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강덕수
머리가 아직 영글지 않았던 시절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밟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을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노오란 숲속에 길이 둘로 갈라져 있었다.
...
나는 덜 밟은 길을 걸었다.
그것이 모든 차이를 만들었다.”
산길을 걸으며 발자국이 찍히지 않은 길을 걷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다. 우선 겁이 없어야 한다. 무엇보다 강한 호기심이 있어야 한다. 사람들이 그 길을 가지 않은 데는 다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길 끝이 절벽이 될 수 있다. 아니면 뱀 같은 위험한 짐승들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런데도 구태여 그 길을 가려면 그만한 까닭이 있어야 한다.
유학 시절 폴란드 문학을 공부하면서 읽은 19세기 폴란드 작가 프루스의 장편소설 “인형”(Lalka)에서 아직도 잊지 못하는 구절은 “새로운 역사는 미친 사람이 만드는 법이야.”라는 주인공의 독백이다. 그때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내가 미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그런 길을 갈 수 있을까??”
철이 들만한 나이가 되면 누구나 자기 길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사춘기라는 것도 결국은 어느 길을 가야 되는지에 대한 고민으로부터 비롯되는 것 아닌가? 자기 정체성은 그때 만들어진다. 고생을 무릅쓰고 자기만의 길을 만드는 청년을 보면 젊었을 때의 나를 보는 듯해서 도와주고 싶어진다.
35세 된 청년은 15세에 집을 나와야 했다. 타악기 전문가를 꿈꾸었다. 예술학교에 진학하고자 했다. 아들의 꿈을 이해하지 못한 아버지는 학교에도 가지 못하게 하였다. 아들은 자기 길을 가고자 가출하였다. 아직 소년이었던 나이에 그 애는 갈 데가 없었다. 재워준다는 곳이라면, 불법만 아니라면 어디서든 아르바이트를 구했다. 배달, 벽돌공, 미장이를 전전하면서도 타악기 고수들을 찾아다니며 길을 찾아갔다. 음대 입시에 세 번 떨어졌다. 입시에 무엇이 필요한지도 모르던 청년은 아스팔트에 머리 찍듯이 도전하여 네 번 만에 합격하였다. 천우신조로 합격한 청년은 어린 동기생들이 대학 생활을 즐길 때 절치부심하며 공부하였다. 하루 10시간 이상 음악실에서 타악기를 두드리며 연습하여 장학금으로 대학을 마쳤다. 클래식 콩쿠르에서 최우수상도 받았다. 30대 중반까지 그렇게 내공을 쌓으니 모두가 인정하는 청년 타악기 연주자가 되었다.
이 청년 음악가를 처음 만났을 때 술과 담배를 전혀 하지 않는다는 얘길 듣고 놀랐다. 이 청년이 만든 길이 어디로 이어질지 궁금해졌다. 우리 사회에서는 이런 청년의 길을 외롭지 않게 만들어주는 분위기가 있다. 그래도 혼자 가는 길은 외롭다. 빨리 가고 싶으면 혼자 가도 되지만, 먼 길을 가고자 하면 같이 갈 동료들을 찾으라고 했다.
소비에트 러시아의 작가 두진체프의 소설 “빵만으론 살 수 없다”를 읽고 충격을 받았다. 주인공인 성실한 연구자가 살아남을 수가 없었다. 연구소에서 탁월한 실험 결과를 만들어내는 젊은 연구자가 게으른 동료들과 결과를 공유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왕따가 되었다. 전체주의 체제에서 정해진 길을 마다하고 좁은 길을 가려는 개인은 다른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해충이나 다름없었다.
우리 역사에서 조선도 다를 바 없었다. 성리학과 사대주의는 벗어날 수 없는 교리였다. 그래서 세종대왕이 만든 길은 위대하다. 6백 년 전 세종은 한글이라는 길을 만들었다. 왕위를 잃을 수도 있는 아주 위험하고 외로운 길이었다. 그 길을 만들기 위해 세종은 강산이 열 번 바뀌는 세월을 비밀리에 각고해야 했다. 백성을 향한 확고한 의지와 측은지심이 아니었다면 이룰 수 없는 길이었다. 그 길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날 K-문화라는 길도 생겼다. 5백 년이 지나 열매 맺은 K-문화는 세종대왕이 만든 길을 따라 세계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K-문화는 아주 작은 길로부터 시작되었다. K-팝이다. 고등학교에서 한 학생이 기타를 메고 다니며 노래를 불렀다. 그저 취미 생활로 생각했다. 그러더니 가수가 되어 방송국 가요대상을 받았다.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미국에 가서 컴퓨터를 공부하고 돌아와 새로운 음악을 만든다고 설쳤다. 대중음악계에선 이단아로 취급하고 문전박대하였다. 그것이 새로운 엔터테인먼트 기업의 시작이었다. 그 시작은 작고 위험해 보였지만 K-문화가 세계 무대로 이어지는 길이 되었다. 그는 아무도 밟지 않은 좁은 길을 세계로 통하는 길로 만들었다.
최근 중국에서는 ‘딥시크’라는 AI가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딥시크는 저장성 지방에서 자라고 공부한 량원평이라는 젊은 연구자가 독자적으로 만든 프로그램이다. 미-중 갈등 속에 중국은 젊은 연구자들을 미래 산업에 끌어들여 고립을 벗어나고자 애쓰고 있다. 중국형 새로운 길이다. 중국에는 량원평 같은 연구자가 4만 명이 넘는다.
그에 반해 우리는 어떠한가? 의사가 부족하다고 의대 정원을 늘리려다 사회적 갈등으로 2년이라는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 그런데 AI 같은 분야의 전문가를 키우기 위한 공대 정원은 그냥 묶여 있다, 서울대 공대의 컴퓨터 전공 정원은 겨우 55명이다. 단 한 명도 늘릴 수 없다. 이유는 많다. 이를 두고 세종대왕은 뭐라 말씀하실까? 미래로 통하는 새로운 길을 내는 게 우리는 왜 이리 어려울까?
대학 시절 ‘넌 왜 그 길을 선택했느냐?’는 물음을 많이 받았다. 지금은 보이지 않아도 언젠가는 보일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돌이켜 보면 선택한 길은 그렇게 좁은 길도 위험한 길도 아니었다. 드럼 청년이나 가수 친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불안은 했어도 낭떠러지로 내몰릴 일은 없었다.
그나마 시베리아에 학교를 세우는데 뛰어든 일은 ‘high risk, high return’이라고 할 만하다. 이 길로 타냐가 오고 이고리가 왔다. 또 철수와 영희 같은 젊은 대학생들이 시베리아에 가서 태권도를 보여주고 사물놀이를 전했다. 한 세대가 지나니 한-러 관계가 다시 냉랭해졌다. 그래도 서울에서 시베리아로 통하는 길은 여전히 살아있다.
프로스트의 싯귀를 다시 읊는다.
“I took the one less traveled by,
And that has made all the differe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