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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못다 준 사랑    
글쓴이 : 이성근    25-02-23 14:15    조회 : 96
   못다 준 사랑.hwp (28.5K) [1] DATE : 2025-02-23 14:15:38

못다 준 사랑

 

이성근

 

 “정말 그 일을 하려고 그래?”

  오랜만의 모임에서 내 근황을 들은 친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흥분했다. 나는 얼마 전 요양보호사 자격을 따기 위해 관련 기관에 등록했다.

 “? 나는 하면 안 되는 거야?”

  친구 KS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이야기했다.

 “그때 중환자실에서 깨어나지 않던 너를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철렁한다.”

 “맞아, 이렇게 살아있는 것이 기적이지. 그냥 네 몸만 생각하고 편안히 살면 좋겠어.”

 

  규칙적인 기계음이 들렸다. 소독약 냄새가 코를 찔러와 눈을 떴다. 형광등 불빛이 차갑게 쏟아져 내렸다. 손은 움직일 수 없었고, 목에서 묵직한 통증이 느껴졌다. 시린 눈을 깜빡이며 간신히 뜨자, 시누이의 모습이 시야 가득 담겼다. 그녀는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 나의 시선과 마주치자, 눈물을 쏟았다.

 “정신이 들어? 여기 중환자실이여. 지금 20일 만에 눈을 뜬 것이여.”

 “오늘이 며칠이에요?”

  몇 번을 되뇌어도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튜브와 케이블이 몸 곳곳에 달려 있었다. 자가 호흡을 못 해 목을 절개해서 튜브를 꽂았다고 한다. 무의식중에 튜브를 자꾸 뽑아내서 양손을 침대에 묶어 두었다고 했다. 고개를 돌려보니 의식이 없는 환자들이 좌우에 누워 있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투쟁했던 시간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그간의 이야기를 전해주는 시누이의 음성이 울음과 섞여 자꾸 끊겼다. 아이는 걱정하지 말라며 내 손을 잡아주는 그녀의 소리가 점점 멀어져 갔다. 까무룩 잠이 들었다. 


  100만 명 가운데 많아야 30명 정도의 사람들이 앓는다는 중증 근무력증’. 희귀한 병이기에 병명을 찾기까지 1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갑자기 온몸에 힘이 없고, 혀에 마비 증세가 왔다. 어른들은 중풍이 왔다고 했다. 침을 맞아야 한다고 해서 한방 치료도 무수히 많이 받았다. 병원 문턱이 닳도록 넘나들었지만, 뾰족한 처방이 없었다. 병명을 모르는 상황에서 불필요한 치료로 시간이 흘러갔다. 걷다가 자꾸 넘어지고, 식사 시간에 숟가락을 떨어뜨리는 일이 빈번했다. 근력이 없으니 앉아 있는 것도 힘들었다. 아이가 유치원에 등원하면 바로 자리보전하고 누웠다. 그러다 폐렴이 왔고, 의식을 잃게 되어 대학병원 응급실로 실려 가게 되었다.


  의식 없이 누워 있는 20일 동안 많은 사람들이 다녀간 걸 알게 되었다. 병원에서는 가족들에게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단다. 시누이는 초등학교 저학년, 유치원 다니는 어린아이 셋을 두고 올케를 살리겠다고 서울로 올라왔다.

 “죽기는 왜 죽어. 내가 살려내고 말 것이여.”

  그녀는 보호자 침대에서 새우잠을 자면서 잠깐의 뒤척임, 작은 기침 소리에도 벌떡 일어났다. 시누이의 세심한 보살핌 덕분에 하루가 다르게 빠른 회복을 보였다. 병실 창밖으로 바라보며 동경했던 햇살 가득한 세상, 그 중심으로 걸어 나오며 오랜 병원 생활을 마무리했다.

  지금은 양쪽 집안 어른들은 모두 돌아가셨다. 벌써 70대가 된 시누이를 생각하며 따기로 마음먹은 요양보호사 자격증. 간병인과는 다르게 국가 자격증을 받아야 할 만큼 전문성을 갖춰야 해서 더욱 마음에 들었다. 막상 공부하고 보니,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우리가 모두 알고 있으면 좋을 내용들이었다.

 

   요양보호사 등록 계기가 시누이였음을 알게 된 친구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나 같으면 그냥 간병비를 드리겠어. 힘들게 꼭 그래야 할까?”

  “나는 시누이가 아직도 편치 않아. 비결이 대체 뭐니?”

 

   문득 김남조 시인의 너를 위하여가 떠올랐다.

 

()

너를 위하여

나 살 거니

소중한 건 무엇이나 너에게 주마.

이미 준 것은 잊어버리고

못 다 준 사랑만을 기억하리라.

나의 사람아.

()

 

  시누이는 다음 세상이 있다면 또 만나자고 했다. 그때는 본인이 더 잘하겠다고. 그동안 수없이 주고받은 많은 것들을 잊어버리고 우리는 늘 이런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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