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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만나자, 엉국에서    
글쓴이 : 김은비    26-03-09 09:40    조회 : 516

다시 만나자, 엉국에서

 

김은비

 

동화 속 이야기처럼 현실에서도 반짝이는 꿈과 행복으로 가득한 세상이 있다면 어떨까?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런 세상하고는 영 거리가 멀다.

세계 여러 나라들은 늘 분쟁하기 바쁘고 심지어 전쟁까지 해서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가기도 한다. 사람들 사이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관계 속에서 다양한 갈등을 일으키고 말다툼하고, 끊임없는 폭력과 싸움으로 쓰라린 아픔과 상처를 남기기도 하고 심지어 살인까지 저지른다. 이런 현실에서도 나는 여전히 무성한 풀밭에 밝고 예쁜 꽃들이 잔뜩 핀 동화 같은 나라를 늘 갈망했다.

이를테면 환상의 나라 에버랜드와 애니메이션 캐치 티니핑에 나오는 이모션 왕국같은 나라를 머릿속에 늘 그리며 소망을 간직했다.

이런 나의 갈망하는 마음이 너무도 간절했던 걸까.

내가 고등학교 2학년 시절이던 20091127, 손바닥만 한 작은 강아지 한 마리가 우리 집으로 들어왔다. 그 아이는 환한 빛을 뿜으며 우리 가족의 시선을 거실로 모았다.

이 작은 아이의 커다랗고 검은 눈망울을 보고 있으면 왠지 모르게 알 수 없는 어딘가 빨려 들어가 신비로운 힘이 샘솟는 것 같았다. 그때 깨달았다. 동화 같은 나라는 환상과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속에서 사랑과 기쁨을 느끼기에 달렸음을 말이다.

유난히 하얀 눈 덩어리 같은 작은 강아지 녀석의 엉덩이를 보고 있으면 너무나 크고 탐스러워서 웃음이 절로 나왔다. 오빠가 엉뚱이라고 이름을 지어줬다. 나는 엉뚱이를 위해 엉뚱이 나라라고 엉국()’이라는 가상의 나라를 만들어 엉뚱이와의 시간을 채워 나갔다.

그렇게 해서 하얀 솜뭉치 덩어리인 작은 아이와 나의 이야기는 소박하게 시작되었다.

그 작은 아이는 뇌병변 중증 장애인인 내가 스스로의 힘으로 돌본 첫 번째 존재다.

양손이 불편하고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해 휠체어에 의지해야 해야 하는 나는 늘 다른 사람의 손을 빌리는 게 당연한 일상이다. 다른 사람의 도움이 고마울 때도 있지만 때로는 원치 않는 상황에 미안한 감정으로 죄인처럼 고개를 숙일 때가 많았다. 그런 나에게 그 아이는 나 아닌 다른 존재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과 보람을 주는지 처음으로 알게 해 주었다. 서투른 손으로 강아지 패드를 깔고 사료와 개껌을 줄 때면 그 작은 녀석은 세상에 하나뿐인 음식을 먹는 것처럼 그 누구보다 맛있게 먹었다. 괴짜 같은 그 녀석이 대소변으로 집안을 한바탕 휘저어 놓으면 가뜩이나 비위 약한 속으로 그 녀석이 싸 놓고 저질러 놓은 대소변을 치워야 했다. 그런 나를 엉뚱이는 옆에서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쳐다보곤 했다.

그 녀석은 괴짜 같고 통통 튀는 매력이 있었다. 내가 방으로 들어가려고 하면 먼저 빨리 들어가 방을 차지하고서 먹으려고 하는 물을 먼저 다 먹어 없애기는 기본이고, 가족들의 옷들을 대소변으로 다 흩트려 놓고 장난감 공을 사 온 날 바로 찌그려놓기 일쑤였다. 어떤 날은 인형의 빨간 옷을 훔쳐 걸치고서 내가 먹고 있는 빵을 물고 몰래 달아나기도 했다. 무법천지로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그 녀석의 움직임은 우리 집안 전체를 거꾸로 한바탕 뒤집어 놓았다. 그 녀석은 아무도 가질 수 없는 마법으로 우리 집에서 막내 자리에 오르기도 하고, 나는 보는 사람의 온몸을 휘감는 그 녀석의 매력에 저절로 흥얼흥얼 노래가 나오고 날마다 그런 모습들이 거의 우리 집 일상이 되었다.

그럴 때면 세상은 엉뚱이로 인해 빠르게 빙빙 돌아가는 것 같았다.

이런 엉국의 세상이 마냥 행복한 것만은 아니었다.

내 옷과 물건에 그 녀석이 오줌을 누고 응가를 할 때면 짜증이 난 적도 있고, 한창 꾸미고 예쁠 나이인데 여러 대학교에 다 떨어지고 공무원 시험에 탈락해 또다시 엉국에서 그 녀석하고만 긴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사실을 느낄 때면 괜스레 화가 나 엉뚱이를 외면한 적도 많았다.

하지만 작지만, 강한 그 녀석은 한결같은 모습으로 내 곁에 있었다. 어느덧 나도 30대의 문턱을 넘었다.

재택근무를 하면서 세상의 쓴맛도 보고 돈을 버는 어엿한 직장인이다. 대학교 입학만 하면 다인 줄 알고 영어단어만 열심히 외우던 19살 고등학생 시절은 점점 희미하게 멀어져갔다. 이제는 사회인으로서 부모님과 떨어져 독립하려고 임대 아파트로 이사 갈 준비를 계속하는 중이다. 당연히 엉뚱이도 나와 함께 이사 가서 새로운 엉국을 만들 거라고 생각했다. 그 아이가 점점 작아지고 시들어가고 있는 것도 모른 채. 그 작은 강아지 녀석은 어느새 자식 같은 인생의 큰 존재가 되어 그 아이의 사료와 개껌 등 녀석의 먹이값은 우리 집안에서 내 몫이 되었다.

202599.

그날은 더위가 점점 벗겨지고 편안해지는 선선한 바람이 곳곳에 흘러 들어왔다.

9월의 선선한 바람은 그 작은 아이를 강아지별로 조용히, 그대로 편안하게 이끌어줬다.

나는 그날 밤 16년 동안 엉국에서 나와 같이 지내던 작지만 아주 강한 그 아이를 한순간 데리고 간 바람에 허무하고 멍한 텅 빈 마음이 들어 나조차도 모르는 울음이 계속 흘러나왔다.

한참 있다 선선한 바람이 내 마음속에도 속삭이듯 흘러 들어왔다.

엉뚱이는 잠시 쉬러 강아지별로 가 있는 것임을.

나는 그런 바람에 살며시 속마음을 흘려보냈다.

 

엉뚱이, 너와 나의 나라 엉국에서 누나는 행복했어. 누나는 엉뚱이 덕분에 힘들고 거친 세상에서도 순수하고 예쁜 마음을 계속 간직할 수 있었어. 누나는 앞으로도 엉국에서 씩씩하게 살아갈 테니까 엉뚱이가 강아지별에서 충분히 쉬고 돌아오면 언젠가는 엉국에서 꼭 다시 만나자.

엉뚱이, 지금도 사랑하고 앞으로도 영원히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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