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미소
서청자
아기의 뜻 모를 미소에 마음을 뺏기고 찰나의 기쁨에 함께 웃던 하루의 시간을 저녁8시가 되어 애기와 딸은 자기 침실로 나는 방으로 왔다.
모유를 주기에 밤에는 아기가 울어도 엄마는 절대 나오지 말고 쉬도록 약속하여 애기 울음 소리에도 아는 척 데리러 가지도 못한다.
철저하게 합리적으로 낮에는 엄마가 봐 주고 저녁부터는 자기가 할 테니 절대 신경 쓰지 말라고 하였다. 밤까지 신경 쓰면 엄마도 체력이 안 되고 서로가 지친다고 옳은 말만 하였다.덕택에 저녁8시 이후는 해방감과 함께 내 시간에 푹 빠진다.
밤12시나 되어야 자는 사람이 저녁8시면 초저녁이라 내 방 작은 책장에 꽂혀 있는 <누군가, 향기 나는 이 새벽을 여는 이는-강숙려 수필집>. <우담바라3권-남지섭 장편소설>. <월간조선>등의 책들을 재미있게 읽었다.
한국에서 시카고 올 때 가져 온 <오두막 편지-범정스님>. <비(비) 그게 아니고....-전영화<금강경 코드임>, <행복한 공부-김정섭>의 책들을 조용히 딸집에서 잡념 없이 읽기 위해 가져왔다. 금강경을 몇 번 강의 들어도 해설 자체에서 이해가 어려워 항상 맴돌기만 하였다. 그러나 역시 뜻과 생각을 함께 곱씹어 읽어도 어느 시점까지 가서는 안개가 머릿속을 뒤덮어 구름 속을 헤맨다. 하긴 작가 김정섭 같은 훌륭한 분도 여러 해를 산속에서 공부를 하셨다는데 다른 분의 고뇌가 얽힌 책에서 공짜로 알고 싶어 하는 것은 안 되는 경우겠죠.
이론적인 글로써 표현이 안 되는 마음의 경지를 어찌 공짜로 받을 것인가. 시간이 갈수록 금강경해설을 읽어 보았다는 말조차 부끄러워 감히 말을 못하고 여기에 쓴 것도 쑥스럽다.
오늘은 무슨 책을 읽을까 생각하며 이층 계단을 밟으며 아기와 뽀뽀하고 내 방 침대
끝에 앉는 순간 너무 놀랐다. 소설에서 초승달이 나무에 걸렸다고 하면 꾸민 어귀의 뜻 정도로 생각 했다. 그러나 창문을 통한 내 눈에 한 폭의 그림이 들어 온 것이다. 황홀하고 붕뜬 기분에 “앗 정말 초승달이 나뭇가지에 걸렸구나” 하고 작은 신음을 하였다.
한적한 마을에 단풍나무 향나무 플라타나스 나무들이 고목이 되어 이층 유리창까지 나뭇가지가 올라와 있으니 마음이 함께 움직인다.
한쪽 큰 유리창으로는 초승달이 나뭇가지에 걸리고 바로 옆은 큰 향나무가 솜털을 얹은 것 처럼 눈으로 덮혀 크리스마스트리가 되어 한해를 장식하고 있었다. 엊그제 크리스마스이브로 그 많은 작은 전구의 찬란한 불빛들이 집 전체 모서리를 감고 돌아 예쁜 동화의 집이 되고 창가를 장식하여 아름다운 창틀에 그림을 만들고 집 앞 나무에는 반짝이는 오색 트리를 꾸미니 온 동네 집집마다 아름다운 불빛으로 동화 속의 한 장면을 연출한다.
맞은편 베란다가 있는 작은 유리창에는 단풍 나뭇가지가 방안으로 들어 올 것처럼 유리창 앞에서 하느적 거리고 가로등 불빛에 누른 단풍잎 두 개가 바람에 흔들흔들 손짓하며 매달려 있었다. ‘ 오 핸리의 마지막 잎 새’ 처럼.....
앞 쪽 잎사귀에 혼이 빠진듯 넋을 잃는 순간 눈을 감았다.
단풍잎에 남편 얼굴이 웃고 있었다.
“여보, 많이 힘들지?” 멍해져 “네, 오늘 손가락을 다쳤어요. 애기 목욕 시키다 엄지손가락이 겹질렸나 봐요. 손가락 힘이 없어요. 힘들어요.”
“아팠던 다리는 괜찮아?”
“한국에서 시카고 올 땐 오른쪽 무릎이 많이 아팠어요. 그런데 이층 오르내리다 보니 운동이 되어 그런지 오히려 나았네요. 한국에서 운동 부족이었나 봐요.”
걱정한 아들이 아픈 다리는 될수록 쓰지 말고 한 칸씩 내려오라고 한 말대로 하였더니 정말 나았다.
“그래도 당신은 아기 재롱을 볼 수 있으니 행복하지 않소”
나는 남편의 마음에 정신이 번쩍 들어 창밖을 보았다. 남편 얼굴은 사라지고 단풍잎만 가로등 불빛에 하느적 내 눈에 어른거렸다. 눈은 글썽이고 입가엔 씁쓸한 미소가 남았다.
침대 끝자락에 앉아 있는 내 모습을 다시 한 번 보았다. 그 동안 몸은 두고 영혼은 밖으로 나들이 갔다 온 것 같다. 모든 것이 마음에서 나오고 한 순간에 맴도는 것일 진데 ‘일체 유심조 (일체유조 )란 말이 새삼 떠올랐다.
아기의 미소를 떠 올리니 또 한 번 혼자 웃는다. 아기들의 미소는 묘한 마력인가 희망과 기쁨, 꿈과 사랑을 낳게 한다. 모든 생각이 한 장막을 마무리 한 듯 아기 미소에만 묻혀 훈훈한 내일을 위해 침대 속으로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