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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운 언니    
글쓴이 : 홍수야    25-01-07 12:53    조회 : 3,601
   수필3(그리운 언니)완성본.hwp (30.5K) [0] DATE : 2025-01-07 12:53:34

                       그리운 언니

                                                         홍 수 야

추석을 며칠 앞둔 날 밤중에 부산 사는 친정 큰조카가 카톡으로 유튜브 링크 하나를 보내 왔다. 이모! “우리 엄마 찾아봐요” 뜬금없이 이게 무슨 이야기인가? 그 이야기를 옆에 앉아있는 아들한테 하니형님 엄마를 왜 우리 엄마한테 찾으라고 하지?” 라고 한다. “조카야~ 내 휴대폰 화면이 너무 작아서 잘 보이지 않네. 내일 낮에 큰 화면으로 한번 볼게라는 답장을 보냈다

 다음 날, 매스컴에서는 또 최장 폭염을 기록했다고 떠들어 대고 있다. 거실 창가로 보이는 갈산에는 초록색 나무들이 물에 젖어 힘겨워 하고, 계절이 무색하게 후덥지근한 공기에 싸인 비가 나뭇잎을 사정없이 때리고 있다, 울적한 기분을 안고 노트북을 켰다. 노트북에 카톡이 연동되어 있기에 어려움 없이 조카가 보내준 유튜브 영상을 넘기며 보기 시작했다. ‘큰언니를 볼 수 있겠지하는 생각을 하니 내 가슴과 손가락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마주한 영상엔 후줄근한 앞치마를 걸치고 장사를 하는 큰언니가 보인다. 그리고 얼굴을 살짝 옆으로 돌리는데 너무 곱고 예뻤다. 바로 조카에게 전화를 걸어 언니가 왜 저렇게 예쁘냐! 했더니, “이모! 그 당시 32세의 엄마잖아요라고 한다. 화면 윗부분에 1982년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몇 년 동안 언니는 모진 병과 투병을 하다 만39세에 돌아가셨다

 목소리를 가다듬고 조카야 너는 우리 친정에서 첫 아이라 왕자만큼 귀했고 예뻐했다는 것 잊지 말고, 세상에 나가 기죽지 마라하며 진심을 실어 당부하였다. 조카는 이모들이 얼마나 예뻐해 주셨는지 다 알고 있다고 답을 한다.

 언니가 떠나던 날, 어린 조카가 자기 엄마의 창백한 손을 당기며 제발 눈 감지 말라고 울어대던 모습이 지금도 선하다. 이렇게 떠나면 돌아오지 못한다는 것을 조카는 알기는 했을까? 아직 피어나지도 않은 길가의 꽃봉오리처럼 어리디 어린 두 아이를 남겨두고 갈 때의 그 심정은 어땠을까? 나는 언니장례를 마친 후, 인형 하나를 사서 여자아이인 작은조카에게 밤에 꼭 안고 자라고 다독여 준 후에 서울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언니는 7남매 중 맏딸로 태어나 평범하게 살다가 시집을 갔는데 굶기를 밥 먹듯이 하는 집이었다. 그때부터 시장에서 반찬을 진열하여 조금이라도 더 팔아야 된다는 마음으로 가계를 꾸려 나갔다. 형부는 순하기만 했고 생활력이라고는 눈 닦고 보아도 찾기 힘든, 허울만 그럴 듯한 가장이었다.우리 친정집은 농사를 제법 지었으나 시집간 딸에게 출가외인이라는 굴레를 씌워놓고 쌀 한 가마니 보태주지 않던 인정사정없는 가문이었다. 그 와중에 줄줄이 커가고 있는 동생들을 챙기느라 장녀 스트레스가 태산 같은 무게로 여린 어깨를 눌러댔을 것이다. 쉬어가면서 좀 편히 살았다면 몹쓸 병 앞에 이렇게 맥없이 무너져 가지는 않았을 텐데언니는 간경화라는 엄청난 질병을 진단 받았을 때에도 적극적인 치료를 하기보다 생활전선에서 사투를 벌이는 것이 급선무였다. 반찬을 조금이라도 더 팔기 위해 손이 불어터지도록 일했으며, 고등학생인 내가 방학이면 부산으로가 입시학원을 다녔는데, 학원공부를 마치면 틈틈이 조카들을 업혀 주면서 장사가 끝날 때까지 돌보게 했다. “시간아 빨리 가라하고 속으로 중얼거리며, 가게이름 외우기, 아주머니들 얼굴 생김새 구별하기, 머리모양 파악하기 등 별의별 방법으로 시간을 때우기 위해 시장을 몇 바퀴씩 돌기도 했다. 지구 한 바퀴 도는 것보다 더 지겨웠다. 내 마음을 헤아린 언니는 따뜻한 어묵을 손에 쥐여 주기도 했다. 배가 고프기도 했던 나는 허겁지겁 먹었다. 난 지금도 어묵을 사면 반찬으로 만들어 지기 전에 옆구리를 사정없이 찢어서 씹어 먹기도 한다. 그런데 맛있어서 먹기보다 아프고 쓰린 추억을 떠올리며 먹어 보는 것이다.

 여자 조카가 결혼식 전날에 나를 보며 난 엄마를 13년밖에 못 봐서 많이 속상하고, 이런 날 엄마가 더 보고 싶다면서 울음을 쏟아내기도 했고, 외가 가족들의 즐거운 행사가 있는 날엔 큰조카가 빼놓지 않고 참석하여 모 가수의 홍시라는 노래를 부르며 외할머니와 이모들 눈시울을 붉히게 만들었다.

  몇 년 전에 아카이브 공부도 했는데, 세월이 아무리 흘렀어도 누군가에게 실감나고 반가운 재회의 시간을 제공하는 자료가 된다는 것을 미처 몰랐다. 이번 추석은 조카가 보내준 귀한 영상(1982년 부산의 ㅇㅇ시장 둘러보기 아카이브 자료) 덕분에 어린 시절 큰언니와의 회색빛 추억을 떠올리며, 보고 싶은 언니를 불러볼 수 있어서 참 좋다. 시간이 무료할 때 가끔씩 영상을 보며 조카들 잘 자랐으니 걱정 안 해도 된다고 언니에게 이야기도 해준다.

 


박정옥   25-01-12 16:50
    
언니를 그리워하는 절절한 마음이 잘 나타나있어요. 그리움은 사랑이랍니다.
홍수야   25-01-19 22:46
    
선생님 합평을 듣고 더 열심히 하겠다는 힘이 생깁니다.
문경자   25-01-21 22:25
    
어묵을 사정없이 찢어서 먹었다 가 가슴에 와 닿아요.
열심히쓰시는 글이 한층더 돋보입니다.
앞으로 다른 글을 기대해 봅니다.
홍수야   25-01-21 22:52
    
선생님 열심히 배우며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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