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어린왕자
박승해
그 아이의 웃는 모습은 천사처럼 반짝였다
하얀 얼굴과 반짝이는 양볼의 홍조까지 마치 아기의 미소 같았다
그때 나는 6학년에 올라갔어도 다방구나 딱지치기 놀이를 좋아했다. 책하고는 거의 담을 쌓고 지냈다. 등에 맨 가방 속에는 책 몇 권과 놀기 위한 딱지와 구슬 고무줄이 있다. 그것들은 내가 뛰는 속도에 맞추어 철렁철렁 손들고 뛰어다녔다
그 아이는 한 번도 나의 놀이에 낀 적이 없다. 말이 없는 아이 ‘샌님’ 이게 우리가 그 아이에게 붙여준 별명이다. 나의 세계에 한번도 들어오지 않은 그 아이는 전혀 나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2부 수업을 하는 우리반 교실은 이른바 콩나물 시루였다. 앞에서 뒤까지 촘촘한 작은 의자들은 오전 오후 두 명의 다른 주인이 있다. 대청소 날이다. 아이들은 드르륵 소리를 내며 의자며 책상을 끌고 다닌다. 대청소가 끝나면 매번 그렇듯이 자리를 바꾼다.
“1번 줄은 그대로, 6번 줄과 2번 줄은 바꿔 앉으세요.”
한 달에 한번 짝 바꾸는 날이 되면 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큰 책상을 반씩 나누어 써야하기 때문이다. 짝과 영토경쟁에 밀리면 안된다. 이미 책상의 반은 분필로 선명하게 영역이 표시되어 있다. 그런데도 가끔 그 영역을 생각없이 넘는 아이가 있다. 이날 나의 관심은 오로지 나의 책상을 누구와 나누어 쓰냐는 것에 있었다.
다른 아이들도 그렇겠지만 나 역시 영역이 침범당하는게 싫다. 특히 첫 날이 중요하다. 새로운 짝을 만나는 호기심도 있다. 그러나 첫날 책상 영토 신경전에 패하면 안 된다는 긴장감이 더 크다. 다들 사뭇 심각하다. 그만큼 오늘은 중요한 날이다. 특히 남자아이가 짝이 되는 날은 신경전이 더 심하다. 그 아이가 책상 위 영토에 관심이 많은 아이라면 더 그렇다.
1970년대 초 서울의 변두리 학교인 우리 학교는 한 반이 팔십명이 넘었다. 오전반 오후반이 같은 교실에서 뒤섞이니 우리 교실은 적어도 160명 이상이 하루에 이동한다고 볼 수 있다. 지금 생각하면 ‘우와’ 하고 놀랄 이야기지만 그때는 그랬다.
그래서 그런지 담임선생님은 수업 시작 시간과 끝나는 시간에 어김없이 출석을 부르신다. 출석 체크를 안 했다면 아마도 몇 사람이 집에 일찍 가도 모르지 않았을까? 교실은 들쑥날쑥 변화무쌍한 날의 연속이었다.
오늘도 짝을 다 바꾼 후 담임선생님은 예외없이 출석을 불렀다.
그 남자아이의 이름은 김. 진. 영. 다른 아이의 이름이 내 머리에 정확하게 꽂힌 것은 처음이었다.
햇빛에 그을려 까만 얼굴로 오전내 뛰어다녀 머리는 수세미처럼 마구 헝클어진 나와는 완전 반대인 하얀 얼굴의 아이가 나에게 ‘안녕’ 하고 손을 흔들었다.
‘이게 무슨 창피람’ 부끄러웠다.
나는 옷소매로 그 애가 눈치채지 못하게 조금 전 빡빡 힘주어서 백묵으로 길게 그어놓은 책상 위 경계를 지워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나와는 다르게 그 아이는 소란스러운 교실에서도 수업에 잘 집중했다. ‘다방구’ ‘고무줄놀이’ ‘줄넘기’ ‘딱지치기’에 한창 빠져있는 나와는 정반대인 아이였다. 나의 하루는 바빴고 정신없었고 내 자리는 거의 운동장이었다. 그 아이는 다른 시시한 남자아이처럼 여자아이들의 고무줄을 끊고 도망가거나 ‘아이스께끼’하며 여자아이 치마를 들추거나 하는 일로 공분을 사지도 않았다.
책상은 늘 반듯하게 정리했고 게다가 내 책상까지 닦아주었다. 점점 샌님같은 그 아이에게 호기심이 생겼다 아니 관심이라고 할까
“너는 공부하는 게 재밌니”
터무니 없는 나의 질문에
“어. 공부는 그냥 하는 거야 그런데 사실 나는 그림 그리는 게 더 좋아”
공부도 잘하는 데다 그림도 잘 그리는 것을 부러워하는 나에게
“이거 너 가져, 그리고 너도 그려봐. 너도 할 수 있어”
그 아이는 자기가 그리던 만화책과 연필을 주었다.
그 아이와 짝이 된 한 달은 나의 6학년 전체를 통틀어 가장 특별했던 시간이었다
그 후 종종 자기가 그린 그림을 주었다. 연필로 슬쩍 그린 그림들이 그 당시 나에게는 대단한 선물이었다. 그가 그림으로 여러 상을 받을 때면 나는 진짜 내 일처럼 신나 했다. 학교 앞에서 파는 ‘아이스께끼’를 거금을 털어 사준 유일한 친구였다.
그 후 중학교에 가면서 따로 만난 적은 없지만 그 아이의 반듯한 모습은 어쩌면 나의 삶에 작은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까?
어딘가에서 초등학교시절 내게 한 것처럼, 반짝이는 미소로 누군가를 배려하고 미소짓게 하고 있지 않을까?
나의 어린왕자, 그 짝궁이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