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교희
까톡, 까톡, 까톡. 스마트 폰으로 사진이 들어오는 소리다.
잔뜩 경직된 차렷 자세,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계급장을 받고 있는 아들의 모습이 광속 실시간으로 하와이에서 들어오고 있다. 가슴이 울컥한다. 검게 그을린 얼굴, 그동안 훌쩍 더 커져버린 듯한 아들이 많이 보고 싶다.
공부보다는 음악에 관심이 많았고, 그림 그리기를 더 좋아하고 장난기 가득한 눈망울을한 아들을 생각하니 픽 웃음이 났다.
지금도 기억이 선하다. 아들의 고3 시절, 휴일 어느 날이었다,
아들은 아침 일찍 공부하러 독서실에 간다고 했고, 나는 영감탱이랑 서현동 백화점에서 쇼핑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독서실에 있어야 할 아들이 저기서 자기 반 토막만한 친구랑 신나게 이야기하며 걸어오고 있다. 나랑 눈이 딱 마주쳤다. 지금도, 그 순간 아들의 그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두 눈은 왕방울처럼 커졌고 입술은 민망한 듯 알듯 모를 듯한 미소를 보이며, 186센티미터나 되는 큰 키로 두 손을 벌리며 “엄~~마~~아”하고 다가오는 아들의 얼굴이.....공부 안하고 돌아다니는 아들이 밉기는 커녕 귀엽고 웃겼다.
“너!!!”
“엄마~~~친구랑 책 살게 있어서요....” 반 토막 친구도 한 발짝 뒤에서 얼굴에 민망함을 잔뜩 가지고 서 있었다. 어이구 귀여운 것들. 내속에 스물스물 올라오는 이 장난기를 우찌할꼬.
아들 볼을 꼬집으며 귓속말로 “너! 좋냐? 이렇게 갑자기 엄마 만나니 반갑지. 반가움의 끝이 뭔지 집에서 보여주마.”하였다.
그래도 아들의 체면을 생각해서 “그래. 책 잘 사고, 잘 갔다 와라. 뭐 좀 먹을래?” 으흐흐, 가증스런 멘트까지 날렸다.
그뿐이었으랴. 교복 바지를 쫄바지로 입겠다며 고쳐오더니 275싸이즈나 되는 큰 발이 안 들어가 입고 벗을 때마다 바지랑 씨름을 하는지 땀이 흥건하다.
“아이고, 고소해! 너 공부랑은 베프(베스트 프랜드)아니지? 공부가 짐 싸서 가더라.” 내가 꼬아서 말하니,
“으응. 요즘 공부가 데이트 한다네. 고뇬이 나를 버리고 딴 놈이랑 베프하기로 했데” 라며 내 속을 뒤집었다.
당연히 대학 입시에 실패를 하였고 한동안 우울해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해맑은 얼굴로 미국군대(영주권자라 지원이 가능했다)를 가겠다고 했다. 재수해도 원하는 학교를 가기는 어려울 것 같다며 적성에 맞지 않는 학과를 가는 것보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찾아보는 시간을 갖고, 부모님 도움 안 받고 군대에 가서 실전 영어를 배우겠다고....
“뭣이라? 내가 뭘 잘못 들었나? 대학이 아니라 군대라고? 남들은 일부러도 안가는 군대를 간다고? 더군다나 세계 모든 나라 전쟁을 다 참견하는 미국 군대를?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어떻게 하고? 너 미쳤냐?”
난 목숨 걸고 반대했다. 아들의 마음을 되돌려보려고 눈물, 콧물로 탄천에 홍수도 냈고, 젊어서 실패는 성공의 필수요건이라고 속에 없는 소리도 밤낮으로 했건만 아들은 요지부동이었다. 일주일을 말도 안하고 지내기도 했다.
남편과 아들은 아버지와 자식으로, 인간대 인간으로,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남편도 아마 인생 최대의 힘든 대화와 결정이었으리라. 그리고는 미군에 지원하는 걸로 결론을 내고는 나한테 의견을 묻는 척 통보를 했었다.
머릿속은 강력한 진공청소기가 지나간 듯 하얗게 텅 비어져,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들을 안고 울음을 터트리는 것밖에는 없었다.
첫 일 년은 교육기간이었다. 영어 학교 4개월, 기초 군사학교 3개월, 기계정비기술학교 5개월 등. 일년이란 시간을 친구들이랑 캠핑간듯 눈에 보이는 듯하게 훈련 생활을 실감나고 재미있게 편지로 보내오고는 했다. 그렇게 훈련을 마치고 하와이에 자대 배치를 받고 혼자 공항에 가서 “엄마! 햄버거 삼단 콤보 사먹을 거야. 아이스크림도!!”하며 휴양지 하와이로 배치 받았다며 좋아하던 목소리가 귓가에 남아 있는다.
부대 도착하던 날, 자신이 아프가니스탄으로 파병 예정조라는 걸 알았단다. 식구들 걱정 할까봐 말도 못했고, 혼자 그 무거운 짐을 지고 마음고생하다 몇 개월 후 알려 왔다. 처음으로 겪는 어려운 일이었을 텐데, 무서웠을 텐데... 혼자 언어도 편하지 않은 낯선 곳에서 파병 결정을 처음 들었을 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얼마나 무섭고 두려웠을까를 생각하면 삼 년이 지난 지금도 코끝이 찡해지며 가슴이 저려온다. 다행히 미국이 경제가 어려워 파병이 취소되었다. 할렐루~~야!
가장 이상적인 자식 사랑은 놓아주는 것이라고 하는데, 나는 떨어뜨리기는 커녕, 내가 젖은 낙엽(내 친구는 남편이 젖은 낙엽이라는데...ㅎㅎ)이 되어, 아니 젖은 낙엽이 마를까봐 분무기로 물을 뿌려가며 아들에게 딱 붙어있다.
고등학교 졸업할 때 까지만 해도 몇 시에 똥 싸는 것까지 알아야 했고, 애들도 당연히 똥의 형태까지 알려 주었다.
하지만 똥이 어떠한 형태로 나왔던지 간에, 때가 되면 세찬 물과 함께 쏴~~~아하며 소용돌이 치고 자기의 갈 길로 가는 것처럼, 우리 애들도 지금 소용돌이치고 있다.
다음 달에 일상적인 파병 훈련을 간다고 연락이 왔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나는 요즘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이야기에 내 귀가 사막여우 귀처럼 열려 있다. 아들의 빈 책상을 청소하며,
‘내가 언제부터 세계 평화주의자가 됐지! 내 마음의 평화도 못 잡는 주제에...’
하지만, 아들이 제대를 할 때까지 세계 평화에 지대한 관심을 가져야 되는,
‘아이고! 내 팔자야’ 하고 있다. 아들이 공군 장교로 지원해본다고한다. 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