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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운세는 내가 운전한다    
글쓴이 : 강선명    26-03-27 11:56    조회 : 54

내 운세는 내가 운전한다

 

강선명

 

새해가 시작된 지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이다. 반복되는 일상에 시간 감각이 무뎌질 때쯤, 소파에 앉아 있던 아내가 스마트폰을 내밀며 환하게 웃었다.

 

"이것 봐, AI가 그러는데 올해 내 운세가 엄청 좋대! 역시 나를 잘 안다니까. 나 올해는 진짜 무엇이든 도전해 볼 거야."

 

기특한 인공지능이 아내에게 의욕이라는 선물을 주었으니 그저 고마운 일이다. 사실 자기 운세를 가장 정확히 짚어낼 수 있는 건 인공지능도 무속인도 아닌 자기 자신이라 말하고 싶지만, 섣부르게 입을 뗐다간 본전도 못 찾을 게 뻔하다. 아내는 분명 결론만 짧게 말해줄래?’라며 내 진지한 분석을 단칼에 잘라낼 테니까우리는 왜 삶의 주체인 내가 아닌, 타인의 입을 빌려 나의 내일을 확인하고 싶어 하는 걸까. 내 운세의 실체는 무엇일까. 질문은 거기서부터 시작되었다.

 

매일 내가 일하는 마트에는 술을 사러 오는 손님이 한 분 있다. 하루에 두 번, 한 번에 소주 다섯 병씩. 그분의 구부정한 뒷모습을 볼 때면 가슴 한구석에 어떤 연민이 차오른다. 그분이 처한 환경이나 속사정을 어찌 다 알 수 있을까. 하지만 철저히 행동만 놓고 본다면 그의 올해 운세는 안타깝게도 이미 예약되어 있다. 알코올 의존과 간 손상, 그리고 깊은 무기력. 그는 지금 그 길 위를 위태롭게 걷고 있다.

 

마트 옆 M 카페 사장님의 사정을 떠올리면 마음 한구석이 짠해진다. 본사에서 따로 영입 제안을 할 만큼 실력은 출중하지만, 주변에 우후죽순 들어선 저가 커피 브랜드들과의 소리 없는 전쟁터에서 그는 오늘도 '인건비 따먹기'라는 고단한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가족들이 교대로 차에서 쪽잠을 자며 하루 100잔의 커피를 간신히 팔아내는 그 뒷모습을 보며 나는 깨닫는다사장님의 유능함과는 별개로, 현재 그를 둘러싼 상황만 놓고 본다면 그의 올해 운세는 그리 밝지 못하다는 것을. 수익의 하락과 브랜드 유행의 쇠퇴, 그리고 무엇보다 아픈 아버지 곁을 지킬 시간마저 돈과 맞바꿔야만 하는 안타까운 길을 그는 걷고 있는 것이다.

 

나 또한 그들과 다를 바 없이 삶의 핸들을 놓친 채 관성에 이끌려 살고 있었다. 마트 일에 치여 점심을 거르고 퇴근 후 폭식으로 보상받던 식습관은 역류성 식도염이라는 정직한 악운을 불러오고 말았다. 이것은 외부에서 온 불행이 아니라, 내가 선택한 습관들이 차곡차곡 쌓여 만들어낸 예견된 도착지였다. 그대로 가다가는 더 깊은 질병의 늪에 빠질 것이 분명해 보였다그래서 올해부터 우리 집 식탁 풍경을 싹 바꿨다. ‘일단 풀부터 뜯자!’는 마음으로 샐러드를 먼저 올리고, 고구마와 단호박으로 건강한 배를 채운다. 식사 후엔 아내와 손을 잡고 동네를 천천히 산책한다. 아내와 나누는 시시콜콜한 대화는 청량한 소화제다. 우리 가족은 이제 건강해지는 길로 경로를 재탐색했다.

 

가장 유쾌한 변화는 셔플댄스 도전기다. 늘 유튜브 속에서 자유롭게 몸을 흔드는 사람들을 보며 나도 저렇게 나를 표현하고 싶다고 동경하면서도, 주위의 시선과 방법을 모른다는 핑계로 늘 마음속 숙제로만 남겨뒀던 일이었다. 하지만 올해는 달랐다. 굳이 댄스 학원을 검색해 셔플댄스를 알게 됐고, 집 근처 학원을 등록해 현재 12개의 기본 스텝을 익혔다수많은 아주머니 틈에 섞여 음악에 맞춰 발을 구르는 '나라는 아저씨'. 아직은 리듬을 온몸으로 타며 자유자재로 몸을 놀리기엔 서툴고 투박하다. 하지만 동작 하나하나를 몸에 새기며 힘차게 땅을 차는 이 찰나의 순간, 나는 인생에서 오랫동안 도전하지 못한 채 묻어두기만 했던 한 가지 의문을 비로소 해소한다.

 

나를 있는 그대로 표현하며 산다는 것. 그 풍요로운 경험의 한복판으로 오롯이 걸어 들어가고 있음을 온몸의 감각으로 느끼는 것이다. 셔플의 스텝이 꼬일지언정 내 삶의 스텝은 이제야 제 자리를 찾은 기분이다. , 이제 다시 나에게 묻는다.

 

"올해 내 운세는 어떠할까?"

 

나는 주저 없이 확실히 말할 수 있다. 매우 유쾌하고 풍요로운 대운(大運)이다! 단순히 운이 좋아서가 아니다. 내가 스스로 선택한 건강한 고통을 즐기기 시작했고, 내 시간을 내가 원하는 가치들로 빽빽하게 채워 넣고 있기 때문이다. 타인이 던져주는 상황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내 몸과 마음을 내 의지대로 조절하며 사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유쾌한 부자가 아닐까운세(運勢)의 운자는 운전할 운()’ 자를 쓴다. 남이 점지해 준 운명에 실려 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핸들을 꺾고 힘차게 페달을 밟는 지금. 나는 내 인생에서 가장 확실하고 기분 좋은 목적지를 향해 유쾌하게 나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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