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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 달리기    
글쓴이 : 백승희    25-12-04 13:59    조회 : 5

                                                       

                                                          오래 달리기

 

                                                                                                    백승희

 

승희님은요?”

저요? 어휴~ 저는 달리기 못해요! 진짜 못 뛰거든요.”

 

내가 중학교를 다닐 때는 체력장이라는 시험이 있었다.

100m 달리기, 멀리 던지기, 제자리 멀리뛰기, 윗몸 일으키기, 오래 매달리기, 그리고 오래 달리기!

이렇게 6개 종목을 실시해서 점수별로 특급에서 5급까지를 매겼다.

나는 다 못하는 편이었지만 특히 오래 달리기는 젬병이었다.

체력장을, 체력장에 오래 달리기를 넣은 사람을 얼마나 증오했던가.

달리기를 왜 두 번씩이나 넣었냔 말이다, 안 뛰고도 할 수 있는 운동이 얼마나 많은데! 그래도 꼭 뛰어야만 한다면 높이뛰기를 넣었어야지 말이다!!

맨 마지막으로 오래 달리기를 할 순서가 되면 반 아이들과 선생님은 자동으로 나를 선두에 세웠다. 선생님이 앞에서 나를 독려하고 친구들이 뒤에서 나를 받쳐주겠다는 갸륵한 배려였지만 운동장 한 바퀴를 채 돌기도 전에 내 속도를 견디지 못한 친구들이 모두 다 나를 앞질러 달려나가 버리고 시간 측정이 무의미하게 한참이 지난 뒤에야 헉헉대며 뛰어서 들어오던 나였다.

그때부터였던가... 어쨌든, 나는 긴 다리로 성큼성큼 걸을 뿐 웬만해선 뛰질 않는다.

 

게으른 겨울이 뭉그적거리며 남아있던 3월의 어느 날.

방송작가교육원 동기들이랑 때이르지만 한강공원에 돗자리를 펴고 둘러앉았었다. 무릎담요를 하나씩 끼고 덜덜 떨면서.

예능 작가로 일하는 동기 하나가 곧 러닝 예능 프로그램에 들어간다고 했었고, 누구는 러닝의 재미에 푹 빠져 러닝크루에 가입했다고 했었고, 누구는 자기도 할 건데 어떤 러닝화가 좋은지 어떤 운동복이 더 이쁜지 물어보느라 여념이 없었고, 낄 말이 없어 뒤로 쭉 빠져있는 내게 동기 하나가 물어왔던 것이었다.

승희님은요? 라고. 그리곤 그녀는 말했었다.

에이~ 못 뛰는 사람이 어딨어요? 안 뛰고 싶은 거겠지!“

겉으로는 웃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소리쳤었다.

오죽하면 안 뛰겠니? 나도 남들처럼 뛰고 싶다고!!‘

 

집 가까이 탄천이 있어 시간이 날 때마다 자주 걷는다.

그날도 미금역까지 걸어갔다 올 작정으로 집을 나섰다. 요즘 들어 탄천이 사람들로 붐비는 걸 보며 러닝이 유행은 유행이구나 생각하며 걸었다.

걷다가 조금 빨리 걷다가 더 빨리 걷다가 걷는 듯 보이게 뛰어봤다.

신기하게도 뛰어졌다! 재빨리 주위부터 살폈다. 그러나 아무도 내게는 관심이 없어 보였다. 나를 지켜보는 사람도 없고 나를 뒤따라오는 사람도 없다. 정해진 시간도 없고 골인 지점은 더더군다나 없다.

그냥 달렸다. 계속 달렸다. 내 의지로, 내 속도로.

동기 말이 맞았다. 못 뛰는 사람은 없다. 이런저런 이유로 안 뛰고 싶은 사람만 있을 뿐.

심장이 요동치고 온몸에서 땀이 배어 나오는 게 느껴졌다.

오리를 지나고 미금을 지나 정자까지 매우 매우 느리지만 오래 오래 달리기를 했다.

억울하다! 내가 오래는 잘 달린다는 사실을 35년 만에 알게 되다니...

그 시절의 오래 달리기는 이름이 틀렸지 않은가!

고작 운동장 4바퀴, 800미터를 달리는 거면서, 또 시간을 그렇게 야박하게 줬으면서 오래 달리기라니

중간빨리 달리기정도면 딱 맞겠다.

 

그새 성질이 급해진 겨울이 눈곱도 못 뗀 채 나와버린 10월에 교육원 동기들과 다시 만났다.

이번엔 따뜻한 실내에서.

동기의 러닝 예능은 대박이 났고 시즌2를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누구는 달리기가 시들해졌다고 했고, 누구는 이제는 추워져서 달릴 수 있으려나 걱정했다.

그리고 나는?

나는, 빨리 집으로 돌아가 오늘은 새로 산 경량 패딩을 꺼내 입고 나만의 오래 달리기를 폼 나게 해야지 하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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