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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문正文    
글쓴이 : 전혜숙    26-01-02 16:00    조회 : 980
   정문正文 (전혜숙).hwp (139.5K) [0] DATE : 2026-01-02 16:00:44

정문正文

 

전혜숙

 

아버지 이름은 정자 문자이다.

할머니가 아버지 위로 딸 셋을 낳고 아래로 남매를 잃은 뒤 7년 만에 어렵게 얻은 귀한 아들이다. 집안 어른들이 장손인 아버지가 오래 살아 가문을 일으키길 원해서 용하다는 작명가한테서 얻은 이름이다.

 

증조할머니는 남동생이 신기하고 예뻐 가까이 오려는 손녀들을 근처에 얼씬도 못 하게 했다. 혹시 나쁜 병균이라도 옮아 귀하디귀한 손자를 잃을까 걱정이 되었다. 그 후 아버지 아래로 남동생 둘과 여동생 둘을 무탈하게 보게 했으니 모두 어여쁜 장손 덕분이라고 했다.

아버지는 집안 어른들의 기대대로 총명했다. 살미초등학교 졸업생 중 명문인 충주중학교에 입학하는 몇 명 안 되는 학생으로 학교장상도 받았다. 그 시절엔 중학교 입시 경쟁이 대단해 방과 후에 담임선생님 지도하에 특별 수업을 했다. 사십여 명이 밤중에 한 집에 모여 공부했는데, 할아버지는 아버지가 공부하는 것이 못마땅해 공부방에 갈 때마다 긴 장대를 들고 쫓아갔다. 할아버지가 무섭고 야속했지만, 공부 욕심에 어쩔 수 없었다.

없는 살림에 하는 공부가 귀해 걸어 다니면서도 영어 단어를 외웠다. 열여섯의 셋째 누나는 동생 학비를 대려고 중석 광산에서 일 년 동안이나 머리 짐을 이고 돌을 날랐다. 중학교는 어렵게 졸업했지만, 무능한 할아버지로 인해 급격히 가세가 기울어 고등학교 진학은 꿈도 못 꾸었다. 평소 술과 화투판에 빠져 있던 할아버지를 찾으러 밤중에 산길을 가던 할머니가 호랑이를 만나 놀라고 말았다. 그로 인해 앓아누웠고, 그마저 있던 전답이 할아버지의 노름빚으로 하나둘 사라져 버렸다.

 

얼마 뒤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8남매의 맏이로 실질적인 가장이 되었다. 다행히 아버지를 끔찍이 여겼던 증조할머니가 있어 아버지에게 많은 힘이 되었고, 장손이 하루빨리 결혼해 안정을 찾길 원했다. 중신아비는 미혼인 시누이 셋과 시동생 둘, 그리고 홀시아버지와 시할머니가 있다고 하면 혼인이 성사되기 어려울 것 같아 시누이와 시동생 하나씩은 없다고 했다.

군대에서 휴가를 나와 혼례를 치른 아버지는 이튿날 20개월 복무를 마저 하러 떠났다. 증조할머니는 근심 많은 손자에게 정문아, 이 할미는 너 제대하는 거 보고 눈감을 테니 걱정하지 말아라. 그리고 할미가 죽으면 자손도 많이 보고 더 잘 살 겨라고 했다. 엄마는 신랑도 없는 층층시하 낯선 시집에서 매일 눈물로 밤을 지새웠다. 평소 신기神氣가 많았던 증조할머니는 평소 말한 대로 아버지가 제대한 다음 달에 돌아가셨다. 그리고 어머니에게도 바로 태기가 있었고 슬하에 4남매를 두었다.

중학교 1학년 한문 시간에 부모님 이름을 한자로 써 오는 과제가 있었다. 선생님은 아버지 이름을 보시더니 너희 아버지는 공부해야 하는 이름이구나! 아버지는 뭐 하시냐?” 물었다. 그 당시 아버지는 시골에서 청주로 막 올라와 여러 가지 일들을 전전하고 있었다. 일을 마치고 늦게 귀가한 아버지에게 이 말을 꺼내니 멋쩍은 듯 공부는 무슨하며 말끝을 흐렸다. 아버지의 복잡한 마음이 전해져 이내 나도 슬퍼졌다.

결혼 전에 아버지가 가끔 아직도 꿈꾸면 교복 입고 학교 가는 꿈을 꿔. 학교 그만두고 농사지을 때 교복 입고 학교 가는 친구들이 참 부러웠어.”라고 말했다. 다시 공부해 보라고 하니 쓸쓸히 웃기만 했다.

 

아버지는 이름대로 원하던 공부는 하지 못했지만, 평생 누구와 심하게 다투는 걸 본 적이 없다. 지는 게 이기는 거라고 했다. 이기지 못한 날은 힘든 노동을 술로 풀어 가족들에게 근심을 주기도 했다. 부지런하고 책임감 강해 숙취를 핑계로 한 번도 늦게까지 자리에 누워 있지 않았다. 날이 밝기 전에 쓰린 속을 안고 흙 묻은 신발과 함께 일터로 나갔다. 예전엔 권위적이고 무서운 아버지가 싫었지만, 지금에서야 가장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 조금은 안다.

띠라 전국 어디든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로, 밤낮으로 일만 하였다. 누구보다 교육열이 높아 네 자녀 모두 국립대를 보냈고 돈벌이 잘하고 있는 것에 높은 긍지를 갖고 있다. 게다가 근검절약해 당신의 노후 준비도 잘 마쳤다. 이십여 년 전 추락 사고 후 척추골절을 시작으로 대장암과 최근 혈액암 투병까지 세 번의 큰 병마와 싸웠다. 고생하다 살만하면 병이 난다더니 작년에 평생 하던 운전일을 그만두자 갑자기 기력이 약해졌다. 일이 특기이자 취미인 아버지는 무직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했다. 인생에 후회스러운 게 없냐고 물어보면, “후회는 없어. 일도 많이 하고하면서 이내 그만하면 잘 산겨.”라고 한다.

 

아버지는 수많은 인생의 고비를 만날 때마다 도망가지 않고 정문正門 돌파를 택했다. 비겁하게 후문後門을 찾지 않았다. 오른손 검지 한마디를 산판山坂에서 벌목을 하다가 잃고, 약속한 임금을 받지도 못했을 때도 누구도 원망하지 않았다. 업자가 아버지보다 더 어려운 사람이어서 괜찮다고 했다. 아버지의 희생에 대해 송구스러워하면 자식들을 위한 고생은 고생도 아니라고, 즐겁게 일을 했다고 한다. 열심히 일하던 그때가 좋았단다.

 

이름은 그 사람을 대변한다. 우리는 자신의 이름 석 자를 위해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국 자신의 이름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은 책임감이다.

아버지는 오랫동안 가볍지 않은 가장의 짐을 혼자 지느라 외로웠을 것이다.

한 가족으로 삶의 무게를 함께 이해하고 서로 나누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서로가 더 따뜻해질 수 있었을 텐데.

아버지와의 시간이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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