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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짜 금메달    
글쓴이 : 박승해    26-04-27 20:06    조회 : 49

진짜 금메달

 

박승해

동기들 톡방은 우리의 자유게시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졸업 후 20년쯤 지나선 연락되는 친구들끼리 번개팅으로 가까운 해외로 여행도 했다.
여행가이드는 가장 재미있는 여행팀은 친구끼리 온 사람들이라고 하며 우리의 적당한 젊음과, 적당한 편안함을 부러워 하기도 했다. 전공 특성상 대부분은 병원이나 학교에서 또는 의무실에서 각자의 역할들을 똑소리 나게 해 내고 있는 동기들이다. 특히 병원에 남아있는 동기 중에는 수간호사를 거쳐 과장에 부장에 부원장까지 승승장구 성공한 멋진 친구도 있다.
남편 때문에 아이 때문에 일찌감치 병원을 퇴사해 버린 나와 같은 친구들도 몇몇이 있다. 집에서 놀고있는 소위 백수인 친구들은 그림을 그리거나 도자기를 배우거나 천연염색을 배우는 등 나름의 틈새를 이용하며 각자 열심히 잘 산다.

한 번은 병원을 그만두고 도자기 공예를 전공하여 일찌감치 공방을 차린 친구네로 우르르 몰려갔다. 도자기의 신기한 작업공정을 구경도 하고 친구의 소중한 보물단지를 몇 점 구입하기도 했다. 마음 착한 친구는 그냥 주겠다고 가져가라고 했지만 이렇게 대단한 가치있는 물건은 구입하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친구의 이니셜이 새겨진 찻잔은 한참이 지난 지금도 언제나 흐뭇하고 의미있다.

작년부터 친구들이 하나 둘 현직을 은퇴하고 있다. 은퇴를 기점으로 시집을 내거나 그림을 발표하거나 아니면 여행 마니아가 되어 여행의 즐거움을 글로 엮어 출판하는 친구도 있다. 얌전해 보이던 어떤 친구는 혼자 하는 캠핑의 즐거움을 알려준다. 여기저기 안 가 본 곳이 없는 듯하다.

친구들이 은퇴하던 그 시기에 나는 사업체를 한 개 더 늘였다. 동기들 중 사업을 하는 친구는 나 말고도 두세명 있었으나 대부분은 남편이나 가족의 도움을 받고 있으니 한편으론 부럽기도 하다. 업무의 특성상 남편은 일절 나의 사업에 관여하지 않는다

그날은 우연히 참석한 자리였다. 대학병원 수간호사, 자타 공언할 정도로 살림을 잘하는 자 남편을 둔 똑순이 현모양처 친구, 특수 파트 팀장으로 능력있는 잘 나가는 동기, 그리고 막 간병 사업을 시작한 친구도 있었다.

오랜만에 맛집에서 저녁 식사도 하고 커피도 마시며 잡담 삼매경에 빠져들고 있었다. 한 친구가 갑자기 말을 하기 전까지는 그래도 훈훈한 시간이었다.
공부를 잘 한다고 다 성공하는 건 아닌 것 같아
우리는 일제히 그 친구를 바라봤다.
그렇잖아 금메달 타고 졸업한 얘는 일을 안하고 있잖니
병원 수간호사로 얼마 전에 승진한 친구는 작심한 듯이 말을 끝내고 나를 바라봤다.

나에게 한 말이었다.

순간 친구들의 어색한 눈빛이 불안스레 교차했다. 모임에 나를 초대한 친구의 당황한 표정이 보기에도 민망했다.
그래 맞아, 공부가 성공을 좌우하는 건 아니야. 너 승진 축하한다.”
나는 얼른 화제를 돌리려 했다.

예전에 교내 도서관에서 색색의 형광펜을 칠하며 도서관을 늘상 지키던 그 친구의 모습이 떠올랐다.

우리 학교는 졸업시 전체 학년 성적을 합산하여 성적순으로 금 은 동메달을 수여한다. 나는 당시 그다지 공부를 잘하거나 열심히 하는 축은 아니었지만 합산한 점수는 그게 아니었나 보다. 그나마 은메달과도 얼마 차이도 안 나는 점수로 그야말로 순전히 운에 의한 메달이었다.

어쨌든 졸업식에서 김수한 추기경님으로부터 금메달을 목에 거는 행운은 나쁘지 않은 추억이었다. 그러나 그 뿐이었다. 그로 인해 달라진 것도 내가 자랑을 할 상대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우리는 뿔뿔히 흩어져 각자가 원하는 병원으로 지원했고 금메달은 잊혀진 과거로 장롱 안 어딘가에 박혀있다.

야 얘 무직 아냐. 사업 하잖니 얘 사업 잘되고 있어 직원이 50명도 넘을걸. 너 몰랐어?”
어색함을 수습한다고 애매한 웃음으로 화제를 돌리는 사이에도 그 친구가 마음 한 켠 곱씹었을 속상함이 느껴지는 것 같아 마음이 아렸다.

3차로 이어지면서 즐거운 소란스러움에 친구나 나나 어색함은 이미 풀렸지만 그래도 학창시절 내내 성적을 의식하며 억울해 했을 그 마음을 다 잊어버린 것은 아니었다.

남보다 더 잘하고 싶은 생각, 더 갖고 싶다는 생각, 남보다 더 높게 올라가고 싶은 욕심, 승자가 되는 길보다 더 중요한 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 수 많은 시행착오를 했다.
사회는 학교보다 더 치열했다. 병원의 하루하루는 삶과 죽음의 현장을 한 페이지 안에서 볼 수 있는 곳이다. 의료 현장을 빨리 파악하고 그것에 잘 대처하여 위험의 요소를 최소화 하는가는 누가 더 잘 판단 하는가이다. 이것은 지식을 바탕에 둔 지혜로움에서 온다.

일찍부터 사업의 세계로 들어온 나 역시 세상은 그리 단순하고 만만치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가장 어려운 일은 단연 인간관계이다. 사람을 알고 믿고 의논하고 업무를 맡기기까지 수 많은 생각을 한다.

가끔 직원들의 얼굴을 바라본다.
어쩌면 지금 내 곁에 있는 이들이 가장 소중한 사람이 아닐까.

살면서 만나는 수 많은 사람들,

함께 가는 세상에서 좀 더 따뜻한 눈으로 사람을 보야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남보다 한 보 앞서 나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손을 잡고 함께 바라보는 미래이다.
함께 살고 함께 고통을 분담하던 가족, 친구, 그리고 직원들, 이들은 금메달보다 더 중요한 동지이다.

나의 금메달에 속상해하던 능력있고 성실한 그 친구가 다음 달에 30년 이상을 다닌 직장에서 정년 퇴직을 한다고 한다.
친구야 오늘의 금메달은 바로 너야, 한 눈 안 팔고 그 엄청난 일을 해 내다니. 대박! 너 최고라는 거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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