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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소리 자연소리    
글쓴이 : 박승해    26-04-27 20:07    조회 : 16

바람소리 자연소리

박승해

 

위이이이이-

차창을 두드리는 바람소리에 운전석의 창문을 내리고야 말았다.

오늘은 미세먼지가 많은 날이라 창문을 닫고 마스크를 하라고 했지만 그게 무슨 대수인가. 차창 밖 바람소리가 이리도 아름다운데.

핸들을 틀어 고속도로를 벗어났다. 공항이 있는 영종도에 가는 길이다. 일찍 출발했으니 시간의 여유도 있다. 공항고속도로를 벗어나 아라뱃길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휴일 아침 도로도 휴일이다.

가끔 한가로운 국도를 달릴 때가 있다. 공연히 아무런 목적도 없이 마음이 가는 대로 시간을 던진다. 오늘 내가 그렇다. 부천 방향으로 돌아서 길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예전에 몇 번 가 보았던 뱃길 가에 있는 모닝빵이 맛있는 작은 카페도 생각이 난다.

 

봄이 오고 있다.

봄바람은 엄마의 실크 스카프처럼 더 부드러운 따스함이 있다.

가끔 부드러운 감촉에 정신이 팔릴라 치면 봄볕의 그늘에 숨어있던 한기라는 놈이 얼굴을 드러낸다. 살랑이던 봄은 차가운 공기를 만나면 갑자기 구멍이 숭숭한 삼베의 뻣뻣함으로 돌변한다.
그다지 나쁘지 않은 정신이 맑아지는 차가움

잠깐 마음이 혼란할 때 어깨를 세우게 하고, 다시 옷깃을 여미게 한다. 그래서 봄바람은 정신을 맑게 정리해 주는 지혜의 바람이기도 하다.

삶은 명확하지 않은 난제의 연속이다. 가끔은 사방이 뿌연 안개 속에서 버드나무 가지가 흔들리는 거 같은 혼란을 느낄 때가 있다. 차창을 건드리는 바람처럼 이리로 저리로 때론 뒤돌아 가기도 하는 불확실의 구슬을 한 개씩 주으며 가는 기분이다. 삶은 때론 시냇가의 작은 돌멩이가 되기도 하고, 오솔길의 노란 봄꽃이 되기도 한다.

흐드러지게 봄을 환영하는 산수유는 여인의 속눈썹 같은 인내가 있다. 봄의 짧음을 한탄하며 쉽게 몸을 날리는 벚꽃이나 조금만 더우면 바로 초록으로 옷을 갈아 입어버리는 개나리와는 다르다. 눈 깜박임도 없이 인내하며 봄의 끝자락까지 지켜낸다.

 

어렸을 적 끝도 없이 긴 논둑길을 동생을 업고 가시던 어머니. 한 손에는 막걸리 주전자를, 다른 한 손으로는 머리의 새참 소쿠리가 떨어질 새라 신경쓰며 연실 동생을 치켜올리며 걸어가던 어머니의 단단한 삶을 기억나게 한다. 그 당시에는 너무도 당연했던 대부분의 여자들의 삶이었다.

무엇이 그토록 억척스럽게 끝도 없는 책임을 이고 지고 가도록 했을까. 어떤 숙명이 여인에게 그런 큰 희생을 가능하게 했을까. 엄마의 일과는 밤 늦게까지 등잔불 아래에서 바느질을 마무리 하고야 끝났다.

바람이 불고 봄비가 내려도 끄떡없이 그 자리를 지켜내는 아담하지만 단단한 산수유가 가볍게 흩날리는 벚꽃비 아래서 더 아름답게 보인다.

입에서 한번 나온 말은 네 것이 아니란다

말을 하기 전에 세 번은 생각하렴
1년에 제사를 어림잡아 10번 정도는 치렀던 아들 귀한 집안의 외 며느리였던 어머니는 집안의 대소사에는 전쟁에 나선 장수처럼 거침이 없었다. 아버지의 형제가 없으니 5촌 당숙도 우리에게는 가까운 친척이었다. 힘든 시집살이는 덤이었고 집안일은 모두 어머니의 몫이었다.

제삿날이 되면 밤12시에 지내는 제사상차림과 식사까지 며칠 전부터 음식과 그릇 제기들이 대청마루에 펼쳐진다. 당숙모들과 누군지도 잘 모르는 먼 친척들을 전두지휘 하셨다. 연필로 꼭꼭 눌러 쓴 엄마의 지휘노트는 깨알처럼 빼곡했다.

 

오늘 나는 봄바람의 부드러움과 맑은 냉정함이 필요하다.

차창 밖으로는 아직 순을 내지 않은 커다란 메타세콰이어 빈 가지가 지난 겨울의 낙엽 한 줌을 그대로 간직한 채 세상을 내려다 보고 있다. 그리고 잘 도열된 군대의 병사마냥 푸릇한 겨울마늘이 언덕까지 이어진다. 봄이 바람소리를 내고 있다.

 

이제 며칠 있으면 저 언덕은 노랑과 핑크로 초록 바탕 위에 봄의 수채화 빛을 한꺼번에 불어버리지 않을까.

빛의 요정은 바쁘게 연두빛을 만들어 내고 있다. 바람은 차창을 지나 산 중턱 밭일을 하는 농부의 땀을 닦아준다.

자연의 시간은 우리에게 축복의 기다림을 선물한다. 나의 작은 고민들은 저 멋진 자연 안에 답이 있다는 걸 안다. 갑자기 찬 바람이 뺨을 세차게 때리고 지나간다.

 

어릴 적 저런 언덕위로 강아지풀이나 버드나무 이파리 등 아무 풀이나 말아서 입이 파래지도록 풀피리를 불며 뛰어 다녔었다. 들판을 달릴 때 몸에 부딪치는 바람소리는 삘리이이풀피리 소리와 함께 음악이 되었다.

음악은 나의 몸이 바람에 부딪치는 바람소리였다. 나는 자연과 콜라보였다.

세상 속 자연과의 합주

이 시간은 혼잡한 일상 속에서 감사의 마음을 찾아내는 기다림의 시간이다.

감사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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