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병에 물을 갈아 주며
김 연
바쁘다는 핑계로 며칠 째 꽃병의 물을 갈아 주지 못했다. 병에 담긴 물 색깔이 탁했다. 물을 갈아 주웠다. 이미 썩어가고 있는 장미와 카네이션은 걷어 내고 시들어가는 소국과 안개꽃은 그냥 놔두었다.
충동으로 꽃집에 들러 꽃을 사곤 하지만, 게으름 때문에 갈아 주지 못해 탁한 물을 볼 때에는 다신 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꽃을 사는 버릇을 여태 고치지 못하고 있다. 꽃병의 물을 갈아주고 나니 까닭 없이 마음이 개운해지며 문득 어릴 적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초등학교 2학년, 주번을 맡았을 때였다. 친구들보다 일찍 등교해서 선생님 책상 위를 정돈하고 칠판과 창틀을 닦고 분필 지우개를 털었다. 마지막으로 꽃병의 물을 갈아주면 주번으로서의 일은 끝이었다. 그날은 학기초라 날씨가 제법 쌀쌀했는데 걸레를 빨고 꽃병을 헹구고 물을 갈아 주니 손이 시려웠다. 개수대 옆 수도꼭지 하나에서 따뜻한 물이 나온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지금처럼 온수가 흔한 시절이 아니었다. 나는 진작 알았으면 좋았을 걸 하며 시린 손을 한참을 녹였다. 따뜻한 물의 감촉에 취해 있다 교실로 돌아가려는데, 꽃도 추울 것 같아 이왕이면 따뜻한 물로 갈아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꽃병에 받은 물을 버리고 따뜻한 물로 다시 채워 주었다. 괜히 장한 일을 한 것 같아 뿌듯한 마음으로 교실로 향했다. 화병을 받아 들던 선생님께서 화들짝 놀라며 왜 뜨거운 물을 꽃병에 담아 왔냐며 다시 찬물로 바꿔 오라고 했다. 나는 얼른 다시 가서 꽃병의 물을 찬물로 바꿔 온 뒤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나서 1교시 수업이 시작되었다.
며칠 뒤였다. 다른 선생님들과 담소를 나누며 지나가던 담임 선생님을 복도에서 만났다. 선생님께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데 등 뒤에서 선생님들이 내 얘기를 하고 있었다.
“저 아이야!”
“누구?”
“그 꽃병!”
“어? 걔!”
“쟤, 너무 귀엽다!” 하며 선생님들끼리 소곤거리며 웃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부끄러워 얼른 교실로 들어와 자리에 앉았다. 무엇을 훔치다 들킨 아이처럼 가슴이 콩닥콩닥 불안하게 뛰고 있었다. 에잇, 창피하게 선생님은 다른 선생님들께 그 얘기를 하실 께 뭐람? 그게 뭐가 또 그렇게 귀여운 일인가 싶기도 했다. 나는 담임 선생님이 야속했다.
“강원도 평창군 미탄면 청옥산 기슭/ 덜렁 집 한 채 짓고 살러 들어간 제자를 찾아갔다/ 거기서 만들고 거기서 키웠다는/ 다섯 살 배기 딸 민지/ 민지가 아침 일찍 눈을 비비고 일어나/ 말없이 손을 잡아끄는 것이었다/ 저보다 큰 물뿌리개를 나한테 들리고/ 질경이 나싱개 토끼풀 억새......./ 이런 풀들에게 물을 주며/ 잘 잤니,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그게 뭔데 거기다 물을 주니?/ 꽃이야, 하고 민지가 대답했다/ 그건 잡초야, 라고 말하려던 내 입이 다물어졌다/ 내 말은 때가 묻어 천지와 귀신을 감동시키지 못하는데/ 꽃이야, 하는 그 애의 말 한마디가/ 풀잎의 풋풋한 잠을 흔들어 깨우는 것이었다”
정희성 시인의 「민지의 꽃」이 생각난다. 시골에서 할머니와 살다가 초등학교 취학 통지서가 나와 엄마 아빠가 있는 서울로 올라왔던 당시의 나는, 시 속의 민지처럼 아직 사물에 대한 분별력이 없었나 보다. 단칸방에 살면서 특별한 날이 아니고선 화병에 꽃 꽂을 일도 없었고 더군다나 형편 때문에 더운 물이 콸콸 나오는 집에 살지도 못했던 때라 벌어진 해프닝이었다.
나에게도 그렇게 순진무구(純眞巫具)하고 무지한 때가 있었구나! 싶은 게 절로 웃음이 난다.
오늘 아침 화병에 물을 갈아 주며 떠오른 어린 시절의 추억 하나가 나를 미소 짓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