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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맛있다 회전초밥    
글쓴이 : 고은영    25-10-27 14:31    조회 : 425
                                                                              맛있다 회전초밥  

                                                                                                                                          고은영

 빙글빙글 돌아가는 회전 벨트 위에 색색의 접시들이 돌아가고 있다. 위에 올려진 것들은 연어, 도미, 참치 등의 기본적인 초밥들, 그리고 화려한 색감과 형태가 돋보이는 여러 가지 스시 롤들이다
  김밥과 비슷하지만 표면을 김으로 감싼 김밥과 달리 스시 롤은 김발위에 밥을 먼저 깔고 김과 재료를 올려 말기 때문에 김 대신 밥알이 바깥쪽으로 나오게 된다. 이런 방식은 1960~70년대 미국 캘리포니아 지역에서 처음 선보인 것으로 김의 맛과 색에 익숙하지 않은 서양인들에게 어떻게 하면 거부감 없이 초밥을 먹일 수 있을까 하는 고육지책으로 고안된 것이다. 그야말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 캘리포니아 롤이라는 대명사가 붙여졌고 스시 롤이라는 음식 장르가 생겨났다. 6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미국 전역의 일식집마다 삼사십 가지가 넘는 롤 메뉴를 보유하고 있을 정도이니 그 인기는 가히 짐작할 만 하다.

 스시 롤의 종류도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여 오렌지 색 연어 위에 흰 양파와 붉은 날치 알로 화려한 색감을 낸 것, 대여섯 가지가 넘는 소스를 뿌려서 맛의 변화를 준 것, 아예 밥이나 김 대신 종이처럼 얇게 썬 오이를 사용하여 아삭한 식감을 살린 것도 생겼다.
 그 이름도 상당히 재치가 있어서 거미 롤, 애벌레 롤, 킹콩 롤, 헐크 롤 등은 듣기만 해도 상상력을 돋운다. 다민족 국가인 미국이 발생지인 음식답게 각 국의 대표 요리를 응용해 만들어진 것들도 있는데 매콤 새콤한 멕시코의 세비체롤이나 하와이산 참치를 사용한 참치 포케 롤 등은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최근에는 케이 푸드 열풍으로 한국의 불고기 롤과 김치 롤도 각광을 받고 있어 한국인으로서 자랑스럽다.
 
 나는 미국 최북단 알래스카의 앵커리지에서 당시로는 유일한 여성 스시 요리사로 약 4년 동안 일했다. 2011년 항공사에 다니던 남편이 알래스카로 발령 나면서 아무런 준비도 없이 미국땅을 밟아야 했는데 그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막막하다. 주워 들은 얘기로는 미국에서 스시 요리사를 하면 취업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기에 마침 국가에서 취업 희망자를 대상으로 보조금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에 무작정 등록했다. 6개월 정도 요리 학원을 다니며 일식 조리사 자격증을 땄지만 실무 경험이 없어 불안했는데 그래도 그걸 믿고 미국에 들어오자마자 한인신문 업소록을 뒤져 전화를 돌렸다. 다행히 그 중 한 군데에서 연락이 왔고 최저 시급이나마 일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중 고등학생 과외 교사 정도만 부정기적으로 했을 뿐 뚜렷한 직업을 가져본 적이 없었기에 처음으로, 더구나 이국땅에서 직업을 가지게 되었다는 사실이 마냥 감격스러워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일에 매달렸던 것 같다. 비교적 쉽게 취직이 되었던 점에서 짐작해 볼 수 있듯이 종업원들에게 좋은 대우를 해 주는 직장이 아니었기 때문에 나보다 먼저 시작한 다른 요리사들은 차례로 들어왔다가 그만 두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보니 나는 일종의 터줏대감 격이 되어 스시 쪽 주방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총괄하게 되었는데 재료 주문부터 밑준비, 걱종 소스 만들기, 초밥용 생선 손질, 그리고 기본이지만 초밥에서는 가장 중요한 밥짓기까지 작게나마 내 손을 거치지 않는 일들이 없었다. 
  회전 벨트에 올라가는 음식을 결정하는 것도 중요한 임무 중 하나로서 행사에 맞춰 새로운 음식을 준비하거나 벨트 위에 시간이 지난 접시가 없도록 관리하거나 손님이 뜸하면 벨트의 중간 부분을 닫아서 적은 양의 음식을 돌려도 비어 보이지 않게 하는 등 제법 신경 쓸 일들이 많았다
 워낙 겨울이 갈고 놀 거리가 많지 않은 알래스카이기에 색색의 접시에 화려한 음식이 올라가고 그것이 또 빙글빙글 돌아가는 광경만 봐도 손님들은 재미있어 했고 곧 단골손님이 늘어났다.
 영어가 짧아 눈이라도 마주칠까봐 줄곧 도마만 보고 알했는데도 시간이 가자 나에게 인사를 건네는 손님이 생겼고 나도 차츰 고개를 들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손님의 취향도 파악하게 되어 금발 머리에 늘씬한 팔다리를 가진 제인이 오면 새싹 샐러드를 넣은 채식주의자용 롤을, 베트남 출신이라는 챙이 오면 고수가 듬뿍 들어간 세비체 롤을, 매운 걸 좋아하는 저스틴이 오면 특제 고춧가루를 써서 만든 매운 폭탄 롤을 올리곤 했다

 어느 날 오후, 쉬는 시간이지만 언제나처럼 혼자 저녁 장사 준비를 하고 있는데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키가 훤칠한 젊은 청년이었다.
 “오늘 밤 여자 친구에게 프러포즈를 하려고 해요. 혹시 저 벨트 위에 카드와 작은 선물을 올려도 될까요? “
 청년의 뺨은 발그레 상기되어 있었고 목소리도 다소 흥분되어 떨려서 나왔다. 나도 덩달아 들뜬 마음으로 사장에게 전화를 했고 다행히 사장도 흔쾌히 허락해 주었다. 
 그 날 저녁 회전 벨트를 도는 음식들 사이에서 자신의 이름을 발견한 여자 친구가 눈물과 웃음이 범벅이 되어 미래의 남편이 될 그 청년에게 키스를 퍼부은 것은 나애개도 벅찬 감동아었다.
 그렇게 수 많은 사람들이 생일을 축하하고 졸업을 축하하고 결혼을 축하하고 탄생을 축하하며 때로는 퇴직이나 이사로 인한 원치 않는 이별을 아쉬워하며 벨트가 흘러갔다. 
 『맛있다 회전초밥』에서 일하며 벨트에 다양한 음식을 올려 돌리는 회전 초밥집의 특성상 자주 새로운 음식들을 시도했는데 때로는 슬쩍 슬쩍 나만 아는 그날의 날씨, 오래된 유행가 한자락 같은 것을 요리로 만들어 올리기도 했고 처음 내 이름을 기억해 준 손님의 이름 같은 것들을 요리로 만들어 올리기도 했다. 그 중 어떤 것은 살아남았고 어떤 것은 세월이 지나며 저절로 없어졌다. 화려한 모양새 때문이든 맛 때문으든 재미있는 이름 때문이든 아니면 평범하지만 오히려 그래서 기본이 되었기 때문이든 오래 살아남는 것들은 나름의 이유가 있다
 재미있고 새로운 것들이 없다면 손님들의 발길은 끊어지게 된다. 그러나
결국 가장 오래 살아남는 것은 의외로 가장 기본적이고 평범한 것이다. 그것이 삶의 진리라는 것을 깨닫는다.
 일하는 것은 즐겁기도 힘들기도 했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의미 없는 인생도 의미 없는 시간도 없다
 생김새도 좋아하는 색깔도 음식도 취향도 모두 다 다르지만 신기하게도 사람들은 나름대로 질서를 이루며 살아내고 있다
 오늘도 지구촌 어딘가에서는 회전 벨트가 돌아가고 인생이 돌아간다.
 인생이 지치고 힘들 때 생각나는 그 곳…
 빙글 빙글 돌아간다.
  『맛있다 회전초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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