤 뚜껑을 잘 닫으려는데 헌 옷으로 덮어놓은 항아리 안에는 누룩이 가득 들어 있지 않았던가?
아저씨가 되돌아와서 내 목덜미를 확 잡을 것 같은 무서움과 이미 방안에서 확인된 물증들로 들켜버렸다는 체념에서 오는 불안함과 두려움에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 수밖에 없었다 
밀주를 만들어 늦은 밤 식당 뒷문으로 쫒기는 듯 드나들며 밀주를 대시던 어머니의 애처로운 모습과, 여린 어깨에 밀주 통을 메고 따라다니는 오빠가 안쓰러워 가슴이 타들어갔던 설움이 겹치면서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그때의 일이 마치 거북 등처럼 두껍고 딱딱한 세월로 겹겹이 흘렀지만, 마치 어제 일인 양 밀주라는 말을 듣는 순간에 속살처럼 불쑥 떠오른 것이다. 
일제 시대에 우리 민족의 얼을 말살하려는 온갖 계책도 모자라 국민들의 피를 말리려는 주세령을 내려 가정에서 술 만드는 것까지 금지했던 만행 이었다 그 잔재를 해방이 되어 20년이 지난 때까지 민속주나 다름없는 막걸리를 왜 그토록 무섭게 단속했을까?  누룩을 들키지 않았던 것은 지금 생각해도  우리 집으로 는 로또 당첨  만큼이나 행운 이었다
하지만 단속반 아저씨는 너무나 명백한 현장을 왜 모른 체하고 나갔을까?
우리집을 덮어 주라는 사주라도 받기에는 우리 엄마 처지가 너무 열악했는데  이미 백골이 진토 되신  어머니에게 물어 볼 수도 없는 의구심은 지금도 내 머리 속에 맴돈다.
그때일이 내 인생에 면역이 되어 주었는지 통제 할 수 없는 수많은 운명의 불확실 앞에서  두려움으로만 여기지 않고  긍정에 체면 을 걸어 용기로  살아온  기반이 되 주었던 것 같다.
 막걸리는 그 옛날 술이자 밥 노릇을 했다. 농사일에 주린 배를 채워 주며 서민들의 애환을 달래 주었던 친구이기도 했다 .
우리 형제들은 구수한 맛을 술인지도 망각하고 오며가며  마시다가 잠이 들어 해거름에 일어나  아침인줄 알고 등교 했다가 망신당한 적도 있었다 친구는  아버지 새참거리로 막걸리 심부름 가면서 맛에 유혹되어 다 마셔버려 빈 주전자를 받으셨던  아버지의  허망한 애기며 , 배고파하는 아이들에게 밥 대신 술을 먹여 울다가 웃는 광경이 펼쳐지기도 했었다.
내 어머니 손끝에서 우러난 밀주 맛은 세월 속에 묻혀 추억의 향기로만 떠오를 뿐 지금은 어디에서도 그 맛을 찾을 수 없다.
고생만하시고 가신 어머니의 인생이  아픈 기억만  남아있는데  진한 밀주 맛 때문일까 그때의 일들이 그리움으로 다가 온다 . 
일찍 해가 떨어진 계곡에는 절벽을 타고 흐르는 물소리가 쏴~ 쏴~ 쏴 내 뒤를 따라오며 산천을 울리고 계곡에 숨어있는 산삼이 녹아내려  밀주를 빚으면 주막집에 모여들 등산객들의 문전성시를 기원해본다 .



박서영   14-02-13 20:39
    
뭐니뭐니해도 남도 음식이 최고예요. 우리끼리 말이지만요. 한자락 씩 풀어내는 정샘의 인생길  굽이굽이가 존경스러워요. 더불어 반성도 하게됩니다. 작은 불편함에  엄살 부린건 아닌지... 회개, 감사, 확신 !
다음  등단 타자는 정샘이껬죠?
     
정길순   14-02-14 18:30
    
서영샘 늘 감사해요 어디서나 친밀하게 응대해주시는
인격이라니  본받고싶어요
많은것을 느끼고 배우는 중입니다
그리고 30`40 대 못지않는 열정으로 오늘 을 살고있는것도 다 우리반 반장님 비롯
우리 총무님에 헌신적인 사랑이라 생각해요
늘 격려해주신 사랑 감사합니다
김정미   14-02-13 21:47
    
두려워서 우는 샘과 안쓰러운 오빠는 저의 눈물샘을 자극 하고 말았습니다.
이렇듯 나누고 풀어 낼수 있는 문우 들을 가진 우리는 행운 입니다.
아픈기억 , 좋은기억 모두 추억의 향기되어 그리움으로 물들겠지요.
 유자향 같은 샘의 삶도 아름 답습니다.
화이팅!!!입니다.
     
정길순   14-02-14 18:34
    
정미샘 이렇게 귀한 분들속에 격려 받고사는
삶이 위로를 넘어 의욕과 열정까지 겸하니 감격입니다
정미샘 글에서 환희를 느끼며 그렇게 유머러스하게 표현할수있는 정미샘의
재치와 센스에 늘 감동해요
샘들의 귀한사랑속에서 한수 한수 배워 갑니다
김데보라   14-02-14 11:52
    
꼬맹이가 두려워서 벌벌 떠는 장면...
안쓰러워 하는 오빠. 모두 그리운 시절이지요.
아픈 그 시절이지만 가족이 특히 엄마가 함께하니 행복한 날이었겠죠.

정샘의 단아하고 포근한 모습이 굴곡진 인생에서 얻어진 산물인 듯 하옵니다.
늘 강건하시고 건필, 문운 창대하소서!
정길순   14-02-14 18:52
    
데보라샘 인생을 허탄하게 나누며 살수있는 게 얼마나 복인지 요즘 절실히 느낍니다
생각 과 취미와 성향이 비슷한 즉 우리는 문학을 사랑하는 동지들 이라고해도 틀린 말이 아니죠
물론 그 안에 많은 내 공 들이이야 천차 만별 있겠지만 ........
지금 까지 어울리는 친교는 업무상 같이 가야하는 의무적인 교제 라면 또한 성도들 간에는 먼저믿는 자로  조심해야하는 우려와 부담으로 접한것도 사실이죠?
문학급우들 안에서는 왠지 마음이 통할것 같은 기대로 의지하게 됩니다
그레서 다른 사람의 글을  보고 머리를 맛대어 소탈하게 합평의목소리를 내는것은 다른 사람의글을 타산 지석으로 여기지않는 사랑이고 애착이며 관심이라 생각합니다
늘 격려를 아끼지 않은 관심과 사랑 감사 드리니다
이은하   14-02-17 11:47
    
추억은 아름다워라
누군가 그러더라고요 기억하고 싶은건 추억이고 잊고 싶은건 과거라고...
지나간날들은  아름답게 표현해 주신 샘의 글에서 연륜이 느껴지네요.
엄마가 딸을 걱정하는 마음 딸이 엄마를 걱정하는마음  남매의 사랑..
엄마이기에 세상 무서운것도 없고 엄마이기에  무슨일이든 지식을 위해서라할수  있었겠죠.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서로를 생각하는마음...
차고 넘치는 사랑을 확인하는글이네요.
     
정길순   14-02-19 13:08
    
그때 가슴에 아끼던 네 오빠 지금은  하얀서리가 내려앚은 65세나 되었건만
몸살이나도 동생(내)목소리 들으면 낳는다네요
너무 고생하고 자란 오빠라 지금도 생각하면 오빠의 삶이 안스러워요
형제가 앉으며 그때 그 시절 가난을 추억하며 눈물 흘리때 많아요 그래도 인정많은
울오빠있어서 위로받죠
엄마 없는 자리 오빠가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예쁜 은아샘 처럼 댓글도 넘 예뻐서 아름다운 눈물 방울 훔치며 댓글 올립니다
문영일   14-02-17 20:11
    
글 참 잘 쓰십니다.
재미있게 읽으며 눈물마져 날려고 하는군요.
새가슴같이 떨며 술을 담가 파셔야 했던 어머니,
술독을 어께에 메고 엄마를  따라 나셨던 오라비.
단속반이 들어닥쳐 망연자실했던 정 작기님.
단속반들이 그냥 간것도 사정을 알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어린시절의 추억을 
한 잔의 막걸리 잔에 부어 마실 수 있어 얼마나 좋습니까?
건필하세요.
재미있는 글 잘 읽고 갑니다.
정길순   14-02-19 13:00
    
문선생님 넘치틑 문장력으로 평해주시니
정신이 번뜩날 정도로 감동 입니다
함평으로 남겨주신 댓들이 졸작을 풍요롭게 한것같아 정말 감사합니다
후배에게 이렇게 따뜻한 댓글해주시는 문샘 앞으로 귀한 조언 부탁 드립니다
샘도 건필 하세요
공해진   14-02-20 21:07
    
어이구 이제 들렸네요.
몸속에 녹아 있는
사연!
누가 어찌 알리옵니까?
그것이 작품이고 엄마의 아름다움이고요.
파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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