퉁점골에서 나는 14년째 살고 있다.
분당 남쪽 태재 너머 신작로에서 퉁점골까지는 2.5킬로이다. 이 5리 남짓한 비좁은 포장도를 따라 처음 찾아오는 친구들은 중간쯤에서 실망하고 만다. 그리도 아름답다던 퉁점골 가는 길이 더럽고 각종 공장들로 산만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골짜기 끝자락이 보이면서 기분이 전환됐다고들 한다. 마을 입구 환경에 대한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들은 동구 밖 너저분한 공장들을 바라보며 '꽃밭에 불을 지른 격'이라 말하기도 한다.
방문객들은 누구나 집 안마당에 들어서면 마을 지형을 한 바퀴 둘러보게 마련이다.
퉁점골은 동남쪽 문형산을 머리로 하고 북쪽을 바라보며 누어있는 동서와우 (東西臥牛)의 형국이다. 긴 타원형의 마을 모양은 큰 암소의 거대한 배퉁이에 해당 된다. 산등성이를 따라 남서쪽으로부터 동쪽으로 그리고 북쪽을 한 바퀴 둘러보고 있으면 동서와우의 라인(line)이 살아난다. 이렇듯 퉁점골은 산줄기로 넓둥글게 쌓여 엄마의 품안을 그리듯 안온함으로 감싸여 있다.
"야! 참으로 아름답다. 별천지네..." "명당이야, 이곳에 이런 마을이 있었다니!" 친구들은 한마디씩 한다.
물론 그들의 찬사는 인사치레의 뜻도 포함 되었으리라. 그리고 그들이 살고 있는 도심 속의 환경을 비추어 상대적인 과장 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결같이 즐거워하며 돌아갈 생각을 잊고 있는 친구들. 그들의 밝고 신명나는 표정을 바라보며 동남 와우의 배퉁이가 주는 상서(祥瑞)로운 지기(地氣)가 그들의 기운을 북돋은 것은 아닐까 생각 해 본다. 술도 자기 주량의 몇 배를 마셔도 취하질 않는다고 설쳐댄다. 친구들과 함께하면서 퉁점골이야 말로 명당 마을이란 긍지를 가져 보기도 한다.
유년시절 고향에서 큰 몸뚱이를 우직하게 움직이며 논밭을 갈던 황소가 생각난다.
예로부터 농사짓는 일을 으뜸가는 생업으로 삼아 온 우리 겨레에게 소는 한가족처럼 소중한 존재였다. 소를 농가의 조상이라고 일컬어 온 것도 소가 없으면 농사를 짓지 못할 정도로 큰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이렇듯 소의 형상을 갖고 태동한 동남 와우의 퉁점골 형국은 소의 심상(心像)을 드러낸 풍수의 운을 보듬고 있으리라 믿어본다.
소는 농경민족인 우리네 정서와 일치하여 늘 정감 깊은 좋은 인상을 주는 가축
이다. 산야에 누워서 한가롭게 풀을 뜯고 되새김질하는 모습은 평화와 풍요를
한껏 느끼게 해준다. 퉁점골은 복잡한 성남시와 이웃하면서도 늘 고요 속에 잔잔한 인정이 흐르는 마을이다. 와우 배퉁이의 여유로운 율동과 같이 마을 사람들은 서로 한결같이 교감한다. 소의 꾸밈새 없는 순박함, 침착하고 무게 있는 되새김, 그리고 느리고 부지런한 움직임. 그러나 어쩌다 이런 유순함이 노 할 때는 성난 소리로 마을을 진동시켜 자기를 불사르려는 맥진(驀進)함 또한 믿음직스럽다. 그리고 종국에는 일모일골(一毛一骨) 자기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헌신한다.
오늘날은 낙농과 우육용으로 사육되고 있으나 그 느낌은 옛날이나 다를 바 없다.
마을 사람들의 움직임에서 소와 같은 면모를 본다. 우직 소박한 면면이 인간의
원초적 성정(性情) 그대로 싱그럽기 만 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도타와지는 믿음.
동서 와우형의 지기(地氣)는 피할 수 없는가 보다.
이곳은 사계절 모두 아름다우나 겨울 설경은 더욱 일품이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설경의 아름다움에 앞서 눈치기 걱정을 먼저 해야 한다. 교통이 두절되고 위험하기 때문이다. 밤새도록 눈이 오면 새벽부터 '드르럭 드르럭' 눈치는 소리가 신경 쓰인다. 나도 내 집 앞 도로의 눈을 치우고, 집이 인접하지 않은 도로는 이웃들과 함께 치워야 하는데 내 집 앞도 안 치우고 모르는 척하고 누워있다. 해 뜰 때까지 두문불출이다. 내가 똥배짱이 있는 것도 아닌 터에 이런 무딘 행동에 나도 놀랍다. 이래도 저래도 편안하다.
마을의 우리 집 위치는 암소 배퉁이의 약간 위쪽 심장 부분에 위치한다. 강심장의 지기가 흐르는 것은 아닌지.
해가 뜨고 나면 온 몸을 두텁게 싸매고 집 안부터 눈을 치면서 도로로 나간다. 눈은 이미 언제나 다 치워져 있다. 미안한 마음이 치워진 길 따라 그칠 줄을 모른다.
옆집 데레사 아주머니를 만났다.
"데레사 자매님, 미안 합니다. 제집 앞 눈도 다 치워 주셨네요"하면
"저도 지금 막 나왔는데 누가 눈을 다 치워버렸어요"라고 웃으며 대답한다.
그러나 눈은 데레사 아주머니가 주동이 되어 동네 사람들이 컴컴한 어둠을 헤치고 다 치워버렸음을 안다. 그래도 번번이 나에겐 모른 척 한다. 오히려 날씨도 추운데 혈압 관리 잘 하라고 걱정까지 해준다. 고맙고 미안해서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언 손을 부여잡고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했다. 무뚝뚝한 도림처사 (桃林處士)의 감사가 이런 것 아닐까.
어디에 연유한 행운(幸運)인지!
퇴직 후 제2 인생을 살고 있는 나에겐 퉁점골은 과분한 축복이다.
퉁점골에 정착한지 13년을 넘겼다. 환경의 변화는 성품의 변화로 이어지게
마련인가 보다. 이 곳 풍수가 주는 기운(氣運)에 흠뻑 젖어버린 듯하다. 도무지
걱정이 없다. 어딜 가나 사람은 걱정 없는 삶을 살 수 없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크고 작은 문제와 생로병사에 따른 고통과 근심걱정 속에 살게 마련인 것이 인생 아닌가.
그러나 일기와 계절의 변화에도, 크고 작은 가사에도 걱정됨이 없으니 무슨 조화(造化)인지. 다소 언짢음이 스며들면 산책로 따라 와우 배퉁이를 한 바퀴 휘 돌아오면 그뿐이다.
단지 아내만은 안달이다.
"당신 같이 아무 걱정 없이 느려빠진 사람 또 있겠어요!"라며 쪼아 대도 화 낼 줄을 모르니 이곳에 너무 취했나 싶다.
이곳 풍수가 내게 안겨 준 퉁점골 평화.
느긋한 성품의 소와 이 아름다운 자연에 따라 살면 그만인 것을...
이제 동서 와우는 우중충한 잿빛 옷을 벗어 버리고 보라 색 속살을 드러내며
화사한 연두로 갈아입을 채비를 서두를 것이다. 나도 퉁점골의 주인이 되었으니 이 곳에 어울리는 옷을 찾아보리라.
*도림처사(桃林處士) ; '소'를 달리 이르는 말. 주나라 무왕이 은나라를 치고 성새(城塞)였던 도림에 소를 놓아 기른 데서 온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